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낭월학당의 개강 첫날에

작성일
2000-09-03 00:00
조회
5362
개강 첫 날에.


제67화
-
낭월 학당 게강 첫 날에......


 


 

장장
두 달 간의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9월 1일에 개강을 했다. 이미 혹시라도
기거할 방이 없을까 싶어서 전날부터 찾아온 새로운 학생들을 마주하고 보니 참으로 낭월이
적성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날에 공부를 하시려고 찾아오신 명리 학도를 보면서 다시 의욕이 나는 것은 천성이 선생
체질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공부를 하겠다고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기대감으로
이 산중을 찾아 왔다는 것에서 더욱 고마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공부를 하시는 방향에 대해서 선생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을 해
드렸는데, 그에 대한 내용을 낭월학당 홈페이지를 찾아 주시는 벗님과도 나누려고 생각
나는 대로 정리를 한다. 약간의 도움이 되시기 바라면서.....


 

 


 

1.
공부를 하러 온 이의 희망 사항


 

 


 

"아마도
이렇게 각기 마음을 일으켜서 감로사까지 찾아오신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보다 명확하게 사주의 구조를 이해하고 조언을 원하는 이에게 적절한 해답을 드리고 싶은
생각이 가장 많으셨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혹은 마음의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감로사에
가면 책에서는 보지 못한 비법을 전수 받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겠네요.
여하튼 각자의 목적이 각기 정해진 시간에 모두 성취하시기를 기원드릴 참입니다. 다만
미리 말씀을 드릴 것은 낭월이의 노력은 아마도 여러 분들의 생각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시작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는 접어 두고 대충대충 알려 드리겠다는
말씀은 전혀 아닙니다. 낭월이가 늘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연의 이치는 노력을
한 만큼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일부 학생의 마음으로는 자신의 노력은 10만큼 하고 결과는
낭월이가 90만큼 채워줘서 완성을 시키겠다고 하는 다부진 욕심을 부리기도 하겠습니다만,
이렇게 되면 스스로 자신에게 속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낭월이는 그렇게 여러
분들의 욕심을 채워드리기 위해서 노력을 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낭월이의 목적은 자평명리학의 이치를 통해서 자연의 원리를 더욱 많이 이해하시게
되는 것을 바랄 뿐이고 그에 대한 과정에서 약간의 도움이 되신다면 최상의 보람으로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말씀은 진심이니까 지금이라도 잘못 생각하고 오셨다면
그대로 일어나셔서 댁으로 돌아 가셔도 좋습니다. 전혀 여기에 대해서 낭월이는 불만이
없다는 점을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라고 했지만 아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는 않았다.)


 

 


 

2.
선생의 역할에 대해서 한 말씀


 

 


 

"낭월이가
여러 분께 명리학을 가르쳐 드릴 수가 있는 것은 스스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부를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나무를 쳐다보다가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았다면 예언은
할 수가 있어도 그 원리를 가르쳐 드리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늘 깨달아 왔습니다만, 아직도 공부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연구하고 임상하면서 깨달아 가야 할 부분이 산처럼 많이 쌓여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낭월이는 스스로 경험을 통해서 얻은 만큼에 대해서만 여러 분께 알려 드릴 수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필요한 것은 어디부터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의 그림을 봐주시면
참고가 되겠습니다.


 

 


 


 

1번은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위치라고 생각을 하십시다. 그리고 5번은 명리학을 완성하는
단계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2번의 경우에는 스스로 독학을 하는 과정으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림이 자꾸만 크게 벌어지고 있군요.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욕심이라고
하게 됩니다. 온갖 것을 다 알아버리고 싶은 것이지요. 그리고 낭월이의 경험담이기도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관상의 공부를 시작합니다. 가장 알기 쉽고 적용하기
쉽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가벼운 마음이지요. 그런데 공부를 좀더 하다 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이번에는 수상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가 보면 나중에는 기문둔갑이나 자미두수나 풍수지리를 기웃거리다가는
심지어 당사주도 보게 되고, 또 나아가서 월령도까지도 기웃거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넓어지는 것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물처럼
흘러간다는 것이지요. 이마도 이렇게 2번의 과정에서 보내는 시간은 각자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적게는 몇 개월에서 대개는 5~6년의 세월이 걸리게 되고 더러는 수십 년을 방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끝도 없는 역학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다가는 자연스럽게 포기를 하게 됩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적에는 밑도 끝도 없는 역학의 그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명라학자의 눈으로 봐서는 탈락이 되는 셈이기도 하네요. 결국은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이 단계에서 포기를 하시는 벗님은 그래도 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포기를 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이제 슬금슬금 발광증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지요.
'미친 놈(년)'이라고 말이지요. 아마도 그런 말 한 두 번 듣지 않고 감로사에 공부하러
오신 분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하~


 

 


 

'이게
뭔가 그 속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스스로 해결을 보기는 어렵겠구나. 그러니까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인가....'


 

 


 

일단
이렇게 생각이 든 다음에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됩니다. 우선 유명하다는 역학자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싶어지고, 다음으로는 제자가 되어서 공부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또 더 나은 선생을 찾아서 그렇게 방황을 하는 '제 2단계'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로소 선생이라고 하는 역할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그
위치에서 많은 미친이들(!)을 기다리고 또 안내를 하는 것이 선생의 역할입니다. 다만
그 와중에서도 최대한 빠른 길로 인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는 좋은 선생도 있고, 가능하면
질질 끌어서 수입을 올리고 싶은 약삭빠른 선생도 있기 마련입니다만 이러한 인연을 만나는
것도 아마 어쩌면 전생의 연관이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을 해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여러 분들도 아마 전생에 낭월이에게 무슨 인연을 맺었던가 봅니다. 이것이 앞의 그림에서
보는 3단계가 되겠습니다.


 

물론
마땅한 선생을 만나지 못한다면 홀로 그 과정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은 많은 시간을 벌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맡게 된 선생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아는 대로 뒤따르는 학생에게 전달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3단계에서 선생에게 지도를 받는 시간은 각자의 인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개는
몇 개월에서 수십 년을 보내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인연이겠지요. 그리고는 선생에게서
다 배우고 나면 또 완성을 향해서 자신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선생은
제자의 늘어 벌려진 학문을 정리해서 가닥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많이 늘어 벌린 학생을 가르치려면 그만큼 힘이 들겠네요. 물론 그것도 또한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공부에 대한 방향을 잡았으면 그대로 완성을 향해서 홀로 나머지 길을 떠나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해서 선생은 그냥 잘 가라는 말 한마디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는 이제 흔들리지 않고 나날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게
되겠군요. 묘한 것은 공부가 정리가 될수록 시야는 넓어진다는 것이지요. 공부가 넓어질수록
시야는 좁아진다는 묘한 현상을 느끼곤 하는군요. 한 방면에서 나름대로 완성을 이룬
사람과는 말이 되는데, 다양하게 시도만 하고 있는 사람과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앞에 보여드린 그림의 폭과 시야는 반대라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이런 것도 생각을 하면서 공부하면 더욱 재미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면, 즉 원하는 공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또 다른 선생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물론 인연에 따른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여하튼 그 부분은 선생의 몫이라기 보다는 제자의 인연에 따른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사실
선생의 입장에서야 제자가 4단계로 접어드는 것이 가장 보람이고 행복이지요. 그러한
즐거움을 알게 되면 선생 노릇도 삼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면서 낭월이의 안내가 그래도 도움이 컸다고 하면 가장 큰 보람이 되는 것이지요. 여하튼
여기까지입니다."


 

 


 

3.
선생은 뗏목일 뿐이다.


 

 


 

"금강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네요.


 

 


 

"제자들아
내 말을 안내자로 삼아서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내 말이 좋아서 영원히
그 속에 잠겨 있을래? 그렇게 되는 꼴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겠구나. 이런 이야기를
해주마.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큰 강을 만났더란다. 그런데 혼자서 강을 건널 수는
도저히 없는데 마침 물결을 타고 뗏목이 흘러왔단다. 그러자 그 나그네는 그 뗏목을 의지해서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냐. 여기에서 한번 생각을 해 보자꾸나.
이 나그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하겠냐?


 

 


 

1)
뗏목이 너무 고마워서 짊어지고 다시 길을 간다.


 

2)
잘 이용했으니 고맙다고 하면서 홀로 길을 간다.


 

 


 

여기에서
물론 현명한 나그네라면 뗏목은 버리고 길을 갈 것이지만, 어리석은 나그네라면 정말
뗏목을 짊어지고 갈지도 모르겠구나. 부디 너희들은 부처의 말이 좋다고 해서 영원히
짊어지고 다닐 생각은 하지 말거라.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고 나면 그 자리에서 내 말은
버리고 신세 많았습니다. 고마웠고요. 하는 말로 답례를 한다면 나는 그대로 즐거울 것이니까."


 

 


 

부처님의
가르침도 이러합니다. 그는 제자들이 자신의 추종자가 되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염려한
것이지요. 낭월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필요한 만큼의 공부를 하시고서는 그대로
자신의 길을 가시면 됩니다. 괜히 낭월이의 음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속에 갇혀 버린다면
참 딱한 일이지요. 여하튼 빠른 시일에 자유로워지시기를 바랄 뿐이네요. 다만 아직도
선생의 도움이 필요한데 무리해서 혼자 길을 가겠다고 옷을 벗어붙이고 뛰어드는 경우라고
한다면 조금 더 신중하시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략
이러한 이야기를 해 드렸다. 늘 그렇듯이 낭월이로 인해서 올바른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는
길에 시간의 단축을 가져온다면 그보다 고마울 일이 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낭월이도
그러한 선생을 만나기를 늘 꿈꾸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벗님의 공부 길에도 좋은 스승을
만나는 큰복을 누리시라고 기원드리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느껴지기도 하는 일요일 밤의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에,
문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것은, 혹시라도 낭월이가 잘못
인도함으로 인해서 두고두고 원망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책임감이 천근은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벗님께서 낭월명리학당을 아껴주시는 인연으로 금년 가을에는 자평학의
내공이 10배는 증진되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그리고 정말 낭월이도 멋진 스승을
만나서 올 가을에는 자연 공부에 마침표를 찍고 싶기도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가당찮은
망상인지는 진작에 알고 있으므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것은
아마도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자연을 가르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일게다.
그래서 위대한 스승님들께 머리를 숙이게 된다. 거룩하신 스승님들이 아니었다면 어찌
요만큼의 행복인들 맛 볼 수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이다. 그만 쉬고 내일을
준비하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