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마술사의 고민을 보면서....

작성일
2004-04-27 17:07
조회
6227
 

[제227화] 마술사의 고민을 보면서....




근래에 한 동안 ‘마술을 벗겨라’라는 프로그램을 간간히 본 적이 있다. 어제는 재방송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지막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이 있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1. 마술을 벗기는 마술사




마술을 보여주고는 마술을 공개하는 사람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는 검은 가면을 쓰고 나와서 마술의 내용을 하나하나 미련 없이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마도 마술사들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스스로 마술을 배운 다음에 모두 공개를 해버려서 모든 마술사들이 굶어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봤던 것이다. 가능하면 벗님도 그 프로그램을 한번 정도는 보셨기 바란다.




그렇게 노력을 하는 사람의 실제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고, 그냥 등장해서 하나하나 벗겨버리고는 유유히 사라져버리는 모습만 남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중간에 한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시간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으리라고 짐작을 한다. 요즘은 하도 여러 채널에서 재방송을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시 방송을 하는 연고로 해서 보지 못했던 것도 다시 보게 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랄 수도 있겠다. 구태여 나쁘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보시 싫은 것은 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2. 엇저녁에 그가 말하길.....




어느 소년이 마술을 사랑하게 되었더란다. 그래서 마술을 보면서 열광하고 그 마술에 빠져서는 아예 그 방면으로 전문가가 되어서 마술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그 마술로 인해서 즐거움을 느끼면서 그렇게 나날을 만족스럽게 살아 왔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은 텔레비전과 영화로 인해서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느낀 또 다른 위기는 마술사들은 여전히 했던 마술을 또 하고 또 하고 반복해서 자꾸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보던 사람은 식상하고 그래서 그나마도 더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더란다.




고심을 한 끝에 마술을 살리는 길은 마술을 공개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하게 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밥줄을 끊어버린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난을 받으면서 자신도 갈등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로 더 중요한 것은 이대로는 살 길이 없다는 절박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굴을 드러내게 되면 당장에 협박이며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끼게 되었기에 얼굴을 두꺼운 복면으로 가리고는 그대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켜 나갔다고 한다.




3. 죽느냐 사느냐




결론은 나왔다. 살아나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을 한 다음에 살아날 길을 찾아서 마술 공개를 했는데, 결론은 오히려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방향이 잡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로소 마술로부터 눈을 돌렸던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여기까지가 그의 몫이었다. 이제 더욱 새로운 마술을 찾아서 개발하는 것은 마술사들이 해야 할 숙제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말을 했다.




“마술은 이벤트입니다. 하는 이와 보는 이가 서로 즐겨야 합니다.”




이 말은 낭월의 마음을 때렸다.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바로 봤던 것이 틀림없다고 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로 마술은 특수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는 일을 태연하게 함으로 해서 신비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면 그것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 옳다. 그래서 마술을 연구하고 또 공개하고는 다시 연구하는 노력이 따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장구하게 발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말이다.




이제 다시 마술이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처음에는 마술사들이 그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들 새로운 마술을 개발하려고 노력들을 하게 되었으니 또한 좋은 일이라고 하는 말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존경하는 사람으로 데이비드 카포필드를 꼽는다. 낭월도 그의 마술을 보면서 참으로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전문가도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니 과연 그의 솜씨는 대단한 것이 틀림없다고 해야 하겠다. 며칠 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이 있다는 말도 어디선가 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형편이 되시는 분들은 재미있는 귀경을 하시겠다.




그 마술사의 이름은 발렌티노였다. 자신이 그렇게 소개를 했다. 그리고 다시 연구하러 간다고 하는 멋진 모습으로 사라졌다. 과연 프로는 프로다울 적에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4. 명리학계는?




그렇다. 명리학계는 어떤가? 지금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조상님들이 해오던 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울궈먹고 또 울궈먹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라도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해 봤다. 물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말이다. 스스로 여기에 대해서 노력을 한다고 말은 하겠는데, 적어도 마음으로는 어제의 관습에 젖어서 안일하게 하루를 살아가려고 하는 마음은 갖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비록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조차도 자신의 기준으로 하는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 밝은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또한 스스로 자신의 아집(我執)에 빠져서 아전인수로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문득문득 하게 되는 것으로 그나마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려고 하는 노력 정도라고 해야 하겠다.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이 혹 맞추기 시합에 나서는 사람인 냥 해서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젊은 혈기에 잠시 치기(稚氣)어린 마음으로 시도를 해보는 것이야 또한 이해를 해야 하겠지만, 천하의 비법을 스스로 갖고 있다는 투의 말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또한 자신의 믿음이 잘못 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지나친 염려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수행자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어서 문득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을 들 적에도 발렌티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발렌티노씨는 자신이 하늘이고 관중이 땅인 차원을 생각해서는 마술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주를 연구하는 사람도 자신은 영원한 예언가이고, 방문자는 영원한 중생인 것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하거나 호언장담(豪言壯談)으로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고 남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결국 점점 거리감이 생기도록 만들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과연 그러한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낭월도 잘 모른다. 다만 운명가는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늘 하는 마음으로 상담가의 길을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바탕에는 바로 발렌티노의 그 마음처럼 자신도 평범한 사람으로 약간의 재주 혹은 기술을 더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공감을 느꼈다. 아마도 그게 옳을 게다. 그러니까 운명학이라는 약간은 다른 연장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자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볼 뿐이다. 결코 신비로운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서는 명리학의 내일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은밀한 곳을 많이 공개하게 되면 밥을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푸념도 바람결에 들린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으로 상담에 임한다면 아마도 이미 자격미달이거나 준비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문득 해보기도 한다.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그리고 이것은 자평명리학이나 마술계만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국회도 그렇다. 국회와 국민을 따로 생각해서 오만방자한 행태를 지으면서 자신들이 자신을 대우하다가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는 생각을 한다면 아마도 발렌티노씨의 생각은 삶을 꾸려가는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교육자이거나 또는 다른 영역에 종사하는 모두에게도 이 말은 가슴에 새겨야만 살아남을 명언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벗님과 함께 생각을 해보는 시간으로 삼고자 한다.




오늘을 살되 보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지혜롭게 산다는 바탕에는 언제나 함께 더불어서 살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점도 늘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것은 원효대사의 말씀에도 있는 의미가 되겠는데, 더불어서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성스러운 집단이 발생하면 할수록 그만큼 오염되고 혼탁하게 된다는 것이 자연의 흐름인가 싶다.




참으로 봄날의 화사한 햇살이 삼라만상을 비추게 되니까 나무 나무마다 풀 풀마다 모두가 자신의 본래 면목을 갖고 다시 새잎을 피우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 이제 비를 맞고 난 자연의 모습은 더욱 생기를 내게 될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사람도 늘 새봄이 오듯이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은 참으로 평범한 것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짐짓 해 본다.




         2004년 4월 2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