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넓이와 깊이

작성일
2007-06-2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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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4

제363화 넓이와 깊이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어제(2007년 6월 21)는 동국대학교의 사회교육원에서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애를 써서 공부하신 선생님들의 수료를 축하해 드리려고 행사에 참석을 했었지요. 명리학과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과에서 공부를 하신 선생님들도 모두 행복한 모습으로 까운과 모자를 쓰고 즐거워하는 장면들이 보기가 참 좋았습니다. 아마도 그 속에 깃든 생각은 각기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하게 공부를 해서 한 과정을 마친다는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깃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수료식의 기념사진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나저나 까운이 검은 색인 것은 지혜의 水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노랑색의 깃은 지혜를 장악했다는 토극수(土剋水)의 뜻이 될 수도..... 그 사이에도 망상하는 낭월입니다. 하하~


1. 넓게 바라보는 시각(視覺)


살아오신 세월의 나날들이 결코 만만치 않았을 연륜임에도 불구하고, 만학(晩學)의 즐거움을 위해서 투자를 한 각자의 행복이야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가 없는 소중한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봅니다. 노력을 한 만큼의 결과는 자신의 몫이라고 하는 생각을 늘 해보고 있습니다. 결코 노력하지 않은 자의 얻을 몫은 없다는 것을 늘 확인합니다.


새로운 경험은 또 다른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됨으로 해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에서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만큼 바라보는 시야(視野)는 넓어지기 마련이지요.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넓게 보는 사람의 눈에 비친 사물의 내용은 또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음양(陰陽)의 이치를 공부하고 나서 바라보는 세계와, 오행(五行)의 이치를 배우고 나서 바라보는 세계가 같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물며 십성(十星)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 보는 사람의 모습이 어찌 이전과 같을 수가 있을 것이며, 용신(用神)까지 소화를 시킨 다음에 느끼는 인생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다시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득 곽암화상의 십우도(十牛圖)가 생각이 나네요. 소를 잃어버린 목동이 소를 찾으려고 밧줄을 손에 든 채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지 않으면 잃어버린 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방법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방팔방으로 소를 찾아서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요렇게 생긴 소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지요. 그 과정은 아마도 길을 찾아가는 수행자의 첫걸음에 해당할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축적(蓄積)해 놓은 황금보다 귀한 삶의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료들로 인해서 후학은 귀중한 시간을 절약하게 되고 그래서 남는 시간은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사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선현(先賢)의 깨달음에 경탄(敬歎)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쩌면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을 그 분도 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미소를 머금기도 합니다. 이것이 다 공부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박식(博識)’이라는 말처럼 넓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박식(博識)은 박학다식(博學多識)의 줄임말이겠고요. 넓게 알지 못하면 생각의 범위가 넓지 못합니다. 어쩔 수가 없는 인과관계(因果關係)라고 하겠습니다. 널리 배움을 구해서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각의 밑천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길이라고만 한다면 무엇이거나 많이 배워서 넓게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식의 넓이가 되고, 그 넓이에 따라서 ‘소견(所見)이 넓다’고도 하고 ‘소견이 좁다’고도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는 관점이 매우 좁은 사람에게는 특별히 ‘소견머리 하고는.....’이라고 하게 됩니다.


수료증을 받으면서 행복해하는 나이드신 선생님들을 보면서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 이만큼의 이해를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는 뿌듯함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넓게 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야말로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지요. 힘을 기르고 있는 사람이 항상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법입니다.


2. 깊게 바라보는 생각(生覺)


그럼 수료증을 받은 다음에는 뭘 해야 할 것인지를 또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터를 잡은 다음에는 그 터에서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그 동안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부를 한 내용은 모두가 지식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얻은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얻은 것은 내 것일까요? 남의 것이겠지요. 낭월에게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면 낭월의 것을 얻어서 자연을 이해한 것이고, 또 다른 선생님께 들었다고 한다면 그 선생님의 경험을 지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므로 얻은 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면 서서히 지식(知識)에서 지혜(智慧)로 변환을 하게 되는 시발점에 머무른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넓게 자리는 잡았는데, 깊게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지요. 즉 지식으로는 충분히 알았는데, 그 이상의 지혜로 파고 들어가는 것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지식분자(知識分子)’에 불과할 뿐이지요. 지식은 백과사전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고 들어가지 못한다고 고민하는 학인(學人)들을 늘 접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벗님은 어떠신지요?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떤지를 늘 생각하면서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또 새로운 관점으로 반사되어 돌아오는 그 무엇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낭월도 늘 자신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는 지식에 만족하고 있는지,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면에 깃든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 혹은 꿈만 꾸지 않고 본질을 향해서 한 걸음을 더 내딛고자 머리통을 쥐어박고 있는지도 관찰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섬광(閃光)을 느끼게 되면 황홀하여 몇 시간을 그렇게 멍청한 모습으로 생각 속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일이 매우 가끔 있다는 것이 아쉽지요.


머릿속이 갑자기 환해지는 경험을 하셨다면 틀림없이 깊이 파고들어가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으신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왜냐면 지식만으로 그렇게 되기는 너무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빛이라고 할 수가 있는 그러한 느낌은 남에게 얻어배워서는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경험을 할 수가 없는 세상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경봉스님께서도 ‘하루 온종일 남의 돈만 센다’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돈이라는 것은 남이 얻은 지식을 것이고, 그것만 센다는 것은 ‘누가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저렇게 말했다’는 것이 되겠지요. 낭월은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얼마나 진실(眞實)된 가르침인지요......... 이러한 말씀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뭉클하면서 코 끗이 찡~해지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하네요. 함께 할 수가 없는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일까요........


그래도 그러한 스승님을 모시고 귀한 지식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은 일생에 가장 큰 행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을 그 당시에는 바로 깨닫지 못하고, 넘긴다는 것이고, 그러한 것을 문득 느끼게 되면 옆에는 이미 그 스승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지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 인간인지 모르겠습니다. 후회(後悔)는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겠습니다만 그래봐야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그 후로는 누구든지 한 가르침을 주시면 지체없이 달려들어서 그 속에 풍덩 빠져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어느 사이에 습관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면 얼른 지식을 습득한 다음에 그 속에 들어있는 지혜를 얻고자 안달을 하고 있는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요즘 사진에 대해서 갑자기 몰두를 하는 것도 그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은 사진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셔도 좋을 것입니다. 낭월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진의 지식이며, 그 속에서 얻어지는 느낌들을 정리할 공간입니다만 그러한 과정을 보시면서 함께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뿐만 아닙니다. 주역(周易)에 대한 인연이 되어서 초운(草雲) 김승호 선생님의 《주역원론》이라고 하는 책을 읽으면서도 팔괘(八卦)가 팔괘가 아니라 삼라만상이라는 것을 관(觀)하는 방법에 대해서 놀라움의 연속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속속들이 지혜를 탐구하는 방법을 잘 설명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지식만 주워 모으다가 일생을 다 보내버리고 말 것도 같습니다만 그래도 좁은 소견머리로 십년동안 지혜를 궁리하기 보다는 넓은 지혜를 배워서 그 지식을 바탕으로 일 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책을 끼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부를 할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어제는 교보문고에 주문한 사진관련 책이 몇 권 배달되었네요. 그 중에서도 윤광준 선생님의 《잘찍은 사진한장》이라는 책이 또 낭월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책을 읽으려고 일어났다가 벗님께도 소개를 해 드리겠다고 시작한 한담이 또 길어지네요. 얼른 마무리하고 책에 빠져들랍니다. 벗님의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참, 결론은요...... 넓은 지식과 깊은 지혜는 서로 인간 수행의 과정이라고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즉 넓게 배우지 않고 깊은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도 되겠습니다. 그것 아세요? 남의 지혜는 나의 지식이 되고, 나의 지혜는 남의 지식이 된다는 것. 그럼 나의 지식은 남에게 뭐가 될까요? 아마도 경봉스님께 물어본다면, "마른 똥덩어리~~!!"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이 배워야 하는데 그러자니 시간이 없네요. 시간이.......


 2007년 6월 22일 새벽에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