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왕따가 두려워서....

작성일
2003-12-14 20: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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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왕따가 두려워서....




‘왕따 왕따’ 하면서 걱정을 하는 것은 학교에서의 아이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별도로 취급을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근래에 늘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한가로운 일요일을 보내면서 책을 좀 읽고 있는데, 늘 머리 속에서는 왕따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벗님께 질문을 하고자 한다. 왕따가 두렵지 않으신지, 아니면 왕따를 당해 보신 경험은 있으신지, 혹은 왕따슬 시켜보신 적은 있는지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을 해보신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실 준비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물론 어느 입장이거나 상관은 없다. 다만 그 용어에 대해서 어느 부분이거나 간에 해당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절절하게 전달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럼 어디 낭월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1. 왕따를 당해본 경험




벗님도 어쩌면 왕따를 당해 보신 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감히 예언을 해볼 참이다. 왜냐면 인생철학(人生哲學)에 관심이 갖게 되었다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원인일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짐작을 해보기도 하는 것도 어쩌면 낭월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일 가능성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도 해본다.




어린 시절에 당해본 왕따의 경험은 쓰라린 상처를 주는 것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런데 또 세월을 보내면서 생각을 해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혹 지난 시간에 대해서 미화시키는 기억력의 작용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생각이 된다.




8세에 안면도로 이사를 한 다음에 느낀 기억은 아마도 일평생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첫째로 말이 달라서 받은 설움을 토박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실거다.




“이 자식 말이 이상허네이~”


“뭔 말을 허는지 알 수가 없잖여 이 새꺄~”


“말을 혀임마 말을 말이여~”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많이도 얻어 맞았다. 그야말로 최악의 나날이었다고 해야 하겠고, 그래서 무슨 핑계든지 가능한 핑계는 다 동원해서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의 목표였다고 한다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님을 탓하진 않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껏 부모님께 푸념을 했다.




“애들이 말을 이상하게 한다고 놀리는기 싫타카이~”




그게 다다. 그렇게 말하면 부모님의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게다. 실로 하는 일을 망하시고 안면도로 도피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에 새끼들이 적응을 못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면서 우째 마음이 아프지 않으셨겠노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그럴 짐작하시고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강제로 학교에 가라고 독촉을 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이미 자신의 자식이 그 당시의 나보다 더 크게 자란 다음의 일이다. 참 세월은 무심히도 흐르는가 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게 되면서 점점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지고, 또 그래서 책을 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니 오히려 스스로 사색을 하는 시간이 되었던 셈이기도 하지 않은가 싶다. 여하튼 당시의 왕따로 느낀 소감은 비참했다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내면의 세계를 관조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2. 어린애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이.....




왕따는 아이들의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실은 아이나 어른이나 국가나 그 모두가 왕따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인가 특집방송에서 한국의 언론인들 특히 동아일보의 운영자들이 미국에게 한국 정부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미국대사관을 끌어들이는 이야기를 보면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정부대로 미국으로부터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하는 모습도 그 속에 들어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과연 그렇게도 두려운 것이 왕따가 아닌가 싶어서 어린 애들만 왕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을 두고 늘 하시던 당시의 정치인들은 괴뢰도당 김일성집단이라고 했다. 너무도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고 글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려니 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미국의 당시 극비문서들을 보게 됨으로 해서 나타나는 현실은 속담으로 한 마디만 한다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그 이상 더 좋은 말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니 그 당시의 그러한 실상을 알고 있었던 일부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지..... 대남방송에서 늘 미제의 앞잡이라고 하던 말들이 허언(虛言)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라고 하기 보다는 왕따를 두려워했던 정치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측은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한다. 얼마나 두려웠으랴 싶다. 따지고 보면 어린 아이에게는 자신의 사회가 학교의 한 반이 세계이고, 언론인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버림을 받는, 그러니까 통치자들로부터 왕따가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고, 또 통치자들은 더 큰 나라인 미국에게 왕따가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이해를 해보자는 것이다.




3. 직장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늘은 직장인을 상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를 물어본 모양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뭘까? 이미 이야기의 분위기로 봐서 아마 왕따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정말로 생각을 잘 하시는 벗님이라고 해야 하겠다. 실로 그렇게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왕따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 나온 뉴스라서 더 새삼스럽다고 해야 하겠다. 가장 중요한 직장인의 문제는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한단다. 어울리지 못하면 오래 가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불안해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직장생활이라고 변변히 해보지 않은 낭월인지라 그 속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짐작을 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왕따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것으로 보고 그래서 방지책으로 잘 어울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는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과연 인간도 벌이나 개미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말도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이든 모든 단체에서는 조직에서 제외되면 이른바 ‘조직의 씃 맛’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마지막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벗님이 혹 단체가 아닌 개인적인 일을 하신다고 보면 이마도 이러한 두려움은 조금 덜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하튼 어떤 형태로거나 조직에 속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매우 정상인 모양이다.




4. 사주로 논한다면 식상과 관살의 차이이다.




팔자를 통해서 이러한 점을 본다면 나름대로 특징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즉 신약한 사주를 갖게 된다면 독립보다는 협력으로 방향을 잡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일반적인 견해를 수용한다면, 신약한 사람은 왕따에 대해서 더욱 두려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왕한 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의 성향으로는 왕따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하실 수가 있겠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신강약으로 구분을 할 것이 아니라 십성으로 구분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식상의 성향을 띠는 사람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고, 관살의 성향을 띠는 사람은 조직을 따르는 성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물론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대체로 이러한 기준으로 고려를 한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리고 다시 좀 더 생각을 해 본다면, 식상의 성분은 왕따가 될 가능성이 많고, 관살의 성분은 왕따가 될 가능성이 적다고 봐도 되겠다. 이것이 바로 음양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벗님은 어떻게 자신의 방향을 잡고 계신지 한번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거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리더가 되거나 일원이 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점이고,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다.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직에 잘 적응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조직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 왕따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는데, 학문을 연구하고 원리를 추적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왕따가 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부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이 드는가 보다. 실로 학자가 조직에 순응하게 되면 학문의 발전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또 빨리 성공을 하겠다고 서둘다가는 자칫 조직에서 버림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이 적지 않으니 이러한 것을 지혜롭게 판단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오늘도 왕따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서 모두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오는 새해에도 벗님의 계획대로 멋진 삶이 되시기를 기원하고자 한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