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스스로 변하는 수밖에 없다.

작성일
2004-01-2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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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스스로 변하는 수밖에 없다.




설을 쇤 지도 벌써 4일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정월 초나흘이다. 오늘까지만 휴식을 취하면 이제 또 분주한 일에 휩싸이게 될 것을 생각하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시간이 있을 적에 한담 한편 올리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오늘 생각해 보는 이야기는 변화에 대한 부분이다.




1. 부처가 무책임하지 않은가 싶었던 시절




‘인연이 없는 중생은 나도 제도할 수가 없다.’


‘일러줘도 듣지 않는 자는 안내를 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무책임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부처가 아마도 중생을 제도하다가 지쳐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봤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온갖 일을 겪으면서 생각을 해 가고 있는 나날이겠는데, 결론은 역시 부처가 옳았다는 것으로 가야 할 모양이라는 수긍의 말씀을 내려야 하겠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게을러서가 아니라면 책임회피에 해당하는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뭔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은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보다 나은 자신의 내일을 위해서 준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선현의 가르침을 안내자로 삼아서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는데, 혹 그 과정에서 낭월의 안내말씀이 약간 참고가 되시려나 싶어서 곰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2. 논어에 나온다는 이야기




염구라는 제자가 스승 공자님을 찾았다.




“선생님 전 아무래도 안 될 모양입니다.”


“뭐가?”


“다른 제자들은 저렇게 총명하고 선생님의 말씀도 잘 이해하는데, 저는 도무지 공부를 해도 진전이 없으니 아무래도 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제자의 말을 듣고서 벗님이라면 어떻게 답을 하실 것인지부터 생각을 해보시기 바란다.




(1) 그래도 더욱 노력해봐라 하노라면 발전이 될 거다.


(2) 나도 예전에는 그랬느니라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느니라.


(3) 하거나 말거나 내가 뭔 상관인감 맘대로 하려므나.


(4) 스스로 역부족이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네 그만 두게나.




이상의 네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어느 것을 고르실지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 결론은 4번이다. 공자님의 말씀이 그 답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 공자님의 말씀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들지 않아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그렇게 났다고 한다. 넌 틀렸으니 그만두라는 말씀.




여하튼 이와 같은 대화의 내용에서도 이렇게 나이 50을 바라다보고 있는 이즈음에서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니 역시 세월이 흘러가야 이해가 되는 내용이 많은 모양이다. 아니면 워낙 천성이 아둔하여 이제야 쪼매 감이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성현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대략 앞의 제목과 같은 것으로 귀결이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3. 인연이 없으면 구제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부처의 말이라고 전하는 말이다. 인연이 없는 중생은 구제할 수가 없다는 말이 불경에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부처는 인연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제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없으면 없는 대로 그만 둔다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구절인 셈이다. 인연이 없는 중생을 찾아서 제도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보살이라고 하겠는데, 인연이 있는 사람만 제도하겠다는 말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그릇이 적은 사람의 심보라고 해야 하겠는데, 세계에서 손꼽히는 성현이라는 부처의 말씀이 이렇고 보면 뭐라고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인연이라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흔적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인연의 있고 없고는 뭘 의미하는 걸까? 만나면 인연이고 못 만나면 인연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만나더라도 인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까지 포함을 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앞의 부처님 말씀을 좀 더 길게 늘어 벌린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가 있겠다.




‘알려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인연이 없는 것이고, 그런 경우에는 나도 어쩔 수가 없느니라’




이렇게 이해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왜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 결론은 더욱 분명해 지는 것 같다. 인연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결국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보면 흡사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이해를 해보도록 하자.




4.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없다.




말은 다르다고 해도, 결과는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도 자신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되면서 좀 더 부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공자님의 마음도 완전히 같은 것이다. 아울러서 낭월도 여러 사람들에게 자평명리학을 지도하면서 느낀 결론이기도 하다. 역시 가르쳐 본 사람은 뭔가 공감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다. 다 같은 오행의 변화를 알려드리는 데에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해하는 정도는 각각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그나마도 올바르게 이해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별도의 다른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더욱 난감한 것은 매우 간단한 의미라는 것을 설명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을 적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점점 애가 타서 신경을 쓰다가 보니 이제는 점차로 마음을 쓰는 생각들이 옅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할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고, 하지 못할 사람은 어떻게 알려줘도 비틀어서 수용하더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 앞의 성현 들이 하신 말씀을 공감하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점을 다시 사주팔자에 연결시켜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전문 직업인의 소관일 것이라고 이해를 하셔도 되겠다. 사람마다 사주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는 정도가 다르니 그러한 것을 통일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괜한 시시비비로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늘 생각하게 되는 낭월이다.




5. 사주의 해석을 접하는 마음이 각각이다.




어느 사이에 새해가 되면 또 자신의 한 해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운명을 감정 받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답변을 듣고 나서 행동을 보이는 것에서도 위의 말씀이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또한 만법은 서로 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재미있다.




자신의 사주에서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해주게 되면, 사람은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 하나는 그럼 인내심을 더욱 기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는 것과, 또 하나는 생긴 대로 살다 가게 냅두라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누구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다만 스스로만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안내자는 그냥 안내를 하는 것으로 만족이다. 그 다음에 스스로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거나 혹은 그냥 그대로 가거나 모두 순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희망이 없는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운명이 좋다는 말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대하고 있노라면 정말로 희망이 없어 보인다. 실로 운명이 좋다고 한들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저절로 느끼게 되는 부류라고 하겠는데, 자신은 그러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좋다고 해주면 그냥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고맙다는 말을 백번도 더하고, 운이 불리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주면 금 새 얼굴이 시무룩해져서는 토정비결로 봐주세요. 관상으로 봐주세요. 등등의 주문을 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고픈 사람들이 있다.




6. 사주학은 변화를 안내하는 학문이다.




낭월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주학을 통해서 자신의 단점적인 암시를 파악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절반은 성공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절반은 스스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예언이라고 하기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예언이 아무리 정확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으니 말이다. 실제로 예언이라는 것은 노력여부와 상관없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일 경우에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어서 해본 생각이다.




애초에 사주가 미신이니 뭐니 하면서 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래도 귀엽기라도 하다. 이미 자신의 방향을 찾아서 노력 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다는 말만 듣기를 원하는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박력을 볼 수가 없다. 아울러서 자신은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같은 값을 매기게 된다. 뭐든지 맘대로 된다는 것도 만만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사주를 보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퇴보시킬 뿐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기조차 하겠다.




7. 변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




노력을 한 다음에 결과를 기다리라는 것은 고인의 말씀이다. 소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말씀이다.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은 사주의 해석을 들어도 결코 해롭지 않다. 그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에게 허황된 말을 듣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겠지만, 그 말이 허황된 말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을 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짊어지고 나갈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벗님의 새해 계획은 어떠신지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확실하게 자신의 능력 안에서 내린 방향으로 노력을 하는 과정이 추가된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바람직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여긴다. 여하튼 남은 나를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 낭월의 결론이다. 오로지 스스로 자신만이 자신을 고칠 수도 있고, 변화를 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충분하다.




사람을 고치겠다고 노력을 하다가 실패를 몇 차례 하고 나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파악이 되실 것이다. 참으로 사주공부를 해서 얻은 결론은 사람이 자신의 팔자대로만 사는 것은 분명 아니라는 점이다.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사주의 안내는 그야말로 길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올바른 안내를 받고서 스스로 변화를 하거나 포기를 하는 것은 아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된다. 특히 결혼을 하여 살아가고 있는 부부의 경우에도 그러한 현상은 늘 나타나곤 한다.




그러니까 배우자의 문제로 고민을 하면서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십년이 지나가도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곤 한다. 이혼을 하려니 독립을 할 엄두가 나지 않고, 그냥 살자니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하는 스타일들 말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상담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하겠으니 상담을 하고 나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을 할 필요가 없는 부류에 속한다고 해도 되겠다. 내년에는 좀 더 좋아진다는 말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쓴다는 것은 뒷맛이 매우 나쁜 상담일뿐이다.




벗님 스스로 단점을 찾아서 개선시키려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찾아서 노력하는 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하겠다. 물론 그 변화가 허황된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안내를 하는 것이 사주쟁이의 몫이다. 새해에도 많은 방문자와 상담을 나누겠지만, 그 중에는 자신의 성장 촉진제로 이용하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욕망에 장단을 쳐주지 않는다고 분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올바른 안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몫이요 책임이라고 하는 점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에 늘 노력하고 있는 자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두는 자신의 몫이라는 점만이 확실하다고 해야 하겠다. 뜻을 세우고 노력하는 나날이시기를 기원드리면서......




    2004년 1월 2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