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적천수 정화(丁火) 편

작성일
2005-09-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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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적천수 정화(丁火) 편












마음의 짐이라고 하더니만 책을 다 만들어서 넘기고 나니까 여유로운 마음이 되는가 봅니다. 그래서 한담도 한 편 써보고, 컴퓨터 돌아다니면서 하드 정리도 하고, 데이터 백업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밀린 상담을 4건은 해결해야 한다는데, 그 일은 저녁을 먹고 해결해야 할까 봅니다. 우선 하드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그림에, 또 도표들까지 모두 정리해서 시디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하드를 정리하니까 왜 이렇게 홀가분한지요. 3년 묵은 때를 씻은 듯이 개운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각설하고.




오늘 오전에 강의 하면서 적천수 정화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언제 봐도 늘 새롭기만 한 자연의 조화가 적천수 속에 묻혀 있는가 싶기도 하고요. 또 궁리하는 방식들이 다 각각이다 보니까 새로운 이야기도 나와서 즐거운 시간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 나눈 내용을 정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벗님의 정화명상(丁火瞑想)에 참고가 되시기 바랍니다. 《적천수강의》를 정리할 적에 해본 생각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다 보게 되어서 새롭다고 느끼는가 싶습니다.




1. 정화(丁火)는 유중(柔中)하다.


정화라고 하는 것은 유연하면서 중심을 취하는 성분이다.




예전에 ‘정화유중’을 생각할 적에는 ‘정화는 부드러운 가운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살펴보니까 그보다는 유연하면서 중심을 취한다는 것으로 살펴지네요. 발전인가요? 아니면 퇴보인가요? 여하튼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사주의 용신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드럽다는 것은 곡선이고, 열(熱)이라고 생각했는데, 열이라는 것은 빛과 대비해서 음양으로 생각을 한 것이기도 하고요. 즉, 병화(丙火)는 빛에 가깝다고 봤는데, 정화(丁火)는 열에 가깝다고 해야 음양이 되지 싶습니다. 그런데 열이라고 하는 것은 강한 가, 부드러운가를 생각해보니까 과연 빛의 강함에 비한다면 열은 유연하다고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연하기 때문에 열이 나는 모양은 곡선으로 나타내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온천의 마크를 보면 어떤가요? 곡선으로 열이 올라가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만약에 빛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표시를 할 수가 없겠지요. 빛은 직선으로 표시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화의 유연(柔軟)함은 빛에 대비한 열을 의미한다고 봐서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중(中)은 무엇일까요? 중심(中心)의 의미겠지요? 그런데 중심을 의미하는 글자는 토(土)가 있는데, 무슨 일로 정화(丁火)에게 중심(中心)을 부여했는지 또 곰곰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토를 두고 정화에다가 중심을 넣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대단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열이 가장 많은 곳이 어딘가요? 용광로(鎔鑛爐)인가요? 아니면 지구(地球)의 내부(內部)인가요? 지구의 내부에 있는 것이 빛인가요? 아니면 열인가요? 이건 괜한 질문이네요. 그냥 정리를 위해서 해보는 생각입니다. 당연히 열이지요. 그리고 그 열은 정화의 영역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의 중(中)은 바로 지구의 중심(中心)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고인들도 그 정도의 사정이야 아셨겠지요. 땅 속을 파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화산(火山)이 있어서 속의 사정을 보여주니 말이지요. 그렇게 이해를 해 봅니다.




2. 내성(內性)은 소융(昭融)하다.


안의 성품은 밝고 뜨겁다.




안의 성품을 논하는 것도 음에 대한 대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병화(丙火)를 설명할 때에는 그러한 느낌이 없거든요. 그래서 정화는 음화(陰火)가 되므로 내적인 성분이고, 그래서 내성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지구의 내부가 들여다보이네요. ‘내성은 소융하다.’ ‘땅 속은 밝고 뜨거워서 녹여댄다.’는 해석을 해도 연관성이 있겠습니다. 이 정도에서 ‘정화는 촛불이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겠지요? 틀린 말도 아니지만 전부는 정말로 아니기 때문이지요.




3. 포을(胞乙)하여 이효(而孝)하고,


을을 감싸며 효도를 한다.




을(乙)을 어떻게 감싸게 되는지는 또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을(乙)은 목(木)에 해당하여 효도(孝道)를 한다고 했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효(孝)라는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도와주고 보필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지요. 즉 정화(丁火)를 지온(地溫), 지열(地熱)로 본다면 능히 목이 성장하도록 온기를 불어넣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을을 감싸고 성장을 하도록 보필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그야 정화(丁火)만 그런 것이 아니고 병화(丙火)도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좀 다르지요? 빛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뿌리가 냉하다고 하면 성장을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땅 속에 열은 있어도 빛은 없으니 말이지요.




그러니까 나무가 죽지 않도록 온기로 보호를 하게 되니 효도가 되는 것으로 한다면 무리한 해석이라고 하지 않으실 것으로 봅니다. 정화와 병화의 차이는 단순하게 음양(陰陽)으로만 나뉘는 것이 아니고, 그 역할이 분명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저나 옛날에는 왜 이렇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하는 말이 진리인가 싶습니다.




4. 합임(合壬)하여 이충(而忠)한다.


임수와 합을 하여 충성한다.




직역(直譯)을 하면 달리 보기가 어렵습니다. 정임합으로 어떻게 효도하느냐고 질문을 하면, ‘정임(丁壬) 합은 목(木)이 되므로 효도를 한다고 해야 할까요? 좀 어색하다고 생각을 하셔야 비로소 공부의 틈새가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곰곰 생각을 해 보시고, 어떻게 충성을 하는지 연구를 하신 다음에 다음을 읽으셔도 되겠습니다만.......




임수(壬水)를 만나게 되면 임수는 냉기(冷氣)이고 냉수(冷水)입니다. 그래서 삼라만상이 모두 죽어버리게 되지요. 그런데 정화(丁火)가 들어서 온기를 불어 넣습니다. 그렇게 되면 임수의 본성(本性)인 냉기(冷氣)로 숙살(肅殺)하는 성분을 부드럽게 완화하여 만물(萬物)인 초목(草木)을 생장(生長)시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해 볼 수가 있겠다는 것이지요. 말이 되지 않나요? 정임합은 이런 의미인가 싶습니다. 임만 따로 두면 생성의 의미가 없고 숙살의 의미만 있으므로 만물은 전멸이지요. 그래서 정화는 임수의 본성을 거역(火剋水)하여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만물을 지켜나가도록 충언(忠言)하게 되니 과연 충(忠)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봐도 되겠네요.




5. 왕이불열(旺而不烈)하고 쇠이불궁(衰而不窮)한다.


왕하여도 거세지 않고, 쇠하여도 다함이 없다.




글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부풀릴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음화는 그래서 왕해도 병화처럼 불타버리지 않고, 쇠해도 꺼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어떤 학자는 십이운성(十二運星)의 음지(陰地) 장생(長生)을 끌고 오기도 하지요. 즉 유시(酉時)가 되면 정화(丁火)의 가로등은 살아나므로 생을 받는다는 해석을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실 가로등으로 자연의 이치를 읽는다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인위적으로 만든 물건은 웬만하면 끌고 오지 않는 것이 왜곡을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또 다른 의미는 없을 것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정화를 그냥 촛불이라고 한다면 쇠하면 꺼져버리게 되지요. 불궁이라는 말은 해당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공염불’이지요. 이러한 글을 써 놓았다면 적천수는 의미로 해석할 글이 못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땅 속의 불은 왕해도 강하지 않습니다. 특히 열기라는 것은 그렇게 눈에 띌 정도가 아니라고 봐서 왕이불열을 살펴봤습니다. 맹렬하지 않다고 봐도 되겠지요. 이것은 병화(丙火)의 맹렬(猛烈)과 대비해서 봐도 되겠습니다.




은근하게 열기를 높여주는 것이고 왕해도 그 바탕이 그렇게 작용을 합니다. 역시 병화의 폭사(輻射)하는 성분이나, 폭발(爆發)하는 성분과 비교를 하면 제 맛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쇠이불궁입니다. 오늘 낭월은 학생님으로부터 이 소식을 한 수 배웠습니다. 벗님도 아마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쇠이불궁의 의미 - ‘이 선생 생각’




'절대온도'라고 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 절대 온도는 더 이상 떨어질 수가 없는 온도를 말 한다는군요. 벗님도 알고 계시겠지요? 낭월이 듣기에 산소(酸素)가 얼어붙는 온도인가 싶습니다만, 그 온도는 '영하273도'라는군요. 더 이상 빠져 나갈 물질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내려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구 표면의 최저 온도는 얼마나 되나요? 남극이든 북극이든 가장 추울 적에 온도가 영하 100도 정도 된다고 합니다. 더 이상 내려가는 경우는 없다고 하는군요. 이것이 바로 그 소식입니다. 이 순간, 무릎을 치면서 ‘올커니~!’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하하~




여기에 ‘쇠이불궁’을 연결시킵니다. ‘절대온도’는 그럼 뭐냐? 쇠이전궁(衰而全窮)이 된 상태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구의 법칙으로는 정화(丁火)가 완전히 빠져 나가서 완전한 궁(窮)의 상태로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하 100의 상태에서도 정화는 다 하지 않고 의연히 존재한다고 봐야 하겠네요. 참 궁리할수록 묘미가 있잖나요?




6, 여유적모(如有嫡母)하면, 가추가동(可秋可冬)이다.


적모가 있다면 가을과 겨울이 다 좋다.




직역을 하면서도 이렇게 해서 맞을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정도라고 한다면 목(木)이 되겠는데, 정화에게 목이 주어진다면 역경(逆境)을 만나도 거뜬하게 넘어간다는 것으로 해석을 해 봅니다만, 좀 유치하지 않은가 싶어서 찜찜하네요. 더 좋은 의미를 읽어 내신다면 낭월에게 한 소식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제 한담은 이 정도로 하고, 또 밀린 상담을 해야 오늘 일이 끝날까 싶네요. 벗님의 알찬 가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9월 2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