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2007봄 대만-6 (곤원 선생)

작성일
2007-02-14 19:43
조회
8517

2007년 봄의 대만-6 (곤원 선생 방문)


 


하루 시간을 내어서 곤원(坤元)선생을 찾아 보고자 한다는 말을 했더니만 매우 친한 친구분이라고 하면서 함께 가겠다고 곽선생이 차를 몰아 동행을 해 주셨습니다. 곤자가 모방을 두개 써 놓고 아래에 흙토가 붙어 있는 글자인데 볼 수가 없으니 소리와 뜻이 같은 땅곤으로 표기했습니다. 액자를 보시면 알겠네요. 참고 하세요.



아파트 앞에 이러한 액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남루하다면 남루하고 무관심하다면 무관심이고, 또는 관록이라면 관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만의 자미두수계를 주름잡았다고 하며, 책도 80여권을 저술한 대가라고 하기에 기대와 호기심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 안을 들어가 보니까 아연실색이었습니다. 남루함도 그런 남루함이 없고, 외로운 독거노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에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장면을 찍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도 곽선생님의 배려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나이도 있고, 관리의 소흘함도 있어겠습니다만, 기억력도 오락가락 하는 것같고 치아는 빠져서 수리를 해도 많이 해야 할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눈빛만은 살아있어서 반짝이더군요. 정말 젊은 시절에는 대단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모습은 노쇄해도 사진에 눈매는 느껴질 듯 싶네요. 왕년의 곤원이라고 곽선생도 소개를 하시더군요.



저서가 마침 있어서 들고 간 김에 싸인을 부탁했습니다.



여기에서도 화인의 상담을 의뢰했는데, 맞는 것은 귀신같이 맞고, 아닌 것은 또 오락가락 하는 것을 보면서 나이나 관리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또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아무리 당대의 최고라고 하더라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말년의 모습은 이렇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곤원선생과 연관되어서 살펴봤습니다.


 有位《紫微斗數》前輩,堃元老師(另有其他筆名)可謂著作等身,在命理界頗負盛譽,貢獻非常大,本人「庚年四化」之觀念,和「大限」的排例方式,即是受其影響甚多。


  他的出生時辰:民國31(壬午)12月1日酉時,「天同、巨門」分居辰、戌兩宮,同樣不見「昌曲」。經過20多年來的長期觀察,發覺「機梁日月」這類星系的格局,似乎比較容易「入門」,我也是沒有「昌曲」的,因此,值得恭喜妳已具備「登堂入室」的條件,只是須要假以時日。



내용을 보니까 자미두수로 봐서 팔자에 문창성이 없는 곤원선생도 일생에 책을 그렇게 많이 지었으니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곤원선생의 사주가 있어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뽑아 봤습니다.


      시 일 월 년
      癸 甲 癸 壬
      酉 子 丑 午
61 51 41 31 21 11 01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申 未 午 巳 辰 卯 寅


사주명식을 보니 과연 그 댁의 분위기가 왜 그랬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겠습니다. 인성태과이니 무엇 하나라도 손대고 싶었겠냐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대운의 황금빛이 보이는 것도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주에 약한 식상과 재성이 운에서 힘을 담아 주니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는가 싶습니다. 61세부터는 쉬어야 할 시기로 보면 되겠습니다. 타고 난 직관력이 작용을 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대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묵었던 호텔에서 다시 보따리를 찾아서 마지막 아침의 귀국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조카 성희가 산더미와 같은 짐을 보면서 놀라워하지만 낭월은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화인의 짐보따리를 요리조리 꾸려대는 솜씨가 여간 아니거든요. 그래서 낭월도 이때만큼은 시키는대로 가져 달라는 것만 전해주면서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실 낭월의 짐싸는 솜씨는 아는 도둑놈 묶듯이 대충대충 하기 때문에 결국은 엉성해서 다 빠져달아나기 십상이거든요. 화인도 그것을 잘 아는지라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잘도 찾아서 틈새를 파고 듭니다.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물 받은것도 있고, 기념품도 있고, 쇼핑몰에 올릴 것도 있습니다. 손상이 되지 않도록 싸는 것은 그야말로 예술인데, 다 꾸려놓은 장면을 놓친 것이 아쉽네요.



보따리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렇게 정리를 하여 정확하게 12시에 택시를 잡았습니다. 공항까지 가서 넉넉하게 출발을 해야 하고, 또 짐이 많아서 붙이는 과정에서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가방 하나는 얼마나 많이 우겨넣었던지 42kg이었습니다. 12키로가 초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직원이 주는 박스에 나눠서 담은 다음에야 비로소 통과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이야 늘 겪는 일이려니 합니다. 사실 먼저는 1청사에 잘못 내려서 한참을 시간끌고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정확하게 2청사에 내려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시간을 절약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역시 경험은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시아나의 항공수속은 2청사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여름 여행에서 말씀 드렸을 것입니다.



타고 가야 할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타는 일만 남았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뿌듯한 행복감으로 가득 채워서 비행기에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화인에게 물었습니다.


"화인아 어떻노? 수업료를 낸 보람이 있나?"


"그럼요. 아깝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기특하다. 꼭 성공하거라."


그리고 품에 안고 있는 봉다리를 쓰다듬더군요. 그 안에는 화인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3년여를 대만에 다니면서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그리고는 쳐다보기만 하고 감히 만만치 않은 가격때문에 침만 흘리다가 돌아오곤 했던 그 오빠를 구입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구경 하시겠습니까?



바로 이 양반입니다. 그게 그렇게도 갖고 싶었는지 늘 노래를 하더니만 이번에는 참으로 큰 마음을 먹고 안고 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또 하나의 큰 기쁨인가 봅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잘 생겼다고 하네요. 들~~ 그렇게 보이세요? 구경하시러 감로사 한 번 오세요. 하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연이 있어서 선생님들을 만나는가 싶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선생님을 만나서 어떤 가르침을 얻게 될까 하는 행복한 걱정이 벌써부터 되네요. 또 시간이 되면 여름에라도 나들이를 할 궁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대만의 선생님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나 중국의 제자들을 키우고 있는데, 더욱 분발을 해서 연구에 정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정에 대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이 알려진 선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략이나마 설명을 드린다고 했습니다만, 약간의 참고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럼 더욱 알찬 내일을 위해서 정진의 마음을 일으켜 보시기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정해년의 학문에 대한 행운을 기원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