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 이론가와 실천가

작성일
2007-07-2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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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이론가(理論家)와 실천가(實踐家)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어느 분야이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그 교육을 바탕으로 일생을 영위하게 될 방편으로 삼게 되는 것은 같다고 하겠는데 그 과정에서 크게 본다면 둘로 나눠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이론적(理論的)으로 연구(硏究)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실천적(實踐的)인 행위(行爲)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도(中道)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1. 이론가(理論家)의 공책(空冊)에는......


무슨 일을 생각하거나 논리적(論理的)으로 타당한가를 먼저 생각하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합리적(合理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객관성(客觀性)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만인(萬人)에게 고르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부에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되겠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다 봐도 모순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며, 보편적(普遍的)이고 타당성(妥當性)이 충분한 내용이라고 판단이 되면 비로소 노트에 기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이론가라고 합니다.


이론가는 주로 생각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상황을 떠올리게 되면 그러한 것의 모순성이나 합리성에 대해서 사색(思索)을 하면서 탐구(探究)하는 것이라고 하겠네요. 그가 바라다 보고 있는 것은 ‘사색(思索)의 창(窓)’입니다. 그래서 생각으로 시작해서 생각으로 마무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을 철학자(哲學者)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철학자는 생각의 영역에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유롭게 하늘 끝에서 땅속까지 유영(遊泳)을 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연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러한 과정을 관찰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교(宗敎)로 화두(話頭)를 삼는다면 ‘종교철학자’가 되는 것이고, 자연의 구조를 대상으로 연구하게 된다면 ‘자연철학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는 이론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대입하고자 하는 것이니까 이치적(理致的)으로 타당하게 된다면 비로소 실제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접근을 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생각들 가운데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생겨났다가 사라진 무수한 가능성들(?)은 수천 배에 달할 것이라고도 생각을 해 봅니다.


2. 실천가(實踐家)의 두 손에는......


이론가와 대비해서 생각이 나는 낱말로 실천가를 떠올려 봤습니다. 실천가는 모든 면에서 이론가에 비해서 적극적(積極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부닥쳐가면서 답을 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경험적(經驗的)인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반면에 이론적인 것은 공론(空論)이라고 생각하고 겁쟁이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단언을 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실제로 전개를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이론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천가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이론적인 것만 있다면 그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터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을 이론가들이 바라보게 되면 ‘무모한 사람들’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시행착오(試行錯誤)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해 보고 되지 않으면 고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거나 용감하게 돌진하면서 그 자리에서 얻어가는 과정의 경험으로 누적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는 해보자는 마음이 가득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실천가의 두 손에는 망치와 밧줄이 들려있기 마련입니다. 장애물을 만나면 망치로 깨고 진행할 것이며, 낭떠러지를 만나면 밧줄에 의지해서 다시 뒤로 돌아오면 그만입니다. 가장 못난 것은 ‘미리 걱정하고 가보지도 않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네요.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많이 겪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러다가 일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겠지요. 많은 실천가들의 실패담은 그러한 것을 증명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가령 금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연구를 하다가 중금속에 중독되어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릴 수도 있고, 험난한 오지를 지도(地圖)도 한 장 없이 무턱대고 길을 떠나는 탐험가(探險家)나 모험가(冒險家)도 같은 스타일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3. 이론가와 실천가의 차이점


이론가는 달을 바라보면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시를 쓰고 이야기를 만듭니다. 또 달까지의 거리를 여러 방법으로 측정하는 공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직접 달에 가보려고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여러 가지의 가능성(可能性)에 대해서만 시안(試案)을 내어 놓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무척 안전합니다. 잘못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연구를 하면서 오류가 발생하면 또 수정을 해 나가는 것도 이론가의 성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실천가는 달에 가는 수단을 강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실패를 하게 되겠지만 결국은 로켓을 만들어서 달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한 다음에는 사람들을 실어다 주고 수익을 올릴 연구를 하게 되지요. 이미 이러한 연구는 실천가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셈이로군요.


결국은 이론가들이 생각을 하면서 발견한 자연의 이치를 바탕으로 삼아서 실천가들이 연구하여 확인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수레의 두 바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하나로는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로만 성립하면 공론(空論)이 되거나, 무리수(無理數)가 되어버릴 공산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이론과 정확한 실천이 겸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결론은 없을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을 해보면 인생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이론가와 실천가를 겸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즉 이론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학자(學者)라고 할 수가 있겠고, 실천가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업가(事業家)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아무리 이론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사업을 해 봐야 하는 것이고, 사업가라고 하더라도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론을 알아야 하는 것이 매우 합당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론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항상 주머니가 궁색(窮塞)하고, 실천만 주장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든 것이 없다고 하겠으니 이러한 것을 엮어서 속담을 하나 만들게 되면, ‘이론가는 배가 고프고 실천가는 머리가 고프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배도 부르고 머리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천의 단계를 적당하게 잘 배합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학자는 배가 고파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고 보면 학자가 실천을 하기 위해서 사업하는 것을 예전에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학자는 학생을 가르쳐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삼는 것이 청빈(淸貧)하다고 하여 귀하게 취급을 했었던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만든 사람도 학자라고 하겠네요.


반면에 수염이 열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말을 믿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을 낮게 봤던 시대도 있었지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의미로 놓고 본다면 짐작이 되는 바가 있네요. 그 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을 맨 끝에 뒀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반대로 상공농사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말하자면 선비의 대우가 하락일로(下落一路)를 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사람으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시대의 현상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 일리가 있다고 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여하튼 옛날에는 이론가들이 대우를 받았다면 요즘은 실천가들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4. 대만에서 만난 두 분의 스승님


대만에서 만난 선생님이 두 분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진춘익(陳椿益) 선생님을 만나서 심리분석에 대한 고견을 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곽목량(郭木樑) 선생님을 만나서 팔자괘(八字卦)의 활용에 대한 해석법(解釋法)을 얻게 되었으니 두 선생님들로 인해서 음양오행의 세계는 가일층 더 깊은 영역으로 파고 들어갈 힌트를 얻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두 선생님의 스타일을 생각하다가 이론가적 기질이 강한 진 선생님과 실천가적 기질이 강한 곽 선생님을 비교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성향이 강할 수도 있고, 실천적인 성향이 강하게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많이 한다”


이 말은 진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묻지 않는 말은 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또한 같은 관점에서 얻어 낸 경험담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어떤 상황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이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도 이론가의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낭월의 성향도 진 선생님을 닮아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마도 그래서 인연이 쉽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네요. 무엇이거나 이론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그 다음에 적용(適用)을 시켜 볼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를 가르치는 스타일에서도 그러한 차이는 여지없이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논리적인 것을 배울 적에는 이보다 좋은 스승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책을 보면서도 책의 내용이 과연 논리적인가에 대해서 늘 주의하면서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논리성을 잃었다고 보면 바로 쓰레기로 취급을 하고 책을 던져버리게 되지요. 비록 그 책을 지은이가 석가모니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이론가의 권한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병이 낮는다면 개똥이라도 약으로 쓴다”


한국의 속담으로 적당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곽 선생의 스타일에 어울린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진 선생에게 개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기본적으로 회의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곽 선생이 일단 먹어보고 결정하라고 한다면...... 뭐라고 답을 할지 궁금해지네요. 하하~


가령 사주(四柱)에 신신(申申)이 붙어 있으면 ‘당신의 집은 철길 옆이다’라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고 하면 망신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더니만, ‘그러나 철길 옆에 살지 않기 때문에 공장이 있는 지역에서 살게 된다’고 하고,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철길 옆이나 공장지대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압선이 집 주위에 있다’고 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실천가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만약에 벗님이 이 내용을 읽으시면서 ‘그런 법이 어디 있담’이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이론가의 기질이 많은 것이고, ‘괜찮은 방법이네~!’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실천가의 기질로 봐도 되겠습니다. 하하~


중요한 것은 이론가도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면서 실천을 하게 되고, 실천가도 상담을 하면서 맞지 않는 것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론을 접수한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점점 서로는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두 분의 선생님을 대하면서 왠지 진 선생님은 어눌해 보이고, 곽 선생님은 활기차 보이는데, 곰곰 생각을 해 보면 모두가 대단한 내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 선생님을 ‘어눌한 가운데에 치밀한 내공을 갖춘 위엄이 있다’고 한다면, 곽 선생님은 ‘활기찬 가운데 이론적인 힘이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서로 대비가 되는 스타일의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낭월의 공부는 또 한바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두 이론과 실천 사이에 서로 통하는 뚜렷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낭월은 올 여름에 이러한 것을 엮어야 한다는 만만찮은 숙제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론을 갖추고 다시 실천을 겸한다면 후학을 지도하는 나날은 더욱 보람되지 않겠느냐는 꿈을 갖게 되는 것은 노력을 한 다음에 기약해야 할 결정체(結晶體)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5.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위해서


이제 자평명리학의 공부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면 ‘이론적으로 공부를 하여 확고한 기반을 다진 다음에 실천적으로 경험을 통하여 확인을 해 나가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지 싶습니다. 어떤 학자는 개인적인 상담은 하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전화를 해 봤더니 ‘시간이 없어서’ , ‘외국인이라서’라는 등등의 이유를 대는데, 알고 봤더니 상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책으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자평명리학의 이치를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쓰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런 선생님들은 뭘 해서 먹고 사느냐고 했더니, 학생들을 가르쳐서 먹고 산다고 하네요. 모두 먹고 살 길은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좋은 한 삶의 길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만 이러한 경우에는 뭔가 허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옛말에 서당 훈장님과 학동이 함께 과거를 봤더니 훈장님은 낙방하고 제자는 급제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론으로는 천하와 겨룰만 하겠지만 실천력이 약해서 과거장에서의 시제를 받고서 능력발휘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렇지만 이론적으로라도 강력한 힘이 있다면 후학을 지도해서 후학으로 하여금 실천하는 인연을 맺는 것도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그 훈장님께 배운 학생이 급제를 했다면 훈장님이 엉터리가 아닌 것은 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풍수가(風水家)도 ‘방안풍수’와 ‘현장풍수’로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만 모든 분야는 아마 같다고 봐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론가는 선생이 되어서 후학을 가르치고, 실천가는 선생에게 배워서 사업을 잘 하면 되지만 그 과정에서도 이론가이면서도 실천력이 강해야 하겠고, 실천가이면서도 이론적으로 내공을 쌓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조화(調和)라고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어느 분야이거나 두 가지를 서로 견줘서 균형을 이룬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항상 깨어있는 사고력(思考力)으로 관찰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네요.


대만에 다녀온 소감을 겸해서 한담 한편 올려봅니다. 날씨가 하는 것이 후텁지근한 장마의 뒤끝인가 봅니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에어컨이 꺼지면 컴퓨터의 열기에 흠뻑 젖을 지경인 것을 보면 여름은 여름인가 봅니다. 대만에서는 밤새도록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잤습니다만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는 잠을 자는 동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이제 열심히 정리를 하여 넣을 것은 넣고, 뺄 것은 빼야 할 단계가 되었습니다. 상담의뢰를 하고자 전화하시는 분들께는 8월부터 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지금 같아서는 연구의 정리에 푹 빠져서 상담은 내년에나 한다고 하고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밥도 벌어가면서 공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포도청법문’이 아니라도, 공부를 하면서 임상해야 그 정리가 더 잘 된다고 하겠으니 분발을 해서 정진해야 할 모양입니다. 공부에 힘쓰시는 벗님의 하루하루도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7년 7월 20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