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스님의 적성에 대하여

작성일
2000-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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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4
 

 


[제57화] 스님의 적성에 대하여



 


 

상담실에서
상담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끔은 수행을 하시는 스님의 질문도 받을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이야기 중에서도 자평명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참고용으로 나눠드리고
싶은 이야기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한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한다.
내용을 살펴보시면서 함께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어느
가을날에 스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그야말로 결실의 계절이었는데 늦으막한 가을에 찾아오신
모습의 품새가 여간 거룩한 것이 아니어서 예의를 갖춰서 맞이를 했는데, 주객이 앉아서
차를 한잔 나누고 나니까 방문을 하신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이다.


 


 

"낭월스님을
한번 뵈려고 왔소."


 

"잘
오셨습니다.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무슨 가르침이 계셨는가 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들려주시지요."


 

"사주를
잘 보신다고 해서 왔소."


 

"외람되이
헛된 소문을 들으셨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고 도반에게 들은 바가 있으니 과히 사양하지는 마시오."


 

"그러시군요.
여하튼 소승에게 질문을 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나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말씀을 해
보시지요....."


 


 

이렇게
주객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어본 이야기는 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한번 풀이를 해 달라는
말씀이었고, 그래서 나온 사주는 다음과 같다. 낭월한담을 찾아주시는 벗님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으시니 한번 사주를 살펴보시면서 무엇이 궁금해서 찾아왔는지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연구에 참고가 되시리라고 본다.


 


 

    時
日 月 年


 

    丙
甲 己 庚


 

    寅
辰 卯 寅


 

69
59 49 39 29 19 09


 


乙 甲 癸 壬 辛 庚


 


酉 申 未 午 巳 辰


 


 

1.
사주의 구조와 용신


 


 

卯月의
甲辰일주라면 일단 이것만으로도 강하다고 해야 할 구조이다. 그리고 時支와 年支의 寅木을
고려한다면 이 사주의 일간 갑목은 매우 왕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야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용신으로서는 金과 火가 있겠는데, 이 둘을 놓고 그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우선 경금이 왕성한 목을 제어한다는 의미에서 후보에 올라가겠는데, 계절은
卯月의 목왕절이다. 이렇게 목이 왕성한 계절에서 태어난 庚金이라고 한다면 일단 약하다고
해야 하겠는데, 더구나 庚金의 입장이 庚寅이고 보면 아무래도 용신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부담이 되어서 희신인 재성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재성은 다시 月干에 있어서
용신 후보인 경금을 생조하고 있는 구조라고 봐서 희신으로 타당하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또한 일의 완급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이 말에 눈치를 채신다면 이미
상당한 안목을 갖추셨다고 해야 하겠다. 이 상황의 己土는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경금은 일단 보류를 하고 다시 火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한다. 여기에서 우선 경금을 생각해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주에 목이 왕하므로 극하는
성분이 가능하다면 우선으로 용신을 고려해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일단
火는 時干의 丙火가 되겠고 사주에서는 식신이 된다. 그리고 그 식신은 다시 앉은자리에
寅木의 인성을 깔고 매우 왕성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월령을 잡았음은 물론이고 목왕절의
甲木으로써는 목화통명(木火通明)의 좋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고 해야
하겠다. 우선 강력한 용신이 일을 잘 처리한다고 보면 여기에서는 경금이 병화에게 밀린다는
것을 판단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용신은 時干의 丙火로
정하고 희신은 火生土의 방향으로 잡아서 土로 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 놓고서 용신의 상황을 살펴보면 식신은 강력하고 좋은데, 재성이 식신과 연결이 되지
않아서 아쉽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러니까 食神格은 틀림이 없지만 食神生財格으로는
미흡하다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며, 이러한 구조를 갖고서 살아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기왕에 내친 김에 대운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는데,
좋고 나쁜 것을 대략 표시해보면 다음과 같음을 이해하겠다.


 


 


乙 甲 癸 壬 辛 庚


 


酉 申 未 午 巳 辰


 


△ △ × × × △


 


× × △ ○ ○ △


 


 

젊어서의
巳午未로 흐르는 지지의 운은 상당히 좋았겠지만 그 외의 운은 대체로 그럭저럭 지나갔다고
하겠고 그 외에 운이 들쭉날쭉하는 것으로 봐서 순탄하게 흐름을 타는 구조는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하겠고, 출가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그렇게 진행이 될 것이라고 보겠는데, 다만
스스로 수행을 하는 것이라면 웬만한 역경은 달게 여길 것이므로 무난하게 진행이 될
것으로 해석을 해봤다.


 

이런
생각을 하고서 다시 스님께 뭐가 궁금하신지를 물었다. 자꾸 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님은 뭐가 궁금해서 오셨군요~!"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버리실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번 생에 도를 통하것소?"


 

"예?"


 

"내가
참선을 하는 중인데, 과연 이번 생에서 화두(話頭)를 타파할 수가 있을지를 좀 봐주시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담담하게 낭월이를 쳐다보시는데 참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도를 통하고 말고가 사주에서 어떻게 작용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혼자 곰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어떻게 수용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생각은 혹 이 스님이 낭월이가 중이라고 하면서 사주 공부나 한다고  하는 짓거리가
하도 눈꼴이 시어서 한판 해 붙이고 싶어서 엄중히 꾸짖음을 내리려고 방문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에 따라서 이야기의
방향을 정하려고 눈치를 살폈다. 그 마음을 이해 하셨는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이렇게
여쭤보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과연 내가 참선을 해서 도를 통할 암시가 사주에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그 점이 궁금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니 달리 생각하지 말고
보이시는대로만 이야기 해주시면 고맙겠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니 비로소 그 의중을 파악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 우선 사주의
구조를 살펴보게 되었다. 함께 생각을 해보시도록 하자.


 


 

2.
참선(參禪)의 적성이라....


 


 

과연
무슨 적성으로 참선을 하게 되는 것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벗님은 어떻게 생각을 하실
것인가? 혹 벗님이 이미 스님이시고 그 참선의 의미를 파악하고 계신다면 아마도 화가
나실런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일단 참선의 공부는 절대무상의 수행법이거늘 사주팔자로
어떻게 왈가왈부를 한단 말이냐고 하신다면 물론 낭월이도 그 속사정을 알만큼 알고 있는지라
일단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 다만 사주적인 학문의 관점으로는 어떻게 이해를
하고 설명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점에 불과하므로 너무 깊이 마음에 두실 필요는 없겠고
그냥 사주쟁이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을 하시면 충분하시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만 살피신다면 잃으실 것은 없다고 하겠다. 각설하고.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내심이 요구된다. 보통의 인내심이 아니고 살을 깎고 뼈를 후벼파는
고통을 참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일단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偏官이 있어야 하게고, 그 편관으로 인내심을 발휘하게 되면
일단 '절구통수좌'라거나, '돌부처'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공부에 몰두를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사주에서는 편관이 있는지를 봐야 하는데, 과연 年干에는 庚金이
버티고 있으니 일단 편관이 있는 셈이다. 다행이다.


 

다음으로는
옹골차게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경봉스님의 말씀을 빌린다면 '은산철벽과도 같은 부동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어떤 장애나 경계가 와서 중심을 흔든다고 해도 일단 처음의 마음(初發心)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버티지 않으면 아침저녁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는 比肩이 필요하다고 하겠는데, 사주에서는 月支의
劫財와 年時의 寅木을 보면 주체성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역시 합격이다.


 

그렇다면
이제 결정적인 요인이 요구된다. 즉 직관력이다. 원래가 참선을 하는 경우에는 노력은
오래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깨달음의 순간은 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아마도 순간적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어서 돈오(頓悟)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문득 깨닫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러한 것은 정인의 성분이라고 하겠고, 참고로
육조대사의 사주라고 알려진 명식을 보면 그 의미를 느낄 수가 있으리라고 본다.


 


 

時日月年


 

壬戊甲戊


 

子午寅戌


 


 


사주에서는 일지의 정인이 그대로 寅木의 생조를 받아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 역력하다. 그래서 아마도 五祖대사의 말씀에, 바로 깨달음이 이뤄지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여하튼 오늘의 주인공이신 스님의 사주에서는 그 정인이 매우 약하다고
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안타까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인내심이나 주체성은
충분하기 대문에 공부는 하겠는데 결정적인 깨달음의 기회를 포착하는 직관력이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과연 적성이 선승(참선을 주업으로 하는 스님)으로 결정을
내릴 수가 있겠느냐는 점에서는 아니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다만 그냥 묵묵하게 수행을
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깨달음을 이루기에는 직관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스님의 공부 방법에 있어서도 다소 간사스러운 것처럼 들리실지는
모르겠으나, 낭월이의 생각으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적성을 먼저 알아보고 나서 참선으로
갈 것인지, 혹은 교리로 갈 것인지 아니면 행정쪽(주지 등)의 방향으로 잡아야 할 것인지를
참고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의 낭비를 줄이는 현명한 판단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3.
적성은 불교학자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지는 사주의 구조라고 하겠다. 주체성과 인내심으로 노력을 하고 식신으로
궁리를 한다면 아마도 한 방면에서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이 스님은 적성검사에서 선승으로는 실격이 된 셈인데, 만약에 미리부터
이러한 상황을 판단하고 나서 참선의 길을 갔더라면 이렇게 50이 다된 나이에 자신의
살아온 30여년의 수행 시간에 대해서 회의심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동병상린으로 안타까움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제방의 선원에서 보낸 각고의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눈물이 나고 가슴이 저밀 일이다. 벗님이 이러한 경험이 없으시다면 그 순간의
시간들을 일일이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도 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렇게
공부하다가는 자살도 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게 되는 정도라고만 헤아리셔도 되겠다.


 

여하튼
이 스님은 강사의 길을 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을 버리고 참선으로
깨달음의 길을 갔으니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봐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일단
동의를 해야 하겠다. 다만 다시 생각을 해볼 점이 있어서 이대로 이야기를 줄일 수가
없다. 좀더 살펴 주시기 바란다.


 


 

4.
과연 적성대로 살아야 할까?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고 싶은 것이다. 과연 도둑의 사주라고 한다면 도둑질을
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적성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매표소에서 남의 돈을 받고
표를 주는 정도의 일이라도 하면서 극복을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결론은 개선을 하라고
권하고 싶은 것이 낭월이의 마음이다. 그 뿐이랴....


 

과연
강사의 길을 가야 하는 학자의 사주라고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참선의 수행을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면 불교의 정서로 봐서는 일단 말을 하고 사는 사람보다는
참선을 하는 선객의 단위가 훨씬 높게 책정이 되어 있다. 물론 대우야 해 주거나 말거나
스스로 마음에 들면 그대로 하겠지만 그 의미는 부처의 말을 배우는 사람보다는 부처의
마음을 배우는 사람이 훨씬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이 불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고난 적성과 현실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의 노력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언급을 해봐야 하겠는데, 이것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겠다. 당연히 보다
높은 곳으로의 진화를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영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노력이 너무 많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스님의 경우에도 자신의 적성인 교리 연구에 대해서 포기를 하고 고통의
길인 참선의 방향으로 정했던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장하다고 해야 할 상황이다. 말로만
떠벌이면서 마음의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면 또한 공허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전생의 업연에 의해서 이번 생의 적성이 정해졌다고 한다면 이번 생의 업연에 의해서
또한 다음 생의 적성이 정해지는 것은 인과의 이치에 부합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것인지, 아니면 출세의 관점에서 살펴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사고방식에 맡길 일이거니와 바람직한 방향은 보다 높은 곳으로 진화가 되어 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노력을 해서 원하는 대로 되거나
말거나 그냥 그 길을 묵묵하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의 길을 택한 경우에는
당연하다고 하겠다.


 


 

5.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 아유.....


 


 

문제는
이 스님이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 해보고 싶다. 질문을 하신 시절이
戊寅年이었다. 그렇다면 戊土가 들어왔고 다시 寅木도 들어왔는데, 인목은 주체성이고
무토는 결과의 통제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이를 세어볼 기분이 들었을까..... 그래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해 놓은 것도 없고 남에게 보여줄 것도 없다는 것이 갑자기 서글퍼지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운에서 결실을 내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결실이 되지 않는 것은
또한 직관력이 있어야만 결실을 내릴 수가 있는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현실적으로만 해석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결실의 운에서 결실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고, 어느 사이에 머리카락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며 또한 아픈 곳도 자꾸만 많아지고, 더구나 앉아서 버티는 것만큼은
두렵지 않았는데, 이제는 무릎이 쑤시는 기분이 들었을 적에......


 

아마도
이 스님의 기분을 벗님도 헤아릴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렇게 스산해진 가을이
되면(상담당시) 따스하고 편안하게 몸을 뉘일 공간이 그리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낙엽이 지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다보면서 문득 헛일을 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고독해 지는 것이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곳은 하늘 아래 아무 곳에도 없는데,
한 몸은 점차로 피곤한 물이 짙게 배어든다. 얼마나 절절히 고독이 사무칠까......


 


 

6.
자업자득


 


 

그러나
그렇게 혼자서 가야 한다. 그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 수가 있는 것은 그 일밖에
없다고 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혹 이제라도 경을 봐서 강사의 길로 가면 어떨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지만 방향의 전환을 꾀하려면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려면 과연 그 기분이 어떨지 생각 해보시면 알
일이다. 그래서 이 스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시간에 빠져버린
것인 듯 싶다. 다만 그 길은 스스로 원한 길이기에 계속해서 가야 할 것이고, 그 일은
다음 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마도 다음 생에는 깨달음에 어울리는 직관을 갖고 태어날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리고 과연 어느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낭월이가 뭐라고
말씀드릴 상황이 아니다. 그냥 그 스님에게 갑자기 급해지신 것이 결실을 생각하면서
쓸쓸해진 것이니 좀더 여유를 갖고 건강을 돌보면서 공부를 하시라고 권유할 따름이었다.
물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늘
적성에 대해서 연구하다가 문득....


 

      과연
적성대로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