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어떤 방생

작성일
2000-09-11 00:00
조회
5136
어떤 방생


제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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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생



이제
가을 바람이 긴 옷소매가 생각하는 계절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이렇게 냉 기운이 슬며시
파고드는 계절이면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어 잠시 옛날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 참이다.


 


 

통도사
극락선원에서의 행자 시절에 만난 사람 중에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나이는 낭월이와
동갑이었으니 당시 그도 17세 였을 것이다. 남자인데 키는 120미만이거나.... 그 정도였다.
그의 이름은 여기에서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냥 김처사라고만 해두자. 낭월이보다 삼사개월 늦게 입산을 했는데,
입산을 한 목적은 출가를 하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열심히 시키는대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다. 행자 생활이 힘에 겨울 적이면 늘 사진을 한 장 꺼내어서 들여다
보곤 했는데, 무슨 사진인가 하고 들여다 보면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초라한 산소를
찍은 사진일 뿐이다. 어떤 인물을 기대했다가 그 사진을 보면 의외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의 부친 산소라고 한다. 그리고 낭월이가 계를 받아서 사미승이 되었을 적에 그 친구는 낭월에게
성불하라는 말과 함께 스님에게 하는 예를 갖추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산을 떠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그를 상좌로 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신체가 정상이 아니면 출가를 할 수가 없다는 부처님의 계율이 더 장애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낭월이는 당시에도 그 점이 못내 안타까웠다.


 


 

'다
같은 생명이고 불성(佛性)인데, 어째서 키가 작다고 해서 출가를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단 말인가. 허우대만
멀쩡하고 그 껍질을 이용해서 오히려 남을 등쳐먹고 살아가는 땡댕이 화상도 얼마나 많은데,
어째서 불타(佛陀)는 그러한 외모에 비중을 두는 계율을 만들었을까..... 과연 부처가
그러한 계율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일체 만물이 개유불성이라고 한 말씀과
모순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하겠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자비문중의 올바른 선택일까...'


 


 

등등의
생각들을 많이 했지만 당시로써는 낭월에게 그러한 점을 말할 형편이 되지 못했고 그냥
그 친구를 산문 아래까지 바래다주는 것으로 아픈 마음을 달랬을 뿐이다. 그리고는 떠돌이
맛에 취해서 그 친구는 또 잊어버렸다. 그렇게 남의 고통은 금새 잊혀지나보다. 그렇게
인연을 뒤로 한 채로 24~5세나 되었을까.....


 

동해안의
양양군에 죽도라고 하는 조그만 섬아닌 섬이 있고 그 섬의 한쪽에는 죽도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그 암자의 주인은 여승인데, 인연이 있어서 한해를 그 곳에서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늘 바다를 좋아했던 낭월에게는 그 시간들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물론 해수욕철에는 다소 분주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들은 이내 지나가버리고 다시
조용해지는 해변의 한가로움은 그대로 스스로 해상선인(海上仙人)인냥 착각에 빠지게
했고, 해가 빠지고 나면 경비하는 군인들의 모습에서는 또다른 향수를 느끼기도 하여
가끔은 공양주 보살님이랑 먹을 것을 들고 초소를 불법방문 하기도 했던 기억도 난다.
특히 부슬비가 내리는 밤에는 그 들이 절의 추녀 끝에서 비를 피하면서 총을 들고 절을
지켜주기도(?) 했으니 그대로 호법신장 이었던 셈이기도 하다.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야밤에 외출이라도 하다가 돌아올 적에는 영락없이 들어야 하는 소리는
다소 피하고 싶지만....


 


 

"철커덕~~!!
누구야~!! 손들엇~~!!"


 


 


어느 날 문득 이 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김처사가 찾아왔을
적에 한 눈에 그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은 그 특유한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은
벌써 몇 년이 흘러갔지만 보자마자 바로 알아볼 정도의 가까운 사이었으니 낭월이가 생각하기에는
한번 사람을 기억하기는 어려워도 한번 기억을 한 사람은 잘 잊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가끔 해보곤 한다. 요즘도 어떤 방문객은 2년 전에 방문을 했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기억해 내어 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 희망이 얼마나 어림도
없는 것인지는 낭월이를 아는 사람은 다 알고도 남을 일이다.


 


 

"진상
스님을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게
누군가~! 김처사 아닌가. 반갑네. 반가워."


 

"여기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시간을 겨우 내었습니다."


 

"그래
잘 왔구만, 어떻게 살았나 그래!"


 


 

등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는 다소 길었지만 생략하기로 하자. 참 당시에 조계종에서 부르던 법명이
진상(眞相)이었고 이 이름은 존경하는 경봉 노사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이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낭월이의 이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몇몇 벗님도 아직 계시는
셈이다.


 


 

"저.....
진상 스님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
뭔데? 혹 돈이라도 빌려 달라고 한다면 죄송하지만 난 돈은 없는 사람이네 다만 다른
것은 내가 도와줄 수가 있다면 도와줌세."


 

"돈은요
무슨.... 저는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뭔 부탁인데?"


 

"방생을
좀 해 주십사 하고요....."


 

"방생?
아, 난또 뭐라고 방생이야 뭐 어려운 일인가."


 

"수고를
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그 정도야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가 있겠네 그려."


 

"고맙습니다.
그러실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별
말씀을, 그럼 앞의 바다로 내려가세 물이 어찌나 좋은지 몰라."


 

"저.....
산으로 가야 하는데요...."


 

"산?
왜?"


 

"그게......."


 


 

낭월이는
산으로 방생을 가자는 말에 좀 황당해졌다. 보통 방생이라고 하면 물고기를 사들고 물에서
하는 불교적인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산으로 가자고 하는 말을 꺼내기에
아마도 민물고기를 사와서 저수지로 가자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는.... 그러자고 했다.


 


 

"민물고기를
사온 모양이구만. 저수지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저수지로
갈 것이 아닙니다."


 

"그
참.... 도대체 뭐길래 그러나?"


 

"저....
뱀을 사왔습니다."


 

"뱀?"


 

"놀라셨지요?
그래서 부탁을 드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아니,
놀라기는..... 의외라서 그러네, 그런데 어떻게 뱀을 사게 되었나?"


 

"처음에
스님을 찾으러 낙산사로 갔었습니다. 마침 버스에서 내려서 관광단지를 지나가는데 생사탕집이
있고, 그 집의 진열대에서 뱀들이 한테 엉켜있고, 큰 가마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뱀을 먹으려고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과 진열대의 뱀들과 저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그 들의 눈빛이 저를
보는 눈과 뱀을 보는 눈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왠 난장이 놈이 구경을 왔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순간 뱀들의 모습에서도 처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진상스님은
이런 기분을 잘 아실 겁니다. 에전에도 자상한 성품을 갖고 계셨으니까요."


 

"아
물론 알고 말고, 이해가 되네. 그래서 뱀을 방생하기로 했던게로구나."


 

"그렇습니다.
뱀을 보니 그 놈의 신세나 내  신세나 서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나를 볼 적에도 뱀을 보듯이 하거든요. 그래서 남들은 물고기를 방생한다지만 저는 뱀을
방생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잡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많았으면 더 사는
건데 돌아갈 차비는 둬야 하겠기에, 스님을 만나면 소주라도 한잔 대접하려고  준비한
돈을 모두 써 버렸습니다. 미안합니다."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한 슬픔을 느꼈었다. 소주 한 잔을 대접하고 싶었다는 그 마음과
뱀을 사느라고 모두 털어 넣은 장면이 겹치면서 소주를 먹는 것보다 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방생을 하려거든 혼자 산으로 들고 가서
풀어줄 것이지 여기까지 들고 오느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뭐,
혼자 산으로 들고 가서 풀어 줄까도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스님을 만나서 그
우렁찬 염불 소리를 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혹시라도 다시는 뱀으로
태어나지 말고 염불 소리를 들은 인연으로 좋은 몸으로 태어날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지요. 그래서 스님께 귀찮은 일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도
저를 위해서 한번 수고해 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사실 이 방생은 저를 위해서 하는
방생이기도 합니다. 저도 다음 생에는 좀 좋은 몸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낭월이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얼른 가사장삼을 챙겨들고 그를 인도해서 산으로 나섰다.
나서는 뒤꼭지에 대고 그 절의 주지스님인 여승은 외쳤다.


 


 

"에구...
저~ 멀리~~ 먼데다 방생하라구 집으로 들어오지 않게~!"


 


 

물론
그러마고 하고서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20미터 전방에 그 자루를 놓으라고 하고는
천수경과 방생 염불을 외웠다. 그는 옆에서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그 녀석들을
놓아줄 순서가 되었다.


 


 

"이제
가서 살짜기 푸대를 뉘어 놓고 오시게. 조심하고...."


 

"예,
알겠습니다. 설마 그 녀석이 살려주는 저를 물겠습니까."


 

"그래도
축생은 미물이니 조심은 하시라구."


 


 

그러면서
계속 염불을 했는데, 그 친구는 자루를 그냥 벌려 놓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들고 툴툴
털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살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보였다. 염불하는 마음이 일심으로
정돈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낭월이가 아직도 중물이 덜 들어서였겠지만 왠지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그냥
두고 오라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 멍청한 놈들이 자루에서 나올 줄이나 알겠어요. 그래서 아예 꺼내줘야 할까
봅니다. 어서 나오너라."


 


 

물론
염불을 다 할 동안에도 그 뱀들은 엉켜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친구에게 감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또 혹 어쩌면 낭월이가 외우는 불경을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염불을 마치고 돌아오는 걸음은 아무래도 낭월이가 빨랐다. 원래가 빠른 걸음걸이에다가
아무래도 그 녀석들이 신경이 쓰여서 말이다. 흐흐~


 


 

그리고는
하루를 묵어서 그는 떠나갔다. 여비에 보태라고 약간 있는 용돈을 줬지만 한사코 받지
않고 그냥 갔다. 고맙다고 하는 말은 남긴 채로.


 



후..... 그로부터 적어도 20여년 가까이 지났나보다.....



누가
인연은 무섭다고 했던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그 말은 과연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 놀라운 친구는 감로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왕초보사주학을
보다가 문득 누군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낭월 스님을 찾아 왔노라고
했다. 물론 낭월이는 그를 또 첫눈에 알아봤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찾아온 그는 낭월이를 찾아온 것이지 진상스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책을 보다가 문득 어떤 스님이 이렇게 글을 썼을까... 싶어서 찾아온 것이 또 이렇게
만나는 것이었다. 과연 인연은 참으로
질긴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도 떠나지 않을 것이니까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는 말을 하고 역시 하루 쉬어서 갔다. 감로사에서 출가를 하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할 참인데 아마도 나름대로 터전을 마련했던 모양이다. 그 사이에도
그는 많은 세상의 어려운 공부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잖아오 나이가 들어보이는
보습이 더욱 단단해 보였다. 명리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아직은 어디에 있는지 조용하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 문득 만나려니......


 


 

지금도
그는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또 뱀을 방생했는지는 몰을
일이지만 이렇게 스산한 바람이 파고드는 날이면 문득 그 특별한 방생법회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뱀들도 지금쯤은 아마도 어디선가 낭월이 책을 보면서 오행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홀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본다.


 


 

         庚辰년
추석 전야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