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 사주심리학 교재를 쓰다가.

작성일
2006-12-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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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5화] 사주심리학 교재를 쓰다가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벌써 마지막 달이 되고 보니 내년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는가 싶습니다. 학교의 강의도 내년의 계획을 세우라고 독촉을 받아서 내친 김에 사주심리학의 교재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글을 쓰다가 벗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얼른 한편 올려 드립니다. 살펴보시고 약간이나마 참고가 되시기 바랍니다. 올해 사주심리학 과목을 개설해서 한 학기를 다 마쳐갑니다만 이야기를 다 못한 것 같아서 내년에는 두 학기로 나눠서 1년 동안 이야기를 하기로 했네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06년 12월 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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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주심리학(四柱心理學) 입문(入門)




사람의 심리를 사주팔자로 통해서 해석을 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셨을 것으로 짐작을 한다. 그리고 심리학(心理學)이라고 하는 전문분야에 도전을 하기로 하였으니 이 분야의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되어서 입문을 하는 과정에서 살펴보는 장을 마련하였으니 함께 살펴보면서 인간의 본성(本性)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던 선현(先賢)들의 노력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




관심을 가져 볼 부분은 동서양의 심리분야에 대가들로 정평이 난 선생님들의 의견이다. 서양의 심리학의 원조라고 할 수가 있다면, 역시, 프로이트, 융, 그리고 아들러가 될 것이다. 이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면서 어떻게 사람을 이해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본다. 자료는 대개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제1장 심리학의 접근에 대한 인간의 노력




    1. 서양의 심리학




서양의 심리학자라고 한다면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해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겠는데, 일일이 다 알아볼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본다면 서양의 심리학자들은 주로 환경적인 영향에서 심리의 구조를 이해하고자 한 흔적들이 많이 나타난다. 즉 어려서의 환경, 예를 들면 5세 이전에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내성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환경을 떠나서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가족관계의 영향도 크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고, 나아가서는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서도 사람의 심리가 구성된다고 관찰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학자들의 노력을 간단히 요약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정리를 해 본다면 대략 다음 몇 가지로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1) 경험에 의한 심리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연구를 한 학자들의 견해이다. 사람의 심리는 경험에 의해서 축적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했고, 때로는 충격적인 경험이 내면으로 숨어들면서 잠재의식으로 변해서 나중에 그러한 경험과 유사한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돌발적인 심리현상이 나타난다고 이해를 한 것이다. 강박관념이라거나 광장공포증이라거나 대인기피증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험을 했던 일들이 나중에 재연되면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그야말로 관찰자의 관점에서 상당히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것 같다.


그 예로 프로이트는 광장공포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광장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넓은 장소에 있게 되면 공포심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원인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최면술을 통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니까 어려서 무슨 광장에서 어머니를 잃고 두려움으로 떨었던 기억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사람은 경험을 한 것이 잠재의식에 있다가 비슷한 환경이 주어지면 발생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일리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서 명리학의 관점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답을 한다면, 후천적으로 얻어진 경험은 사주로 통해서 알 수가 없다. 왜냐면 사주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광장에서 공포심을 얻게 되는 것은 사주에서 연관이 된다고 말을 할 수가 있다. 즉 같은 상황에 아이들 다섯 명을 노출시키고 결과를 지켜본다면 단언하건데 모두가 광장공포증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아이는 주변의 신기한 광경을 보면서 즐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현상을 유발시키는 것은 타고 난 사주에서 주어진 심리라고 관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경험하지 않은 심리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함께 연구를 하다가 관점이 달라서인지 이탈을 한 융은 경험을 한 것도 심리에 영향을 주지만 경험을 하지 않은 것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즉 태어나서 같은 경험을 해도 결과적으로 심리적인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 원인을 찾지 못해서 아마도 고심을 했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영적인 체험도 함께 포함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자신의 죽은 아내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면 태어나서 겪은 것에 의해서만 사람의 심리가 결정이 된다고 하는 것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을 집단무의식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는데, 집단무의식은 죽은 조상들의 경험이 자손에게 전해진다고 하는 관점으로 이해를 하면 크게 무리가 없다. 즉 조상들의 경험에 의해서 입력이 된 기억장치가 유전하여 자손에게 전달이 되기 때문에 자신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상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영적인 차원의 어떤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발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아울러서 융의 연구는 자평명리학에서도 도입이 되어서 비교하는 과정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시작을 한 사람은 중국의 반자단(潘子端) 선생이다. 그의 명학신의(命學新義)에서 설명을 한 내용을 대만의 하건충(何建忠)선생이 수용하여 사주심리학의 완성을 본 것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사주심리학에 영감을 준 사람으로 기억을 해도 좋겠다.




3) 미래의 서양심리학은 생명공학과 연결


현재의 생명공학자들은 심리학을 고전적인 흔적으로 생각하고 실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로 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심리학자들도 뇌의 연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 뉴런이라고 하는 뇌(腦) 조직에서 기억을 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실험들을 하느라고 많이 바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으로 추적을 하다가 어쩌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억창고의 뭉텅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물질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관찰하고 얻어 낼 수가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육체를 놓고 연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명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접근은 아무래도 시간을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생각이 된다. 왜냐면 고기 덩어리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 속에 영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향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심리학은 아마도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2. 동양의 심리학




이번에는 우리의 삶에 터전이 되어 준 중국과 한국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아무래도 동양정신의 바탕은 중국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현자들이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다시 연구하고 궁리하는 것은 또 지혜로움의 연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선 중국에서는 정신과 신체가 하나라고 하는 사상이 크게 발전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체를 연구하는 것은 등급을 낮춰서 대우하고, 정신을 연구하는 것은 등급을 높이 줬던 흔적도 보인다.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심리학이 연구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심리를 연구하기 보다는 근원적인 심리학에 대한 접근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1) 성선설(性善說)


사람의 근본은 착하다는 것은 맹자(孟子)의 철학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단(四端)이 있어서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한 일을 접하면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 수오지심(羞惡之心-부끄러운 일을 싫어하는 것), 사양지심(辭讓之心-욕망을 억제하고 양보하는 것),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 설명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파에 오염이 되면 원래는 깨끗한 것이므로 세탁을 해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다. 그리고 맹자의 생각대로 한다면 사람이 악하게 된 것은 모두 세상의 탓이라고 해야 하겠다. 태어날 적에는 순수했던 사람이 살아가면서 오염되어서 못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람이 그렇게 모두가 선하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관념적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결론을 내게 된 것을 이해 할 수는 있겠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는 고사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원래는 깨끗하고 천진무구한 소년이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공부도 하고, 상여꾼도 하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다가 보니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사상은 지금도 그대로 전승이 되어서 자녀를 최고학군에 보내고자 온갖 노력을 다 쏟는 부모를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되겠다.




2) 성악설(性惡說)


사람의 본성은 본래 악하다고 한 것은 순자(荀子)이다. 그는 아마도 맹자의 생각에 반기(反旗)를 들기 위해서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원래 처음부터 사람이 선하다고 하는 것을 생각했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하다고 해서 그런 줄로 알고 배웠는데 실제로 사람은 근본 바탕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맹자의 생각에 반대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순자는 맹자에 밀려서 크게 연구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세에 밀려서 그의 이야기도 뒤로 밀린 감이 없지 않다.


낭월의 생각으로는 맹자는 본성(本性)을 논하고, 순자는 본능(本能)을 논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본능은 선하지 않고, 본성은 악하지 않은 것이라고 관찰을 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보는데 결론은 모두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사람의 심성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3) 업연설(業緣說)


사람의 심성은 전생(前生)에 지언 업연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것이므로 전생의 행위가 중요하다고 보고 이번 생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개선을 하고, 선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고양(高揚)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형태로 설명을 하게 된다. 이것은 태어나면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기 이전에 뭔가 자신의 조상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전생 행위에 의해서 어떤 습관이 기록되면서 이것이 그대로 재연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살핀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전생 업연이라고 생각을 한 것은 불교의 관점이 되겠는데, 불교에서는 모든 행위를 다 허망하게 살피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삼게 되므로 자칫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하여 유교의 학자들은 공허한 논리[공론(空論)]라고 하는 비난도 받았다. 어쩌면 너무 전생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감도 있으므로 전생에 대해서 믿기 어려운 관점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의미가 없는 논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4) 성리학(性理學)


주자(朱子)를 필두로 전개된 유학(儒學)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조선의 학자들 간에 화두가 되었던 것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나주에는 당파싸움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고 하므로 원래의 순수한 정신이 현실을 만나서 갈등을 빚었다고도 하겠는데, 특히 거유(巨儒)인 퇴계(退溪) 선생의 이기(理氣)가 각기 달리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을 하신 이기이원설(理氣二元說) 이나, 율곡(栗谷) 선생의 한 가지로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 이기일원설(理氣一元說)이 서로 팽팽하게 토론되었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이론들은 자칫 공론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것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느낌에 팍 와서 닿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겠고, 실제로 이러한 것을 사람의 심리라고 이해를 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의 사람 심리를 연구하는 관점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그야말로 도덕(道德)에 대한 논리는 될지라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인해서 계승발전이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기일원론적 입장에서는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며 이가 기를 낳는다고 하는 이기이원론적 주장을 거부한다. 명나라 때의 학자 나흠순(羅欽順)은 이기일원론적 입장을 강화하였고, 청나라 때의 학자 대진(戴震)은“이는 기의 조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명언함으로써 이의 초월성과 불변성을 부정하였다.


한국의 성리학에서는 이기일원론의 입장이 일부 수용되었다. 서경덕(徐敬德)은 "기 밖에 이가 없으며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기일원론적 입장을 취하였다. 이이(李珥)는 기본적으로는 이기이원론을 계승하면서도 "이와 기는 혼연하여 사이가 없고 서로 떨어지지 않으므로 다른 물건이라 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이기일원론적 입장에 비중을 두었다.


이러한 관점은 신체에서 정신을 찾고자 하는 현대의 서양심리학 영역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신체와 정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일원론이 매우 타당해 보인다고 하겠고, 융과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정신과 신체는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5) 개인심리학(個人心理學)


이제 개인적인 심리학에 대해서 살펴보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자평명리학에서 추구하는 개개인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즉 각각의 사람은 태어나면서 그 시각의 천지(天地)에 운행하는 기운의 영향을 받아서 일생을 살아가는 성공과 실패는 물론이고, 그의 심층 내부에 존재하는 마음도 여기에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가 있겠다. 성정(性情)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성(性)은 이성(異性)으로, 정(情)은 감정(感情)으로 이해가 되는데, 이러한 것을 연구하게 되었던 것은 자평명리학으로 개인적인 운명(運命)을 연구하게 되면서 점차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들의 노력으로 발전을 해 왔다고 할 수가 있겠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러한 개인심리학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는데, 그 추적하는 단서는 해당 본인이 태어난 출생년월일시로 관찰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그 사람의 어려서의 환경이나 부모의 영향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고 그야말로 태어나면서 주어진 심리(心理)의 본질(本質)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며,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공부를 해야 할 것이므로 긴 설명을 생략한다. 적어도 동양에서도 개인심리학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것은 서양의 개인심리학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더욱 뛰어난 관찰이 되었다고 하겠고, 사람을 보면서 연구하는 관점을 과학이라고 한다면 출생시각을 살펴서 해석하는 것은 초과학(超科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3. 심리학과 명리학(命理學)의 접목




이제 본격적으로 자평명리학에서 바라다보는 심리구조(心理構造)를 이해하게 되는데, 그냥 덮어놓고 이해를 해도 무방하겠지만 기왕이면 서양의 심리학에서 특히 융의 논리로 정리가 된 여덟 가지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집단의 심리와 개인의 심리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 보고 진행하는 것이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1) 집단심리(集團心理)와 격국론(格局論)


집단심리라고 하는 것은 융의 분석에서 나온 말로 생각이 되는데,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도 가문의 집단적인 현상으로 이해가 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것은 유전자(遺傳子)적인 의미로 관찰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즉 부모의 경험을 자손들이 물려받게 됨으로 해서 ‘밀양 박씨’나 ‘김해 김씨’의 가계(家系)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을 알 수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이러한 현상은 자평명리학에서는 그룹을 시켜서 모든 글자가 월지(月支)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서로 연관이 되겠는데, 다소 고전적(古典的)인 맛이 남아 있는 격국론(格局論)을 그 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월지(月支)를 사주의 제강(提綱)으로 놓고 중심(中心)을 삼는 것이 격국론(格局論)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적에 한 사람의 사주를 논하는 과정에서는 월지(月支)의 십성(十星)에 따라서 분류하는 격국(格局)의 형태, 즉 십정격(十正格)으로 대변되는 의미가 되겠는데, 격국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이와 같은 의미를 비중있게 다루는데, 실제로 적용하고 임상하는 과정에서는 왕왕 일치하지 않음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더구나 철저하게 개인의 심리를 다루게 될 사주심리학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많은 관법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이 집단심리(集團心理)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하더라도 자평명리학에서의 집단적인 요소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2) 개인심리(個人心理)와 일주론(日柱論)


개인심리는 그야말로 철저한 개인의 타고 난 특성을 논하게 된다. 자평명리학에서는 일주(日柱)가 그 대표가 되는데, 일간(日干)을 그 사람의 주체로 보게 되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이러한 결론은 필연적으로 정해지게 되었다고 해도 되겠는데, 앞으로 사주심리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 점차로 일주(日柱)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개인심리는 일주에서 파생되어 나간다는 것으로 확실한 결론을 맺을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개인의 특성에는 기본형(基本形)이 60가지가 된다. 육십갑자(六十甲子)이니 당연하다고 하겠다. 다만 이것도 기본적인 형태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일주(日柱)를 기준으로 해서 주변을 관찰하면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인데 이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가 있겠다. 일반적으로 숫자를 표시하게 되면 이해가 빠른 것을 생각하여 표시를 해 보도록 한다.




일주(日柱)+월간(月干)=600가지 경우의 심리형태


위의 조건+시간(時干)=6,000가지 경우의 심리형태


위의 조건+월지(月支)=72,000가지 경우의 심리형태


위의 조건+시지(時支)=864,000가지 경우의 심리형태


위위 조건+년간(年干)=8,640,000가지 경우의 심리형태


위의 조건+년지(年支)=103,680,000가지 경우의 심리형태




이렇게 된다. 이것은 한 사람의 사주로 나타 낼 수가 있는 사람의 심리구조를 종합하게 된 결과인데, 1억 가지 이상의 다양한 사람의 형태를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수치일 것이다. 보통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분류하는 것으로 몇 십 가지 정도로는 비교를 거부하는 대단한 변화의 심리형태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사실은 이 정도의 변화는 되어야 사람을 이해하는데 뭔가 조금 도움이 된다고 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게 됨으로 해서 종합할 수가 있다는 것은 아무리 할인을 해서 생각해도 너무나 신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두 말을 할 필요가 없다.




     3) 융과 하건충의 만남


하건충(何建忠) 선생은 대만의 명리학자(命理學者)이다. 그리고 융은 서양의 심리학자를 대표하는 인물 중에 수위(首位)를 차지하는 심리학자(心理學者)이다. 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면 물론 허풍이겠지만 실은 한 사람의 심리학자가 분석을 한 것을 바탕으로 삼고, 명석한 명리학자가 연결을 해서 설명한 노력이 더욱 빛난다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여기에는 숨어있는 또 한 사람의 공로자(功勞者)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반자단(潘子端) 선생이다. 필명(筆名)을 수요화제관주(水繞花堤館主)라고 하여 저서(著書)《명학신의(命學新義)》를 남겼다. 그러나 자료만 봐서는 반 선생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던 사람인지는 알 바가 없다.





 




그러니까 반자단 선생이 융의 심리분석 8가지를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의 십성(十星)과 연결을 시켜서 이해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 그 효시(嚆矢)가 된 것이 대단하다고 하겠고, 이것을 놓치지 않고 다시 정리를 하여 마침내 사주심리학으로 완성을 보도록 초석(礎石)을 마련한 하건충 선생의 노력이 더욱 돋보인다고 하겠다. 하건충 선생의 책에 밝힌 감사의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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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感謝


本書部份理論的發明成就,應歸功於水繞花堤館主的


命學新義」一書之啓發.


而若沒有干支先師撰書指引,本書亦不能順利完成.


筆者謹以最大誠心,感謝這些燃燈人.




[해석]


  감사드립니다.


본 책자에서 이론부분의 발명에 의한 성취는 응당 그 공로를 수요화제관주의 명학신의에서 가르침을 받아서 깨닫게 된 것이므로 선생님께 돌려야 합니다.


만약 간지에 통달한 선사께서 이 책을 지어서 인도함이 없었다고 한다면 본 책도 또한 순조롭게 완성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필자는 삼가 최대의 성심으로 밝은 진리를 밝혀주신 스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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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글 속에서 참으로 감동을 한 하건충 선생님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은 생생함이 전해지면서 괜히 옷깃을 여미고 엄숙하게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 내용에 얼마나 많은 가르침이 들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아마도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스로 연구를 하기도 많이 했으련만 어디에서 그 힌트를 얻어서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이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학자의 모습은 존경스럽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뭔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서 열렬하게 정진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성취를 한 수행자가 합장을 하고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하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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