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을유년을 결산해 보니

작성일
2005-12-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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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을유년을 결산해 보니












이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생각을 해봐야 할 시간인 듯싶습니다. 벗님의 한 해는 어떠셨는지요? 나름대로 살아 온 360일을 뒤 돌아 봅니다.




1. 을유년 예측하기를 ‘조금은 발전하리라’




을유년은 대운(大運)이 44대운의 기해(己亥)운이라서 하반기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으니 비견(比肩)운에서 정재(正財)의 운으로 바뀌어 가는 해가 된다고 관찰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운의 정황은 작년의 갑신년(甲申年)보다는 조금 나을 것으로 봤네요. 갑신년의 경우에는 갑목(甲木)이 들어와서 심리적으로 부담을 많이 줄 것인데, 이미 사주에 갑목(甲木)이 있으므로 추가로 들어온다고 해서 별달리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흉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을 했습니다만, 을유년(乙酉年)의 경유에는 을목(乙木)이 들어와서 편관(偏官)으로 자극을 준다고 봐야 하겠으니 겉으로는 스트레스가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것은 감정적으로 수용이 될 것이니까 심리적으로 갈등이 많을 것으로 봐야 하겠고, 유금(酉金)은 식신(食神)으로 또한 사주에 있는 글자여서 특별하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대운에서 변동이 생기므로 구체적인 결실이 하나 정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으로 한 해를 시작하였습니다.




2. 천간(天干)의 을목(乙木) 작용




작년의 갑신년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했다고 하면, 을유년은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만, 우선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무슨 스트레스가 가장 컸던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낭월학당의 지부를 해산한 것이 가장 큰 을목(乙木) 작용이었다고 봐야 하겠네요. 그리고 갑신년이었다면 그럭저럭 합리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머뭇거렸겠습니다만 편관이 들어와서 극을 주게 되면서 식신으로 감정적 반발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그 결과로 단칼에 5년여를 가꿔온 낭월학당 지부를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보이게 되어 아무래도 편관의 작용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물론 그냥 편관만 들어왔다면 인내심으로 견뎠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중요한 것은 식신이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와 같은 부담을 받게 되면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어른들의 속담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자식은 없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지부는 이미 없었던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해산하면서 얻은 교훈




사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공부하는 사람이, 자신의 뜻을 따라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무리 할인을 해도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의 행위로 인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지부 자체를 해산하는 것은 좀 경솔한 결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5년의 시간을 뒤돌아보면서 곰곰 생각한 결과는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버리기 전에 미리 결정을 해야 하겠다고 자신을 다그쳤던 모양입니다.




그 바람에 낭월학당을 의지하고 학당을 운영하시던 몇몇 지부장님들은 무척 이나 난감해 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겪을 마음의 스트레스는 낭월도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일이 다 고려하게 된다면 자신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냉정해진 것은 을목(乙木)의 거부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우선 가장 큰 교훈(敎訓)은 ‘사람은 교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무척 서글픈 선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만큼 세상을 살아 온 다음에서야 비로소 얻은 가르침입니다. 아마도 삶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으니까 노력하노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결론은 ‘포기(抛棄)’가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둔하기는 참 둔하지요.......




부처는 그렇다고 합니다. ‘중생을 고쳐서 부처를 만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아마도 부처의 이 노력은 필시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 말은 ‘일러줘도 듣지 않는 자는 교화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중생구제에 대한 포기선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지를 비로소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이지요. 부처가 이러한 말씀을 할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백 명 중에 한 명은 그래도 교화가 될 것이라고 하는 기대감이지요. 왜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혹시나 혹시나 하는 것 말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기대를 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역시 식신(食神)의 유금(酉金)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태어난 것에서 조금도 변화를 시킬 수가 없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정답은 ‘스스로 변화를 할 뿐이다.’로 내렸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진화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진화를 하고, 진화를 하지 못하면 스스로 퇴출되고 마는 것이겠습니다. 어제의 허물을 털고 다시 새로운 각오로 정진한다면 능히 변화는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하는데 드는 시간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이것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털 하나라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낭월도 스스로 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켜보고, 그것이 되지 않는 사람은 무시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앞으로 지부장이라는 이름은 사라질 것입니다만, 계속해서 학문을 연마하고 정진하는 제자에게는 어떤 식으로라도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인정만으로 될 일은 아니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열린 관찰력과 깨어있는 노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성을 주고자 하는 좀 냉정한 평가를 할 참입니다. 을목의 편관이 주는 부담을 유금의 식신으로 말끔히 정리를 해버린 것이 겉으로 드러난 을유년의 상황이었다고 판단을 해 봤습니다.




4. 자신의 변화는 유금(酉金)으로




학당에서 얻은 교훈으로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은 늘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 때문이지요. 낭월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무지한 방면에 대해서는 늘 변화시키고자 노력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소위 열정(熱情)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열정이 아니면 모든 것은 변화되지 않는다고 봐야 하는 것도 아마 분명할 것입니다. 열정이 식어버린 사람은 무슨 방법으로도 진화를 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수가 있음은 유금(酉金)이 식신이고 연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올 해의 결실 중에서 가장 값지다고 판단이 되는 것은, ‘현공풍수(玄空風水)의 입문(入門)’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도 사주쟁이가 현공풍수를 배우는 것이 유익하면 유익하지, 해로울 이치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열정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입문스승이신 자명스님을 붙잡고 많이 묻고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진도가 좀 있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자명스님도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아껴두지를 못하는 천성이 있으신가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감사인물로 자명스님을 꼽아야 하겠습니다. 어저께도 예산 지방을 답산 나가서 이회창씨 선영과, 손석우할배묘, 남연군묘 등등을 둘러보면서 또 한 수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눈 속에서의 공부도 묘미가 있더군요.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10배 이상 단축시키는 것이 답산 공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어느 명리학자께서 전화를 주셨더군요. 사주학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이 다시 다른 학문을 하게 된다면, 남들이 보기에는 ‘사주만 배워서는 밥벌이가 되지 않으니까 또 풍수를 배운다더라’하는 혐의(?)를 받게 될 수도 있으므로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지요. 그 말을 듣고는 웃었습니다. 그 분은 변화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분이라고 짐작만 했지요. 남의 이목이 그렇게도 두려운 사람은 절대로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늘 떠올리는 말씀이 한 구절 있습니다.




‘조문도석사가이(朝聞道夕死可以)’라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열정적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자포자기의 느낌과는 반대로 생생한 활력이 느껴지거든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지요. 중요한 것은 숨을 쉬고,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을유년(乙酉年)의 식신(食神)이 가져다 준 선물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를 잃고, 속으로는 하나를 얻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 바람에 긴긴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고 책에 매달려서 즐거운 탐구의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은 결과보다는 현재의 진행형에 더 매력을 느끼는 작용이었다고 봐서 재성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5. 현공풍수 연구




어제도 오늘도 책을 보고 있습니다. 강의도 이달 말이면 마무리가 되므로 다음 달에는 좀 더 진도가 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현공풍수로 풍수학에 입문을 하고 보니,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종류의 이기론(理氣論) 분야를 좀 이해정도라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정음정양(淨陰淨陽)을 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꽤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군림했던 풍수학(風水學)의 이기론이라고 하니까 대략 어떤 방식으로 하늘의 이치(理氣法)를 적용시키는지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입지안전서(入地眼全書)》라는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라도 보려고 했는데, 좋은 독서의 인연이 되어서 마침 대전에서 입지안전서의 독해강의가 있기에 동참하기로 하고 잘 들리지 않는 귀를 열고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우선 탐랑이니, 문곡이니 하는 말부터 익혀야 하겠는데, 이것은 현공의 체괘에서도 나오는 말이므로 생소하지는 않습니다만, 정확하게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는 살펴야 하겠습니다. 사실 현공풍수도 이기법(理氣法)이므로 하나만 알면 된다고도 하겠지만, 그래도 호기심 덩어리인 식신이 그렇게 만족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우선 가장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부터 이해를 하고 다시 현공법을 바라다보면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살피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물론 그 틈에도 장중산 선생의 《심안지요(心眼指要)》는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현공풍수의 맛을 이미 봤잖아요. 그러니 열심히 공부 해야지요.




6. 병술년(丙戌年)은 ‘공부하는 해’




또 내년이 궁금한 낭월입니다. 내년의 대운은 해수(亥水)가 분명하고, 세운은 병술년(丙戌年)이 되므로 병화(丙火)의 작용과 술토(戌土)의 작용이 나타나겠는데, 겉으로는 정인(正印)의 작용으로 공부를 할 것이고, 속으로는 겁재(劫財)의 작용으로 결실이 빈약할 것으로 판단을 해 봅니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운으로는 불리하다고 봐야 하겠고, 공부나 하면서 내공을 다지는 것이 가장 알뜰한 한 해의 계획이 되지 않겠는가 싶어서 병술년의 공부의 해로 삼을 작정입니다. 물론 주변의 여건이 공부나 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도 방향을 잡아 놓고 흔들려도 흔들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그렇게 잡아 봤습니다.


방문자들에게 운이 나쁠 적에는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늘 말을 했는데, 낭월이 이제 그 실체를 느껴봐야 할 차례인가 싶네요. 병술년의 술토(戌土)는 별로 반갑지 않은 글자네요. 대운의 해수(亥水)도 아마 맥을 쓰지 못할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현상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오로지 공부에 몰두하게 된다면, 다시 360일이 지난 오늘에 결산서에 조금이라도 남음이 있는 한 해가 되었다고 기록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선 다음 주에는 대만나들이를 하려고 비행기 표를 사 뒀습니다. 인연이 되는대로 맨발로 뛰어 볼 요량입니다. 스승을 만나는 것은 각자의 복이라고 합니다. 복이 된다면 만날 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오늘의 대만에서 풍수학은 어떻게 운용되는지는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초상집도 따라다니고, 건축 현장에도 따라가 볼 작정이지요. 그러노라면 현공법인지 정음정양법인지, 포태법인지, 즉시로 판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책에서 하고, 경험은 현장에서 해야 하잖아요. 글만 보고 있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또한 학문의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식도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형기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관련 책을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풍수선생을 붙잡고 물어야지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이지요. 정말 뱃짱 하나로 버티고 있는 낭월입니다. 하하~ 물론 소득이 있다면 벗님께도 알려 드려야지요. 특히 열정적인 운경선생님께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네요. 언제 뵈도 공부하는 학인의 자세를 잃지 않는 모습이 늘 존경스럽기 때문입니다.




7. 마감 잘 하셨는지요?




낭월의 을유년에 대한 감상을 적어 봤습니다. 그리고 신년의 계획도 조금 생각해 봤는데, 벗님의 결산은 어떻게 되셨는지 돌이켜 보시고, 자신의 생각에서 얼마나 발전하셨는지도 점검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정리하노라면 다시 한 해를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성하는 시간도 될 것이므로 해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올해의 날도 며칠 남지 않았네요. 모쪼록 좋은 계획 세우셔서 다가오는 병술년에는 운수대통의 해가 되거나, 아니면 학문달성의 해가 되시도록 많은 정진 있으시기 바랍니다. 일년동안 살펴주신 애정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12월 2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