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길잃은 벌떼들

작성일
2008-05-18 08:03
조회
7458

제383화 길을 잃은 벌떼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의 행사를 마치고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네요. 방문자도 막아 놓고 마냥 늘어져서 잠만 잤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이나마 여유를 갖고 즐기는 것에도 마장이 끼었는지 가만 두지를 않네요. 그에 대한 말씀을 해 드리려고요. 길을 잃은 벌떼들로 인해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진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모처럼 낮잠을 자는데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기에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나 하고 내다봤더니 마당가의 단풍나무를 중심으로 벌떼들이 왱왱, 아니 웅웅~거리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이웃 벌치는 집에서 방심을 하는 사이에 분봉이 일어나서 길을 찾다가 감로사까지 날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토종벌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사는 인가에 찾아들기 어려울 것이고, 숲 속으로 들어갔을 텐데, 양봉임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아직 여왕벌이 자리를 잡지 않아서 저렇게 날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나무 어딘기에 앉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쓸어담으면 된다고 알려주고 이전에 준비해 뒀던 벌통이나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마침 며칠 후에 집으로 귀가를 할 사람이 있어서 갖고 가서 키우겠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좋다고 하더군요. 낭월은 벌 시중을 들 마음이 전혀 없거든요. 그 녀석들을 돌보는 것도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담기 전에 확실하게 해 뒀습니다. 담아 놓으면 굶겨 죽일 수도 없고, 그것도 참 딱한 일이기에 키울 생각이 없다면 아예 날아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벌들의 행동이 나무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여왕이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짐작이 되는군요. 여왕이 앉아야만 벌데들이 덩어리를 이루고 엉겨붙거든요. 여러 차례 이러한 장면을 봤는데 항상 같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벌의 속성인 셈이지요.



계속 날아들고 있습니다. 줄잡아서 2만마리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야 대략 분봉을 할 때가 되면 그 정도의 식구를 데리고 나오거든요. 그래서 짐작으로 때려잡았습니다. 무리가 제법 크기 때문에 튼튼한 한 통이 되겠다고 봤지요. 덩어리가 두어 됫박은 되어 보여서 이 정도라면 2만마리는 된다고 예전에 꿀벌을 키우는 사람에게 들었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웬만해서는 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왕을 지키느라고 쏠 겨를이 없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이제 거의 다 엉겨 붙었습니다. 95%정도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봐서 여왕을 담기만 하면 벌은 갈무리가 된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꿀을 바른 그릇에다가 담아다가 벌통에 털어 넣으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만 소쿠리에 다음과 같은 장치를 해갖고 왔네요.



봐하니 벌이 발을 붙일 자리가 없어서 틀렸습니다만 마땅히 준비가 되지도 않아서 그대로 해 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하기에 털어담으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아마도 대추를 털거나 밤이라도 터는 것으로 착각을 했는지 아래에 소쿠리를 대고 우산대로 두드리니 모두 날아가버리니 그것이 그릇으로 들어가겠는가 말이지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그래서 일차로 시도를 한 것은 실패를 했습니다. 다시 앉기를 기다려야지요. 그리고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자리를 잡으면 저녁에 털어담도록 하고 내버려 두자고 했습니다.




일단 여왕이 앉은 자리를 확인한 다음에는 소쿠리를 덮어놓고 외출을 했습니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야 했거든요. 그보다도 스승의 날인가 뭐라고 저녁을 산다는 학생이 있어서 나들이를 나간 셈이네요. 이 정도의 분위기라고 한다면 충분히 엉켜들 것으로 봤습니다.



그렇게 일을 잘 보고 저녁때가 되어서 귀가를 했더니 야무지게 뭉쳐져 있네요. 이제 통에다가 털어 담기만 하면 됩니다. 밤이라서 날지도 않는 벌들을 담으라고 알려주고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봣더니 잘 담았다고 하더군요.



새로 잡아 준 집에 적응하고 있는 벌들입니다. 열심히 드나들면서 집을 정리하느라고 분주한 모습은 다음을 오전의 풍경입니다. 이제 집을 만들고 여왕은 알을 낳을 것이니다. 그리고 벌은 야간에 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저녁에 싣고 가겠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라고 해 놓고 봤더니 아직 나무에 매달일 벌들이 반되는 되게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녁에 어둬지면 저 녀석들도 함께 담아가라고 해줬습니다. 왜냐면 그냥 둬도 죽거든요.


그래 놓고 외출을 하고 늦게 왔더니 그 사이에 벌을 싣고 갔더군요. 그래서 남은 벌들돌 담아가겠거니 하고서 다음날 아침에 나가봤더니 그냥 나무에 붙어있는 겁니다. 그냥 가버린 것이지요. 수천의 벌들은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니 여왕을 잃은 것이지요. 바로 옆에 벌통을 뒀는데도 일단 남의 집에는 침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잃어버린 여왕에 대한 정보가 있을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의 풍경입니다. 부슬비는 내리는데 처량하게 매달려서 여왕의 안부만 궁금해 하고 있는 벌떼들을 보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벌을 가져간 친구가 경험이 없는 관계로 이 벌들은 놔둬도 다 죽게된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여왕을 잃었으니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앞의 벌떼들은 여왕이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활기가 나고 신명이 나서 날갯짓을 합니다만 이 벌들은 패잔병의 모습 그대로 풀이 죽어서 엉켜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측은한 모습을 보면서 또 슬픈 생명들을 만들었구나 싶었습니다.


이 벌들은 꿀을 물러 가지도 않고 그렇게 여왕을 기다리면서 순교자가 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굶어 죽을 때까지 이러고 있겠지요. 들판에는 아카시아가 향기를 날리면서 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만 이 친구들에게는 모두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여왕 하나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렇게도 무지하고 충직한 백성들의 생사는 존망을 달리 한다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별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얀마, 사천성 등지에서 수십만의 생명이 둥지에 매달려 있다가 죽음을 당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이것도 벌들의 운명일까요? 아니면 환경에서 얻은 운명일까요? 그렇게 꼼짝도 안 하고 비를 맞고 있는 벌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의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2008년 5월 18일 아침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