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담양오의 현공본의 서문

작성일
2006-01-1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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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玄空本義談養吾全集 서문










이번에 대만(臺灣)에 가서 만난 책입니다. 곽유량(郭維諒)선생을 만나서 현공풍수(玄空風水)를 공부하는데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이 책을 소개해 줘서 사들고 온 것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담양오 선생의 서문을 읽어보면서 연구하는 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재삼 확인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여 여기에 소개를 해 드리도록 합니다.


내용을 보면 자신의 현공법에 대한 목적이 중생구제에 있었으며, 처음에 배운 1운에서 9운까지의 애성법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크게 뉘우치는 장면에서는 학인의 마음자세가 어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법에 매달려서 고치려고 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공애성법에 잘못 전달 된 것이 있다고 하는데, 내용은 차차로 공부를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사람의 머릿속에 입력이 된 것을 수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서문을 풀이하면서 더러는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못하는 곳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큰 뜻은 어기지 않았으니 이해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현공풍수에 대해서 공부하시는 벗님들이시라면 살펴보시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할 것인지 안내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자서(自序)]




오랜 옛날에 복희, 문왕이 글로써 선후팔괘에 태극음양을 보이고, 하도낙서로 교역과 변역을 보였으며 체용(體用)의 두 괘로 흘러가면서 왕성하거나 쇠약함의 변화막측함을 보였으니 그러므로 언(諺)에 말하기를 ‘역은 바뀌는 것으로 도라고 하니 일음일양(一陰一陽)으로 다한다’고 했다. 이른바 대현공학자는 또한 역의 도가 아닐 것이 없는 것이다.


선천(先天)은 체(體)가 되고, 후천(後天)은 용(用)이 되는 것이니, 이것은 이기(理氣)중에서 법을 짓는 체용(體用)이다. 와겸유돌(窩鉗乳突)로 베를 짜듯이 얽혀서 기운이 맺히게 되니, 이것은 형세(形勢)중에서 법을 짓는 체용(體用)이다.


이기(理氣)의 용(用)에서 그 시절(時節)의 상황과 부합하고, 형세(形勢)의 체(體)에서 그 뜻과 부합한다. 시와 합한즉 괘상(卦象)의 기운(氣運)이 수단(修短)하고, 자웅(雌雄)이 교구(交媾)함으로 생왕(生旺)과 쇠사(衰死)를 위주한다.


정(情)에 합한즉 기복(起伏)과 고저(高低)로 대소(大小)와 강약(强弱)과 원근(遠近)의 향배(向背)로 주(主)를 삼으니 이것은 바뀌지 않는 상리(常理)이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게 되면 용(用)이라고 말하니 즉 삼합(三合)의 장생(長生)과 삼원(三元)의 애성(挨星)과 납수(納水)와 발사(撥砂)가 그것이다. 또 체(體)라고 말하는 것은 즉 용혈사수(龍穴砂水)이니 그 진위(眞僞)를 가리지 않고 주객(主客)도 알지 않는다.


그래서 취송(聚訟)하기 수천년에 체용(體用)의 두 글자는 각기 시비(是非)가 있었으니 용(用)을 중시하는 사람은 왕왕 그 형세(形勢)를 잃게 되고, 체(體)를 중시하는 자는 왕왕 그 이기(理氣)를 잃게 되는데, 그렇지만 이 둘은 함께 논해야 하고 체도 잃고, 용도 잃는 것이니, 그 체를 얻으면 완전하게 시절(時節)과 부합이 되는 날이 오겠고, 그 체를 읽으면 영원히 부합되는 날을 바랄 수가 없으니 이것이 올바르게 분석한 것이다. 혹시 능히 형기(形氣)가 둘 다 완전하다면 스스로 지당(至當)한 경지에 속하게 된다.




양오(養吾)가 어려서 가훈(家訓)을 이어받고자 하여 우선 할아버지의 묘지를 보기 시작하고, 석산(錫山)의 장중산(章仲山)으로부터 직접 전수(傳受)를 받은 양구여(楊九如)선생의 문하(門下)에서 천심정운(天心正運)의 123456789를 받았고, 애성법이 전도되는 법이니 소위 말하는 대현공법인데,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민국(民國) 8년의 기미(己未)에 다시 교통부(交通部) 상해(上海) 전보총국으로 발령을 받아서 일하면서도 항상 틈만 나면 사람을 불러서 공개적으로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인데, 당시에 사방으로 뜻을 두고 장중산의 지리변정직해(地理辨正直解)를 연구하였으며, 내가 알기에 장대홍(蔣大鴻)과 장중산(章仲山)은 같은 맥이었고, 그 내용에서는 모든 진리를 설파해서 감춰 둔 것이 없었으니 양오 자신도 공개적으로 힘을 다해서 연구하여 대현공투로(大玄空透路), 대현공실험(大玄空實驗), 대현공신해(大玄空新解)등 3권을 출판했던 것이고, 함께 연구하던 동학들도 누구나 의욕적으로 백성을 구제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도리어 장애(障碍)가 생기게 되었으니, 전에 받았던 천심정운(天心正運)의 방법은 실은 옛적의 현공학(玄空學)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사(己巳-기미년으로부터 10년 후)년 여름에 바야흐로 이건허(李虔虛)를 민상이라는 곳에서 만나게 되어 세 번이나 간청을 하여 비로소 대현공육법진전(大玄空六法眞詮)을 받게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대현공(大玄空)이라고 칭하는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저 주역(周易)의 이치(理致)와 완전히 위배(違背)되는 (천심정운의논리)는 실로 현공(玄空)의 참뜻이 아니었던 것인데, 세상에서 못난 놈이 지은 앞의 세 권의 책을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러한 속 사정을 모를 것인데, 그 후에 우석음(尤惜陰)이 지은 택운신안(宅運新案)과 영백운(榮伯雲-懺悔學人)이 지은 이택실험(二宅實驗)과 심죽잉(沈竹礽)이 지은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 등의 몇 관련 서적은 모두 장중산(章仲山)이 묘를 쓴 다음에 공개적으로 학술을 토론하고 사회를 구제하다는 뜻으로 지어졌으니, 즉 서로 같은 것이다.


 


[낭월생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뜻이 좀 명확하지 않은듯하다. 장중산이 죽고 나서 실험에 나섰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뜻도 같고, 자신의 논리로 서로 연구해서 부합이 된다는 내용인지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하겠다.]


 


양오(養吾)가 스스로 비결을 얻은 이후로 이미 초학자의 공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학술계와 도덕계를 위해서 경오(庚午-1930)년 봄 3월에 그러한 상황을 글로 적어서 알렸는데 잘못 된 것을 버리고 올바른 옛 현공학(玄空學)을 배우기 위함이었으며, 장중산(章仲山)의 천심정운(天心正運)이 잘못된 것은 다시 바로잡기를 희망해서이다.


 


1100년의 오랜 학문이 변변치 못한 놈(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왜곡되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며, 다시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 먼저 바로 잡고자 하였는데, 오히려 이미 12345전도론이 기억되어버린 사람이 많다보니, 큰 기술자는 능히 사람의 규격(規格)은 만들 수가 있지만, 재주로 사람을 꽤하기는 불가능하니, 또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더라.


 


이제 특별히 이선생에게 청하여 옛적부터 전해지면서 공개되지 않았던내용을 모두 전하는 것이니, 이제 이후로 표몰(漂沒)하여 떠돌 수밖에 없었던 곳에서 잘 선택하여 받은 다음에 자양분을 널리 전하기 바라노라.


 


글을 쓰고 말을 세움에 오히려 고훈(古訓)을 살피게 되니 비결을 얻은 자는 한 마디에 바로 밝아지는데 그렇지 못한자는 깜깜하여 밝기가 어려운 법이라 ‘천하에 어려운 일은 없으니 뜻이 있는 자는 반드시 이룬다’는 말이 있듯이 앞뒤를 잘 살피고 참작한다면 어찌 대현공(大玄空)의 이치에 함께 하여 좋은 길을 가지 못하겠는가 장대홍(蔣大鴻)선생이 본 자웅(雌雄)이 한 법이며, 산과 물이 상대하는 것도 한 말이며, 일찌기 말하던 ‘돌 언덕(石破)에서 하늘이 놀라고, 귀신이 마땅히 밤중에 통곡하는 것’이니 자세히 연구하고 살피면 바야흐로 그 맛을 알게 되고 나면, 이미 모두 다 말해서 더 남겨 둔 비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양오(養吾)가 책 한권에 이러한 뜻을 담고자 했는데, 정축사변이해로 교통이 막히는 바람에 고향을 거의 가지 못하다가 몇 년을 편집하고 저작하여 비로소 모아지게 되었으니 이전에 공개했던 장중산(章仲山)의 학설의 잘못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올바른 길로 정진하여 현공의 오랜 학문이 오히려 한 가닥 빛이 되는 것이므로 헛된 이름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실제적인 학문을 위하는 것이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속이지 않는 법이라는 것임을 결정하는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는 원리(原理)에 다 갖춰져 있으니 죄도 내가 짓고 책임도 내가 진다. 원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여기에 못난 놈의 인생역정을 간략간략하게 설명했으니 스스로 자랑하여 대현공(大玄空) 육법(六法)본의(本義)가 넓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미소를 한 번 짓는다.


 


다시 바라노니 후에 이후에 연구하는 자는 정미로움으로 더하고 정진으로 구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서문을 쓰노라.




中華民國 32년(1943) 癸未 仲夏 江蘇 武進 橫林 五伯塘


晧然談養吾 自序 於上海旅次




        2006년 1월 1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