[481] 심리적(心理的) 반어(反語)

작성일
2010-06-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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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1화] 심리적(心理的) 반어(反語)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여름다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더위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낭월에게도 여름은 좀 힘든 계절입니다. 그래도 잘 견뎌야 쾌적한 가을이 있음을 알고 즐겁게 보내야 하겠네요. 어느 사이에 하지(夏至)도 지나가고 삼복(三伏)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더워야 정상이겠습니다.




  오늘은 반대말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음양(陰陽)이고 살피는 것이 오행(五行)이다보니 늘 그러한 것이 눈에 들어오고 또 그러한 것으로 비춰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반대말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음양학자(陰陽學者)에게는 당연한 것 같네요.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순간적으로 ‘저 말의 반대에 해당하는 말은 무슨 말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비가 내려서 우산이 많이 팔리겠구나!’라는 말이 들리면, 반사적(反射的)으로 ‘그럼 운동화는 안 팔리겠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셈이지요. 그러니까, ‘우산 장수는 좋겠군.’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말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누가 쓴 글을 보더라도 반대적인 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덕군자가 더 난잡하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그러니까 근엄(謹嚴)한 사람이 내면에 들어있는 욕구는 상대적으로 더욱 난잡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말인데, 이것이 심리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음양적(陰陽的)으로 관찰을 한다면 그렇다는 것도 되겠고요.


  예를 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도박판을 벌리는 것도 음양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교육자가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느냐!’고 분개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음양가의 눈으로 본다면 충분히 그렇게 해야만 심리의 바닥에 쌓인 찌꺼기를 청소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권투선수의 부인은 남편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는 인터뷰를 하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은, ‘우리 남편은 참으로 온순하고 자상한 사람이예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또 순간적으로 반어법을 생각했습니다. 투지(鬪志)를 불태우는 사나이가 아내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면 파괴심리의 이면에 있던 온순한 작용이 보상을 받아서 다시 정리가 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치는 하나라고 하면 되지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도 일반적(一般的)인 경우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심하게 왜곡(歪曲)되어서 나중에는 완전히 변질(變質)이 되어버리면 그때에는 음양의 조절기능이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성향이 복구를 포기하게 되는 모양이네요. 그렇게 되면 파괴적인 사람이거나 우울증에 빠져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병이 든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예외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음양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정도(程度)를 벗어나버리게 되면 영원히 궤도(軌度)를 이탈한 우주선처럼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선생님도 적당히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것이 좋은 것이고, 성인군자도 술에 취해서 주정을 하는 것도 또한 음양의 순환운동으로 본다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라고 하겠네요.


  물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 이러한 수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군자는 항상 군자여야 하고, 공무원은 언제나 올곧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가 없이 음적(陰的)인 성향은 겉으로 건강하게 해소가 되지 못하고 속으로 들어가서 왜곡이 될 것이고, 그것이 오히려 세상을 파괴하는 무서운 독소로 발전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종교인에게도 해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들이 선원에서 수행을 하면서 자신과 싸우는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음적인 요소가 발생할 것이고, 그러한 것은 특히 기본적인 삶의 욕구들이 억압을 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모두 이기고 성불(成佛)을 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성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렇지 못한 스님들에게는 또 하나의 마장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도가 높아지면 마장도 왕성해 진다는 말이 등장을 할 단계라고 하겠군요. 물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습니다만 도고마성(道高魔盛)의 의미는 역보상심리(逆補償心理)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냥 보상심리라면 뭔가 노력에 대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심리가 되겠습니다만 그것에 반하는 보상심리 즉 역보상심리는 숨겨진 그늘 속의 심리까지도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왜곡으로 이어지면 질병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부단히도 앙금이 남지 않도록 항상 청소를 잘해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앙금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복수(復讐)와 같은 것으로 봐도 되겠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성장한 아이가 ‘나는 커서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한다지요? 그런데 자신이 성장을 하고 나서는 어느 사이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그대로 돌려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적에 놀라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마음으로는 털어버린다고 해도 실제로 음양의 이치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 박주영의 실수로 한 점을 먹게 되었을 적에 순간적으로 무슨 생각이 들으셨나요? 1번은 ‘에구 저 멍청한 녀석~!’ 2번은 ‘저것이 마음에 짐이 되겠구나’라고 한다면 몇 번에 해당하시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아마도 현실적으로 생각이 많으신 벗님이시라면 1번을 생각하실 것이고, 심리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면 2번에 해당하실 것입니다. 물론 둘 다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반응을 보이느냐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또한 음양이네요.


  내친 김에 한국 사람들이 월드컵을 보면서 왜 그렇게 모여서 응원에 열을 올리는지 외국인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것도 음양관(陰陽觀)으로 본다면 어딘가에서 받은 상처를 이렇게 치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 응원이라는 포장을 하고서 폭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을 심리적으로 본다면 슬픈 현실이 되고 말기에 짐짓 모른 채 해야 할까 봅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지요?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뜻인데, 이러한 것도 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의 앙금이 웃으면서 칭찬하는 말 가운데에 그대로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예상치 못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경우에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그것을 잘 분석하여 원인을 찾아보면 분명히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偶然)은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는 낭월입니다. 비록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사주(四柱)의 생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당연한 직업의식일까요? 그러니까 사주에 편관(偏官)이 무지무지하게 많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역보상심리로 편관을 쳐부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식신(食神)의 심리가 뭉클뭉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식신이 없어도 식신적인 행동을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정관(正官)이 억압을 많이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앙금에는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상관(傷官)이 꿈틀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정리하게 되면 정관이 많은 사람의 내면에는 자신도 모르는 상관이 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정관(正官)을 갖고 있는 사람은 노출증(露出症)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관은 꼭꼭 싸매어서 위엄을 갖추는 것이므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편인(偏印)이 많은 사람은 사고를 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편재(偏財)의 역보상심리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러한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편재의 운이 들어와서 자극을 하게 되면 바로 미쳐버릴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가능하겠습니다. 기타의 십성에 대해서도 이러한 관점으로 살펴보면 기본적인 공식을 얻어 낼 수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아침에는 시원한 계룡산의 산들바람을 즐기고 있는 낭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의 하나하나는 또 다른 역보상의 심리를 발생시킬 것이고, 그러한 것들이 쌓여서 삶을 만들고 윤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도인들의 말씀은 항상 ‘지금 이 순간에 완전하게~!’를 외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내일을 위해서 참고 인내하는 것은 결국 심리적인 세상에서는 앙금만 가득가득 쌓아놓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벗님의 오늘은 어떻게 엮어지게 될 것인지 궁금하네요. 모쪼록 남김이 없도록 탈대로 다 타버리게 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2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