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甲의 두 얼굴

작성일
2008-01-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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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甲의 두 얼굴


 


 


신년 계획은 잘 세우셨는지요? 낭월입니다.


낭월도 새해의 계획을 세우기는 합니다. 다만 항상 변화하는 흐름을 타고 진행하다가 보면 계획을 세워봐야 실제의 진행은 엉뚱하게 달려가 버리기 때문에 세우기만 하고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새해의 계획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팔자괘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하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곽목량 선생님은 10년 이상의 세월을 연구하여 얻은 결과물인데 일년 정도는 마음을 모아서 임상과 연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서 대입을 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낭월의 관법으로 수정을 해서 살펴보고 대입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각대로 다듬어야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수를 받은 다음에는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제자가 100인이라도 각자 활용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낭월의 연구에 대해서도 또 많은 벗님들 나름대로 소화를 시킨 다음에는 새로운 구성을 통해서 관찰하고 적용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또 그래야 자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냥 암기한 대로만 적용시킨다면 자신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므로 또한 진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이러한 관점으로 학문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1. 甲의 고정(固定)된 얼굴


요즘은 사주심리편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육십갑자의 본질과 응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약간의 소견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벗님의 연구에 참고가 되신다면 더욱 좋겠고, 또 하나의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甲의 고정된 얼굴이라는 것은 본질적(本質的)인 성분을 의미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무엇이거나 그 물질(혹은 정신)에는 고정적인 형체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식탁은 식탁의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책상은 책상의 기능에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갑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형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능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갑의 고정된 모습은 일단 ‘동물(動物)’로 봅니다. 이것이 갑이 갖고 있는 본질(本質)이라고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갑을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그 본질은 동물이어서 이것은 바꾸거나 수정을 할 수가 없다고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이해한다면 식탁은 고정된 모습이 ‘식탁(食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책상으로 사용하거나 물건을 올려놓는 받침대로 사용하거나 침상으로 사용을 하거나 간에 그것은 누가 봐도 식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은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글자로 본다면 움직일동, 만물물로 구성되었습니다. 물질물로 봐도 의미는 같은 것으로 보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조합하면 간단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은 ‘움직이는 물질(혹은 물건)’이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겠습니다.


언뜻 생각할 수 있는 고양이나 생쥐도 동물이고, 비행기나 자동차도 동물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동물이고 갑목(甲木)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즉 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이 갑의 고정된 모습입니다.


 


2. 甲에 응용되는 천(千)의 얼굴


응용은 변화(變化)를 말하기도 합니다. 기본형에서 이해를 한 다음에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응용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응용은 많이 할 수가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응용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책으로 베개를 하거나 선반의 과자를 내려 먹을 적에 발돋움대로 사용하거나, 혹은 말을 듣지 않는 동생의 뒤통수를 때릴 적에 사용하는 것은 응용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엿장수가 지나갈 적에 엿과 바꿔먹는 것도 일종의 응용으로 볼 수가 있겠네요. 여하는 본래의 목적 이외에 사용을 한다면 응용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응용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갑을 응용한다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움직이기만 한다면 갑으로 대입을 하는 것도 하나의 응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갑=동물’이라는 논리를 응용하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제목에 1000의 얼굴이라고 했으니까 그 응용변화는 무궁무진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우선은 십성(十星)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를 해 보도록 하십시다.


 


3. 甲이 십성(十星)으로 응용될 경우


갑의 십성에 대한 본질은 ‘편재(偏財)’입니다. 이것은 고정적(固定的)인 관점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편재로 갑목의 본질십성으로 삼는 것은 편재는 돌아다니는 동물적인 성분이기 때문에 대입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응용이 되는 과정을 살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일간(日干)에 따라서 응용은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드리면 눈치가 빠르신 벗님은 벌써 감이 잡히실 것으로 보겠습니다. 부연설명을 드린다면, 을목(乙木)이 바라다보면 겁재(劫財)로 응용이 되고, 병화(丙火)가 바라다보면 편인(偏印)으로 응용이 될 것이며, 무토(戊土)가 바라다보면 편관(偏官)으로 응용이 된다는 것을 설명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본질(本質)은 논하지 않고 응용에 대해서만 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봐도 문제는 없습니다. 즉 어떻게 쓰이느냐는 것이 중요하겠기 때문이지요. 식탁을 침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침상이지 식탁이 아니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괜히 소란만 떠는 것이 되는 셈인가요?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에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을 해 봅시다.


 


4. 응용하는 것의 본질


가령 갑목(甲木)을 식신(食神)으로 응용했다고 전제를 해 봅니다. 일간(日干)은 임수(壬水)라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응용은 식신이 되는데, 본질은 여전히 편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정리하게 되면 무슨 공식이 나올 것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수(壬水)는 갑목(甲木)을 식신(食神)으로 사용함’


이렇게 되는 공식을 떠올려봤습니다. 사실 이 의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정화(丁火)가 상관으로 작용하는 경우에 대해서 궁리를 해 보다가 벽을 만난 것이지요. 상관은 상관인데, 정화상관과, 계수상관이 같다 고 할 수가 있겠느냐는 점에 걸려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었지요. 그러다가 하건충 선생님의 책을 만나서 비로소 여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석을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것은 궁리를 좀 해봐야 하겠네요. 그러니까 편재를 갖고 식신으로 사용하려고 하니까 그 방향은 제한이 있다는 것부터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즉 식탁을 침상으로 사용을 할 수는 있겠지만 다리가 너무 높아서 불편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비유를 들어봅니다. 뭔가 침상보다 더 편리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식신으로 편재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식신은 편재의 특성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임수의 식신은 끝없는 궁리가 아니고 물질을 통제하는(즉 편재의 성분)방향으로 식신을 사용하게 된다고 이해를 해 봅니다.


이렇게 된다면 열 가지로 응용이 되는 과정에 대한 정리만 된다면 변화에 대한 답을 이해하는 것에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기에 다시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식으로 보여드립니다.


‘식신(食神)이 본질인 임수(壬水)가 편재(偏財)가 본질인 갑목(甲木)을 식신(食神)으로 사용함’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일간의 본질도 고려를 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세상 만물을 바라다보는 시각도 제각각인 탓이지요. 같은 상황을 놓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을 간과(看過)한다면 깊은 연구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피노라면 전개하는 과정은 좀 복잡하지만 정리가 된다면 더욱 깊은 통찰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관찰을 해 봅니다.


 


5. 여가예추(餘可例推)


제목이 황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머지도 이 예를 기준으로 해서 추론하면 가능하다’는 뜻의 글입니다. 예전에 자평진전을 보면서 군데군데에서 발견한 글귀여서 문득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갑목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렸으니 일리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신 다음에 나머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입을 하면 될 것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사실 ‘여가예추’가 나오면 불만이 많이 생겼었습니다. 이해도 되지 않는데 응용을 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을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니까 과연 그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일이 풀어서 설명을 한다면 생각을 할 여지를 없애버릴 수도 있는데, 여지를 남겨 둠으로 해서 스스로 빈 칸을 채워 넣도록 하는 것은 궁리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으로 봐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렵고 고단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건충 선생도 日柱심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40간지만 설명을 하고 나머지 20간지는 미뤄서 궁리해 보라고 해 둔 것도 같은 의미로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아쉬움이 많아서 불만을 가져봤습니다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생각을 해 보니까 20간지만 설명을 했더라도 나머지는 미뤄서 해석을 할 수가 있어야 응용이 가능하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40개나 풀어 놓은 것은 너무 친절했던 것이지요.


혹 잠을 자다가 일찍 깨어서 일어나기도 뭣하고, 더 자려고 해도 잠도 오지 않을 경우가 있다면 이러한 시기야말로 본질과 응용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 딱 좋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을 하시고 궁리 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궁리하는 자에게는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낭월입니다. 그렇게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다소 엇길로 접어 들 수는 있지만 결코 퇴보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큰 길을 만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나날이 오신다면 노력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새벽에 잠이 깨여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다가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린다면 지혜로우신 벗님은 유익한 자료로 응용을 하실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간단하게나마 방법론을 제시해 봤습니다. 또 생각을 해 보십시다.


 


            2008년 1월 1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