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예언자의 고민

작성일
2003-11-30 09:1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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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예언자의 고민



참 좋은 계절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12월을 코앞에 두고 있는 계절이다. 11월도 마지막 날인데, 지난 한 달을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바빴다는 계산이 나오는 모양이다. 오늘은 모처럼 여유롭게 쉬는 날이라서 한담 한편을 올리려고 아침의 커피를 한잔 들었다.




1. 이유야 어떻든 간에



낭월은 예언자이다. 방법에서나 결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남의 미래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예언(豫言)일 뿐이다. 그러니 예언가가 된 것은 자의든 타의든 피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예언가의 고민에 대해서 낭월명리학당을 방문하시는 벗님들과 생각을 나누고자 하고 싶어진다. 참으로 해답이 없는 고민이 늘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는 아무리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상담을 하는 것이 주업이라고 해도 그게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이치적으로 상담이 되어야지 예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늘 경험하고 있는 낭월이다.




1) “고맙습니다. 선생님~!”



뭐가 고맙겠는가.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우선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은 낭월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낭월이 뭔가?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그의 운명을 읽어 주는 것일 뿐이고, 운명에 개입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방문자들 중에서는 좋다는 말을 하게 되는 낭월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이 과연 뭘 의미하는가? 결국은 낭월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것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기대치를 채워주는 낭월의 말 한마디는 그대로 구세주의 복음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되었지 뭔 걱정이냐고 하실 벗님이 계실까 모르겠다. 그런 님들은 참으로 속이 편안하신 분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낭월이 속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정말 생각이 짧군요. 음양의 법칙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하는 말이다. 운이 좋다고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어서 나올 말은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 일도 분명 있다고 하는 점인 것이다. 이제 확실하게 감지가 되었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판단을 하게 되면 운이 좋다고 하는 말을 할 기회는 운이 나쁘니 조심을 하라고 해야 할 기회보다 훨씬 적다.



벗님도 사주를 배우시고 또 남의 운을 풀이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분명 이러한 경험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각이 있는 방문자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한 해석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운이 좋다는 말만 기대한다는 것을 능히 경험하셨을 것이다. 더구나 나름대로 평가를 받고 있는 낭월의 상담실을 방문하실 적에 그러한 기대감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상담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방문하신 벗님의 운명을 판단해 드리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수용을 하게 되니 과연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봐야 하겠는데, 참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생겼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2) 기상 통보관의 고민



“오늘도 비가 200밀리 정도 내리겠습니다.”



이러한 통보를 하고 난 다음에는 항의나 원망의 전화를 받게 된단다. 그 통보관은 이러한 말을 왜 자신이 들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과연 벗님은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시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운명을 예언하는 사람도 기상통보관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이해를 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겠다. 그래도 차이가 난다면 기상통보관은 인공위성과 각종 그림을 통해서 보다 객관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자료를 통해서 통보를 한다는 점이겠다. 운명해석가는 또한 자신이 연구는 방향으로 봐서 결론을 내리고 예보를 해준다는 것이 차이일 것이고, 그 기준은 각각의 예언가의 공부 방향에 따라서 다소 큰 차이가 있을 가능성도 늘 있는 것은 이미 공부를 해보신 벗님이라면 아실 게다.




3) 옛날에는 전쟁통보관이 있었다는데



“폐하~!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을 잡고 이겼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하게 된 연락병에게는 상금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계백장군이 죽었다는 전달을 해야 하는 백제의 연락병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처형되지 않았을까? 너무도 명백한 자료가 있건만 결과는 이렇다는 것이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싸움에 이기고 진 것이 그 연락병 때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에게 상벌이 주어진다는 것이니 과연 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러한 작용을 일러서 ‘연상작용’이라고 한다.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이렇게 자의든 타의든 간에 남의 운명을 알려야 하는 직업은 예로부터 있어온 모양이고, 예언도 아닌 전달병에게서도 그러한 기대를 (즉 좋은 소식을 들고오기를) 하는 마음에서 영향을 입게 되니 참 남의 희비를 알린다는 것이 어렵다면 많이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2. 좋다는 말만 하면 되겠네?



그렇다. 이것을 이미 깨닫고 그렇게 시행하는 상담가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방문을 한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해준다.



“가는데마다 내년의 운이 좋다고 하던데 스님은 좀 다르시네요....”



이게 뭔 말이겠는가? 아, 용신을 거꾸로 잡지 않으셨느냐고는 묻지 않으셔도 되겠다.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안해서 보더라도 용신을 달리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사주였기 때문이다. 벗님도 한번 보시겠다면 보셔도 좋겠다. 어떻게 말씀을 하실 참인지를 말이다.



時 日 月 年
甲 己 乙 乙


子 丑 酉 酉


63 53 43 33 23 13 03


戊 己 庚 辛 壬 癸 甲


寅 卯 辰 巳 午 未 申



가을 기토가 너무 허약한데 화는 없고, 그냥 앉은 자리의 축토(丑土)만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남방운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안정은 되었겠지만, 실로 이제의 운은 59세로 묘목(卯木)운이 들어오면서 용신이 공격을 받으면서 다시 금에게 혼란도 발생할 것이고, 뭔가 어려운 상황이 예견되니 일기예보식으로 말을 한다면 ‘태풍 11호가 진행중입니다’가 맞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의가 요망되는데, 방문을 하는 곳마다 내년의 운이 대길이니 마음대로 사업을 하라는 조언을 한다는 것에 있다. 이렇게 비가 오거나 태풍이 오거나, 눈이 오거나 상관이 없이 그냥 좋다고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약삭빠른 상담자가 시중에 많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희망적인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이 낭월에게 와서는 주의보를 받게 되면 그 표정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 것이냐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씁쓸하다. 올바로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도 올바로 읽어주면 마음이 섭섭한 사람의 심리......




3. 그래도 마음을 속일 수야 없지



이것이 낭월의 평소 생각이다. 장마 전선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른 채 하면서 쾌청한 날씨라고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티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대목을 생각하면 어려서 배운 교과서에서 본 ‘펜의 힘’이라는 대목이 생각난다. 영국의 언론사가 늘 좋은 소식만 전하는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로 인해서 국민들이 불리한 전쟁을 유리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인데 실로 그 편집장은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 능히 이해가 된다. 왜냐면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와 똑같은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니 미뤄서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감히 불리하다는 말을 해서 원망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은 너무도 간단히 나온다는 것이다.



늘 운세가 좋다고 말을 해주는 사람도 아마 이러한 생각을 깊이 해봐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년 이년 지나가면서 점차로 신뢰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말을 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면 감히 프로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다 좋다고 하는데, 왜 스님만 내년이나 후년이나 모두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을 해주는 것이냐는 원망을 들을 적에 낭월의 심경이 어떨 것인지 짐작이 되실게다. 참으로 씁쓰름하다. 마치 저주라도 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니 말이다.



비로소 할 말을 찾아서 한다는 것이 이렇다.



“그렇게 다들 좋다고 하는데 그대로 하시지 왜 또 낭월을 찾아 오셨어요? 낭월 같으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그냥 벌려보겠는데요....”



이렇게 말을 해봤다. 그랬더니 그의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 실로 자신의 생각이나 주변의 여러 상황을 봤을 적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년에 그렇게 활발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들 말을 하니, 정말 집을 팔아서라도 뭘 해봐야 하는 것인지, 다 믿어도 될 것인지를 의심하게 되어서 그래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준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게 되었노라고 한다. 이러한 말을 듣고 보면 과연 뭐가 옳은 것인지 분명하게 판단이 된다는 것이다. 비록 당장은 서운하더라도 올바른 말을 해주지 않으면 그 상담실은 길게 유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4. 상담에서 흉한 말을 들은 효과



당장이야 적지 않은 상담료를 내고 흉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을 우선은 후회하고 그렇게 예보를 해준 낭월에게 원망을 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깐이다. 아마 이렇게 주의가 요망된다는 경고를 일단 받게 되면 그 이후로는 좋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추진하면서도 늘 낭월이 해준 주의사항 예보가 어느 한 쪽에 붙어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혹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면 그때라도 바로 조치를 취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으로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좋다는 것은 맞지 않아도 나쁘다는 것은 꼭 맞으니 주의해라’



우리 속담이다. 좋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말이 왜 나왔을까를 늘 생각해보곤 했다. 그래서는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속담이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마 벗님도 알고 계실 것이다. 왜 좋다는 것은 맞지 않는지를 이쯤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낭월이다. 참으로 둔하긴 억수로 둔한 넘이다. 에구......



곧 연말이다. 이쯤에서 찾아오시는 방문자들은 대체로 내년의 전망을 해보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다시 낭월은 예보관이 되어서 맑고 흐림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내 시간이 지나가면서 밝혀질 것이다. 비록 당장은 아쉬워하면서 낭월을 원망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릴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몇 년 전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에게 큰 걱정을 해줬다. 약 3년간 지속적으로 운이 흉했기 때문에 계속 기도라도 하라고 해줬는데, 그때마다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4년째가 되는 해에 다시 그가 왔을 적에 내년에는 호롱불만큼의 기대가 되는 운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길흉의 말이 그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양심으로 상담을 하는데에도 수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그 반응은 천차만별이고 상담가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으로 초점을 맞출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결론은 두 가지이다.



방문자의 비위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양심대로 판단을 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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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낭월의 근황



11월 1일부터 대전강의실에서 상담을 하게 되면서 감로사에서는 일체의 상담객을 받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실은 그렇게 할 시간도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무지하게 바빴던 것은 벗님도 아시겠지만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여러 가지로 수정을 하고 손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대략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낭월학당을 찾아주시는 벗님께서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시느라고 좀 혼란스러웠으리라고 짐작을 한다. 그래도 이내 적응을 하실 것으로 보고 불편한 점은 공지사항을 통해서 계속 알려드리고 있다.



또 내일 12월 1일부터는 대전강의실에서도 강의가 시작된다. 이미 공부를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수강희망자들이 몇분 계시고 모두 내일 와서 등록을 하고 공부를 시작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입문과 연구를 강의하기로 맡은 화인선생의 고민도 오늘쯤에서는 절정(?)에 도달할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막상 뚜껑을 열면 오히려 편하겠지만, 준비하는 마음이야 오죽 떨리겠는가 싶은 마음은 경험이 있으신 님은 다 공감하실 것이다.



지난 22일에는 간단히나마 각 지부장들이 감로사에 모여서 연수회를 갖었다. 그리고 보다 의미 있는 다음의 일년이 되도록 서로 격려도 하고 고생했다는 위로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내년에는 내실을 다지는 낭월명리학당의 지부가 되기로 다짐도 했다. 이제 2년이 지났으니 내실을 기하는데 협조하지 않는 지부가 있다면 정리를 해야 한다는 다짐도 나눴으니 더욱 열심히 노력하시리라고 믿는다. 이렇게 발전을 하노라면 나름대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낭월의 말을 그대로 믿고 열심히 따라주니 고마울 뿐이다.



벗님의 결실이 잘 되어가시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올해의 삶이 후회스럽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낭월의 마음이다. 세월에는 새해와 묵은 해가 없다고 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또 마음에 점을 찍고 새로운 결심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모쪼록 더욱 나은 올해, 그리고 보다 나은 내년이 되시기를 기원드린다. 그리고 아직도 시간은 있으니 좋은 기회가 그냥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늘 살피시라고 한 말씀 드리고 이만 줄인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