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내가 午時요, 未時요???.

작성일
2005-04-09 18:35
조회
8113
 

 


[제250화] 내가 午時요, 未時요???.
















근래에는 봄 불이 극성을 부리네요. 木生火의 이치려니 하면서도 火剋木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의 입장차이겠지요. 옥중에서 온 편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또한 여기서 바라다보면 법극인(法剋人)이겠지만, 그 곳에서 바라다보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네요. 법생인(法生人)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봤습니다. 보내온 사연을 적어보고 답장도 붙여보겠습니다. 그리고 내용 중에서 과분한 이야기들은 낭월의 생각이 아니고 해당 본인의 생각임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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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스님께 올립니다.




100년만의 폭설이 3일 천하로 끝나 버렸습니다.


대세란 그렇게 강제적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이젠 개나리의 노란 얼굴이 웃는 모습을 기다려야겠지요.


논산은 계룡이 있어서 아직도 춥지 않을까?


물론 그곳에도 대세는 형성되어 있을테니까 따땃한 양지엔 노곤할만큼의 현기증이 있을테구요.


건강하신 몸과 자유로운 마음으로 지내고 계신다는 스님의 편지를 가쁜 마음으로 받아 보았습니다.


일정한 시각에 편지가 오는데 수번이 불리워지는 순간이면 그렇게 기쁘구, 그냥 지나치면 실망감.....


이 또한 편지에 대한 마음의 음양이겠군요~^_^




낭월 스님!


역시 한 마디가 제 백번의 연구와 맞먹나 봅니다.


머릿속에는 뭔가 되어 있는데 그게 말이나 글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 영 서먹하고 젬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책에서처럼 말로는, 글로는 안 되는 것도 있군요.


제가 이곳에서 함께 명리를 공부하는 분이 계신데


여건상 1주일에 한, 두번 잠깐 만나면 또 잠깐 토크하구 헤어지곤 합니다.


그 분이 제가 하늘의 별 같다고 하였지요.


과분한 칭찬이지만 어쨋든 그렇다고 하시면서 절 대합니다.


제게는 스님이 바로 별이지요.


저 안드로메다의 은하에 있는 초신성이나 백색외성의 초거성만큼 ‘이것의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엄청 크구 빛나는 별이  스님이군요.


거기에 비하면 전 반딧불 정도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다 상대성으로 세상의 구조가 되어 있나 봅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아직 명확한 목표 설정으로 전환되지를 못한 상태지만 제겐 진행형 그 자체가 평화입니다.


작은 생각하나, 깨달음 같은 느낌 한 가지를 통하여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를 한껏 만끽하고 있지요.


더한 사치와 부귀가 또 있을련지...?




스님!


한담 여러편을 통하여서 또 계단을 올라서는군요.


그러게 치열하게 명리를 통하여 자신을 찾는 사람들~.


故이은주의 명식은 저도 살펴 보았더랬죠.


힘이 들었겠구나 싶은게 순간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저도 십여년 전에는 그렇게 죽으려고 했으며 총 13발을 맞고 죽음의 문턱에서 퇴짜를 맞았기에 더욱 더~.


하지만 그 머리로의 이해가 표현이 되질 안더군요.


구체적인 대입에서 부족함이 많았던 탓이었을 겁니다.


그런 중에 스님의 한담을 보게 되었는데, 아!~ 하는 전구빛이 반짝 합니다.


아직은 스님의 뒤만 밟아가고 있답니다.


명식을 보는 일에서도, 모든 생각의 틀과 방법까지도,


그 길에서 조각을 얻어서 퍼즐을 맞추어 가듯 하나 하나씩 가는 길이 행복입니다.


스님께서 내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오늘의 깨달음을 보이시는 그 깊은 뜻이 후학들에게는 북극성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펼쳐주시길 바라지요.




사부 스님!


항상 궁금한 것이 정관합의 정체입니다.


스님 명식에 정관합이 있으니 심리적으로 더욱 많이 살펴 보셨을텐데 책에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는 이해가 부족하군요.


함리적인 면이 편관과 가장 큰 차이 같은데 그것이 조금 두리뭉실 같습니다. -나름대로 알아봐도 명확한 감이 생기질 않습니다. 정관이 있는 것과 편관이 있는 것 그리고 정관합의 차이.


명식에 편관이 겹치면 정관의 성격, 심리도 보일 수 있지 않는지요?


제 명조의 경우가 오시와 미시의 갈림에 있는데 2~3분 차이의 변화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미시로만 보는 경우 오시의 경계가 1시 32분까지 될 것 같군요.(전북 정읍 태생이나 지역상 127도선, 전주, 광주의 중간 점이 되어서 만세력 앞을 보니 시간이 추정되더군요.)


어머님은 절 낳으시구 시간을 물으니 1:30분이라고 했다 하시는 통에 그 2~3분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할머님께 다시금 물어보았으나 마땅한 답이.....


차이가 극히 적다보니 제 심리구조나 성격으로 살펴야 될 듯 합니다.


제가 편관이 강하고 시간에 己土 편관이 된다면 성격적으로도 정관의 경우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겹치지는 않으나 격국상으로.


오시가 되면 무계정관합이 우선시 되는데 이러게 되는 경우라면 심리와 성격 면에서도 정관의 경향이 먼저 보이는데 그 특징적인 것이 무엇이 되는지요?


스스로가 느끼기에는 편관 쪽이 강한데 주위에 물어보면 정, 편관에 알쏭달쏭 답변이 됩니다.


스님께서 차제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셨음 합니다.


늘 바쁘신 스님께 번거로움을 드리지만 하루에도 수십번씩 되뇌여보는 제 생각의 반추에 스님의 칼이 내려지기를......




사부스님!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면서 명리의 기준과 바름을 세우시는 일에 매진하시기를 아울러서 빌겠습니다.


가족들과 감로사 모든 분들의 삶 또한 평안으로 이어지는 나날 되시길 바라면서~




      2005년 3월 11일에 부산 獄中에서 *** 두손모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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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3통의 편지가 쌓이고서야 답장을 해야 기다리는 사람의 목이 덜 늘어나겠다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낭월입니다. 요즘은 오랫동안 사용해온 법당이 너무 좁고 낡아서 다시 새로이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만 분주하네요. 현실과 탐욕이 연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답니다. 더 크게 지어야 한다는 편재의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하는 넘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웃고 있습니다. 다들 멋진 목조법당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들을 합디다만, 그런 말을 들을 때에는 노자님의 말씀을 생각하곤 또한 혼자 웃습니다.




노자왈, 금잔이든 은잔이든 필요로 하는 것은 그 공간이다. 술만 담으면 그 목적은 이뤄지는 것인데 사람들이 괜스레 금잔이 더 좋으니, 은잔이 더 못하니 하고 분별을 하는구나.




본질에 대한 관찰이라고 하겠습니다. 울안이거나 울밖이거나 주인공이 머무는 곳은 다 같은 것이라고 바꿔서 생각을 한다면 **님의 공간이 계룡산과 다를 바도 없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봅니다. 왜냐면 부처가 보시기에는 또한 다 같이 감옥 속에서 아둥바둥하는 중생일 뿐이겠기에 해보는 생각입니다.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로운 줄을 모르고 이렇게도 세상살이에 얽혀서 연연하고 있는 자신임을 늘 생각하고 있네요. 아 물론 법당은 노자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냥 조립식으로 조금 넓게 만들자는 것이지요. 왜냐면 목조건물로 지을 경우에는 2~3억이 필요하지만 조립식으로 만들면 5천만원 정도면 뒤집어쓰고도 남거든요. 이런 수지맞는 장사를 하지 않으면 장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또 지 혼자 웃습니다. 하하.




오늘은 음력으로 3월 초하루 법회일이었습니다. 시골의 순박하디 순박한 불자님들이 오셔서 애 많이 쓰신다고 진심어린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또한 즐거운 일이지요. 형편이 어려워서 많이 돕지 못한다는 말을 뒤에 붙이면서 미안해하는 불자님들을 보면서 참으로 복도 많은 낭월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 낭월을 아끼는 벗님들의 마음 써 주심도 정겹게 정성으로 답지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네요. 올 봄은 그렇게 역사의 매듭을 만들어 가면서 분주한 나날이 되고 있는가 봅니다.




참, 정관(正官)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이 많으셨군요. 과연 자신이 정관인지 편관인지 알고 싶으신가 봅니다. 물론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쉽사리 답을 얻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오시(午時)에서 미시(未時)로 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스스로 생각하실 적에, 두 가지 성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요. 오후 1시 반 전후에 태어나게 되면 오시는 넘어가고 미시로 접어드는 문턱이기 때문이지요. 확실하게 알고 싶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라고 넌지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자연의 모습은 연속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달라진다는 시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타의 가르침도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의 연결성, 공간의 지속성, 그 가운데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또 생각해 봅니다. 삼세(三世)라고 하는 것도 따로따로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제를 이어서 오늘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적은 단위의 시간일지라도 결코 그 법칙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쩌면 자평명리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어려워하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인(故人)께서 시주(時柱)를 두개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군요.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질 적에 해본 망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님도 고민하시지 말고 때로는 오시로, 또 때로는 미시로 놓고 생각하고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낭월의 생각으로는 그 두 가지의 작용이 다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도 경계를 만들지 않고서는 목 견딘다고 하신다면 미시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왜냐면 감정에 복받쳐서 총을 둘러메고 병영을 뛰쳐나오는 정관(正官)은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관적인 요소는 아직 오시(午時)의 잔상(殘像)이 남아있는 소치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줄여야 하겠네요. 나날이 즐거운 순간들로 만드시는 것 같아서 멀리서나마 흐뭇해하는 낭월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부산부근에 볼일이 있어 나들이를 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혹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서 짧은 시간이나마 공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으로나마 준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를 두셨던가 보네요. 화인(和印)에게 전화를 해서 한담을 보내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화인이 열심히 정리해서 프린트로 뽑느라고 고생 좀 했습니다. 나중에 만나시면 자장면 한 그릇 사셔야 하겠습니다. 하하~




그 친구가 뭐라고 하셨길래 목소리가 천사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혹 부산에 걸음을 하게 되면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찾아 가더라도 불시에 가게 될 것이니 언제라고 약속을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냥 부산 바람이 부나보다 하시면 되겠습니다.




에구, 뭔 말이 자꾸 길어지네요. 다음을 핑계대면서 이만 총총.




          2005년 4월 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