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개 타령(일명 개소리)

작성일
2000-11-23 00:00
조회
5721
개 타령


제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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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타령 (일명 개소리) (2000.11.23)


 


또 한동안 낭월 한담에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방문하신 벗님들이 심심한 기분으로 돌부리라도 걷어차시고
발가락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어 낭월이가 지나는 길에 심심풀이로 '개 같은 소리'나 한번 하려고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1. 첫 인연


예전에 어려서 안면도로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을 친 부모님이 그 외진 곳에서 동무도 없이 놀고 있는 자식들이
안쓰러우셨던지 어디에서 똥개 두 마리를 구해 오셨는데, 이 녀석들이 그래도 참 반가운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느라고 그 녀석이 하루는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먹은 과보로 눈가에 푸른빛을 뿌리면서 동분서주하더니만 그렇게 죽고 말았다. 그래서
갑자기 놀이감을 잃었다는 기분으로 속이 상했던 기억으로 이 녀석과의 인연은 시작이 되는 셈이다. 그 날로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우리 집은 개가 잘
되지 않는 집인 모양이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다시는 개를 키울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바람에 개에 대한 인연도 그 것으로 일단 끝이 난
셈이었다.



2. 불교에서 바라보는 개의 실체


불교인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이런
기회에 설명을 드리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상식이 되지 않겠나 싶다. 이야기는 두어가지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다 가능한 이야기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는 낭월이다.



(1)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설


그러니까 '지은 대로 돌아온다'는 것이 인과응보인데, 개와 연관해서는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다. 개를 키우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가 그 개를 잡아서 먹게 되면 그 개는 정이 들대로 들었기 때문에 죽으면서 원한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 원한 가운데에는 나도 언젠가 너희 사람에게 이 웬수를 갚고 말겠다는 복수의 다짐이 된다는 것이다. 하기야 일생동안 먹다가
남긴 찌꺼기 음식을 얻어먹고 긴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도둑도 지켜주고 어려운 지경에 처한 주인에게는 목숨을 다해서 지켜주었는데, 결국 대문
빗장에 목을 매달고는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온 몸에 피멍이 들어야 삶으면 맛이 있다나 뭐라나 하면서 고통을 준 끝에 죽게 되니 그 개도 생각이
있다면 어찌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개가 언제 사람이 되겠느냐는 점이 궁금해지는데, 이것이 또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왜냐면 원래 지옥에서
고통을 받다가 사람으로 변환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길이 개의 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개는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서 사람의
습성을 많이 이해하게 되는 좋은 공부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음식이나 생활 환경과 밀착되어 있는 과정에서 늘 사람으로부터 가까이에 머물 수가
있다는 것이 과연 일리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람을 배워가게 되는데, 그 사람과의 일생 한 솥의 밥을 먹은 인연이라고 한다면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할 경우에 아무래도 그와 가까운 곳에 태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에게 다가와서 좋은 사람으로 인식을
남기다가 결국은 한 방에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수가 있겠는데, 이것은 자신이 전생에 개의 몸으로 있으면서 주인에게 잘 대우를 받다가 결국은
두들겨 맞아 죽은 것에 대한 인과의 보복이 된다고 한다면 과연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인과의 법칙이 뭔지를 알게
된다면 말이다.



(2) 목련존자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훨씬 드라마틱한 내용이다. 부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살아 계실 적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제자
중에는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목건련존자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줄여서 보통 목련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분의 어머니가 생전에 온갖 못된
일을 많이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돌아가셨는데, 목련존자는 어느 날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다가 문득 자신의 모친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서 부처님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목련경이라고 하는 경문에 기록된 내용이다.



"부처님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 태어 나셨을까요?"


"그야 생전에 뭘 하셨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어머니께 들었는데 하루에 오백명의 수행자를 모셔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매일매일 기도에 전념하고 마음을 바로
다스리는 수행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오, 그러냐. 그렇다면 천상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겠구나."


그 말을 듣고 목련존자는 입정하여 무아지경에 빠져 천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선 도솔천을 찾아 봤는데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도리천과 타화천을 차례로 뒤지면서 어머니 청제부인을 찾았으나 어느 곳에서도 그를 아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하늘을 뒤지다가
정에서 깨어났다. 다시 부처님께 질문을 올렸다.



"부처님 아무리 봐도 어머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참 이상하구나.... 그럴 리가 없을텐데..."


"부처님, 만약에 말입니다."


"그래 왜 그러느냐?"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매일 소와 양을 잡아서 마당과 뜰에 피를
뿌리면서 온갖 사악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느라고 집안에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고, 또 음탕하게 절제를 할 줄 몰랐으며 온갖 죄악을 많이도
저질렀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아들이야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만 만약 그러한 행동을 했다면 지금 어디에 태어나셨을까요?"


"아마도 그 이야기대로라면 아비지옥에서 나찰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겠구나."


"부처님,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겠으므로 한번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서 목련은 다시 삼매에 몰두하였는데, 문득 자신이 어느 엄청나게 큰 문 앞에 서 있었더란다. 문을 지키는 나찰이
있어서 그에게 물었다.



"나찰이여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무간아비지옥의 정문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소?"


"그 이유는 두 가지가 되는데, 하나는 죄를 많이 지어서 업력으로 오게 될 곳이고, 또 하나는 성현의 힘으로 올
수가 있겠는데, 그대는 얼굴이 맑은 것으로 봐서 업력으로 온 것같지는 않으니 뭔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질문이 있으면 하시지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 우리 어머님이 이 곳에 계신지 알아봐주시겠소?"


"그의 생전 이름은 무엇입니까?"


"청제부인이라고 합니다."


"청제부인이라...... 아 여기 있군요. 펜티엄4로 업그레이드를 했더니 검색이 참 빠르네요. 여기 있습니다.
생전에 못된 짓을 많이도 했군요. 쯧쯧....."


"한번 만나 볼 수가 있겠소?"


"나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으니 더 이상 요구하지 마시오."


목련존자는 다시 부처님께 찾아가서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부처님의 빽으로 낮에 걸식을 한 밥을 들고 지옥의 모친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순식간에 모친의 앞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순간이동의 기능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만 하고 있는 낭월이다.




"여기에 청제부인이 있으면 나오시오."


"내가 청제부인이오만 뉘기요?"


"아이고 어머니 아들입니다."


"글세.... 내 아들은 스님이 없는데...."


여하튼 밥을 조금 드리고 다시 기도를 하고 천도재를 지내고 어쩌고 했는데, 그 모친이 인간으로 환생을 하기 이전에
개가 되어야 한다는 법칙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어느 곳의 강아지로 태어난 곳을 밥그릇을 들고 찾아가서 울고있는 강아지에게 밥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디까지 다 믿어야 할지는 모를 일이고 벗님들께 강제로 믿으라고 권할 생각도 없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낭월이가
알고 있는대로 전달만 해 드리는데,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고통을 잠시 쉬면서 개가 되어서 시간을 보내는데 다시 원한의 고통을 주게 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개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면 고통을 갚을 것이므로 개를 잡아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말을 보게 되면 인도에서도 개는 잡아먹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으로 와서 생긴 이야기가 되 가능성도
많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개와 사람이 그렇게 가깝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으리라고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놓고 보건대 불교인들은 어느 이야기를 생각하거나 개를 잡아먹기는 좀 껄쩍지근할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3. 개와 한국인


개는 그냥 개일 뿐이고 하나의 총명한 가축일 뿐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한국적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키우다가 양식이 부족하거나 기운이 딸리면 그대로 잡아서 삶아 먹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짐작은 충분히 하겠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봐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개가 맨발로 방을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개에게 옷을 사 입히고 껌을 사주고 미장원에 데리고 가며 병원에서 수술을 해주고 치료하는 것은 아마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고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아마도 개에 대해서 이 정도로 생각을 했다는 것에는 벗님도 동의를 하지 않으실까 싶다. 그래서 개에 대한 말에는 대체로 좀
비하시키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한번 함께 생각을 해보시도록 하자.



개 같은 놈, 보다 더 심한 것은 개만도 못한 놈, 혹은 개놈, 또는 개잡놈, 거의 같은 의미일 것이다.
(여자에게는 놈자 대신에 다른 글자를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떡, 개밥에 도토리, 개털, 개판, 개똥같은 소리,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똥상놈, 그냥 망나니보다는 개망나니, 개새끼, 좀 점잖게 하는 말은 狗子, 개차반, 개소리, 뭐 또 있을 텐데..... 이거 아무래도 손이 좀
지저분해지는 기분이라 이쯤에서 줄이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좀 칭찬이 포함된 말은 개코 정도가 아닐까 싶다면 개는 그렇게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언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애견협회에서 돌 날아올까 겁난다.........




4. 다른 나라의 개 모습


다른 나라라고 하여 전 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개를 자기 부모나 자식 섬기듯이 하는 나라의 일부
사람들에 해당하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개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는 나라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노력을 본받고 있는 것이 어쩌면 좋은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다음 생의 인과응보를 생각한다면 아마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쩌면 다음 생에 태어나는 그 개는 더욱 충성으로 은혜를 갚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인과의 법칙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또 이러한 점도 생각을 할 나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하튼 오늘 낭월이가 하는 이야기는 그야 말로 '개소리'이므로
과히 마음에 새겨두지 말라는 말씀을 다시 중간에서 강조하게 된다.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일부) 서양인들이 개를 섬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분의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밝히지는 않겠다. 지금 문득 생각이 나는 내용을 조금 적어보고 말 참이기 때문이고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지도 자신이
없어서이지만 여하튼 이러한 책이 출판사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다는 말씀은 드린다.



'서양인들이 개를 섬기는 것은 개가 그들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그 들은 개의 자식이기에 조상을 섬기듯이 그렇게
개를 섬기고 한국의 사람들은 개는 어디까지나 가축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할 뿐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야만인이라서 개를
잡아먹는다고 비난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 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남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참 무례한
사람들인 모양이다. 하긴 예의라고 한다면 역시 동방예의지국이 아니겠는가만 해도 너무 하는 것은 참 돈푼 깨나 있다고 어지간히 시끄럽다. 그 들의
조상이 개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 그 들의 습관을 보면 알 수가 있겠는데, 우선 개는 늘 목걸이를 하고 있어야 되는 것은 주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손들은 조상님이 해 오신 대로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목걸이를 미화시켜서 넥타이라고 하고 또
보석으로 장식도 하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이며 여자의 목걸이도 어쩌면 그 개목걸이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하겠다. 남자는 넥타이로 여자는
목걸이로, 그렇게 조상의 자손이라는 것을 기념하고 있다.


또 음식을 먹는데 한국 사람은 오목한 그릇에 담아서 먹는데 그 들은 조상이 개이기 때문에 접시에 담아야 먹기가
좋은 것이다. 왜냐면 핥아먹기에는 역시 사발보다는 접시가 좋기 때문이다.(이거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더 생각나는 이야기도 있는데 생략하도록 한다. 어쨌거나 서양에서 개에게 쏟는 정성은 참 대단하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것을 한국에서도 도입해서 그대로 흉내를 내는 것은 역시 세상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재미가 있는 것은 참 사람이
보기에 따라서는 별 것도 이상하게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하나의 학문을 놓고서 각기 다른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늘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의 눈에도 같은 현상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각기 다른 주인이 그 속에
들어있으니 오죽 차이가 나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



5. 개 팔자


사주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귀가 번쩍 트이는 말이다. 개팔자라니? 개같은 팔자란 말인가? 좋다는 말인가? 나쁘다는
말인가? 생각을 하기에 따라서 해석은 달라지겠지만 여하튼 이런 말이 있으니 그냥 둘 수는 없겠다. 여기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자. 그리고 영화
제목에도 그런 말이 있었던 것같다. '개같은 내인생'이던가? 그래서 그냥 더러븐 인생을 살고 있나보다 하는 생각만 했는데, 후에 들어보니까 그
말은 행복하다는 서양식 표현이었다고 누가 전해준다. 참 혼란스러운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개팔자는 좋다는 말인가 나쁘다는
말인가....



'개 팔자가 상팔자여~!'


음 그렇다면 좋은 팔자라는 말인 모양이다. 좋다는 의미는 먹고 자는 팔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따스한
양지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개를 보면서 아마도 삶에 지친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했음직도 하다. 그래도 사주를 보러 온 사람에게 운이 좋다고
해서 "당신 팔자는 개같은 팔자네요. 좋습니다~!" 했다면 아무래도 상담료를 받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하하~




時 日 月 年


庚 辛 丁 庚


寅 巳 亥 辰


이 팔자가 감로사 장돌이가 낳은 세 마리의 새끼 강아지들의 팔자이다. 참 소개가 늦었는데, '정열과 무아'라고
하는 좋은 친구가 자신의 진돗개 부부가 새끼를 낳았다고 하면서 한 쌍을 줬는데, 그 녀석들이 무슨 일을 벌렸는지 세 마리의 새끼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무아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처음의 발정기에는 새끼를 배지 않도록 하라고 했는데 그 부탁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고 또
사실 자연의 상태에서 그렇게 놀았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할 것도 같아서 막지를 못했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게나.


어디 개팔자 좀 보자. 신사일주이니 충성심 하나는 똑소리 나겠구나. 그리고 경쟁심을 보니까 서로 어지간히도 싸우게
생겼고 편관이 있는 것을 보니 기억력도 좋아서 훈련소에 보내면 교육은 잘 받을 모양이다. 다시 사해충을 보니 싸돌아 댕길 모양이고, 아마도
개집에서 묶여서 일생을 보내지는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그리고 인성이 약한 것을 보니 에미덕은 별로겠다. 누가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그
놈도 활발하게 잘 살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물론 농담으로 개같은 소리를 좀 해보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는 사람의 운명은 논해도 개의 운명은
논하기 어렵다고 하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은 또 이야기가 이야기니만치 그렇게 걸고 넘어져 보는 것이다. 여하튼 개팔자 치고는 그만하면 되었는데,
내친김에 이 시간에 태어난 아기를 위해서 용신을 찾아본다면 신약용인격으로 토를 찾아야 할 모양이다.



6. 고마운 개


개 중에서도 참으로 고마운 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맹인안내견이 아닌가 싶다. 이 개들이 안내를 하는 것을 보면
과연 개만도 못한 사람이 참 많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고 그를 개라고 해서 무시를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도 절로 든다. 안내견으로의 자질로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고, 또 너무 주인에게 충성을 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물고 달려들어도 곤란하고, 주변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무관심해야 하며, 오로지 주인에게만 집중을 하고 주인의 분부를 정확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더욱 놀라운 능력은 주인이 위험한 지경으로
명령을 내리면 절대로 따르지 않아야 하는 것까지도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참 대단한 개라고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면서 우리는 개를
너무 푸대접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동물의 출입을 금하는 고급 식당에서도 안내견은 출입이 허용된다고 하니까 과연 대단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품종은 세상에서 두 가지 뿐인데, 놀랍게도 한국에서도 그 가능성이 있는 개가 있다고 하는
방송을 보고서 내심 참 대단한 발견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개는 일명 '동경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하는데, 특징은 꼬리가 없다는 것이다. 혹 벗님들 주변에서
꼬리가 없고 누렁이나 백구로 진도와는 다른 품종을 발견하셨다면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어쩌면 동경이 일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순하고
집중하며 영리해서 훈련소에서 일 개월을 교육시켰는데 그 과정을 적응한다는 것이다. 실은 이 방송을 보면서 개타령을 해보고 싶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런 개야말로 발굴해서 시각장애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7. 후렴


개소리는 이 정도로 하구 줄여야 하겠다. 어제는 서울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어느 찻집에서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
주시는 차를 한잔 마셨다. 안국동의 조계사 부근에 있는 '끽다거(喫茶去)'라는 상호가 있길래, 그냥 찻집으로 알고 들어갔는데, 끽다거는 '차를
마시고 가시오'라는 말이다. 혹 처음 들어보신 말이라면 한자에 끽자가 있다는 것도 처음 들어보셨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기는
하지만 뜻이야 아무래도 좋겠다. 원래는 서예를 하시는 분이셨는데 차가 좋아서 차를 보급한다고 하시는 말씀에서 여유로움을 느꼈다. 혹 벗님들이 그
부근을 지나치실 시간이 있다면 들려서 공짜로 맛있는 차를 얻어 마시라고 귀뜸을 해 드리는 것이기도 하다. 원래 쿠폰이나 그런 것도 있는 모양인데
낭월한담에 들리는 인연으로 드리는 공짜쿠폰 정도로 생각을 하셔도 되겠다. 물론 차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셔서 입만 즐겁기보다는 마음도
즐거운 차를 드시기 바란다. 아무래도 차를 나누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도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개소리는 아닐
것이라는 분위기 파악을 좀 해본다.



그나저나 또 어떤 분은 전화를 하셔서 개 타령은 낭월한담의 품위를 손상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삭제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그냥 용감하게 올려버리고는 모른척 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을 작정이기는 하지만.



2000년 11월 23일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