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어느 독자의 호된 꾸지람

작성일
2003-12-19 06:01
조회
7674
 

[제210화] 어느 독자의 호된 꾸지람




한담을 한편 올리고 메일 박스를 확인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이 와 있어 살펴봤다. 그리고는 참으로 송구한 마음에 바로 회신의 메일을 드렸는데, 그러고 나서 곰곰 생각을 해보니 과연 스스로 잘 한다고 한 것도 남에게 비춰질 적에는 또 달리 보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서 정말 말을 한마디 할 적마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싶어 스스로 반성을 하는 의미에서 메일의 내용과 사죄의 말씀을 함께 올려 드리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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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스님! 오늘(12월 18일) 장문의 편지를 보낸 **에 살고 있는 송** 이라는 사람 입니다.


아직, 명리학에 대한 많은 것은 몰라도 , 시중에 나와서, 영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더 이상 속지는 않을 정도는 되었읍니다.이 모든 것은 스님의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라 생각하며,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늦게 나마 인사 드리오며, 신의 축복이 반드시 있으리라 확신하며,저의 짧은 소견을 올리고자 합니다.  부디 많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대운의 흐름에 대한 해석에  대해 ,  너무나 스님 답지않은 것에 대해 , 불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원국이 좋고, 운이 따라 줘서, 그 인생이 좋은 사람도 있고,원국은 좋은 데, 운이 별로라서, 그 인생이 그렇고 그렇게 사는 사람, 원국은 별로 라도, 운이 좋아 이 세상 힘들지 않고 사는 사람,운도 좋지 않고, 원국도 별로 좋지않은 사람이  이세상을 정말로 힘들게 사는 사람으로, 간단히 분류 한다고 가정한다면,(물론 수 많은 사람들의 각가지 종류가 있겠지만),원국도,  운세도, 또한 그 사람 몫인 것은 당연 합니다.


스님의 강의나 저서에서,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곤 남자로서 남몰래 눈물을 삼키기도했었기에 이렇게 애기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 합니다.


저의 사주에 기신이나, 구신, 혹은 용신이나,희신을 맞이 했을 때,어떤 경우에는 용신이라도, 삶이 힘 들었었고 , 기신, 구신, 한신이라도, 저에게는 편안 할 때도 있었읍니다. 물론 모든 것은 당사자의 마음이라는 요상한 괴물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운세의 높 낮이, 운세의 길흉화복에, 우리의 명리학이 너무 치우쳐 있지 않나 하는 소견에 어려운 말씀 올려 봅니다. 우리가 시장에 가도 추운 겨울이든, 더운 여름 날이든 생선 냄새 풀 풀 날리며, 우리의 식단을 풍성하게 해주는 , 그 분들의 노고 덕택으로, 이 세상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운이 좋지않아, 생활이 어려웠던 사람들의 숨은 덕으로, 이 세상은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칭송하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낭월 스님도 세상을 저보다도 많이 사시고, 저보다도 어렵게 세상살림을 이끌어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 하찮은 제가 감히 이렇게 말을하니 고소를 금치 못하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부디 동생의 귀여워운 투정이라도 좋고, 세상살이 친구의 지나가는 충고의 말로 여겨도 좋고,어떤 형식이든 좋습니다.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원국은 자기의 본 얼굴인 것을 감히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단지, 대운과 세운의 흐름에, 우리는 너무나 흑백의 논리에 치우쳐 명리학을 어떤 사람의 빈부귀천의 가치 기준으로 흘러가지 않으까 하는 노파심에, 이렇게 당돌한 말씀을 올립니다...,  


대운에서, 세운에서, 당사자가 ,혹은 그사람의 사주를 봐 주는 명리학자는 좋은 대운, 세운 보다 , 오히려 좋지않은 대운, 세운이 많길래, 마땅히 명리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좋지않은 대운  세운에 대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이 세상, 거의 70-80퍼센트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제가 학생을 가르칠 때에도, 상위 클래스는 가만히 놓아 두어도 제 혼자 공부를 참 잘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그 들중 에 모두는 아니라도 대부분은 ,이 세상을 그들 나름대로,  이 세상을 잘 살아갈 것 같았고, 또한 성공한 케이스 였습니다. 그런 애들에게 명리학이 과연 ,인생의 지침서가 될까하는 의구심에 봉착 할 때면, 달리 대답 할 말이 없습니다.


너무 대운, 세운에, 길한 것과, 흉한 것에만 치우치지 말고, 오히려 흉한 작용이 있을때, 명리학자는 심리의 변화와, 생활의 변화, 심지어는(지나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자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어려움이 감지 될 수 있을 정도의 세심한 ,관찰을 할 수 있을 만큼  ,심리분석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고,  원국이 좋은 사람보다, 운세가 좋은 사람보다, 그 사람이 있어서, 성공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있어서, 부자가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 하고 실천 하는 명리 학자들을 배출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말씀을 올리는 취지는, 대운, 세운을 해석 할 때는 길운 보다는 흉운일 때, 이 사람은 이럴때 . 어떻게 행동 하고,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되다는 것도 . 깊은 연구와 노력으로, 카운셀러다운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흑백의 논리가 명리학에서 존재한다면, 신살을 가지고 사주를 보는 넘이나 하나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감히 아직 풋내기에 지나지 않은 초보자가, 정말 정말로 존경하고, 심지어는 뛰어넘어 보고 싶은 낭월 스님께 당돌한 말씀 을  감히 올립니다.  낭월스님 죄송 합니다.


         관세음보살.


           **에서  宋  ** 올림 




=====[회답 혹은 사죄의 말씀]=============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메일 잘 읽었습니다.


한자 한자에서 풍기는 염원은 분명 남에게 도움을 주실 벗님이 틀림없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생각의 흔적들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낭월의 소견에 대해서 분노하신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어느 부분에선가 그러한 글을 보셨길래 하신 말씀일 것으로 여깁니다. 물론 그렇게 느끼시도록 한 것에 대해서 민망함과 송구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변명을 한다면 낭월의 소견도 송선생님의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때로는 그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을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늘 가르치는 마음으로 흉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이점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더욱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항상 안주하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하고자 합니다. 늘 살피면서 가르침을 주신다면 또한 좋은 채찍질로 여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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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벗님들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로 이러한 가르침들이 있기에 연구의 방향은 늘 잘못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갈 수가 있지 않은가 싶다. 오늘도 올바른 길잡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고자 한다.




**따끔한 가르침을 주신 송 선생님께 거듭 감사말씀 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서 생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