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왜 운명해석이 맞을까???

작성일
2004-01-31 22:44
조회
9339
 

[제216화] 왜 운명해석이 맞을까???




어느 사이에 2004년의 첫 달이 마지막 날을 맞았다. 한 달이 경과 했다. 이렇게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에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답이 없는 질문에 빠져들게 된 낭월이다. 그래서 오늘의 한담은 질문만 있고 답이 없는 한담이다. 그리고 반드시 답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냥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생각을 해볼 요량이다.




1. 만세력은 누가 만들었는가?




만세력을 찾아보는 방법을 배워서 사주를 뽑아 운명을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상당한 신뢰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에서는 이 문제를 알지 못하여 마냥 답답하다. 과연 오늘이 기유일이라는 것을 누가 알아내어서 적었을까? 어떤 공식으로 어떤 사유를 통해서 이렇게도 놀라운 결과물을 후손에게 전해 줬을까.......




물론 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사용법만 배워서 그렇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설명서가 잘 되었는가 혹은 좀 더 편리한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모을 뿐, 과연 언제 무엇을 근거로 해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는 규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열심히 풀이를 해도 논리적인 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문득 생각에 잠긴다. ‘과연 오늘이 기유일인가? 무신일이나 경술일은 아닐까? 아니면 전혀 다른 별개의 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인해서 가끔 스스로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곤 혼자 멍하게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것은 답답하기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기록이 없어서 후학들로 하여금 이렇게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일까?




2. 우주는 오행으로 이뤄졌을까?




오행의 음양에 대해서 연구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활용을 해보니 놀랍도록 신비로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래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사이에 누가 언제 무슨 경위를 통해서 이것을 알아내게 되었는지는 전혀 모른 채로 오행교(五行敎)의 신봉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다보면서 과연 이렇게 짜여진 원리를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하곤 한다.




그리고 각각의 오행이 음양으로 변화하면서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취해서 보내는 나날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어떻게 그것도 무척 오랜 옛날에 알아냈을까를 생각하면서 혀를 찬다. 그러면서 의문도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왜 반드시 오행일까? 하긴 인간이 손가락을 보면서 오행일 것이라고 추리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해 봤으나, 이렇게 상상이 아닌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로 인해서 반드시 오행일 수밖에 없고, 그 오행은 음양을 갖고 열 가지의 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이치를 누가 설명할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혼자 한 숨을 쉬곤 한다. 과연 오행일까 아니면 또 다른 것이 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사람의 마음이 사주에 나오는 이치는 뭘까?




심리분석을 연구하다가 보니 이러한 생각이 들지 않는 날이 없다. 어느 날 그 지점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이러한 영향을 일생동안 받아가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공부를 하지 않으신 벗님이야 무슨 잠꼬대인가 하시겠지만, 공부를 좀 깊이 해보신 님이라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접근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을 비집고, 과연 누가 이러한 구조가 있다는 것을 찾아내었는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사용법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었는데, 설계도를 얻지 못해서이다. 과연 부처와 같은 성인이 찾아내었을까? 아니면 아인쉬타인 같은 천재가 찾아내었을까? 과연 신비로운 이 영역을 누가 마련했단 말인가.....




4. 운명의 원리를 알아야 벗어나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비로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 알고 있는 원리는 하나도 없고, 그냥 사용설명서를 잘 짜는 것에만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지금 당장이야 설명서대로 운명을 풀이하고 대입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그 설명서가 고장이 나면 어떻하지? 그러면 고쳐야 할텐데 그 방법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만들어진 구조의 원인을 분석해야 할텐데 제작설계도가 하나도 없는 이 멋진 자평명리학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허탈함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지적 욕구라고 해야 하겠다.




5. 미처 모르고 있는 법도 있지 않을까?




이 정도의 이론을 이미 천여 년 전에 세웠다고 한다면 또 뭔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숨어서 잠자고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더욱 눈을 크게 뜨고 본다면 정말 더욱 대단한 것이 발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공상가의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렇다고는 해도 하건충 선생님이 심리분석의 기틀을 세우신 것을 보면 또 뭔가 놀라운 것을 찾아 낼 가능성은 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후학들의 몫이라고는 하겠지만 이렇게 천성이 아둔해서야 어디 털끝인들 만져보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여하튼 사용법에 대해서는 우짜던둥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라도 찾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연구를 하면서 더러는 힌트를 얻은 것도 적지 않다고 하겠는데,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바다처럼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로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마치 뉴턴이 중력의 법칙은 알아냈지만 그 원리는 모르고 설명을 하여 오래도록 전해진 것처럼 자평명리학도 이렇게 설명법만 전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를 만나서 그 원리를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렇게 원리를 찾아내도록 가능한 한은 완벽한 설명서(이론서)를 만들어야 하겠는데, 그것도 그냥 이불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연구와 임상과 시행착오 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서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니 이렇게 마음에 궁금증만 쌓여가나 보다.




다른 학문 특히 물리학이 그렇듯이, 목화토금수의 이치도 21세기에는 말끔하게 벗겨져서 명명백백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는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자평명리학이 미신이니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면서 왈가왈부 하지 못하도록, 오로지 명리학으로 대접을 받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 것은 자신의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할게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읽으면서....>




        2004년 1월 31일 저녁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