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음양관법(陰陽觀法)

작성일
2007-04-1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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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5화 음양관법(陰陽觀法)


 


  안녕하세요.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새벽의 감로사입니다.



마악 터지려는 꽃망울이 어찌 그리도 곱던지 잠시 눈길을 주었습니다. 목의 기운이 꽃송이에 어우러져서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피어 버린 꽃은 화려가히는 한데 왠지 힘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것은 너무 힘을 설해버린 이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또 나름의 아름다움이 그 속에 있는 것 같네요.



벗나무에 핀 꽃을 찾아서 벌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자연은 건강하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발들이 짓밟고 지나다니는 길가에서도 자신의 역할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풀이 아름다운 꽃을 크게도 피웠습니다. 이러한 것이 또한 기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얀 꽃잔디의 색이 얼마나 청아한지 작아도 미인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같은 품종이라도 각각 품성이 또 다른가 봅니다.



자연의 선물입니다. 더욱 밝은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보살인냥 싶습니다. 감로사 주변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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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일을 잘 하는 목수는 한나절 연장만 갈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하라고 목수를 불렀더니만 한 나절 내내 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연장만 갈고 있더라는 이야기이지요. 이 말은 낭월이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정말로 솜씨가 좋은 연장은 일을 서두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사주공부도 그와 같다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서두르는 사람은 늘 앞으로 달려가다가 벽에 부딧쳐서는 코피만 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서둘러서 될 것은 100m달리가 밖에 없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의 세일하는 시간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앞서가고자 하는 마음을 자꾸만 붙잡고 늘어져서 차근차근 기초공사를 다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감로사에서도 그렇고 동국대학교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처음에 자평명리학을 배우겠다고 마음을 일으키신 학자들을 만날 인연이 되네요. 그리고 처음 만나는 대부분의 초발심(初發心)자들은 얼른 고지를 점령하고자 하는 전투 열에 불타는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에서 낭월의 과거를 보는 것과 같은 동질감도 느낍니다만 그런다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생각하다가 보니까 이제는 ‘저러다가 중간에 쓰러지고 말지.....’싶은 걱정을 먼저 하게 되네요.


그래서 처음에 공부를 할 적에는 늘 연장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 다른 것을 찾아봐야 무딘 눈에 무엇이 보이겠느냐는 말로 서두르는 마음을 짐짓 눌러보기도 합니다만 아마도 벗님의 생각도 초발심때에는 그러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서야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허둥대었는지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고보면 낭월도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가 봅니다.


오늘은 올 봄에 음양에 대한 설명을 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이 절대적으로 최선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음양의 이치를 관하면서 공부를 하시노라면 아마도 더욱 많은 자연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감로사에서 이러한 방법을 해 봤더니 다들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고 하는 말씀을 해 주시네요. 상당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부터 음양을 배우는 연장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 음양공부는 진작에 마쳤는데, 뭘 배우겠느냐고 하신다면.... 하하~ 글쎄올시다~~


 


1. 체용(體用)-體陰用陽


•자동차. 신심(身心). 주택(住宅). 주객(主客).


무엇이거나 가장 중요한 관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음양을 관찰하는 방법에서도 또한 예외는 아니지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체용관(體用觀)이라고 판단을 해 봤습니다. 모든 삼라만상은 체(體)가 있고, 또 그 체는 각기 나름대로의 용법(用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체용에 대해서 관찰하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지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무엇이거나 체를 음으로 보고 용을 양으로 보면 됩니다. 자동차의 경우라고 한다면 차체(車體)를 음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운송수단을 양으로 보는 것이지요. 자동차의 목적은 그 자체를 두고 보는 것이 아니고 뭔가 싣고 이동을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관찰을 하면 간단하게 관찰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체는 하나지만 용은 무지하게 많습니다. 각각의 차량마다 체는 하나지만 용은 다양하게 많음을 생각하는 것도 음양관찰법의 중요한 사항이 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몸과 마음도 같은 관점으로 관찰을 합니다. 몸은 체가 되고 마음은 용이 되는 것이지요. 즉 몸은 음이고 마음은 양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몸이 단단하니까 양이고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까 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체용관(體用觀)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자는 것이지요. 어떤 방법으로 봐야 할 것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적에는 거의 대부분이 체용으로 음양을 보게 되면 구분을 하기 쉽다고 하는 점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주택으로 봐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집은 음이 되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양이 된다고 해석을 합니다. 주인과 손님의 경우도 체와 용으로 본다면 주인은 체가 되고, 음이 되며, 손님은 용이 되므로 양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가게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고, 손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찾고 있는 장면이면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법에 대해서 익숙하게 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2. 동정(動靜)-動陽靜陰


•속도(速度). 심리(心理). 행동(行動).


다음 단계는 동정을 관하는 단계입니다. 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으로 음양을 보는 법이지요. 다시 자동차를 놓고 볼 수가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는 음이 되고, 움직이는 자동차는 양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삼라만상을 움직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움직이는 마음은 양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움직이는 마음은 잘 보이고, 그렇지 않은 마음은 잘 보이지 않지요. 이러한 관점을 정리하게 되면 또한 음양을 보는 눈이 더 커지게 됩니다.


 


3. 강유(剛柔)-强陽柔陰


•강약(强弱). 나무와 바위. 금강석(金剛石)과 납.


강유의 관점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관점으로도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강약(强弱)이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잘못 된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는 말로 대입하는 것으로 음양을 삼는다면 이것은 ‘땡~!’입니다. 틀렸다는 말씀이지요.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부드럽다’가 맞습니다. 이것이 음양의 모습이거든요. 강약은 또 다른 관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음양의 관점으로 강하고 약한 것으로 구분을 하는 것은 아마도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약은 한 쪽의 승자를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은 패자가 되지요. 이러한 음양이 과연 존재할까요?


 


4. 자웅(雌雄)雌陰雄陽


•남녀(男女). 볼록과 오목. ♂ ♀.


간단한 방법입니다. 성별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암컷과 수컷을 나눌 수가 있다면 이것도 좋은 음양구분법이 되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명체만 놓고 논할 것도 아닙니다. 절구나 맷돌을 보면서도 자웅으로 음양을 관찰할 수가 있어야 하겠네요. 이치는 긴 설명이 필요 없겠습니다.


 


5. 대소(大小)大陽小陰


•버스와 기차. 택시와 자전거. 어른과 아이.


큰 것은 양이 되고, 작은 것은 음이 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것으로만 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면 작은 것은 빠르고 큰 것은 느리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동정의 관점에서 달리 봐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대상이라도 관법에 따라서 답은 달라져야 하겠고, 이것이 음양관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6. 명암(明暗)-明陽暗陰


•주야(晝夜). 희비(喜悲). 웃음과 눈물. 급제와 낙제. 청탁(淸濁).


밝은 것은 양이 되고, 어두운 것은 음이 됩니다. 그리고 의외로 명암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로 심리적인 현상에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하겠습니다.


 


7. 표리(表裏)-表陽裏陰


•내외(內外). 손등과 바닥. 등과 배. 줄기와 뿌리. 나무껍질과 둥치.


겉과 속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표면과 내면으로 구분하게 되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은 양이 되고, 속으로 보이지 않고 작용하는 것은 음이라고 관찰을 하면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8. 상하(上下)-上陽下陰


•얼굴과 발. 사장(社長)과 사원(社員). 비행기와 자동차.


서열이 있을 경우에는 상하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당연히 높은 사람이 양이 되고, 위가 되며, 낮은 사람은 음이 되겠네요.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사장님은 가만히 앉아 있고, 직원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상하로 보지 말고, 동정으로 봐야 하겠네요. 결과는 다 정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철학의 세계에서는 정답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초학자들이 머리를 두드리면서 고통스러워하기는 합니다만 그 이유는 늘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받은 사회교육에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 그 자유의 관찰법을 배우게 된다면 앞으로는 하나의 답만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지 바로 판단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9. 전후(前後)-前陽後陰


•시작과 끝. 아침과 저녁. 지구의 경도(經度). 선후.


일에는 선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놓고 살펴보게 되면 또한 음양을 관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겠네요. 앞은 양이고 뒤는 음이겠습니다.


 


10. 좌우(左右)-左陰右陽


•남좌여우(男左女右). 좌경(左傾)과 우경(右傾). 시비(是非).


전후는 이해가 쉽지만 좌우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흔히 남자는 왼쪽이고 여자는 오른쪽이라고 하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렇게 된다면 왼쪽은 양이 되고, 오른 쪽은 음이 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것은 물질적으로 보는 관점일 수가 있겠다고 하겠습니다. 관상학에서도 왼쪽 눈은 일(日)이요, 오른쪽 눈은 월(月)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물질적으로는 왼쪽이 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본다면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닙니다. 오른쪽은 옳다고 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양이고, 왼쪽은 그 반대이므로 음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것이 옳으냐고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그 모두가 음양을 관하는 기준으로 혼란이 없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11. 한열(寒熱)-寒陰熱陽


•고온(高溫)과 저온(低溫). 지구의 위도(緯度). 수화(水火).


이렇게 관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겨울과 여름으로 구분을 할 수가 있으니 온도가 높은 것은 양이요, 그렇지 않은 것은 음이라고 관찰을 하면 되겠습니다. 이 논리는 조후법(調候法)이라고 하는 사주해석법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또한 음양을 관하는 기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12. 유무(有無)-有陽無陰


•빈부(貧富). 앎과 모름. 다과(多寡).


있고 없는 것도 음양으로 관찰을 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있는 사람은 얼굴이 힘이 있으니 양이고, 없는 사람은 무력하게 보인다면 또한 음이라고 봐서 무리가 없겠네요. 그리고 여기에서 있고 없고는 재물로만 논할 것은 아닙니다. 지혜가 있어도 얼굴이 밝고, 무지하면 어둡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 생각의 날개를 어떻게 펼치느냐에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관법을 기본으로 삼고, 무한정의 관찰을 하시는 겁니다. 비록 방법의 기준은 간단합니다만 이러한 것으로 살피노라면 시야가 엄청나게 넓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보기보다 만만치 않거든요. 사실 감로사에서 처음에 입산하신 선생님들께 음양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있다가 점점 눈에서 빛이 나면서, 나중에는 몽롱하게 혼란의 미로를 헤매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써낸 시험지에는 참으로 기발한 음양관법이 도배를 이루고 있더군요. 이러한 생각의 실마리에는 여전히 음양관(陰陽觀)이 있습니다.


음양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서 사건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물론 접근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것으로 자신의 정신영역을 트레이닝 한 다음에 비로소 천간(天干)이나 지지(地支)를 연구하게 된다면 기본이 잘 되어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간지(干支)의 세상도 그대로 쉽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공부에 소홀히 하는 것은 아마도 서두르는 욕심이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려니 합니다.


오늘도 눈 푸른 학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새벽부터 마음이 부푸는 낭월입니다. 공부의 세계가 이렇게 생각을 할수록 그만큼 크고 넓게 나타난다는 것은 오묘하다는 말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천지자연의 이치도 이 음양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면 올 봄에 큰 성취가 있으실 것을 보증해 드립니다. 열심히 관찰하시는 즐거운 하루가 되기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7년 4월 12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