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직장을 얻지 못한다면....

작성일
2004-01-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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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직장을 얻지 못한다면....




새해의 첫 월요일 새벽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이 시간쯤이면 아마도 많은 남정네들이 담배를 올해에는 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아니, 오늘이 5일 이니까 어쩌면 이미 3일이 지나서 포기를 하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기로 결정을 내리신 분도 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문득 해본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새해의 계획이 어떠한지를 물어보기도 하고, 아침에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직장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1. 정해진 코스




뭐 대단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직장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스스로 자신의 힘이 되는데 까지 노력을 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워낙 사회적으로 이 문제가 크게 등장을 하게 되니 사주쟁이로서도 뭔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을 놓고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인가 보다.




세계적인 실업판도는 어디에서도 다 나타나는 일인 모양이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혹은 중국이든 모두가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실업 율인 모양이니 말이다. 실업자를 줄이자고 온갖 방법을 연구해보고 있는 모양인데, 별로 신통한 대책이 없는 모양이다. 벗님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으신지 모르겠다. 어쩌면 언제 직장을 갖게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시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함께 생각을 해보실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디 한번 무슨 방법이 나올지 한번 궁리를 해보도록 하자.




그런데 문제는 이미 이러한 실업은 예정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다. 예정된 일이 이제 나타나고 있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일자리를 찾아 달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동작이 느려서 차를 타지 못한 사람이 달아나는 버스가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아무리 버텨봐야 이미 차는 떠나버렸다는 것을 빨리 판단할수록 다음의 대비라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을 생각해본다.




1) 특정분야의 집중도




대우를 받으면서 안정된 자리를 찾아서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해도 좋겠다. 가장 좋은 일은 공무원이고 선생님이었다. 모두 과거형태의 문자로 기록이 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서 누가 아니라고 부정을 하겠는가 말이다. 당시에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정된 것으로 보고 모두들 그 방향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되지 않으면 교사의 길도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연히도 고등고시의 우선권도 있었다. 이러한 특정 몇 가지의 직장에 사람의 마음이 쏠리는 것은 당연히 앞으로 수십 년의 전망을 해보고 그에 따라서 나름대로 기준이 서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직업의 선호도에는 의사의 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능력에 따라서 약사의 길도 인기가 좋은 학과에 해당이 되었다. 의사가 되는 것은 기능인 중에서는 상위급의 대우를 받는 것으로 모두 인식을 하고는 가능하면 그렇게 안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현재의 문제는 이미 예고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묻는다. 자신의 적성으로 봐서 한의대는 어떻겠느냐는 질문이다. 왜? 한의사가 좋아보여서? 내과수술처럼 위험하지도 않으면서 크레졸냄새 대신에 한약냄새를 맡으면서 깨끗하게 일을 할 수가 있어서? 의료보험에 해당하지 않는 보약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 것으로 보여서?




뭔가 이유야 있겠지만, 놀랍게도 지난 일년동안 진로를 물어보는 방문자들의 상당수(아마도 6~70%는 될걸....)는 이렇게 한의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물론 그 모두가 적성이라고 한다면 좋겠지만, 실로 자신의 적성으로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수능점수와 해당 대학의 커트라인을 비교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냥 답답할 뿐.




2) 적성을 무시한 점수위주의 선택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야기를 해준다. 고3을 수십년 지도했는데, 하나같이 아이의 점수로 어디를 갈 수가 있는지만 묻는 부모들이지, 아이의 적성으로 어떤 것이 좋겠는지를 묻는 부모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리고 그 희망의 최상점에는 수능점수가 가장 높아야만 가능한 분야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수능점수로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것 일뿐. 별도로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볼 마음도 그렇게 하면 나머지 점수는 모두 묻혀버린다고 하는 긴박감으로 안타까워하면서 생각도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피와도 같은 점수를 버린다고 생각한다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자신의 인생을 그 점수에 저당 잡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냥 한가로운 사주쟁이의 소박한 희망일 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 자녀가 자신의 적성을 말하더라도, 일고에 무시되기가 예삿일이다. 넌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점수가 높아야만 가능한 학과를 점수가 남는 데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바심을 만드는 원인인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3) 점수가 되지 않으면 죽는다




이미 수능을 본 이후로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등장을 했다. 그리고 이것도 또한 예정이 된 일이다. 실로 대학을 간다고 해서 그 후가 창창하게 열리는 것도 아니다. 또 하나의 통과절차일 뿐인지도 모를 대학문턱이다. 그런데 이 문턱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절망감이 자신을 사로잡았을까? 그렇게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버린다. 20년을 고이고이 길렀건만 도대체 무슨 일로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러한 현상은 점수를 높이 받아야만 상위급에서 인간답게 살 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삶은 절망이라고 하는 염력을 그의 가족들 특히 부모가 심어준 것은 아닐까? 절망보다 더 나쁜 것이 뭐가 있을까? 희망이 없다는 말을 3년내내 들어왔다고 한다면 아마도 당연히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림으로 해방감을 얻게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 외에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아이의 탓이 아니고 주변의 탓이다. 아, 팔자가 죽을 팔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팔자는 살아가는 과정에서만 존재할 뿐이고 죽어야 할 팔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것은 억지일 뿐이다.




여하튼, 이렇게 예정된 코스대로 성공자의 대열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모두 출세하고 성공하여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낭월도 그게 궁금하다.




2. 수요공급의 법칙




‘먹은 만큼 싼다’는 말은 모양은 없는 말일지 몰라도, 당연한 진리이다. 좀 품위를 갖추고 말씀 드린다면, ‘인과법칙(因果法則)’이라고 해도 그만이다. 둘은 모두 같은 말이다. 작년만해도 낭월은 많은 한의대 지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말리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이미 너무 많은 고학력자들이 한의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시라. 한집건너 한의원이라고 한다면 과연 먹고 살 방법으로 선택의 우선순위에 해당이 될 수가 있을 지를 말이다.




그래도 그 길이 가장 안정된 것이라고 하시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날이 한방 병원도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어쩌면 취업이 잘 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희망사항이라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낭월의 생각이다.




병원이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더 심할 것이다. 개인병원은 이미 운영이 어렵다는 말도 한다. 종합병원 급으로 규모가 커지고 고급기계를 도입하지 않으면 고객은 다른 곳으로 몰려가기 십상이다. 외과의사가 부족해서 수입을 한다는 말도 본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말은 어려운 외과는 기피한다는 이야기이다. 놀랍게도 의료부분에서도 이미 편식성은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 인기가 좋은 분야는 어디냐고 했더니, 성형외과란다. 얼굴 예쁘게 하겠다는 여성을 대상으로 시술하는 전문의라는 점을 생각해서 무리가 없겠다. 뭐든지 그렇지만 인기가 좋다는 말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말도 된다는 점을 생각할 줄도 모른다면 이미 앞으로의 경쟁에서 살아남기에는 고통이 많이 따를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대는 만원이다. 한의대의 합격가능 점수도 더욱 높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다 된 것이다.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씀을 해야 하겠다. 한의사가 넘쳐날 것이다. 3~4년이 경과했을, 그러니까 올해 입학하는 사람이 졸업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이면 그때에는 참말로 걱정이 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이 혼자 해보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같이 생각을 해보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몰리는 것은 끝났다. 석유가 다 되어간다는 말이 나올 적에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지금 생산의 정점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의 에너지를 생각하고 있는 기업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말이다. 실로 수소로 운행하는 자동차는 앞으로 5년 이내에 상용화가 될 전망이다. 지엠에서도 그 무렵이면 출시를 할 예정이란다. 지금 한참 연료를 절약하는 차를 연구하고 있는 자동차 연구소가 있다면 이 계획은 이미 실패를 할 계획이 될 가능성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드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3. 그럼 뭘 해야 한담?




글쎄 말이다. 이것이 실은 고민이다. 뭘 해야 직장에서 안정되게 일생을 보장받을 수가 있을까? 아마도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그러한 직장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다. 흔히 하는 말로 ‘철밥통’이라는 신화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냥 ‘약자소멸 강자존립’의 공식만이 유효할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또한 벗님의 앞날도 위태롭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그 강자가 수험점수 고득점자일까 하는 점이다. 결론은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수능점수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대학을 나와서 집에서 쉬고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이나저나 버린 것이니 하고 싶은 것이나 하다가 가자고 하는 마음으로 추진하다가 결국은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역설적인 생각도 해봄직 하겠다.




어려서 본 그림책이 생각난다. 나비의 애벌레던가 다들 모여드니까 왜 모여드는지도 모르고 줄을 서서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지금의 군상을 보면 과연 그 그림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생각이 났다.




요즘은 노동의 종말을 읽고 있다. 정말 노동자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벗님이 만약 노동자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대열에서 채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다시 생각을 해보시기 바란다.




첫째,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인지.


둘째, 앞으로 적어도 20년은 보장이 될 것인지.


셋째, 그 일을 선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넷째, 그리고 더 적합한 일은 없는지.




        2004년 1월 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추신: 좀더 생각을 해보고 해결점을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