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책으로 공부하는 한계(限界)

작성일
2006-05-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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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책으로 공부하는 한계(限界)














송화(松花)의 가루가 다 사라지고 난 계룡산은 다시 맑아졌습니다. 맑은 아침의 상쾌한 시작은 아무리 할인을 해서 생각해도 즐거움이 넘치는 순간이 아닌가 싶은 복에 겨운 생각을 해 보게 되는 5월입니다. 공부를 하시는 벗님의 경우를 생각해서 책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공부하는데 책이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만, 과연 그 책으로 어디까지 접근이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낭월의 소견을 말씀드려 봅니다. 참고가 되시면 더욱 좋지요.




1. 책은 누가 뭐래도 큰 스승




무엇이거나 공부를 할 마음이 내키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점에서 책을 찾는 일이 낭월의 공부 방법입니다. 책을 통해서 접근을 할 만큼 한 다음에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이 되면 스스로 연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도로 스승을 찾아서 방황을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책으로 접근을 해도 상당부분의 경지(?)까지 가능하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소위 말하는 ‘독학파(獨學派)’라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만큼 책과 함께 한 시간은 삶의 나날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공부를 하러 감로사에 온 학생 한 분은 왕초보사주학을 사다가 읽는 과정에서 책의 내용 속으로 빠져 들어가서 삼매에 빠졌던 모양이라고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즉 잠시 책을 보고 자겠다고 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6시였더라는군요. 믿기지 않아서 시계를 다시 보고, 바깥을 보고서야 비로소 5~6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크리스찬이라서 삼매라고 하는 불교식 용어에 대해서 이해가 없었는데, 그 순간에 바로 ‘이것이 삼매인가 보구나...’하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보면, 책을 통해서 접근 할 수가 있는 영역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을 읽다가 삼매에 들었다는 이야기는 불교수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사주공부를 하면서도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을 많이 체험하시는가 싶습니다. 아마도 오랜 인연의 실끝을 찾으신 연고가 아니겠는가 하고 웃었습니다만, 본인의 심경은 이러한 인연을 통해서 더욱 견고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책으로 얻을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지식인들이 남겨 놓으신 흔적들은 그야말로 ‘지식(知識)의 결정체(結晶體)’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낭월도 그러한 이야기들이 적힌 글을 보면서 옛 선인(先人)들의 경험과 노력의 흔적들을 느끼면서 자신의 경험인냥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것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책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내키면 우선 책을 보면서 입문을 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물론 즐겁지 않으면 책만 덮으면 그것으로 종료가 되는 것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인연은 ‘거기까지’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책 한 권을 사서 읽은 인연은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2. 사주공부를 위한 책




사주 공부를 해 봐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신 벗님은 아마도 우선 서점에서 책을 보셨을 것이라고 짐작을 합니다. 물론 가까운 철학원에 찾아가셔서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느냐는 문의를 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여하튼 지금 이 시간에 낭월학당에서 한담을 보고 계신 것으로 봐서 어떤 형태로거나 간에 사주공부를 위해서 약간의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셨을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좋은 인연이지요.




모든 분야가 다 그렇습니다만, 오래 된 분야일수록 관련 서적들은 넘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기가 높은 분야일수록 더욱 그러한 현상은 치우쳐서 나타나기 마련이지요. ‘음양오행학(陰陽五行學)의 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당연히 나타난다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의 현상을 보게 되면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을 연구하는 학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당연히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누구나 느끼실 것입니다. 그것은 관련 서적이 얼마나 많으냐를 생각하면 바로 알 수가 있는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가령 수상(手相)이나 관상(觀相)과 연관된 서적과 비교를 해봐도 그렇고, 풍수(風水)나 자미두수(紫微斗數)와 비교를 해봐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인기는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많은 학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연구가 된다면 계속적인 사랑을 받을 것이고, 연구발전이 지지부진하면 독자의 관심은 어느 사이에 다른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주공부를 하는 과정에서의 범위를 놓고 또 생각을 해 봅니다. 워낙 책이 많다가 보니까 과연 어느 책으로 공부를 해야 보다 효과적으로 본론에 접근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時間)의 경제학(經濟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을 살다가 떠나야 하는 인생의 여정에서 본다면 이러한 저울질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해야 하겠고, 당연한 권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자신의 책이 없는 입장에서 적어봐야 객관성을 유지하겠는데, 아무래도 적지 않은 자신의 책을 출판한 낭월의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게 됨으로 해서 혹시라도 형평성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솔직한 마음입니다. 다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살려서 소견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다만 자신의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참입니다. 하하~




3. 책에서 느끼는 느낌




책을 좀 읽어 보신 독자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느낄 수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은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설명하려고 노력을 했는가, 아니면 대충 책이라도 한 권 내어서 자신의 이름을 얻으려고 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지요. 사실 책을 구입하여 공부하는 입장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짜증이 나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러한 책은 독서의 양에 따라서 서점에서 대략(약 10여분 정도) 살펴보는 것으로도 짐작을 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낭월은 관심분야의 책을 볼 적에 그 정도의 시간은 할애를 합니다. 그렇게 머리말부터 차근차근 보면서 이해를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앞에서 한 말은 ‘이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은 필요없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는 투의 글로 장식을 하고서 실제로 끝마무리를 보면 허전해 지는 느낌이 드는 책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책은 바로 놓아버립니다. 물론 십분 정도를 투자한 것은 다행으로 생각하셔야겠습니다. 그 책을 사서 집으로 가게 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실 적에는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나름대로 이 책이라면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때까지는 좀 살펴보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느낀 점으로 책을 만드는 학자가 있고, 남의 느낌을 발췌하는 학자가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스스로 느낀 점을 책으로 만든 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발췌를 잘 하는 것은 그야말로 백과사전이라고 하겠습니다만 그러한 것은 이미 책의 영역을 벗어나서 자료집 정도로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구입하실 적에 가능하면 생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서점에서 여러 책들을 비교하면서 스스로 느낌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혼자의 이름으로 저서가 100권이 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단한 저작 능력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그러한 책들이 모두 스스로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일 경우에 할 수가 있는 말씀이지요. 다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본다면, 책에 ‘자신의 것은 이름뿐’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이름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논문의 형태로 되어있는 책들은 그러한 것이 더욱 심하더군요. 다만 이러한 책도 공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서 발췌했다는 말만 분명히 해 준다면 그러한 안내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췌만 잘 해줘도 독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도 못한 경우가 더 많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책이 많은 것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이름을 빌려 준 책이라고 하는 설도 적지 않습니다. 대만에 한 역학자가 있는데, 그의 저서 상당수는 문인들이 지은 것을 가져다가 자신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문인의 능력이 그에 못지않다고 하면 해로울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실제로 본인의 능력이 된다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름만 빌린 책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 점에서 잘 살피지 않으면 헛된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책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소강절(邵康節), 유백온(劉伯溫), 양균송(楊筠松), 장대홍(蔣大鴻) 등등의 이름이 들어간 책들이 모두 본인이 지은 책이라고 볼 수가 있느냐는 의문점을 제기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자는 자신의 겸손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궤변이지요. 자신이 겸손하려면 아예 책을 내지 않으면 될 일을 남의 이름에 업혀서 자신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떳떳하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갖가지의 책에 대한 느낌을 본다면 이루 다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는 없거나 매우 적고, 남을 비방하는 이야기만 가득한 책도 있고, 자신은 영통(靈通)을 했기 때문에 무조건 가르쳐주는 대로만 배우면 성공한다는 독재성(獨裁性)의 책까지도 서점에는 널려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벗님도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해 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4. 책에서의 감사한 인연




앞에서 문제가 많은 책들도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좋은 책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책을 찾아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단축의 큰 의미가 되겠습니다. 스스로 연구한다면 10년이 걸려야 할 것을 책으로 몇 개월에 파악이 된다면 분명한 성공이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인연이 된다면 책으로 스승을 삼는다는 말이 틀림 없다고 하겠고, 낭월의 경험으로는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나 ‘팔자심리추명학(八字心理推命學)’이 그렇고, 또 ‘명학신의(命學新義)’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좋은 책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주변의 선배들에게 적지 않은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결과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즐거움, 독서하는 행복감이 무엇인지를 전해 주신 스승님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늘 마음속으로 이 선생님들께 마음의 꽃을 달아드리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분들은 명성이 쟁쟁하신 분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적천수징의의 임철초 선생님도 어떻게 살으셨던 분인지 알 길이 없고, 팔자심리추명학의 하건충선생님도 책 두 권 이외에는 흔적이 없으며, 명학신의의 화제관주인도 실체는 거의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낭월의 과문(寡聞)한 탓이려니 합니다만 다른 벗님들의 생각도 비슷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명문(名門)에 빠지기 쉬운 독자들에게는 외면을 당하게 될 가능성도 많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서울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벼슬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저술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살았던 것도 별스럽지 않은 그냥 평범한 술객에 불과한 사람의 글이라고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의 스타일에 따라서는 명문가를 위주로 선별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헛된 시간낭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다만 그로 인해서 위작(僞作)이 등장하기도 하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면의 글에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어느 사기꾼에게 속는지도 모르고 헛된 시간을 낭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낭월의 소견은 이렇습니다.




1) 누가 썼느냐?


2) 어떻게 썼느냐?




낭월은 당연히 후자를 택합니다. 내용이 중요하지 이름은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내용을 읽는 것이지 이름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평이 나 있는 이름이라고 한다면 내용도 믿을 수가 있으므로 그대로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만, 이름은 알려지지 않아도 참신한 내용을 적은 책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강가에서 보석을 줍는 마음으로 서점쇼핑을 즐기곤 합니다.




대만에서 진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내용이 생각나네요. 어느 학자를 거론하면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역학계에서 손을 대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과연 그것이 사람이라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낭월에게 하더군요. 아마도 천재라면 또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 것에 합의를 봤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한 분야에 대해서만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다시 푸욱~ 익혀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두가지를 잘 할 수가 있는 것은 물론 노력을 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가능하겠습니다만, 십여가지를 다 자신이 깨달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놀라움보다는 용감함이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괜한 시기심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거기에서 거기이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무수히 많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의 학자들이 책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나와 있는 책들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야말로 독자적인 영역을 찾아서 일생을 걸고 있을 것이며, 그러한 손을 통해서 나온 책이야말로 결정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학자들의 노력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현명한 독자에게 그대로 노출이 될 것이고, 멀지 않아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5. 책으로만 다 되지 않는 이유




책으로 공부하시는 모든 벗님의 꿈이기도 하지요. 책으로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책만으로도 모두를 다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요? 아마도 다음 두 가지의 방향으로 결론이 나올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1) 그래~! 이제 모두가 완성 된 거야. 끝~!


2) 책만으로는 모두 밝힐 수가 없을 거야.... 직접 찾아봐야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나름대로 답을 찾아서 다음 단계로 진행을 하게 되겠습니다. 벗님은 어느 쪽이신지요? 낭월은 책으로 많은 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응용하고 활용하는데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왜냐면 사실 책도 책 나름이기는 합니다만, 낭월의 책 스승님들은 거의 있는 그대로를 다 내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을 잘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책은 책이고 사람은 사람이라고 하는 점을 생각 할 수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책을 써 놓고 연구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계속해서 발전을 할 것으로 관찰을 할 적에, 당연히 책보다 더 지혜로움을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유는 있습니다.




‘민감한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공개적으로 글로 쓰기가 좀 맘에 걸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는 무리가 없지만, 책으로 나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는 경우도 있겠네요. 그리고 자신이 너무 고생을 해서 깨달은 부분이라서 책값 몇 푼을 받고는 공개하는 것이 싫을 경우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다소 고비용으로 전수를 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경우도 능히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깨달은 것은 자신의 지적재산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자신의 형편에 따라서 인연을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비싼 것이 정답’이라는 논리는 없지요. 비용은 비용이고, 내용은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다만 실력이 뛰어나다면 사람을 가르치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술(혹은 학문적인 특별함-秘法)이 노출되어봐야 자신의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심하면 책을 쓰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을 받아도 가르침을 받고 나면 그 가르침을 혼자서 써 먹을 사람인지, 여러 사람에게 떠버릴 사람인지를 봐가면서 선별하여 전수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경우에는 비법(?)을 전주해 주지 않고, 시간만 끌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것까지 신경을 쓰느라고 피곤하기는 하겠습니다만 그것이야 각기 타고 난 천성이라고 하겠으니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여하튼 전수를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을 하셨다고 하면 상당한 비용의 지출은 아마도 예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까 책을 쓰더라도 실제로 영양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맛보기만 살짝 보여주고는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것이지요. 아마도 책을 읽으시다가, 뭔가 나올 듯 나올 듯 하다가는 마쳐버리는 책이 있다면 필시 이와 같은 목적이 있을 것으로 짐작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대만에서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대만에서도 그렇다고 합니다. 책으로 공개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의 70%가 된다면 매우 성실한 학자라고 합니다. 80%가 되면 모두 다 내어 놨다고 봐도 된다는 이야기도 하시더군요. 대부분은 60% 정도만 공개를 하고 숨겨두는 것이 보통이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면서도 ‘이 내용은 내가 깨달은 비법이니 책으로 쓰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수업료를 내고 배웠으면 그의 지식이 나에게로 온 것이므로 내가 책으로 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봐야 겠지요. 다만 어느 선생님께 배운 것이라고 하는 정도를 밝힌다면 예의를 갖췄다고 하겠습니다.




자, 이 정도의 말씀이면 책만으로 답을 다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셨을 것으로 보겠습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좋은 책을 만나서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고 우선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별도의 스승을 만나는 것은 아마도 인연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인연을 만나면 전수도 받을 수가 있겠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지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각자의 좋은 인연이 있기 마련입니다만, 인연이 되더라도 우선은 자신의 기본이 있어야 수용을 하게 되므로 독학으로 상당 수준까지 가는 것은 그야말로 돈을 버는 일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책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가 싶기도 합니다. 어느 책이 김씨에게는 멋지고 대단한 내용인데, 임씨에게는 하찮은 책이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인연이 아닌 것이 없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네요. 요즘은 삼명통회(三命通會)의 ‘옥정오결(玉井奧訣)’이라는 대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너무 두꺼운 책이라서 짐짓 피하고 있었는데, 대만의 어느 학자분이 음미를 해 볼 내용이 있다고 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네요.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풀이에 대한 도움을 청해야 할까 봅니다.




이 책의 저자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안동두겸(安東杜謙)이라는 선생이 남긴 글인데, 또한 처음 보는 이름입니다. 안동에 사는 두씨의 성씨를 쓰는 겸이라는 이름의 명리학자가 쓴 글인가 봅니다. 물론 그 안동은 한국의 안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육오 선생의 평으로 봐서는 이 글을 깨닫게 된다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로 도달한다고 하는 것 같네요. 극찬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좀 한가롭게 책을 보려고 해도 시간이 여유를 주지 않는군요. 그래서 시간이 많으실 적에 열심히 책을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다가 보니, ‘마디그늘을 아끼라’는 고인의 말씀을 되풀이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참으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시간을 물쓰듯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에 하신 말씀이라고 이해가 되네요. 그러다보니 어느 사이에 낭월도 나이를 먹어가는 가 봅니다. 시간의 가치를 이미 알았음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안타깝다고 하겠습니다. 부디 열심히 정진하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여하튼 열심히 정진하셔서 스승을 만나는 지점까지 올바르게 안내를 할 책을 만나시는 것이 최선이겠습니다. 그러한 인연이 되신다면 축하를 드려도 되겠습니다. 행복하신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6년 5월 1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