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안경과 단추

작성일
2000-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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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안경과 단추


 

 

문득 생각을 해보니 기억력이 형편없는 낭월이라는 것을 남들이 일러줘서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특히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에서는 더욱 심한 기억력의 저하를 보이고 있는 낭월이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혹 어려서부터 남의 얼굴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지 이 부분에 대해서만 유독 특별한 둔감성을 나타내게 되니까 가끔은 찾아주시는 구면의 고객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묘한 것은, 그러게 기억력이 둔함에도 불구하고 또 때로는 한번 스쳐 들은 이야기들도 잘 기억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생각이 된다는 점이다. 오늘 문득 생각이 난 이야기도 이러한 것 중에 하나인데, 어려서 라디오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나는 이야기이니 왜 그런지 벗님이 살펴보시고 평가를 해주시기 바란다.



1. 안경과 단추 장수 이야기


"안경이나 단추 사려~~!"
"안경이나 단추 사려~~!"
이렇게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안경이나 단추를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을 만나거나 집을 만나면 집의 문을 두드리고서 아주머니가 나오시면 역시 안경이나 단추를 사라고 권하는 것이다. 물론 안경이야 안경점에서 시력측정을 해서 사야 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그냥 노안에 사용하는 돋보기 정도는 들고 다니면서도 팔았다.

그리고 단추야 일상 쓰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자주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봐서 장사가 신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침 한 젊은 남자가 지나가다가 흥정을 하는 것을 보고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더욱 흥이 나서 외치는 것이다.

"이 안경은 그냥 안경이 아녀~! 떡하니 쓰고서 사람을 쳐다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다 보이는 요술 안경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남의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있는 안경이라는 말이야. 얼마나 좋아. 단돈 천원이면 된다 이거야. 젊은이도 관심이 있는 모양인데 하나 사보려나?"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봐, 이 단추는 또 보통 단추가 아니란 말이야. 이 단추를 가슴에 달면 내 속이 남들에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요술 단추란 말이지, 어때 사고 싶다면 내가 잘 해서 두 개에 천오백원에 해줌세 하나 팔아 주시게나."
마침 젊은 친구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 여인이 과연 말대로 자신과 결혼을 할 마음이 있는지 진짜로 자신을 좋아하는지가 무척 궁금했는데, 할아버지의 안경을 하나 사면 바로 알아 볼 수가 있으니 잘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안경을 샀다.

할아버지는 단추도 좋다고 사라고 우겼지만 자신은 그보다는 애인의 마음이 알고 싶어서 단추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안경을 사서 쓰고는 약속 장소로 갔다. 아마도 벗님도 명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러한 안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은 낭월이도 이러한 물건이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에 들은 이야기여서 그대로 기억에 저장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니 벗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데.....

2. 연인의 속마음은....


안경을 쓰고 나타난 자신을 보는 여인의 고운 얼굴 사이로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환하게 물체를 보듯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텔레토비의 가슴에 있는 스크린처럼 그렇게 나타나는 모습에서 젊은이는 흥미롭게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애인의 속마음에는 빨리 자신과 헤어져서 다른 부잣집의 도령과 약속이 되어 있는 것에 마음이 온통 쏠려 있는 것이 보였고, 그래서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려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도 마시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간단하게 둘러 붙이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에 무척 괴로웠다.


자신은 진심으로 그 여인을 사랑했는데, 여인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그렇게 기웃거리는 것이 밉기도 했지만 달리 해볼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뿐이 아니었다. 보통은 의지할 부모님이었지만 안경을 쓰고서 살펴본 부모도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목적이 있어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또 친구들을 만나봐도 모두가 하나같이 겉과 속이 다른 그림만 자꾸 보여서 급기야는 안경을 벗어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더 쓰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3. 안경장수를 기다리며....


젊은이는 안경 장수가 다시 지나가기를 열심히 기다렸다. 할아버지를 만나서 안경을 주고 단추를 사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도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인 줄을 미쳐 생각하지 못한 젊은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줘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서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예의 그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한 달음에 달려나왔다.


"안경이나 단추사려~~!"
"안경이나 단추사려~~!"
젊은이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반가워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이봐 안경을 샀던 젊은이가 아닌가? 그래 예쁜 아가씨의 마음은 잘 살펴봤는감? 어떻던감?"
"할아버지에게 안경을 산 것을 후회했습니다....."
"음....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네 그럼 이 단추를 사서 달고 자네의 마음을 아가씨에게 보여주게나 다만 깎아 달라고 하면 안되네. 천원이야."
젊은이는 안경을 돌려드리고 단추를 샀다. 이제 자신에게는 안경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 안경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가슴에 단추를 달고 약속장소에 갔다.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아가씨에게 모른 척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는 돌아왔다. 물론 여인은 당연히 그 단추를 통해서 이 남자가 얼마나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으며 그 마음은 충분히 일생을 함께 동행해도 좋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4. 보여 준다는 것의 위력


내용이야 물론 조작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물건이 있다면 이미 시장에서 판매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낭월이는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있다.

과연 세상을 움직인다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눈앞의 사람을 움직이는 것에는 안경보다는 단추가 더 위력을 발휘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게 되면서 보여주는 것이 결코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는 방법은 보여주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어떤 벗님은 낭월이가 너무 많이 보여줘서 손해를 볼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다는 것을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야 비로소 알게 된 낭월이다. 과연 나를 보여주고 알려준다는 것이, 남의 속을 알기 위해서 실눈을 뜨고 탐색전을 벌리는 것에 비해서 얼마나 효과적이며 신뢰감을 쌓는 것인지를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5. 상담사의 역할.....


우선 남의 운명을 감정한다는 것은 안경과 흡사한 구조이다. 남의 비밀을 들여다본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안경에 집착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많은 역학자나 역술가는 안경을 얻고 싶어서 안달이기도 하다.

그러한 안경만 있으면 떼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낭월이의 생각은 좀 다르다. 남의 숨겨놓고 싶은 또는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비밀을 캐어내서 한 방에 충격요법으로 자신이 도사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을 얼마나 두려워 할 것이며 또한 접근을 하지 않으려고 할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느낀다.

아마도 진정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그 나머지는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에 이러한 도사가 포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를 모르는데 그가 나를 안다면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그리 많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이 과히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간단히 알 일이 아닌가 싶다.

 6. "난 이런 사람이라오~!"


물론 낭월이 생각에 반드시 수긍을 하지 않으시는 벗님도 계시리라고 생각은 된다. 자신을 공개해서 손해를 보신 경우도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웬만하면 감추려고 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주신다면 충분하겠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가슴에다가 속이 보이는 단추를 하나 달았다고 생각을 하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하는 정도로 편안하게 생각을 한다면 적어도 허세를 부리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실로 인간이 살면서 허세를 부리다가 자승자박의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기왕이면 죽을 먹고 이를 쑤시는 것보다는 죽을 먹었으면 물로 헹구는 것이 더 편안하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남들이 편안하게 와서 쉬었다 갈 마음이 든다면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또는 상담을 하든 속이 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일전에 어느 경호를 하는 친구가 방문을 해서 하는 말이. 모 정치인을 경호해 봤는데, 그렇게 냉혹할 수가 없더라면서 그런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되어도 큰일이겠더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물론 자신의 속 모습을 철저하게 감추고 머리의 반짝이는 계산에 의해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서 환멸을 느꼈다는 말을 해 줬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되어서는 글쎄다......


어쩌면 그는 이미 실패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벗님의 생각에도 아마도 그럴거라고 생각을 해주시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