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 시시콜콜 이야기도 조금 하고.....

작성일
2010-02-09 17:38
조회
6121

[제452화] 시시콜콜 이야기도 조금 하고.........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낭월한담을 찾아왔는데 보이차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어떤 벗님은 또 심심해질 수 있으실까 걱정이 되는 낭월입니다. 하하~


물론 보이차를 접하게 되신다면 아마도 98%는 감동을 하실 것이고, 1%는 무감동이 될 수 있을 것이며 1%는 화를 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시판으로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이 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낭월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미 6년 전에 자명스님께서 가져다 주신 보이차를 마셨다면 이러한 게시판의 이야기들은 이미 그 당시에 올라갔을 것입니다만 실은 많이 늦었다고 해야 할 모양이네요. 그렇지만 항상 오늘에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낭월에게 늦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알게 된 순간에  소개를 해 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이차 연구 하느라고 시시콜콜시리즈는 도대체 언제 쓸 것이냐고 투덜대실 벗님들께 그래도 잠시 읽을 꺼리를 드려야 맘이 편할 것 같아서 한 마음 일으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렇게 글을 쓰는 틈틈히 보이차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내용은 시시콜콜시리즈의 4권에 해당하는 '간합(干合)'의 갑기합에 해당하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처음에는 '십간(十干)'에다가 간합까지도 담으려고 했는데, 제목에 충실하느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넣다가 보니까 이미 분량이 넘쳐서 더 담을 자리가 있어야 말이지요. 그래서 별도로 간합을 쓰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간합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많기에 별도로 한 권의 책이 되겠느냐고 생각하셨다면 이 글을 살펴보시고 나서 다시 관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말이 되기는 하거든요. 그래서 또 즐거운 낭월입니다. 그냥 맛보기라고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서 함께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은 화인이 설을 쇠고 나서 본격적으로 편집에 들어간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한 두달은 지나야 할런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만들기는 할 겁니다. 낭월은 원고만 써서 넘겨주려고 열심히 생각의 우주를 유영하면서 오늘도 즐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벗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또한 행복하네요. 그럼..........


                   2010년 2월 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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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기합(甲己合)의 구조(構造)


 


갑목(甲木)과 기토(己土)가 만나면 합(合)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도록 한다. 우선 사주(四柱)의 배열(排列)을 보게 되면 오른쪽에서부터 연월일시(年月日時)로 배열(排列)이 되고, 여기에다가 분(分)을 넣는다면 연월일시분(年月日時分)으로 되는데 구성(構成)을 보게 되면 다음과 같다.


 


時 日 月 年
○ ○ ○ ○
○ ○ ○ ○


동그라미가 두 줄로 되어 있는데, 위의 동그라미는 간(干)이 되고 아래의 동그라미는 지(支)가 된다. 그래서 연간(年干)과 연지(年支)가 세트를 이루고, 월간(月干)과 월지(月支)가 세트를 이루고 또 일간(日干)과 일지(日支)가 한 조가 되며 시간(時干)과 시지(時支)가 또한 한 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60개의 간지(干支)가 각기(各其) 자신(自身)의 순환(循環)에 따라서 구성(構成)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사주를 만드는 법을 설명할 적에 자세하게 할 것이므로 지금은 이렇게 되어있는 구조에 대해서만 이해를 하도록 하고 간합(干合)은 어디에서 이뤄지게 되는지를 설명하도록 한다. 간(干)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미뤄서 짐작을 할 수가 있겠지만 연월일시(年月日時)의 간(干)에서 일어나는 일이 기본(基本)이 된다. 그리고 좀 더 공부가 되면 간지(干支)와도 합(合)의 구성(構成)이 생기고 나아가서는 지지(地支)끼리도 합의 구성이 되는데 우선 천간(天干)에서의 경우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①일대일(一對一)의 합(合)


연간(年干)에 갑목(甲木)이 있고 월간(月干)에 기토(己土)가 있다면 합(合)이 된다. 또 월간(月干)과 일간(日干)에 이렇게 되어도 합이 되고, 일간(日干)과 시간(時干)이 이렇게 되어도 합이 성립이 된다. 순서(順序)는 무관(無關)하다. 글자만 있으면 합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 단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條件)이 있을 뿐이다. 이해(理解)를 위해서 간단하게 천간(天干)만 표시(表示)를 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겠다.


 


時日月年     時日月年     時日月年     時日月年
○○己甲     ○○甲己     ○己甲○     ○甲己○
○○○○     ○○○○     ○○○○     ○○○○


時日月年     時日月年
甲己○○     己甲○○
○○○○     ○○○○


이와 같은 구성이 된다면 일단 합(合)이라고 논하게 된다. 물론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정도(程度)에 다른 부분은 있겠지만 지금의 수준(水準)으로는 그것까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봐서 기본적(基本的)으로 합이 되는 것에만 이해를 하도록 설명을 해 드릴 참이다. 그리고 합(合)이 되지 않는 경우를 구태여 사주(四柱)의 구성을 봐서 판단해야 한다면 또 다음과 같이 안내를 해 드린다.


時日月年     時日月年     時日月年
甲○己○     ○己○甲     甲○○己
○○○○     ○○○○     ○○○○


이와 같이 두 글자 사이에 다른 무엇이 들어가게 되면 이것은 무조건(無條件)으로 합(合)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면 된다. 합(合)은 밀착(密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으로 봐서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중간(中間)에 다른 글자가 있다면 밀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합(合)은 무효(無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접착제(接着劑) 중간(中間)에 먼지가 끼면 접착력이 떨어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②일대다(一對多)의 합(合)


무엇이거나 일음일양(一陰一陽)으로 짝을 이루면 가장 아름답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世上)의 이치(理致)도 그렇거니와 사주(四柱)의 구조(構造)에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許多)하다. 지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경우에도 해당(該當)이 되는 것으로 알아둬야 하겠다.


합에 대해서 논할 경우에는 이와 같은 배치가 항상 나올 수가 있으므로 잘 이해를 해 둔다면 다음에는 그저 먹기로 통과(通過)를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주의깊게 살펴보시는 것을 권한다. 물론 봐도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면 걱정하지 말고 뒤에 또 나오니까 우선 갑기합(甲己合)의 경우에 대해서만 정확(正確)하게 이해해도 된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복잡(複雜)한 경우를 설명하게 되면 일인칭(一人稱)의 주체(主體)가 자꾸 등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주(四柱)에서 ‘주체(主體)’나 ‘본인(本人)’이나 ‘나’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특별(特別)한 경우를 제외(制外)하고는 거의 모두가 일간(日干)을 두고 하는 뜻이라고 알아 두면 된다.


 


⑴ 일명(一名) 쟁합(爭合)


時日月年
○甲己甲
○○○○


두 남자가 한 여인(女人)을 놓고 다투는 형상(形象)이라고 해서 ‘투쟁(鬪爭)의 합(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줄여서 쟁합(爭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경우를 놓고 남자가 부인(婦人)과 첩(妾)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譬喩)를 하기도 하는데, 심지어는 단언(斷言)을 하여 ‘바람둥이’라고 하기도 한다.


무슨 이유를 붙이더라도 정신(精神)이 집중(集中)되지 않을 것은 당연(當然)한 이야기가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맑지 않다고도 하겠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에도 합은 합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간(中間)의 기토(己土)는 두 갑목(甲木)과 합(合)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신파극(新派劇)에 나오는 것처럼 ‘김중배와 이수일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심순애’인 것이다.


심리적(心理的)으로 분석(分析)을 할 경우에는 일간(日干)의 주체(主體)를 고려(考慮)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경우에 일간(日干)은 갑목(甲木)이고 갑목(甲木)이 기토(己土)와 합을 하면서 또 다른 갑목(甲木)이 그녀 뒤에 있다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형태가 된다. ‘내 여인(女人)에게 남자(男子)가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남자가 즐겁겠는가 싶다.


‘아내가 그렇게 되면 어쩌느냐고?’ 원 천만에~! 그럴리는 없다. 아내는 고유(固有)한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여인(女人)에게 다른 남자(男子)가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면 된다. ‘실제(實際)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원 걱정도 팔자(八字)다. 그냥 ‘그러려니~~~!’하고 알고도 모른 체 하던지, 아니면 ‘팔자(八字)려니~~~!’ 하면 되는 것이지 뭘 어떻게 하기는 어떻게 해.


어쩌면 이러한 남자는 만인(萬人)의 연인(戀人)을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演藝人)과 같이 인기(人氣)가 높은 사람과 사귀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당연히 자신 외에도 다른 남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常識)이라고 봐야 할 것인데 이런 것에서 욕심(慾心)을 내어서 목숨을 건다면 아마도 만수무강(萬壽無疆)에 지장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사주(四柱)의 구성(構成)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남자가 있는 여성(女性)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으로 단정(斷定)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덟 개의 글자는 사람도 되지만 사물(事物)도 되기 때문에 무엇으로 나타날 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단정을 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여하튼 합에 대해서 논의(論議)를 한다면 이와 같은 관점(觀點)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는 말씀이다. 너무 확대해석(擴大解釋)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⑵ 일명(一名) 투합(妬合)


時日月年
○己甲己
○○○○


이 경우는 두 여성(女性)이 한 남자(男子)와 합(合)을 하고 있는 형태(形態)가 되는데, 이것을 사람에 비유(譬喩)해서 말하기를 ‘질투(嫉妬)의 합(合)’이라고 하고 줄여서 투합(妬合)이라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럴싸하게 잘도 끌어다 붙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긍(首肯)이 되기도 한다.


정확(正確)하게 풀어서 말하면, 내 남자(男子)에게 다른 여자(女子)가 생겼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어쩌면 다른 여인이 있는 남자가 나를 다시 만난 것이 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즉 다른 여자를 좋아하면서 나에게도 접근(接近)하였다는 말도 되는데 이것을 뒤집으면 ‘잘 생기도 돈 많은 놈’이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돈이 없고 못생기기조차 했다면 여인의 사랑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잘 생기고 돈이 많은 남자에게는 많은 여인(女人)이 따른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소위(所謂) 말하는 ‘바람둥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설명(說明)만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은 여러 가지의 경우가 복합적(複合的)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말을 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섣부른 판단(判斷)을 하지 말라는 경고(警告)의 말씀을 해 드린다. 주의(注意)가 아닌 경고(警告)이다.


 


⑶ 나만 합(合)하면 돼~!


時日月年
己己甲○
○○○○


일간(日干)의 기토(己土)와 월간(月干)의 갑목(甲木)은 합(合)이 되었는데, 시간(時間)의 기토(己土)는 짝을 이룰 대상(對象)이 없다. 그래서 남의 사랑을 바라다 보면서 아쉬워하는 형태(形態)가 되는데 일간(日干)의 기토(己土)가 생각하기에는 나만 합을 하면 되었으므로 그러한 것을 배려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태평(太平)스럽게 마냥 느긋할 수만도 없는 것이 팔자소관(八字所關)이다. 왜냐하면 내가 잠시만 방심(放心)을 해도 어느 순간에 뒤에 있는 기토(己土)가 내 남자와 합을 하려고 호시탐탐(虎視耽耽) 기회(機會)를 엿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緊張)을 해야 하는 것이 또 이 경우에 기토(己土) 일간(日干)이 갖게 되는 운명(運命)의 작용(作用)이다.


그래서 긴장(緊張)감이 팽팽(膨膨)하게 감도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러한 경지(!)에 도달(到達)하려면 적어도 십년(十年) 공부(工夫)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하루 이틀 공부를 해서는 이러한 것까지 알기는 어렵다는 말씀인데 이렇게 설명을 듣고서 바로 알아본다면 그만큼 공부가 잘 진전(進展)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서 이러한 상황을 음미(吟味)해 보시기 바란다.


직접체험(直接體驗)보다야 못하겠지만(^^!) 간접체험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므로 많이 생각하고 공감(共感)을 해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해가 잘되셨다면 또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인생살이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나타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서 이해를 한다면 더욱 풍요(豊饒)로운 생각의 확장(擴張)이 될 것이다.


 


⑷내꺼 넘보지 말거래이~!


時日月年
甲甲己○
○○○○


그야말로 ‘먼저 맡는 것이 임자’가 되는 경우이다. 내가 기토(己土)를 먼저 만났으므로 뒤에 있는 갑목(甲木)은 나눠 줄 몫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부자간(父子間)에 공유(共有)할 수 있지만 사랑과 권력(權力)은 공유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의 욕구(欲求)가 강력(强力)하게 투영(投影)이 되는 부분(部分)인 까닭이다.


그러나 멀리 출장(出張)이라고 하게 된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보면 대장(大將) 원숭이가 지배(支配)를 할 적에는 다른 수컷들이 꼼짝을 못하고 순종(順從)을 하다가 대장이 눈을 팔거나 다른 곳으로 간다면 순식간(瞬息間)에 달려들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 합의 경우를 떠올려 봤다.


이렇게 주변에서 보이는 것을 놓고서 자꾸 대입하는 과정이 반복되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황(狀況)을 찾아서 연결(連結)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장도 항상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므로 긴장(緊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녀석들이 태어난 시간(時間)을 알아서 사주로 뽑아보면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긴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⑸ 두 쌍(雙)


時日月年
甲己己甲
○○○○


연월(年月)의 갑기(甲己)와 일시(日時)의 기갑(己甲)이 서로 짝을 지었으니 각자의 합이 된다고 하겠다. 서로 각자 짝을 이뤘으니까 특별히 나쁘다고 할 것은 아닌데, 그래도 왜 찜찜한 기분이 들까? 그것은 내가 합이 된 것은 탓을 할 일이 아니지만 다른 합은 맘에 안 드는 이유로 인해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을 해 보시라. 사주팔자(四柱八字)의 단 여덟 글자 가운데 나는 주인(主人)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글자들이 서로 짝을 지어서 뭉쳐진다면 이것은 뭔가 섭섭한 부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합이 되면 사랑에 빠져서 일을 하지 않는 분위기로 변질(變質)이 될 가능성(可能性)이 농후(濃厚)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作業)에 차질(差跌)을 가져온다면 이것은 분명(分明)히 원하는 바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보면서 ‘참 이기적(利己的)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생각이다. 원래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자신의 목적(目的)을 위해서만 모든 것이 존재하는 줄로 알고 착각(錯覺)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주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아마도 하는 일들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별로 협력(協力)을 하려는 마음이 강력(强力)하지 않을 가능성을 걱정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물론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인 줄을 분명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다. 합이면 다 좋은 줄로 알고 있는 합의 초보(初步)라면 이러한 대목에서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합에도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고, 또 그저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합에 대한 이해가 잘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⑹ 같지만 다른 두 쌍


時日月年
己己甲甲
○○○○


사람은 똑 같이 2남2녀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숫자만 보고서 섣부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항상 오류(誤謬)을 일으킬 가능성(可能性)은 항상 내재(內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앞의 ⑸에서 본 경우와 글자 모양은 완전히 일치(一致)를 하지만 실제로 내용(內容)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월간(月干)의 갑목(甲木)과 일간(日干)의 기토(己土)는 완전(完全)한 합(合)이 되는 것으로 봐서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연간(年干)의 갑목(甲木)과 시간(時干)의 기토(己土)는 어떻게 해석(解釋)을 하면 좋을까?


이러한 장면에서 연구(硏究)의 깊이와 관찰(觀察)의 능력(能力)이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벗님의 관점(觀點)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러한 구조가 되면 연간(年干)의 갑목(甲木)은 월간(月干)의 갑목(甲木)이 미워서 죽을 지경이고, 월간(月干)의 갑목(甲木)은 연간(年干)의 갑목(甲木)이 두려워서 노심초사(勞心焦思)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現象)은 시간(時干)의 기토(己土)와 일간(日干)의 기토(己土) 사이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즉 시간(時干)의 기토(己土)는 일간(日干)의 기토(己土)을 보면 질투심(嫉妬心)이 발생(發生)하게 되고, 다시 일간(日干)의 기토(己土)는 시간(時干)의 기토(己土)로 인해서 자신이 얻은 것을 빼앗길까봐 두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글자에도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우리는 글자에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 명리(命理)의 이치(理致)는 바로 여기에서 오묘(奧妙)한 조화(調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그 깊은 심연(深淵)의 비밀(秘密)이 그대로 술술 풀려나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겠는가?


 


⑺ 두 쌍은 두 쌍인데


時日月年
甲己甲己
○○○○


이번에도 뭔가 약간 위치(位置)만 달라졌다. 그런데 풀이를 한다면 또 상당히 다른 의미를 읽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연간(年干)의 기토(己土)와 월간(月干)의 갑목(甲木)이 합(合)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일간(日干)의 기토(己土)와 시간(時干)의 갑목(甲木)도 제대로 합이 되었다고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조심해서 살펴보게 되면 월간(月干)의 갑목(甲木)과 일간(日干)의 기토(己土)의 관계(關係)에 대해서 신경(神經)이 쓰인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될까? 일반 사람들이야 ‘그냥 그렇겠거니…’해도 그만이다. 그렇지만 한 분야(分野)를 파고들어서 전문가(專門家)가 될 작정(酌定)이라면 그래서는 희망(希望)이 없다.


월간(月干)의 갑목(甲木)부터 살펴보면 그의 마음은 양쪽에 집중(集中)이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일단 혼란(混亂)이 발생(發生)하게 될 가능성(可能性)에 대해서 고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두 가지를 동시(同時)에 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집중력(集中力)이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연간(年干)의 기토(己土)는 자신(自身)의 수중(手中)에 들어있으므로 일단 확보(確保)를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옆에서 알짱대는 일간(日干)의 기토(己土)를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갑목(甲木)이 바람기가 많아서도 아니고 도덕성(道德性)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렇게 환경(環境)이 되어 있어서 자신도 그 환경에 적응(適應)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월간(月干)의 갑목(甲木)이 갖고 있는 현실(現實)이 되는 것이다. 그것까지 살피면서 사주(四柱)에 대해서 공부를 하노라면 점차(漸次)로 수준(水準)이 높아지게 되어 있는 것은 누가 말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다시 일간(日干)의 기토(己土)도 마찬가지의 법칙(法則)이 그대로 적용(適用)된다. 즉 자신(自身)은 시간(時干)의 갑목(甲木)과 합(合)이 되어 있어서 일단 몫을 챙겨놨다. 그리고 다시 멋진 남자가 눈 앞에서 오락가락하는데 어찌 눈길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지 않으랴~ 그래서 또 마음이 흔들리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이 사주의 주인공은 심리적(心理的)으로 대단히 복잡(複雜)한 상태(狀態)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간(年干)의 기토(己土)와 시간(時干)의 갑목(甲木)은 자신들이 제각기 짝을 하나씩 잡았으므로 만사태평(萬事太平)으로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면서 편안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물론 너무도 당연히 내 아내나 남편 옆에 이성(異性)이 알짱거리면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상대방(相對方)을 의심(疑心)하게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인생(人生)의 비극(悲劇)은 비로소 시작(始作)이 되는 것이다. 모든 역사의 시작에는 의심(疑心)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해 보시라. 그 많은 영웅(英雄)과 호걸(豪傑)들이 군주(君主)의 의심(疑心)을 사서 명(命)대로 다 살지를 못하고 황천객(黃泉客)이 되어버린 것은 너무나도 많은 사례로 역사(歷史)에 남아있으니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찾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설명이면 어떤 경우에는 합(合)이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합이 되지 않는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것을 이해한 다음에 비로소 논리적(論理的)으로 생각을 해 보는 단계(段階)로 넘어가는 것이다. 잘 이해가 되셨다면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