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계수(癸水)의 참 소식일까?

작성일
2005-11-20 17:25
조회
8218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적천수를 다시 살피다가 계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내어보기로 하고 살펴봤습니다. 벗님의 계수관찰에 약간의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5년 11월 20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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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水至弱이나 達於天津하고


得龍而潤하면 功化斯神이니라


不愁火土요 不論庚辛이며


合戊見火하면 化象斯眞이니라




【直譯】


계수(癸水)는 가장 약한 성분이지만


천진에 도달하는 성분이기도 하다.


용을 만나 비를 내리니 윤택해지고


그 공이야말로 과연 신이 할 수 있는 재능이다.


토가 많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경신금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무토와 합하여 불을 보게 되면


화하는 형상이 참되다고 한다.




【풀이】


계수(癸水)가 약하다는 말은 음중지음(陰中之陰)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실제로 약하다는 말로 이해를 하게 되면 세력이나 힘의 차원에서 관찰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한 오해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음중에서도 최고로 음적(陰的)인 성분이다. 그래서 자꾸 응고(凝固)하는 성분이고, 발산지기(發散之氣)는 0%에 해당하는 성분으로 관찰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성분이 천진까지 도달한다는 말은 또 뭘까? 그야말로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그 묘한 맛에 즐거움을 느끼는 낭월이다. 여기에서 천진(天津)은 동네이름일 까닭은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하늘로 통하는 나루터’라는 말로 관찰을 해야 하겠는데, 그러한 곳이 과연 어디일까를 다시 생각하다가 묘한 관점을 얻게 되었다.


하늘은 남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자를 만나는 곳은 자궁(子宮)이다. 그렇다면 자궁이 천진(天津)? 그렇다. 이러한 관점을 발견한 이정환 선생의 관점은 감탄을 하게 된다. 여기에 완전히 동의를 하게 되며 이보다 더 명확한 계수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하는 것을 확신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더욱 멋진 이론적인 힌트를 얻기 전까지이다.


정자(精子)도 계수(癸水)이고 난자(卵子)도 계수이다. 그야말로 음양(陰陽)의 정(精)이라고 하겠으니 이러한 성분이 서로 만나서 결합하는 장소가 바로 자궁(子宮)이라고 하게 된다. 여기에서 갑자기 왜 잉태 문제를 거론하겠느냐고 의아하실 수도 있겠는데, 글의 내용을 음미하게 되면 이렇게 쓰여진 것이라고 밖에 달리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정리를 하게 되면, ‘난자는 지극하게 약하지만 나팔관을 타고 흘러 흘러서 30여일에 걸쳐서 천진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용을 얻어 윤택하면’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앞의 문장과 이어서 보게 되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용을 얻는다는 말은 정자(精子)를 만나는 것으로 해석하면 너무도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윤(潤)은 수태(受胎)가 이뤄질 조건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결합을 하여 자궁에 착상을 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간단하다. 이러한 뜻을 몰라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두고 계수(癸水)와 천진(天津)과 득룡(得龍)의 사이에서 방황을 했던지......


다시 공화사신(功化斯神)까지 가게 되면 그 의미는 더욱 명백해진다. 조화(造化)의 공을 이룬다는 말이니 이것은 수정(受精)하여 변화(變化)하는 것이니 비로소 결합이 되고 나서야 세포분열(細胞分裂)이 이뤄지면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일러서 화학반응(化學反應)이라고 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사신(斯神), 즉 신이라고 할 만하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의 신(神)은 바로 창조주(創造主)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다. 이러한 재미로 인해서 글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하나의 생명의 잉태를 논하는 장면과 계수(癸水)를 씨앗으로 보겠다는 이전의 낭월 관점이 서로 하나로 융화(融和)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겠다. 이러한 뜻을 모르고 생짜배기로 녹여 볼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도무지 어색하기만 했던 나날들에 대해서 혼자만 아는 미소를 지어본다.


다음의 장면도 살펴봐야 하겠다. 우선 토가 많아도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강약(强弱)으로 논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 의미는 계수(癸水)는 어차피 토가 있어야만 흐름의 길을 타게 되는 것이므로 땅위에서는 기토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 허공에서도 마찬가지로 무토(戊土)의 힘에 의해서 계수(癸水)가 분해되어서 대기의 습도(濕度)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것도 또한 무토가 있음으로 이뤄지는 일이기에 왜 근심을 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른다고 해야 하겠다.


경신(庚辛)을 논하지 않는다는 말은 금(金)이 생조를 해줘야 한다는 의미는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을 해봐도 되겠다. 일반적으로 이 대목을 이해하기에는 ‘계수는 너무 약한 성분이어서 금이 생조를 해주면 도리어 탁해진다’는 설로 이해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어색한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냥 금이 생조한다고 보지 말고 수는 수라고 보면 그만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사실 바위에서 물이 나온다는 금생수(金生水)의 설이 좀 유치해 보이는 것으로 봐서도 이러한 부분은 다시 연구를 해봐야 할 부분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무토와 합하여 화(火)를 본다는 말은 ‘허공중에서 습기로 존재하면서 다시 온기(溫氣)는 볕을 쪼이게 된다면’의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그냥 공기중에서 무토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만물이 생성되는 환경으로 작용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면 그 가운데에는 온도(溫度)가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얼어붙은 수증기의 상태라고 이해를 해도 되겠다. 여기에 병정화(丙丁火)의 도움을 받아야만 비로소 제대로 쓸모가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도 개안(開眼)이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계수(癸水)와 빗물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여기에 그러한 소식도 포함이 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겠는데, 계수(癸水)의 얼음 알갱이가 무토(戊土)와 만나서 구름이 된다. 만약 무토의 인력(引力)이 없다면 계수는 허공중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비가 내릴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고 보면 지구는 이내 죽음의 별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무토가 계수를 잡아준다. 그래서 구름이 되었다가 따스한 온도를 만나게 되면 빗물이 되어서 내려온다.


그러기 전에 태평양 상공에서 만들어지는 구름도 열기가 있어야 용이하게 진행이 된다. 그렇다면 이미 무계합이 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화(火)의 협조가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수증기가 올라가는데 열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연의 에너지를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십간(十干)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해야 하겠다.


 무토와 합을 해서 화(火)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합을 한 다음에 화를 만나야 하는 것임도 분명히 알 수가 있겠다. 화상(化象)이라고 하는 것은 진정으로 만물을 생육시킬 환경으로 화하는 모습이라고 보면 되겠고, 이것을 진(眞)이라고 할 만하다는 뜻이니 이것은 비가 되어서 산천초목을 적셔주는 계수의 역할을 설명한 것으로 봐서 매우 합당하겠다. 그러니까 앞의 구절은 새성만물의 씨앗인 인간탄생의 신비한 역할을 수행하고 뒤의 구절은 자연만물을 살려주는 역할에 대한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과연 이렇게도 분명한 이치가 들어 있음을 생각하면서 적천수(滴天髓)의 십간(十干)이 갖고 있는 의미를 언제나 완전하게 이해를 하게 될지 스스로 도리어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아직도 정확하게 모두가 해결되었다고 생각이 되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또 시간이 나는 대로 살피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