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참담한 현실에 대한 상담해주는 입장의 고민

작성일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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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9
 


[제56화] 담한 현실에 대한 상담해주는 입장의 고민


 


요즘의 낭월한담은
주로 방문자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흐름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도
어떤 방문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키보드를 당겨 놓고 곰곰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보니 한 동안 글을 못 올린 모양이다. 기다리고 계신 낭월한담 팬(?) 들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작년이라고 생각이 된다. 방문을 한 남자가 불쑥 사주를 하나
내밀었다. 그 명식을 찾아보니까 사주는 다음과 같은 구조이다.


       時
日 月 年
丙 癸 庚 丙
辰 卯 寅 午


67 57 47 37 27 17
07
丁 丙 乙 甲 癸 壬 辛
酉 申 未 午 巳 辰 卯


 상담실에서
주어진 사주의 형상을 보면, 대략 그 윤곽이 드러나면서 느낌이 발동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이 사주를 보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실까? 사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 적에는 가능하면 설명을 보기 전에 어떤 기분을 전달하고 싶어하는지 미리 헤아려
보시는 것도 낭월한담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생각을 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시는 벗님이야 그만이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되신 경우에는 어쩌면 상당히 많은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겠고, 실로 낭월이는 암암리에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설하고.


 이 사주에서
어떤 느낌이 드셨다면 아마도 용신이 매우 허탈하고 무력하다는 기분이 들으셨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혹 적천수병이 발동을 해서 종재격이라고 떼거지를 써보고 싶으시다면
물론 그런 기분이 들지는 않으시겠지만 웬만하면 정격으로 봐야 하겠다는 낭월이의
말씀에 동조를 하신다면 참으로 할 말을 잇지 못하고 사주만 바라다보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겠느냐는 정도의 생각을 굴려야 할 것으로 보이는 참으로 안쓰러운
구조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사주의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사주의
구조와 용신 분석


 寅月의 癸卯일이다.
연월일시를 통 털어서 모두 목화의 구조가 강력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日干
癸水의 입장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해야 할 모양인데, 月干의
庚金이 있으니 그야말로 불붙은 전선에 매달려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무리가 아닐 모양이다. 벗님의 생각이 어떤지는 또한 여쭤봐야 하겠지만 낭월의
느낌으로는 이 庚金을 의지하지 말고 차라리 도망을 가서 재를 따랐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렇게 생각이 들다 보니까 아예 木火운에서 발복이 되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확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그냥
身弱用印格이라는 것이다. 그대로 인성이 용신이 되어버린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렇게 된 상황을 보면서 뭐라고 조언을 해줘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은
운의 흐름이 너무나 실망스러워서이다.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대운의 흐름은 27세까지는
癸水가 있어서 그럭저럭 진행이 되겠지만 巳火의 운이 들어오는 33세(만으로 대입하시기
바람)부터는 35년간의 흐름이 그야말로 화탕지옥(火蕩地獄)을 방불케 하는 흐름이다.


 적어도 천간으로는
金水의 운이 와줘야 하겠지만 금의 운은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은 천간에 丙火가 둘이나 버티고 있음이다. 그래서 부득이 천간으로 기대를
할 것은 壬水나 癸水의 상황이 전부라고 하겠는데 그 운이 30 초까지 모두 지나가
버리고 그 후로는 삭막한 木火의 운이 전개되고 있는 장면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는 참담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세운의 도움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일단 이렇게 도리없이 가위표를 하고 나가야 할 대운의 상황을 보면서 세운을 언급한다는
것은 일의 완급을 모르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지지로는
또 어떤가 보자. 원국에서 목이 상당하므로 금이 들어오면 좋겠고, 수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하지 못한다고 해야 하겠다. 水生木으로 유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대운에서는 28세까지의 辰土가 겨우 습기를 제공했다고 봐야 하겠고, 물론 도움이
된다고 하기도 어렵겠다. 그 나머지에서 金水를 기대하는 것은 63세의 申金대운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렇다면 그 중간의 火土의 조열한 운은 과연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운이 약하다고 불평을 하신 벗님들은 여기에서
무조건 반성을 해야 한다고 힘줘서 말을 해야 하겠다. 이러한 운도 있음을 살핀다면
과연 투덜거릴 상황이 되겠느냐는 말씀이다.


 2. 본인의
실제 상황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찾아온 사람의 얼굴만 보면서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그도 무슨 감을 잡았는지
그냥 있는 대로 설명만 해주시면 되겠다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을 하면 달리 도망을
갈 수가 없는 법이다.


 "글쎄요....
직장생활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로 마땅치가 않군요. 지금은 뭘 하고
계신 가요?"


 나름대로 상황을
본다면 癸水대운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겠는데, 巳火가 들어오면서는 아무래도 마음대로
풀린다고 보기가 어렵겠고, 더구나 戊寅年이나 己卯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부담이 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면 아마도 놀고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던져봤는데, 실제로 그는 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언제쯤이나 운이 좋아져서
활동을 하겠느냐고 묻는데는 더욱 할 말이 궁하다.


 "마땅치
않군요...."


 이렇게 뜸을
들이면서 문득 의사와 환자의 마음이 떠오른다. 환자가 말기 암으로 선고를 받아야
할 입장일 경우에 의사는 왜 스스로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죄를 지은 기분이 들어야
하느냔 말이다. 지금의 낭월이 마음이 바로 그러한 기분이 들어서 참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실로 운수대통이라는 말을 하고만 싶은데,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은 스스로
학자라고 하는 자존심으로 인해서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자존심도 포기하고 내년부터
운이 좋아진다거나 앞으로 십 년만 견디면 좋은 운이 돌아온다는 말이라도 할 수가
있으련만 그렇게도 못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상담용지가 적힌 종이만 자꾸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심 이 정도의 설명을 하면 그냥 일어나서 알았다고 하고 상담료도 반갑지
않으니까 나가 줬으면 좋으련만 그는 냉큼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몸의
상황은 어떤가요?"


 아직도 물어볼
것이 남았다는 이야기인가? 몸의 상태라니.... 그럼 죽을병이라도...? 혼자 순간적으로
팬티엄3의 회전력을 발휘해 봤지만 냉큼 답이 집히지 않는다. 애초에 신통하지 않은
직관력이니 의지를 하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런 것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 도리 없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보자....
사주에는 불이 병이다. 그렇다면 용신이 극을 받는 상황이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닐까....
경금은 대장이고 또 금은 뼈에 속하기도 하므로 뼈나 대장이 나쁘다고 해야 하겠는데,
혹 대장암이라도? 혹은 아니면 뼈에 문제가 생겨서 골수암...?


그리고 木도 금을
실어주지 않으니 병이라면 병이고 화를 생조하는 것은 부담이다. 그렇다면 간이 나쁠까?
신경계는 또 어떨까? 음목은 간이고 양목은 신경이니 그렇게 둘 다 부담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할까?....'


 벗님이 만약
상담실에서 영업을 하시는 경우라고 한다면 이런 낭월이의 고민을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으시리라고 본다. 다만 한 소식을 하신 도인이거나 그냥 아마추어라고 한다면
혹 이해를 못할 가능성도 있겠다. 혼자 이렇게 궁리를 한 다음에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사주의
질병은 잘 보이지 않더군요. 오행으로는 뼈나 대장 등에 병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
심장도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만, 무슨 병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말을
하고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척추이하 마비로 1급 장애자입니다. 언제 좋아질 가능성도 없나 보군요. 제 동생입니다.
낭월선생님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전해 주실 것으로 믿고 찾아왔는데, 과연 좋은
암시가 없다고 봐야 하겠군요. 아마도 그 아이의 운명인가 봅니다....."


 "......."


 그렇다면 휠체어에
몸을 싣고 남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야 하는 몸이 되었다. 도대체 언제 그렇게 되었을까....


 "지난
96년 여름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했지요. 목숨은 건져서 상체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만,
하체는 완전히 마비가 되어서 현재 의학으로는 속수무책이라고 합니다."


 96년이면 丙子년이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 생각이다.


 '火剋金으로
용신 파괴~!'


 丙子년에 자수가
있으니 좋다고 해석을 할 일도 아니다. 원국의 지지에 있는 왕성한 목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기름을 부어주는 셈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丙子의 丙火는 무력하다고만
장담을 할 일도 아니다. 천간에 이렇게도 무력한 庚金이라면 병화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질려버릴 싱황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을 하랴.... 주객은 마주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3.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 형이 묻는
질문이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라고 할까? 만약 운이 좋다면 벤처 쪽으로 관심을 가져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체가 불편하더라도 머리와 두 손이 있으니 컴퓨터 작업에
뛰어든다면 얼마든지 길을 찾아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그런데
운이 없다. 무수히 많은 장애인들이(재활인이라고 해야 한다지만 실감이 나지 않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나름대로 활용을 할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사회의 편견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명리학적으로는
써먹을 운이 없어서가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볼 만 하겠다. 실제로 사지가 멀쩡해도
써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혹시
명리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사주를 잘 배와서 상담사의 역할을 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행히 일지에 식신이 있으니 한번 권유를 해볼 만 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관심이
있어 하는가요?"


 그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고 아직은 소식이 없다. 이렇게 산천이 다시 소생하는 찬란한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는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의 재활은 가능할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비록 운이 돕지 않는다고 해도 나름대로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고 흔히
하는 말로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 일이니 과연 어떻게 이 막중한 숙제를
풀어가야 할 것인지를 낭월이가 그 입장이라도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벗님이 혹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 사주 주인공의 입장에서 다시 살펴보시기
바란다. 세상은 그렇게 온갖 상황들로 어우러져서 살아가고 있음을 늘 보고 있다.
그리고 불평도 역시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을 잘 헤아려야 하겠다.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이 과연 최선을 다 했는지에 대해서부터 생각을 해야 하겠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삶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부를 뿐이다. 어쩌면 이
사람이 흉운에서 장애가 됨으로 해서 오히려 약간의 생계보조비를 받는 것이 멀쩡하면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과 비교를 해서 더 나은지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본인에게 묻는다면 물론 천만의 말씀일 것이다. 여하튼 주어진 여건은 여건이다.
그대로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은가 싶다.


 4. 운명과
현실의 사이에서


 이와 같은
명식이라도 반드시 척추이하의 마비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오늘 멀쩡하다고
해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운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서 반드시 운의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음을 잘 헤아릴 수가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벗님 자신에게도
이러한 일이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보험이라도 들어둬야
할까? 아니면 자동차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이리저리 고민을 해봐도 신통한
답이 없음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여기에서 낭월이가
해보는 생각은 간단하다.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것인데, 내일의 예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만 생각하더라도 아마
쫓기는 마음에 많은 여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리고
혹 여유가 있는 시간이라면 만약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정도의
마음의 준비도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사주의 암시대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암시를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이고 그래서 가능하면 자평명리학을
공부하시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창한
초여름의 어귀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