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옛 이야기 한도막

작성일
2000-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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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옛 이야기 한도막



예전에 만난 사람 중에서 가끔 기억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하다가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올라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그러니까 옛날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1. 대락 20여년 전의 일이다.


 


울산(당시는 울주군)의 어느 산골 암자에서였다. 당시에 낭월이는 통도사에서 글공부를 하다가는 집어치우고 돌아다니다가 오랜만에 은사스님의 주지로 계시던 그 암자를 찾았다.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금이 겨울이어서인지 아니면 당시가 실제로 겨울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원래가 낭월이의 기억력이 그리 신통하지 못한 것도 아시는 벗님은 익히 아시는 부분이므로 크게 탓을 하지 않으시리라고 본다.


절에 갔더니 못보던 또래의 행자가 있었다. 행자라는 것은 승려후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수행자(修行者)에서 아직은 덜 된 수행자라고 봐서 修를 떼어내고 그냥 행자라고 부른다는 말이 있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중이 되겠다고 찾아와서 출가자로써의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도 모처럼 또래의 스님을 앞으로는 형님이 될 낭월이를 만난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밤이 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낭월이의 떠돌아다니던 이야기로부터 시작을 해서 나중에는 그의 신상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던 모양이다.


 


2. 그의 이야기


 


어려서의 맨 처음기억은 고아원이었다고 한다. 서로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하고 그래서 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장면들이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강원도의 모처라고 하는데, 정확한 지명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그렇게 고아원에서 8세 무렵까지 있으면서 몇 차례의 탈출을 시도했었고, 그때마다 잡혀가서는 오지게 얻어맞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탈출에 성공을 하였고 그래서 야간의 기차를 훔쳐 타고 청량리의 부근에서 부랑자로 단속의 눈길을 피해서 숨어살았지만 비록 얻어먹는 식은 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고 했다.


 


경찰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 늘 주어진 숙제였단다. 그러니까 경찰에게 들키면 붙잡혀서는 확인을 받게 되고 연락을 할 곳이 없는 것이 확인이 되면 고아원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지없이 다시 두들겨 맞는 것이 전부이다시피 하니까 일단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요행히도 2년여를 잘 먹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겨울이었다. 그의 이야기에서는 겨울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마도 하도 춥고 배고픈 시간이어서 혹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3. 쪽팔리는 일


 


겨울에 날이 추워지면서 자유로운 떠돌이의 하루하루는 여간 고역이 아니란다. 낮에는 그럭저럭 밥을 얻어먹고 하루를 보낸다지만 밤이 되면 모진 추위를 피할 공간이 여간해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해가 넘어가려고 하고 시장 사람들이 슬슬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엄청난 투쟁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명당은 식당의 문 앞에 있는 연탄 화덕이란다.


아마도 연세가 조금 드신 벗님이시라면 기억이 나실 법도 하다. 찐빵을 찌는 커다란 솥을 걸어놓은 문 앞의 화덕 말이다. 큼지막한 연탄을 세 개 정도의 화덕으로 하나를 만든 드럼통정도의 크기에 자갈을 깔고 빵이나 물을 끓이다가는 가게문을 닫을 시간이면 솥은 안으로 들여가고 연탄불은 꺼지면 곤란하니까 새 탄으로 갈아두고서 자갈을 덮어서 열기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얻어먹는 양아치(자신을 그렇게 불렀다)는 그 시간에 그러한 명당을 맡아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참으로 재수가 좋아서 그 자리를 발견한 후로, 하루의 일과를 보내고서는 주로 그 자리에 가서 잠을 청하곤 하는데, 연탄의 구멍을 막아 두고 그 위에 깔아놓은 자갈의 온기가 겨울을 보내기에는 그저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우 행복했던 시간들이 흘러갔단다.


 


그날도 아랫목(!)에서 곤하게 잠을 자다가 뭐가 건드리는 기척이 있어서 눈을 떠보니까 영감양아치가 옆에 끼여들었더란다. 보니까 나이도 많고 해서 많이 추울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그냥 하루저녁 손님에게 자리를 공유하기로 하고 쪼그리고 잠이 들었단다. 그리고 사실 추울 적에는 사람의 체온도 적지 않은 위안이 되기도 할 것이다. 생각을 해 보시라. 그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이 열기를 용신 삼아서 잠을 청하는 모습.... 설마 낭만이 있다고 하실 벗님은 없으실 것이다. 그야말로 절박한 현실일 뿐이다.


그렇게 잠을 자는데 뭔가 왁짜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보니까 사람들이 잔뜩 자신을 쳐다보고 있더란다. 그리고 자신은 바닥에 뒤로 벌러덩 자빠져 있는데, 사람들의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는데. '새끼거지는 일어났네'라는 말도 들리고 '영감은 죽었내벼'라는 말도 섞여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 영감양아치를 보니까 뻣뻣하게 죽어있었고 이유는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던 모양이란다. 자신은 어린 몸이라 잘 적응을 했는데, 영감은 노인이라서 적응을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따스한 하룻 맘의 마지막을 보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 그렇게 쪽팔리더란다. 그 말을 하는 표정이 아직도 떠오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천진한 모습이었던가 싶다. 이미 다 내어놓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지에게도 쪽팔리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놀랐는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창피스러워하는 모습을 벗님들이 보셨어야 하는데.... 그 창피스러워하는 표정이라니...


 


3. 봄 날의 사건


 


그렇게 좋은 명당자리도 사건이 생기니까 어디로 없어져버리고 나서 다음부터는 또 잠자리를 찾아서 전전하였는데, 그럭저럭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되었더란다. 물론 따스한 봄이야말로 일인군주격(一人君主格)의 팔자를 타고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이란다. 춥도 않고 덥도 않은 좋은 시간들이면 저절로 흥이 난다는데, 그날아침에는 비가 부슬부슬내리던 날이었다고 한다. 느지감치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면서 이제는 꽤나 익숙한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면서 어느 후한 마나님을 만나서 아침을 해결하나... 하고 기웃거리도 있다가 어느 집을 찍고서 들어갔단다.


 


"밥좀 쥽쇼~~!"


'조...... 용.....'


"(좀더 큰 소리로) 지나가던 거렁뱅입니다요. 밥한끼 적선 합쇼~~!"


'그래도 조용........'


"(열이 받은 목소리로 더크게) 아~! 밥좀 달라니까요~~!"


"아따 이 싸가지 없는 놈의 거지새끼 빨리꺼져~!"


 


이렇게 무정한 소리를 들으면 아침의 상쾌한 기분이 모두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다보니까 나이는 20여세 남짓한 여자가 아직도 잡을 자던 중이었던지 잠옷을 입은 채로 젖가슴은 반쯤 열린 채로 마귀할멈 같은 얼굴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야단을 하는 여자가 이렇게 젊은 여자라는 것을 알고서는 참고 있던 체면이 그만 확 구겨져 버리더란다. 그래서 뭐락고 욕을 해주나... 하고 짱돌을 굴리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다시 소리를 지르더란다.


 


"야이 거지새끼야~! 어느 년은 개시도 못했는데, 너 줄 밥이 어딧냐 이 새끼야 빨리 꺼져 재수 없는 놈아~!"


 


낭월이가 이렇게 볼품이 없는 용어를 사용해서 눈쌀이 찌푸려지시더라도 양해 바란다. 여기가 무슨 아나운서 시험을 보는 곳도 아닌 바에야 당시의 상황이나 리얼하게 재연해 보려고 생각 나는 대로 적고 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그 말을 들으니까 이 친구도 그만 열이 받여서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더란다. 그래서 이왕에 이렇게 되었다면 쌈이나 한판 하자고 생각을 하고서는 다부지가 늘어 붙었다.


 


"야 이년아~! 너만 개시 못했냐? 나두 아직 개시를 못했는디 니년 때문에 오늘 내 장사는 완전이 종쳤다. 이 개년아~!"


 


낭월이가 이 말을 들으면서 뱃살을 잡고 웃었다. 과연 말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천박하게 보이는 것도 또 때로는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얼마나 천진하고 얼마나 절박했던지 당시의 표정은 참으로 혼자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장관이었다. 어찌 너만 개시를 못했다고 앙살을 떠느냐는 말에서 참으로 자기 생각만 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 나도 개시를 못했는데, 그렇게 험구를 놀려서야 될 일인가.... 하하하~


 


그렇게 해서 날도 구질구질하고 바닥도 시장거리의 그 거무족죽한 죽같은 것이 질척거리는 데에서 두 남녀는 한 덩이리가 되어서 뒹굴면서 서로를 두들겨패고 있었단다. 정말 그러고 보면 그 여자도 재수가 더럽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밥이라도 한술 줄 일이지 그래... 그기 무신 망신고... 쯧


 


당연히 파출소로 신고가 들어가고 순경들이 나와서는 두 사람을 잡아갔고 여인은 몇 가지 물어보고서는 훈방이 되었는데, 문제는 자신의 신상이었다. 그렇게도 염려를 하고 피하던 고아원이 저만치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망을 쳐야 하는데, 그 틈이 통 보이질 않아서 여간 조바심이 나는게 아니였다. 그 순간만큼은 사람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더란다. 괜히 재수 없는 년과 싸움을 하는 바람에 이게 무슨 꼴이냐는 후회가 마구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각자의 입장이 다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두런두런 하더니 갑자기 밖에서 형사들이 수갑을 채운 두 사람을 데려다 놓고는 또 잡으러 간다고 나가더란다. 그리고 순경은 자신은 신경을 쓸 사이도 없이 그 사람들을 취조한다고 뒤숭숭한 사이에 틈이 생기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수갑을 차고 왔나... 싶어서 얼굴을 봤더니 젊은 남자가 자신에게 한쪽 눈을 찡긋 하고서는 이쑤시개를 하나 달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슬쩍 집어 줬더니 입에 물고서는 수갑에 대고 이러저리 하더니 옆에 사람에게도 그렇게 건네주고서는 서로 눈짓을 하고서는 후다닥 뛰어서 밖으로 달아나더란다. 그러니까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순경도 뛰어 나가고 파출소는 비어버리고 그래서 자신도 유유하게 탈출을 할 수가 있었노라고 하면서 그 이쑤시게를 준 것이 천만 다행이었고, 또 그렇게 솜씨가 좋은 사람을 그 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4. 다시 겨울은 돌아오고


 


그럭저럭 나이도 여나문 살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제 아이들이 자신을 발견하면 놀려대고 돌도 던지고 해서 너무 귀찮아 지더란다. 그래서 점점 동네로부터 멀리 쉴 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겨울이 되어서 날이 추워지면서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던 그는 어느 농가의 추수를 마친 채로 들판에 쌓아둔 짚가리를 발견하게 되면서 그 곳에서 잠을 자고는 아침이면 일을 나가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겨울이 깊어지면서 그것도 실어가 버리고 머물 곳이 없어지면서 천 조각을 주워서 산의 중턱에다가 천막을 치고 움집을 만들었단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수단도 보다 현실적이 되는 모양이다. 속에다가는 짚단을 넣었는데, 그것이 상당히 따스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쫒아오면 도망을 치곤 했는데, 아이들도 여기까지는 촞아오지 않아서 편안한 마이홈이 되었음은 두말을 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들랑거리는 출입구의 바닥에서 뭔가 까모스럼한 것이 드러나더란다. 그래서 뭔가 하고 파보니까 어린아이가 죽은 시체가 묻혀있는 애장이었다. 시체가 있어서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그 겨울에 그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고, 귀찮게 하는 아이들도 없어서 그냥 겨울을 나기로 하고 도로 덮었다. 그도 아이인데 설마 자신을 해치기야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더란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런 것을 어른들에게 듣고서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문득 한마디 던진다.


 


"스님. 그때에도 제가 안목이 상당했지요? 명당을 찾아내었으니까요. 그런데 봄이 되면서 냄새가 자꾸 나서 있기가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명당을 떠났지요 뭐. 하하~"


 


5. 이렇게 저문 겨울밤이면....


 


문득 그날 밤에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가 가끔 있다. 당시에도 낭월이가 직접 그 체험을 하기는 어렵겠고 해서 남의 체험이지만 자신의 경험인양하고 마음깊이 그 상황을 음미해보곤 했다. 그리고 이상벽씨와 이금희양이 사회를 하는 'TV는 사랑을 싣고'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그 친구를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가를 하겠다고 절로 들어왔지만 결국은 그것도 인연이 되지 못했는지 후에 어디론가 떠났다는 말만 들었는데, 혹 인연이 있어서 이 글을 보신다면 한번 연락을 주시고 다시 그 추웠던 많은 날들의 겨울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금희씨 말인데 참 맘에 드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가 쓴 책도 한권 사다 봤는데, 역시 생각을 한 대로 프로의 정신이 넘치는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낭월이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하는 말이 이렇다.


 


"아빠는 이금희를 좋아하시지요?"


"그려~!"


"그래서 내 이름도 금휘라고 지었지요?"


"맘대로 생각하렴~"


 


실은 딸의 이름이 박금휘이다. 그런데 이제 10살이니 10년 전의 이금희씨를 어찌 알았겠냐만 딸은 그래도 자신의 이름에 그러한 사연이 들어갔는가 싶어서 가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모양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낭월이도 가끔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고 그 중에 이금희씨도 포함이 된다.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이다. 하하~


 


그나저나 지금의 벗님은 주변은 어떠실까....


이 사나이의 한 때와 비교해서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신다면 또 어떻게 차이가 나실까 이렇게 지나는 길에 한번쯤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고, 기왕이면 오늘의 벗님 자신이 이 정도라도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전혀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으로도 생각이 된다.


 


         때론 추억에 젖어보기도 하는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