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꽃비가 내립니다.

작성일
2006-05-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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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꽃비가 내립니다.










‘부처님 오셨다는 날’도 지나가고 다시 고요한 산사에는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오고 감이 없어서 ‘여래(如來)’라고 했다는데, 중생들은 하도 아름다운 님이 그리워서 ‘그렇게 오셨다’고 이름을 붙이고서는 즐거워하는 날로 삼았으니 깨달으신 이도 구태여 중생들의 놀이를 귀찮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벗님은 다소 억울한 연휴(!)를 어떻게 잘 보내셨는지요? 어린이날과 겹쳤다고들 하시기에 혼자 웃어봤습니다.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날, 날들입니다. 오고 감이 없는데, 우리가 이름을 지었지요 뭐 하하~.




작년에 꽃 잔디 농원에 가서 꽃 잔디 묘를 부지런히 사 날랐습니다. 그 때에 주인장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스님.”


“예.”


“스님은 덜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 좋으십니까?”


“향기가 좋으면 좋지요.”


“아니면, 많이 곱고 향기가 적은 꽃이 좋으십니까?”


“.....................”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선뜻 답을 못했습니다. 사실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야 빤하지요. 중생심(衆生心)이잖아요. 아니,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사겠느냐고 해야지 무슨 말이 이렇담...... 의아하면서도 속이 들여다 보일까봐서 답을 하지 못하고, 향기로운 꽃이든, 예쁜 꽃이든 다 달라고만 하는 속물근성을 내어 보이고 말았지 뭡니까. 참으로 예쁜 꽃 앞에서는 욕심도 걷잡을 수가 없었는가 봅니다. 좀 민망했습니다.




벗님은 어떠신지요? 위의 화원농장 주인이 한 말을 벗님께 들려드리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물론 낭월이 그 답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한 번 생각을 해 보시자고 권하는 것이랍니다.




1. 눈이냐 코냐.




바로 이 이야기네요. 눈을 위해서 돈을 낼 것이냐? 아니면 코를 위해서 돈을 낼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선택을 하라고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향기롭고 예쁜 꽃은 없나요? 그런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요. 물론 그러한 것이 있었다면 주인은 그렇게 묻지도 않았겠습니다만.......




우선 눈을 생각해 봅니다. 글자로는 안(眼)이네요. 눈목자(目)와 머무를간(艮)의 합성글자입니다. 물론 간은 팔괘(八卦)에서는 산(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눈이 머무르는 것이 보는 것’인가 보네요. 말이 되기는 틀림없이 되는군요. 눈이 머무르는 곳은 시야의 초점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되면 눈으로 보는 것이 되고, 이것이 눈의 역할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눈의 역할은 눈이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작용하는 기능이라고도 보겠습니다.




그리고 눈에 대한 속담으로는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느니만 못하다’는 것도 있네요. 듣기만 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시각적으로 한 번 눈이 부딧쳐서 머무르게 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는 의미이고, 또 실제로 그와 같은 상황은 벗님도 능히 경험을 하고 계실 것이므로 더 말이 필요 없다고 하겠습니다.




‘몸이 천냥이면 눈은 900냥’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고 보면 과연 눈의 기능에 대해서는 상당한 평가를 주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사물이 예쁘게 보인다면 그것은 예쁜 것이 틀림없겠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까지 후식으로 곁들이고 나면 이제 완전하게 눈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눈에 대해서 관찰을 해 봅니다.




2. 눈의 기능




눈은 사물을 시각적으로 관찰하는 기능을 하여 상당히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인지하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람회에서나, 풍경을 감상할 적에는 더욱 기능을 발휘하는 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눈은 그 사람의 수준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타난 말은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는 말을 만들게 되지요. 물론 상대방을 깔보는 의미로 쓰일 가능성이 많은 말입니다. 눈은 그렇게 분별을 합니다.




‘곱다’와 ‘추하다’


‘크다’와 ‘작다’


‘위대하다’와 ‘볼품없다’


등등 뭐든지 눈이 머무르기만 하면 모두 상대적으로 구별하는데 선수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가를 잘 할 수가 있다는 것은 눈만이 갖고 있는 대단한 위력이라고 하겠습니다.




눈은 상대적으로 분별하는 수단을 갖고 있으므로 절대적이라고 하는 수준에서는 어떻게 평가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봅니다. 절대적으로 가치를 부여할 일이 생겼다고 한다면 눈은 어떤 답을 내어 놓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색(色)’이라는 것을 믿으시는지요? 색은 눈이 판별하는 영역임은 확실하네요. 이 색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일까요? 아니면 상대적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실험을 조금만 해보면 그렇게 완벽하고, 대단한 가치를 부여받는 눈이 얼마나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실험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실험을 한 자료들도 있지요.




옅은 회색을 놓고 외부에 검정색으로 칠을 하게 되면 회색은 백색으로 보입니다. 눈이 그렇게 인식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시 검정색을 백색으로 바꾸게 되면 이번에는 회색으로 보이지요. 눈이 참으로 만능인 것으로 생각을 했다가 이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황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 준비된 말은 ‘착시현상’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다시 말하면 ‘착각으로 잘못 봤다’는 말이지요. 다시 말하면 눈은 착각을 잘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마도 선지식들은 현란한 눈의 착각을 벗어나기 위해서 눈을 지그시 감으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기관 중에서 열었다, 닫았다를 할 수가 있는 기관은 입과 눈이네요. 눈의 기능이 하도 대단하고 속임수도 난무해서 문득 눈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눈에 좋아 보이는 과일이나 고기는 모두 의심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수명조차도 보장을 받을 수가 없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수입을 한 물고기도 염색이 되어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눈을 위한 염료로 인해서일 수가 있다고 하니까 다른 것은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눈 속임’의 선수들입니다. 하기야 기능이 그만큼 대단한 눈이야말로 속이기만 하면 돈이 된다는 것을 모두 깨닫게 된 것이겠지요. 그러니 이제는 역으로 눈에 못생기고, 쬐끄만 과일이나 농산물이 오히려 자연에 가깝다고 하는 말을 믿어야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러한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배추에 벌레를 붙여서 출하하는 장면이 코메디프로그램에서 나왔던 것도 같습니다. 오래 전 일이네요. 그야말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세상에서 시각(視覺)은 볼모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3. 코의 기능




코가 하는 일은 두 가지네요. 냄새를 느끼고, 호흡을 하는 기능이지요. 두 기능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눈과 비교를 해서도 과연 코의 기능이 뒤진다고 하기 어렵겠지요? 눈이 없어도 살지만 코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하면 말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눈의 기능은 찬사를 받고, 코의 기능은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렇게 인터넷에서 정보의 바다를 즐기는 동안에도 코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코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는 낭월입니다. 눈과 비교를 해 가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은 멀리도 봅니다. 하늘의 태양과 달은 물론이고, 금성이나 수성도 볼 수가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에 비하면 코는 할 수가 있는 것이 주변 불과 몇 십 미터 혹은 몇 백 미터 이상이 되면 냄새를 맡기가 무척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개와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동물은 좀 더 발달을 했겠습니다만, 사람에게는 이것이 한계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너무도 화려한 눈에 비해서 초라한 코의 기능 같아서 말이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코의 기능에 대해서도 다소 상향조정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눈은 외면(外面)을 살피는 연장이라고 한다면 코는 내면(內面)을 응시하고 변화를 느끼는 연장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명상을 할 경우를 생각해 보시자는 것입니다. 우선 스승님의 처음 말씀은 간단합니다.




‘자, 눈을 지그시 감고....’




이러한 구령에 모두들 눈을 감습니다. 일단 눈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망을 닫지 않으면 내부의 변화를 읽게 되는 기능이 발동되기 어렵다는 의미도 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다음으로 나오는 구령입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대번에 호흡에 대해서 의식을 모으도록 관장합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온 몸에서 향내음이 난다고도 하네요. 아마도 과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코는 안을 관찰하는 기관이라고 하는 낭월의 이야기가 엉뚱하지만은 않겠다는 것에 동의를 하셨다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이야 뭘 바라겠어요. 자신도 잘 모르고 있으니 말이지요. 일단 기능에 대한 검사는 여기까지입니다.




4. 꽃비가 내립니다.




다시 처음제목으로 돌아왔습니다. 감로사에는 부처님이 오셨다는 날에 꽃비가 내렸습니다. 정말로 온 허공에 가득한 향기로운 꽃비였습니다.




법화경(法華經)에 그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때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을 할 적에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불경에는 여기저기에서 꽃비에 대한 이야기가 많 이도 나옵니다. 그래서 그러한 구절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을 했지요.




‘아마도 설법을 하던 장소가 커다란 꽃나무 아래였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꽃비가 내린다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 말이지요. 물론 불경을 시각적으로 이해를 한 낭월의 소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소식을 바로 깨달은 듯하여 참으로 마음이 즐거운 낭월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로사에 꽃비가 내릴 정도의 큰 꽃나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뒷산에 소나무에서 송화 가루가 날리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꽃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지금 낭월의 글을 보시면서 ‘또 사기꾼, 혹은 뻥쟁이가 하나 생겼군.’ 하셔도 달리 방법이 없겠습니다. 혹 낭월의 글을 조금이나마 믿는 편이라고 하신다면 다시 곰곰 생각을 해 보시고 다음으로 넘어가시라고 권해 드리겠습니다.




5. 꽃비의 진실




생각을 하셨다면 어디 낭월의 소견과 맞춰 보십시다. 낭월의 느낌에서 얻은 꽃비란 바로 ‘꽃향기의 비’입니다. 눈에 보이는 꽃이 아니고, 코에 진동을 하는 향기로운 꽃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어저께 그렇게도 진동을 하던 꽃잔디의 향기에 많은 불자님들이 취해서 감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지요. 불경을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코로도 느껴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꽃비를 맞으면서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왜 그 있지 않습니까? 허브향으로 정신적인 질환을 치료한다는 말을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향은 정신적인 유희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눈과 코의 역할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도 이러한 동기로 인해서였습니다. 하나를 알면 열 가지가 보인다는 말도 비로소 관통이 되는 느낌입니다.




봄이 왔다길래


산으로 들로 봄을 찾아 나섰네


하루 온 종일 헤매었건만


봄은 보이지 않고 몸만 지쳤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후원의 매화가지를 코에 대니


이미 그 곳에 봄은 무르 녹은 것을.


 





          2006년 5월 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