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은 글] 인생을 생각하는 방법.....

작성일
2004-01-11 12:12
조회
7698

이 글은 다음카페의 한어수평고시(HSK)게시판에서 얻어왔습니다. 그냥 가져왔으면 얻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래도 글 주인이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퍼왔습니다. 함께 잀으시면서 새해의 계획에 참고가 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참고 되시기 바랍니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인생3모작]==================(글쓴이:스리랑)===============


 


요사이 유학생들의 중국생활에대한 국내의 평가.분석을 보고 너무 자신을 못찾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최근 몇년간 중국에 진출하는 신규사업자들도 참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메스컴에서 온천지 중국거주자에대한 평가,분석서를 내는것을 보고 유학생이나 사업자들이나 같은 조건의 환경에서 생활하는구나 하고 생각듭니다.




대한남아의 이름을 걸고 중국에 진출한자는 몇개의 사업적 기교보다 더 중요한것이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듭니다. 사업적 기교는 많은 전문성을 갖춘 선배들도 있을것이고,또 자신의 분야에서 1~2년하고나면,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할것으로 보입니다.




오래전에 읽은 일본논문인데 작자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논문부제로 <젊은이여.35세에 일단사표를쓰라>.였습니다. 일본은 징병제가 아니기 때문에 약25세에 직장생활을 하면 10년차 과장급정도일때가 35세 전후가 됩니다. 작자는 35세의 전문성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있는것으로 기억됩니다.




●맡은분야의 전문적 지식 마스터.


●부하직원에 대한 노련한 조련사.


●기업의 핵심요원.


●한가정의 안정된 생활.


●사회적 지위의 안정…등등.




반면에 10년차의 결점들이 차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지식과 업무경험에 따른 아집.사고의 정형화.


●신규사고및 지식에 대한 배타성.


●지적생산능력이 연공서열에따른 급여보다 하향곡선으로 반전.


●메너리즘.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극성….등등….








서울가는 기차가 위로가는지,아래로 가는지도 몰랐던 그시절. 남들 까만교복에 <中>자 마크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떼지어 등하교하는것을 먼지 푹 뒤집어쓰고 부럽게 쳐다보던 그시절. 해가뜨면 근무시작이요,밤열시가 넘어야 근무끝나던 그시절. 한공장에 7명의 형아 들의 최고학벌이 중졸이었던 그시절. 일주일에 두세번은 꼭 사방한치 각기목으로 술취한 형아 들에게 빳다 맞던 그시절.




밤마다 내일일을 위해 혼자서 그많은 연장을 깨끗이 갈아놓아야 했으며, 매일 형아 들의 막걸리,담배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그시절. 술만마시고 나면 애써 갈아놓은 연장을 동원해서 파출소 정문이고 할것없이 다른공장 직원들과 째고,그리고,패고 하는것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심부름하던 그시절. 하루하루가 의미없이 그런 사고를 묵묵히 받아들이던 그시절. 밤마다 공장옆 개울가에 쭈구리고 앉아 별 희안한 상상을 하며 혼자 키득이던 그시절.




사업에 세번이나 실패하신 아버지가 한달걸러 한번꼴로 찾아와서 반시간 동안이나 한마디 말없이 머리만 실컷매만저 주시면서 굳이 안떨어지는 입으로 꼭꼭 한마디 하고 돌아서서 어거적어거적 어둠속으로 사라져가시던 그시절.












귀에 못이 박히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암담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하루에 발생되는 현상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알고있었던 그시절이었습니다.




혼자 알아주지도 않던 공부를 합니다. 한방에 8명이 개판으로 자야합니다. 잠못잔다고 전등을 끄라고 고함을 칩니다. 밤에 형아 들이 고스톱칠때 마시던 막걸리통은 프라스틱입니다. 주둥이 자르고 밑둥을 잘라내서 그안에서 촛불을 켜면 사방 30센티이상 불빛이 번지지 않습니다.




한손에 책을들고 일을하다가 날카로운 연장에 손등이 찍혀 다섯바늘이나 꿰메야 했습니다. 비잉신 꼴값한다고 맨날 머리를 쥐어박혀야 합니다. 나때문에 일에 진척이 안된다고 작당을 해서 쫓아낼려고도 했습니다. 밤에는 일부러 트집을 잡아 전보다 더 죽싸게 팹니다.




그래도 했습니다.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밤낚시해서 잡아올린 물고기로 매운탕 끓여 신나게 먹던, 그당시 내가 제일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도 꾹~참았습니다.




팔년만에 대학 들어갑니다. 2년 늦었습니다.


이백호되는 문중마을에서 이십여명중 달랑 세명만 들어간 대학을 나도 들어간것입니다. 예비고사,본고사가 뭔지도 몰랐습니다.점수는 백점만 알았지 이백,삼백이 있다는것도 몰랐습니다. Abcd 배울때 멋도모르고 성문종합영어를 봐서 한페이지 넘어가는것이 한달 넘긴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기본종합영어가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국어참고서는 책머리에 작자 간력을 눈감고도 줄줄 &#51015;어대느라,진작 본문내용에 들어갈때는 이미 지쳐있기도 했습니다. 진학지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보관하고있는 대학1년 다이어리의 첫 대여섯페이지는 그 당시 또래들의 은어들로 꼼꼼히 채워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울음을 그 한밤에 다 우셨습니다. 동장어른이 동네에 광고방송한날. 마을 배꼽마당에서 아버지는 동네어른들에게 막걸리 대접하시느라 기실 당신이 더 취하시고 말았습니다.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했습니다. 환경이 그래서 이랬다는것은 내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책임한 변명입니다. 수많은 유학생들이 학교주위의 환경과 내주위의 동학들이 이래서 어쩔수 없다는것 역시 변명입니다. 수많은 사업가들이 중국사람들이 이래서, 중국기관들이 저래서, 직원들이 그래서 라는것 역시 내것이 없는 변명입니다.








직장생활을 위해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서울이란데를 왔습니다. 차나르는 여직원을 몇개월동안 선배님.선배님하며 졸졸따라다니다가, 진짜선배님으로부터 공채기수가 체통도 없이 아무한테나 선배라 그런다고 한통 당하기도 했습니다. 밤12시 이전에는 퇴근해 본지가 일요일빼고는 별로 없었던것 같습니다.




출퇴근시간에 버스타랴 전철타랴 떼거지로 부대끼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벌써 반이나 녹초가 되는것도 싫고,또 업무를 위해 외출을 하면 빨간색버스는 홀수정류장,파란색버스는 짝수정류장, 탈때마다 햇갈리고, 정류장도 잘못내리고,더러버서 한달 봉급 탁탁털어 효성스즈키 오토바이 중고를 구입해서 낵타이 휘날리며 서울시내를 질주하곤 했습니다. 교통순경에게 몇번이나 잡혔는데 낵타이맨 폼 덕에 모두 잘 빠져나왔습니다.




집사람이 첫애를 낳았을때 너무 기쁜나머지 꼭두새벽에 출근하여, 회사게시판에 자필로" 아들봤습니다.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썼다가, 임원에게 불려가서 죽싸게 야단맞았습니다(웃으면서)….."임마.게시판은 총무부의 직인이 찍힌 공문들만 게시하는것이야. 또 네가 아들낳는데 우리가 무슨 도움을 줬지?"-------하긴.듣고보니 그렇네.내 마누라인데…………….




3~4년 지나니,여기저기서 스카웃제의가 옵니다. 입사동기들은 거의다 빠져나갑니다. 스카웃조건 눈이 확~뒤집어질정도입니다. 꿈쩍을 안했습니다.어떤좋은 조건도 마음에 닿는게 없습니다. 급여란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현찰지급을 하던 급여가 은행구좌로 입금되는 날부터 중국올때까지 저는 제 급여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몰랐습니다. 집사람이 한번도 통장을 보여준적이 없고,말해준적도 없었습니다. 중국올려고 "소득세 원천징수"를 떼어보고 알았습니다. 내 급여가 요정도 밖에 안되었었냐고..동료들이 급여조정시 호봉을 네것,내것 비교하곤 성질나서 술마시는것을 바보같이 무슨의미가 있는지 정말 이해를 못했습니다.그게 그렇게 중요한것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 배움은 돈으로 환산하면 나에게는 억만금의 가치를 지닙니다. 결국은 부서에서,해도 표안나는일,몸으로만 떼워야하는일 등은 모두 내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2시이전에 퇴근을 할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이것도 그 옛날 혼자 공부하던 시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만들어 낼줄은 그 당시로서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직장생활 8년째들고부터, 이상한 병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에 창문을 열고 달을 쳐다보면 괜스레 눈물이 날려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가? 김유신 말대가리같이 자동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그만둘것인가? 처음, 쿠션없이 30부터 시작한 당구가 이제는 300을 넘게되자 같이 칠려는 사람도 없어 시큰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일본 어느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서 를 읽었습니다. 그당시 나의 위치와 환경에 그렇게 딱 맞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던졌습니다.아무생각없이..그리고는 모든 친척들이,친구들이..펄펄뛰며 말리는것을 눈 딱감고 중국으로 토꼈습니다.가족을 데리고.. 그리고는 인생3모작이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은 멋있고 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재미도 있습니다. 즐겁습니다.




이후는 어떻게 할까? 생각중입니다.찝차타고 사하라로 들어갈까..?




비즈니스는 즐기는 스포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정에서 나를 찾아가는 자기실현을 위한 한 방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관을 갖고 내가 나를 찾는 한 방편으로 공부를 해야할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직원을 면접볼땐, 그 지식과 똑똑함을 보지 않습니다. 마음가짐을 봅니다.지식은 좀 모자라면 지식자를 돈을 주고 사올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으로 받은 마음과 정신,의지와 사상은 돈으로도 사올수가 없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직원이 지식에 부족하면 1년짜리 지식자를 사다 붙여줍니다. 아님 2년짜리 지식도 좋고……….그 지식자는 1~2년후에 반드시 회사를 떠나게 되는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런지식에 저는 주저없이 "짜이찌엔"합니다.그러나 마음이 떠날때는 심사숙고하고 같이 밤을세워 토론도 합니다.같이 인생을 고민해 줍니다.




마음이 실패하고 다시 돌아올때는 받아들입니다. 지식이 실패하고 돌아올때는 한번도 받아들인적이 없습니다.




유학생활이 어렵고도 고달프며,철저하게 외로울수도 있습니다만. 자신을 볼수가 있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에서의 사업도 마찬가지 일거라 봅니다. 인생은 길고도 긴 여정입니다. 저는 120세까지 살려면 아직 2/3나 남은 새파란 청춘입니다.




유학을 하던 사업을 하던 좀 멋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진국에서 온 지식분자답게…




길거리에서 단돈 1원짜리 밥을 사 먹더래도 폼 팍~재가면서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좀 먹읍시다.


꺾어져도 좋으니까…




★젊음아! 내것을 갖자.환경이 나를 지배치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