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현공풍수를 못 믿는 이유

작성일
2005-11-2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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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현공풍수를 못 믿는 이유














날씨가 갑자기 쌀랑~해졌습니다. 오늘은 감로사의 학인들과 풍수공부를 하러 가는 날인데, 또 무슨 공부를 하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그러면서 문득 생각을 해보니까 기존의 풍수를 연구하시던 풍수가(風水家)들께서 왜 그렇게도 현공풍수(玄空風水)를 반대하고 무시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서 싸늘한 날씨 때문에 이불 속에서 머리만 돌아가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네요.




제일 큰 이유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귀찮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하는 것도 못마땅 했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가 가장 쉽게 접근해 볼 수가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아니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이 풍수대가로 활동을 할 수가 있는데, 별도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이 틀림없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풍수법이 최선(最善)이고, 최상(最上)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아니고 새로운 이기법(理氣法)이 있는 풍수(風水), 즉 현공풍수가 있는데, 이러이러하다고 한다면 아마도 분명히 두통꺼리일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깊은 궁리를 해보기도 전에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도 상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모른 채하고 그냥 기존의 해온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주변의 만나는 사람들이 우찌우찌 현공풍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서는 자꾸 질문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 좌향(坐向)을 잘못 잡으면 큰일 난다메요?”


“지관님, 작년에 이장해주신 자리가 문제가 없나요?”


“지사님, 혹 산소를 쓰고 재수가 없는 것이 선생님이 현공풍수를 모르고 잡아주셔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정도까지 나오게 되면 아예 돌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현공(玄空)’이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아예 알레러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될 법한 일이겠습니다.


사실 통치자(統治者)는 백성이 깨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는 자만 알고 묵묵히 통치해온 것이 한자문화권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백성이 모두 글을 알게 되면 위정자(爲政者)는 피곤한 일이거든요. 백성은 모름지기 무식하고, 몽매해야 군주에게 대들지 않고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비단 통치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요? 병원에 가보면 의사들의 질병 소견서에는 여지없이 알아 볼 수가 없는 글들로 가득합니다. 아마도 경험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또 뭘까요? 자신이 배운 전문적인 용어로 기록을 해야만 이해가 되는 경우라고 한다면 뭐, 그런대로 이해를 하겠습니다. 다만 이것은 일반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그렇게 쓴다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거든요. 왜냐면 일반인이 알아보고 그게 뭐냐고 질문을 하면 피곤하거든요. 그리고 권위적인 이유도 얼만큼은 있겠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풍수가는 어떨까요? 자신이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판단한 점혈지를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지요. 사실 그냥 피곤한 일이 아니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그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용사로 이뤄진 묘지의 좌향이 맘에 걸릴 수가 있거든요. 물론 이러한 정도의 양심적인 풍수가라면 아마도 현공법도 배울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개는 매너리즘에 젖어서 그냥 무감각하게 넘어가겠지요.


문제는 몰라야 할 일반인들이 어디에서 현공풍수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그것이 최고인 줄로 알고 자꾸 질문을 하면 이것은 문맹정책이 깨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는 방법이니 말이지요. 사실 풍수법을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현공풍수는 누구라도 나경(羅經-패철)만 있으면 바로 측정을 해서 알 수가 있다고 하니 오랫동안 누리던 권위에 도전을 받는 것도 불안한 일인데, 자신이 잡은 묘자리에 대해서 주인들이 자꾸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신나는 현공풍수》라는 책을 보니까 우리 부친의 묘가 7운에 해좌사향(亥坐巳向)이면 상산하수(上山下水)라고 해서 재물도 인물도 망하게 된다고 했는데, 괜찮을까요?”


아니, 하늘같은 지사(地師)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했을 적에 해당 본인의 마음은 뭔가 ‘쿵~!’하고 한 대 맞은 기분이 들 겁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풍수에 대해서는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법이 최상의 술법인 줄만 알고 쩔쩔 매던 사람이 그러한 질문을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기절을 할 일이겠지요. 이러한 장면을 이해하실 수 있겠는지요?




이러한 장면에서 사람은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반발(反撥)이고, 하나는 의문(疑問)이지요. 반발을 하는 사람은 수용의 문이 닫힌 사람일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의문을 갖는 사람은 과연 그러한 법이 있다면 빨리 알아서 앞으로라도 잘 사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어제까지의 행위는 몰라서 그랬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현공풍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알고 보니 과연 현장에서 뭔가 타당한 연결고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연히 수용을 할 마음이 될 것으로 봐서 열린 학자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반발을 하는 학자(엄밀하게는 학자가 아니지요)의 경우에는 참으로 자존심도 상하고 떨떠름한 마음이 들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동안 자신의 점혈과 좌향에 대해서 들어올 무수한 반론들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왜냐면 자신의 관찰에 의해서 용사를 한 적지 않은 산소들이 그대로 자신의 실력을 나타낸 채로 그렇게 산천에 버티고 있으니 도망을 갈래야 갈 수도 없는 일이니 얼마나 애가 타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우 편리한 도피처는 바로 현공법(玄空法)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머리 아프게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편리하고, 현공법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혹평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권위가 그나마도 지켜진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혹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면 당연히 현공법은 쓸모가 없는 것이고 더더구나 형편이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도 적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천년 세월을 숨겨서 전해진 것이라고 하다면 아마도 아끼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바로 공개해서 많은 사람들의 눈을 열어 준 사람은 그야말로 보살(菩薩)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심소훈 선생이나 마태청 선생님은 그러한 소리를 들어도 될 것으로 생각 됩니다. 문맹정책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러한 것을 깨어버리고 그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가 있도록 했다면 분명 대단한 선지자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통치하는 사람들이 국회에서 위증하는 것을 보세요.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지 한 시간만 보고 있으면 그대로 알게 됩니다. 너무나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비밀을 간직하다가 목을 매는 사람도 나타나고, 시종일관 국민은 알면 안 되는 일들을 얼마나 저질렀는지 묵묵부답인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물론 세상에 비밀은 없겠지만 언젠가 드러날 비밀을 그렇게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측은한지요......




중요한 것은 풍수가의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의 허물이 고의가 아닌 이상, 자신만의 허물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알고서도 개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죄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낭월도 항상 오늘 알고 있는 것을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늘 다짐을 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어제 자신이 했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이치적으로 타당하고 현실적으로 부합이 된다면 뒤로 미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니 머리가 복잡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주공부도 그렇습니다. 누구는 잘 맞추는데 왜 낭월은 못 맞추느냐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이제 만성이 되어서 그러려니 합니다. 문제는 운이 나쁜데도 사업을 하라고 권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말을 듣게 될까봐 늘 마음에 조심스럽지요. 때로는 방문자가 그럽니다. 몇 년 전에 찾아 왔었노라고, 그러면서 사업을 해서 망했노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섬찟합니다. 이거 나를 믿고 질문했던 사람에게 잘못보고 사업을 하라고 해서 혹 망한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사업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냥 일을 벌여서 털어 먹고는 사주공부하러 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마음으로 진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사주쟁이도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일가의 가문의 성패가 달린 조상의 무덤에 오류가 나타난다는 것을 생각이나 하고 싶겠느냐는 생각으로 이해를 하게 되네요. 다만 문제는 어제는 그랬지만 오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날이 총명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양질의 좋은 정보를 습득하면서 지혜가 커지고 있는 것이지요. 언제까지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럴수록 허물이 더욱 커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본인들도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기왕에 풍수가의 길을 가고 있는 전문가라고 하면 현공풍수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현공풍수도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허상(虛像)이며 망상(妄想)으로 조작된 ‘미망(迷妄)의 세계(世界)’라는 것을 알고 나서 허탈해 질 수도 있거든요.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라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또 틀릴까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화를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는 현공을 배우고 나서 부모님의 산소를 들려 봤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그저 그렇거니 하고 지나쳤던 여러 장면들이 나타나고 있네요. 아시는 벗님은 아시겠지만 막내 동생이 저승으로 급하게 떠났던 것도 풍수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그러한 것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형기(形氣)가 많이 약하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수맥(水脈)의 흔적도 보이더군요. 그래서 마른 땅으로 옮겨 드려야 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그런대로 쓸 만한 땅을 발견하고 나경을 들이대어 보니 안타깝게도 8운에는 사용을 할 수가 없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장면에서 현공법을 모른다면 그대로 용사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최소한 편안한 자리에 모셔드리는 것이 풍수의 시작일테니 말입니다. 물론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좌향을 틀어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던 지혜로운 고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물론 탐욕스럽게 욕심을 부린 고인들도 많으셨겠지요. 오늘도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서해안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답산을 갈 예정입니다. 배우고 또 익히니 즐겁습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함께 할 수가 있어서 또 행복한 낭월입니다.




           2005년 11월 2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