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1명2운3풍수4적덕5독서'라네요.

작성일
2005-10-27 15:02
조회
7700
 

[제273화] 1命 2運 3風水 4積陰德 5讀書












제목이 좀 어렵나요? 한자이기는 해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그대로 한번 적어봤습니다. 뜻도 간단합니다. 오늘 포여명 선생의 풍수책을 보다가 이와 같은 말이 나와서 간단히 적어보려고요. 포선생 말로는 중국의 명언(名言)이라고 하네요.




1. 명(命)




각자 타고 난 팔자(八字)를 말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팔자는 전생의 산물(産物)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전생의 모든 결과물이 팔자(八字)로 결정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요동을 쳐도 팔자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우선으로 명(命)을 꼽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명리학(命理學)을 연구하면서 과연 그 테두리를 어떻게 벗어 날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팔자의 위력은 일생을 따라다니면서 길흉(吉凶)을 배분하는가 싶습니다. 심지어는 운이 나쁜 사람은 족 가게를 얻어도 흉한 자리의 풍수(風水)를 만나게 되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길흉도 모두 운명이라고 한다면 달리 뭐라고 설명을 할 방법이 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벗님의 공부에서도 팔자공부는 최우선으로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우선 팔자를 알아야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겠기 때문입니다. 이 가을에 무엇보다도 오행의 이치를 깨달아서 자신의 팔자를 다시 살펴보신다면 또 새로운 깨달음이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사주가 제한하고 있는 것을 넘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2. 운(運)




다음은 운이라는 것이 있지요. 이것도 팔자의 연장선이기는 합니다만, 팔자가 좋아도 운이 나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면, 과연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예전에는 명만 보고 운은 보지 않는 선생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주의 모양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운이라는 것이 발견되면서 점점 인생의 행로(行路)는 구체화 되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운이라는 것이 사주에서 결정이 나기는 하지만 운이 나쁘면 되는 일이 없고, 운이 좋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참으로 명과 운은 중요하다고 해야 하겠고, 그래서 명운(命運)에 대해서 최우선으로 확인하고 살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명도 좋고 운도 좋으면 최상이 되겠지만, 명은 약해도 운이 좋으면 그런대로 즐겁게 넘어가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명도 나쁘고 운도 나쁘다면 아마도 고통바다라고 하겠으니 고승(高僧)들이 사바(娑婆)세계라고도 하고 고해(苦海)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그 분은 명도 더럽고 운도 망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어떤 고승은 날마다 즐겁다고 했으니 그 분은 명도 좋고 운도 좋았던가 싶습니다. 도인도 명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봐야 하겠다는 생각은 골고루 배분되는 산소처럼 누구에게나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풍수(風水)




풍수의 비중이 세 번째로 등장을 했군요. 선천적인 것이 명운이라고 한다면 풍수는 후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개선이라도 할 수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낭월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여하튼 명운을 배우고 조언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적에 풍수를 생각한다면 고맙기 그지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풍수라고 말은 간단하게 할 수가 있어도, 그 방법이나 요령에 따라서 개선의 방법은 천차만별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고 해도 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선악(善惡)이 모두 내 스승이라고 한 고인의 말씀이 있고 보면 모두를 스승으로 삼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많은 풍수가가 있고, 중국에도 더 많은 풍수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에게 매달려서 공부하는 것도 사실은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 스승의 교도(敎徒)가 되어서 다른 것으로 전환을 하기도 어려울 수가 있겠다는 의미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스승은 인연이 다할 때가지 모시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한번 만났으니 의리가 있지 어떻게 다른 스승을 찾느냐고 한다면 그것도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싯달타도 공부하다가 스승의 한계를 발견하면 작별을 하고 또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도를 얻고 나서는 다시 그 예전 스승에게 답을 알려주려고 찾아 갔다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떠나가는 제자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는 것도 스승이 할 마지막 임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다른 배움을 찾아 떠나는 제자는 아마도 평생 자신의 인연에 대해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고마움을 의지해서 또 다른 스승으로 연결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여하튼 공부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풍수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보다가 과연 스승의 인연이라는 것은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봤습니다. 벗님도 열심히 좋은 인연 찾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없지만, 아무리 완벽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해도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풍수가 선천적인 명을 제외하고는 최우선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주의하시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작명(作名)이나 관상(觀相)이나 수상(手相)은 여기에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4. 음덕(陰德)을 쌓는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네요. 공덕(功德)이라고도 하지요. 공덕을 쌓으면 그 공덕은 다시 새로운 씨앗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종교의 영역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공덕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풍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중국의 고인들 생각이기는 하겠습니다. 이러한 순서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무리 공덕을 많이 지어도, 흉한 터에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공덕은 느릿하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오늘 공을 쌓았다고 내일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길지 않은 인생살이를 생각한다면 풍수가 우선한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는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는 무량(無量) 공덕(功德)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풍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군요. 몰라서였는지 길게 보고 풍수는 가까이에 있는 것이어서 비중을 두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명운은 이미 결정이 난 것을 달리 고민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관점에서도 적덕(積德)을 말 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다음의 씨앗으로 최선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네요.




5. 독서(讀書)




그 다음에는 책을 많이 읽어서 지혜로움을 내 것으로 만들라는 의미게지요. 그러고 보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사주공부라는 뜻일까요? 역설적으로 보니까 그러한 말도 되네요. 우선 자신의 명을 알아야 무슨 책을 봐야 할 것인지를 올바르게 알 수가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책은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슨 책을 읽어야 가장 효율적으로 인생을 경영하게 될 것인지를 고민하신다면 이것은 분명히 좋은 가름이 되는 기준으로 삼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낭월은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책은 많이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더 많이 읽으시는 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나름대로 시간의 많은 부분은 독서에 쓰고 있다고 해도 크게 넘치지 않는 생각으로 봅니다. 그리고 사사실은 모든 길을 책에서 발견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책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과연 맨 끝에 있지만 독서의 의미는 결코 적다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명도 알 수가 있는 것이잖아요? 책이 아니면 어떻게 알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비록 맨 뒤에 있지만 맨 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낭월도 책을 읽는 것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맘에 안 드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책을 보고 있으면 금새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을 보면 책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이상 다섯 가지가 인생의 경영에 중요하다고 했답니다. 포여명 선생의 글을 읽어보니 현공풍수라고 제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임상경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물론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 근간에는 현공법도 당연히 활용되고 있음을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는 벗님들은 아시겠지만 포여명 선생도 《완전풀이적천수》, 《앞서가는중국명운학》《완전풀이십간론》으로 변역된 이름으로 명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풍수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을 보면 명의 끝에는 풍수가 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명리학자들의 끝에는 풍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명리를 모르는 풍수가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미도 명리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오늘 하루도 충만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건강하신 신체에, 주어지는 시간에, 독서로 자신을 다듬게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10월 2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