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탑과 빈배 그리고 팽이

작성일
2000-09-13 00:00
조회
5134
탑과 빈배


제69화
-
탑과 빈배 그리고 팽이


 

오늘은
과연 철학자다운 생각으로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였으니 바로 탑과 빈배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봤던 것이다. 그에 대한 말씀을 해 드리면서 벗님도 함께 낭월이 생각에 동참을
기대하는 것이다.


 

 

1.
탑(塔)은 내 중심이다.


 

 

절에
가면 흔히 바라다 볼 수가 있는 것이 탑이다. 그리고 탑의 역사를 보면 불상보다도 더
오래 되었다고 하니까 과연 불교의 상징으로 생각을 해도 될 일이다. 그리고 그 불교의
상징으로 의미를 갖는 탑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것인데,
과연 말이 된다면 벗님의 판단력에 찬사를 보낼 참이다.


 

탑은
어느 탑이거나 나름대로 중심이 잡혀 있다. 큰 탑은 큰 대로 작은 탑은 작은 대로 그렇게
자신의 중심을 잡고 의연하게 서 있다고 하면 되겠다. 그리고 전란으로 인해서 절반은
날아가고 있는 익산의 미륵사지 탑이나 포격으로 많은 부분이 손상된 양양의 낙산사 탑도
역시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그렇게 버티고 있음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 힘은 아마도 중심(中心)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과연 탑이 중심을 잃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도
한번 생각을 해보시면 될 일이다. 탑이 중심을 잃고 있으면 버틸 수가 없다. 탑 중에서
중심을 잃고 있는 탑도 있기는 하다. 다 아시는 대로 피사의 탑이라고 하는 물건 말이다.
그 친구는 삐따닥하게 서서도 중심을 잡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봐도 실패작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낭월이 생각이다. 그 탑이 당장은 그렇게 서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심이 잡혀 있는 탑은 아름다운 모습을 띠게 된다. 그리고 중심이 잡혀 있는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러 곳에서도 발견을 할 수가 있으니 다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아이들이
팽이를 돌리면서 놀고 있다. 낭월이도 어려서 팽이를 많이 갖고 놀았다. 팽이감으로 소나무를
잘라서 깎다가 손가락을 많이 베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가는 팽이를 보면서 흐뭇한
기분을 갖는 것은 창조자의 몫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즐거운 놀이 감에서 또한
철학의 의미를 찾게 될 줄은 또 몰랐던 일이다. 팽이는 중심이 잡히지 않으면 돌지 않는데,
몇 바뀌 핑그르르 하다가는 이내 나동그라진다. 그러면 어디가 원인인지를 다시 살피면서
손질을 해서 완전히 중심이 잡힐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도 또한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하긴 요즘의 팽이들은 기계에서 완전히 중심이 잡혀서 나오고 있으니 이러한
즐거움은 이미 없어졌다고 해야 하겠다. 생각을 해 보시라. 어린 아이가 중심이 잡히지
않는 팽이를 요리조리 살피면서 어디에 군살이 더 붙어 있어서 그런지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낭월이는 이렇게 혼자서 노는 방법을 즐기면서 자라다 보니까
팽이 하나에도 이력이 붙게 되어서 동네 아이들의 팽이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더러는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역시 식신(만들어서)생재(돈을 버니)는 못 말리는 모양이다.
하하~


 

음,
이야기가 또 엇길로 들었다. 다시 원상대로 돌린다. 그 팽이가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과연 중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 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늘 흔들리는 중심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흔들리면서 돌아다니더라도 늘 중심이 잡혀 있는 것은 그대로인
것이다. 이 팽이의 중심과 탑의 중심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서로의 공통점은
중심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상관없이 중심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살피는 것으로 팽이에 대한 공부는 줄인다.


 

 

그렇다면
불교도들은 왜 탑을 쌓았을까? 그야말로 순수한 종교적인 차원에서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느라고
한 일일까? 아마도 상당수의 탑은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러는 자신의
재물이 많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탑은 그렇게
중심의 설법을 하기 위해서 마련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중심이 필요할까? 과연 그 중심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낭월이가 벗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시간이다. 과연 중심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 대목을 살피시기 전에 스스로
중심에 대해서 적어도 1시간 정도만 생각을 해주신다면 혹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그러한 노력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러한 시간을 위해서
약간의 공백을 둘 참이다. 생각을 하신 다음에 다시 읽으시는 것이 좋겠다.


 

 

........................................ .......................................................................


 

 

이제
다시 이야기로 들어가도록 하자. 여기에서의 중심은 바로 자신의 중심을 의미한다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놓고 생각 해보도록 할 요량이다. 벗님의 중심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중심이 반듯하게 서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아니면 중심이 없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곰곰 살펴보시기 바란다. 과연 중심이 잡히고 말고의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를 하시는 것으로도 충분하리라고 본다.


 

 

1.
중심을 잡은 사람


 

 

우선
중심을 잡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어떤 사람이 중심을 잡은 사람일까?
재물을 산처럼 쌓아 놓고 지위가 장관 급에 도달했다면 중심을 잡은 사람일까? 아마도
그런 사람을 두고 출세를 했다고는 하겠지만 중심을 잡았다고는 하지 않아야 옳을 것이다.
낭월이가 생각하는 중심을 잡은 사람은 아무 곳에도 의지를 하지 않은 사람을 두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낭월이가 좋아하는 많은 인생의 선배님들은 모두 남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중심으로 삶을 살았다고 하는 점을 살필 수가 있었다. 우선 부처가
그렇다. 그는 아무 것도 의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자와 장자도 그렇다. 스스로 자신의
중심이 되었을 뿐이고 남을 의지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다시 경봉 노사님도
자신의 중심에서 살다가 떠나셨고 성철 스님도 그렇게 자신의 중심에서 삶을 누리고 가셨다고
생각이 된다. 나름대로 자신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만한 존경을 받는 것이라는
점으로 이해를 하였는데, 낭월이가 혹 잘못 생각을 했다면 한 수 일러 주시기 바란다.


 

이렇게
중심이 잡힌 사람들은 남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늘 스스로 모든 일을 시작하고 끝맺는다.
그리고 일이 잘되거나 말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물론 원망을 할 이유가 없다. 모두는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망은 중심이 없는 사람이 하는 오류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를 욕했다.


나를 비웃었다.


나를 꾸짖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영원히 편안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원망은 원망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원망을 잊는 것 만이 가장 지혜롭다.


원망은이 없을 때에 비로소 편안해 진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이다. 원문 그대로인 인용은 낭월이 생각에는 없다. 나름대로 각색이 되었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의미는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원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중심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심이 잡히지 않은 사람을 두고 생각 해보도록 하자.


 

 

2. 중심이 잡히지 않은 사람


 

 

"자기 나 사랑해?"


     "그~럼, 당신은 영원한 나의 태양인걸~!"
"아이 좋아, 그 마음 영원히 변하지 마."
 

 

흔히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하는 평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낭월이가 보기에는 천만의 말씀이다. 너무나 위험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깊이 생각 해보면 이내 알 수가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과연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면 그 것은 중심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신에게 있는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 중심은 이미 연인에게 있는 것이다.
그게 뭐 어쨌느냐고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중심의 차원에서
관찰을 한다면 이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중심을 잃고 있기 때문에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한다면 말이다.


 

자기가
나를 사랑하거나 말거나 그 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냥 스스로 남자가 좋으면 그렇게 좋아하면
그만인 것이다. 스스로의 중심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빠져들지도 않는다. 그냥 잠시 생각을
할 수도 있겠고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의 말을 봐서는 중심을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머지 않아서.


 

 

"자기 나 사랑하지 않아?"


 

 

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상대방은 언제나 새로운 여인을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믿기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도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의 남자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 남자도 역시 중심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태양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인에게 그녀는 태양이라고 했으니 태양의 의미는 내 중심이 당신이라고
하는 말이나 같은 의미이다. 더구나 아침저녁으로 변하기 쉬운 사람의 마음을 두고 영원히
변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도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다. 언제든지 더욱 밝은(예쁜) 태양이
나타난다면 중심은 다시 옮겨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게다. 이 남자의 마음이 중심을
잡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로써도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여자의
마지막 말은 완전히 족쇄를 채우려고 든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물며 자신의 연인이 영원히 변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변화를 할 수가 있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에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이야 하물며 더 말해서 뭣하겠는가.....


 

아마도
두 연인은 또 얼마가 흐르고 나면 다른 상대방을 만나서 또 그렇게 전의 연인에게 한
말을 반복하면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심이 잡힌 연인들은 어떻게 사랑
다짐을 할까도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자기를 만난 인연에 감사해."


 

"그래 우리 인연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하자꾸나."


 

"고마워 나도 노력할께."


 

 


대략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느 쪽이 중심이 잡힌 것으로 생각이 되시는지?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틸 것으로 생각이 되시는지? 낭월이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은 아마도
어쩌면 이번 생에는 늘 함께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원망을 하지 않을
것은 확실하고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벗님도 그러한 생각이 드셨기를 바란다.


 

 

사람과
사람이든 사람과 물질이든 사람과 정신이든 상관없이 중심이 잡히지 않으면 쓰러지게
된다. 낭월이에게 찾아와서 낭월이를 세상에서 둘도 없는 스승으로 생각하고 오로지 스님만
따르겠다고 맹세를 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러나 낭월이는 그런 사람이 전혀 반갑지
않다. 왜냐면 그는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별로 오래지 않은 시간에
또 다른 선생을 찾아가서 그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왜냐면
중심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어디나 의지를 할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중심이 없는 것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니 앞의 연인들이
얼마나 불안하겠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신다면 이제야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아실 일이다.
이것이 낭월이가 탑을 보면서 그리고 팽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중심의 모습이다. 동의를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중심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을 한다.


 

 

3.
빈배는 또 무엇인가.


 

 

빈배의
이야기는 장자가 한 말이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여서 낭월이가 가끔 생각하곤 하는
내용이다. 혹 벗님이 그 내용을 모르실까봐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 드리도록 하겠다.


 

 

어느
사람이 강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 책도 보고 시도 읊조리면서 즐기다가는 잠이 들었다.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배의 여운으로 잠이 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잠결에 자꾸 누가 배를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점차 횟수가 잦아지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한 사람은 그만 나중에는 참지를 못하고 호통을
치면서 뛰어 나갔다. 그리고 그 배를 향해서 욕을 하려다가는 문득 멈췄다. 그 배는 빈배였던
것이다. 빈배가 바람이 부는 대로 떠다니는데, 자신의 배가 그 배와 부딧치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은 그만 혼자서 웃고 말았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그 여운은 대단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빈배는 그렇게 강력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져서 말이다. 장자는 그렇게 빈배가 되라고 했다. 아무것도 담지 말고
아무도 태우지 말고 그렇게 빈배처럼 살아가는 것이 무위진인의 삶이라고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빈배의 중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처음에는 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막상 알고 보면 중심이 없는 그것이 엄청나게 큰 중심이 된다는
것을 중국 사상에서는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태극권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태극권은
중심이 없는 것으로 중심을 삼는다. 빈배와 완전히 일치하는 사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권투와 같은 것은 중심이 너무나 뚜렷하여 두 관계는 그대로 불을
보듯 차이가 나타난다고 하겠다.


 

 

'虛虛實實(허허실실)'


 

 


말이야말로 빈배나 태극권이나 팔괘장이나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이해를 하게 되는
용어이다. 중심이 없음으로 큰 중심을 삼는 것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경에서도
허에 대해서 심오한 사상을 전개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올선생이 잘 깨달으신
것으로 짐작이 된다는 말씀을 낭월한담 어디에선가 말씀드린 기억이 난다. 살펴보시기
바란다. 여하튼 중국의 도가 사상에는 늘 그렇게 흔들리는 것에서 중심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는데, 이것은 인도에서의 탑과 서로 비교를 해서 참 대조적이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팽이에서는 더욱 놀라운 사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데,
좀더 두고 보도록 하자.


 

 

4.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탑과
배를 비교해보면 참으로 대조적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싶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같은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직관력이라고 해야 하겠는데, 낭월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선인들이 이치를
깨달아 가는 직관력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 中心 (唯心) - 自然


 


- 中身 (唯物) - 自然


 

 

이렇게
구분을 해놓고 생각을 했다. 물론 낭월이 생각이다. 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 중국의
철학가는 배를 생각하게 되었고, 몸에 관심이 없는 인도의 철학자는 탑을 생각해 내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우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과연 몸의 중심은 그렇게 생각 없이
흔들려야 제격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미 앞에서 마음의 중심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봤기
때문에 생략을 하거니와 과연 이 몸을 빈배처럼 환경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흘려 보낼
수가 있다면 그대로 양생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자고 싶으면 자야 하는
것이 빈배의 마음이다. 그리고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하는 것도 빈배의 마음이다. 그 뿐이다.
남보다 많이 먹겠다는 생각이나 남보다 먼저 가겠다는 생각은 빈배에는 없다. 그리고
우리 몸도 그렇게 유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면서 몸의 중심에는 빈배가
제격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빈배를 대체하는 설명으로는 갈대도
있고, 취권도 있다. 모두 빈배와 유사한 용도로 사용된 의미라고 이해를 하고 싶다. 흔들흔들
그렇게 자유를 누리는 소화자 영감의 행동에서도 빈배를 느낄 수가 있겠는데, 역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각이 빈배가 되지 못하다 보니까 은원에 얽혀서 싸움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기는
하지만 또한 그만한 빈배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5.
팽이는 뭣을 의미하는가?


 

 

물론
팽이는 한국의 철학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물건이라고 이해를 하고 싶어진다. 다른 나라에서도
팽이를 돌리기는 하겠지만 여하튼 낭월이는 팽이의 사상이야말로 음양오행의 소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평명리학을 연구하는 벗님은 반드시 팽이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또한 부산을 피우게 된다.


 

 

팽이
- 心身一如(심신일여) - 宇宙合一(우주합일) - 完成


 

 

너무
거창하다고 투덜거리셔도 상관이 없다. 그냥 낭월이 생각일 뿐이다. 팽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생각이 든다. 내부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마음이라고 하겠고 외부에서 회전을
하고 있는 것은 몸이라고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부의 중심에는 탑이 들어있고,
외부의 움직임에는 배가 보인다면 또한 억지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만 아마도 그렇게
볼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도인은 팽이와
같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도 되겠다. 때로는 뭘 만나서 튀어 오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팽이는 팽이이다.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모습에서
다시 자연을 느끼기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자연을 배우는 것은 어디에서나 관찰자의
노력에 따를 뿐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관찰을 하기만 하면 어디에서도 자연의
모습은 드러난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6.
마무리 삼아서...


 

 

벗님께
당부를 드리고 싶은 것은 늘 스스로 탑과 배를 생각하시면서 삶을 꾸려 가시라고 하는
당부의 말씀이다. 남에게 휩쓸리지도 말고, 너무 자신만을 고집하는 배가되지도 말고,
그렇게 유연하게 살아간다면 남에게 당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또한 억울할 것도 분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과연 이번 생에서 이러한 완성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력을 하는 것이 또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남편을 의지하고,


 

아내를 의지하고


 

부모를 의지하고


 

자식을 의지하고


 

명예를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고


 

과학을 의지하고


 

학문을 의지하고


 

선생을 의지하고


 

그렇게 하지말고


自身을 중심으로


 

自心을 중심으로


 

自然을 중심하여


 

그렇게 살자꾸나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