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秋夜短想

작성일
1999-11-07 00: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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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秋夜短想


아름다움에 대해서...


온 종일 인연이 있어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시간을 공유하고 이렇게 어둠이 밀려와서 천지를 짓누를 때쯤이면 비로소 혼자의 자유가 된다. 그 제서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고, 또 뭔가 혼자 만의 심연(深淵) 속으로 침잠을 할 수도 있는 공간이 보이기도 한다. 이제 가을도 깊어 가는 모습에서 문득 또 하나의 나이테를 생각하게 한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때쯤이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늘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은 나를 매료시킨다. 제각각 제멋대로 생긴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또 서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모습에서 하나이면서도 하나가 아니고, 또 하나가 아니면서도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맛을 음미할 때이면 법성게의 한 토막이 떠오른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하나 속에 모두가 있듯이 많음 속에는 또 하나


하나가 모두이듯 모두는 또 하나


한 티끌 속에는 시방세계 머금으니


모든 티끌 가운데도 또한 그러할 진져...


의상대사의 화엄경 도리를 적은 싯귀이다. 예전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읽었던 글귀이건만 이렇게 문득 고요해진 시간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의미를 파악한 것일까? 그가 비록 원효와 당나라로 가다가 중간에서 깨달음의 시간 속에서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 또한 그 나름대로의 깨달음은 주어졌던가 보다. 이렇게 멋진 자연의 구조를 시로 담을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 과연 이러한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뭔가 약간의 음미는 했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다 떠난 멋진 사나이 들이다. 비록 선묘낭자를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또한 그것조차도 멋으로 다가온다. 낭월이는 아마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꼬옥 보듬어 안아 줬으리라고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아리따운 낭자가 자신을 따르겠다는데.... 그것도 아내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생을 따라다니면서 수발을 들겠다는 데에도 그냥 뿌리치고 도망을 친 것을 보면 그냥 도망을 쳐서 여인의 목숨을 끊게 만든 것을 보면 참 독한 사나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 생각해보면 참 멋진 자유를 아는 사나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 멋진 사나이가 한 여인의 품이 무서워서 도망을 간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을 보면 호탕한 남아의 의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모습도 아름답다. 자신의 길만 보이고 죽음이나 고통의 길은 보이지 않은 열혈여인의 모습에서도 또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결국 그 여인은 영주 부석사에서 하나의 사당을 얻은 것으로 만족을 하였는지는 모를 일이로되 여하튼 그 여인도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것들이 자연과 어우러져서 한바탕 연극을 하는가 보다.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커피를 한잔 타온다. 이 시간이면 그렇게 마시는 커피의 향이 너무 그윽하기에 얼마 전에 대전에 나간 길에 한 봉지 사왔다. 이름이 불루마운틴 이라던가.... 헤즐럿 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너무 강력한 향으로 인해서 정신이 흐려 질까봐 향이 없는 것으로 사왔는데, 아가씨왈 '이 커피는 향이 없어요'라고 하기에 향이 없는 것이 좋다고 말은 해 놓고 진짜로 그윽한 커피 향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분쇄기에 다가가 향을 맡아보기도 했던 그 원두를 한잔 내려본다. 너무 즐거운 시간이다. 비록 좁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그윽한 향은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지, 또는 자연의 선물을 인간이 가공을 한 것으로 봐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는 절반의 자연과 절반의 가공으로 인한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을 상 싶다. 그렇게 가을의 밤은 깊어 간다.


자정이 넘은 시간, 혹시 뭐가 나올까 싶어서 TV를 켜본다. 문득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선율이 들린다. 첼로이다. 화면을 응시하니 할아버지가 열심히 첼로를 켜고 있다. 그 음악은 커피의 향을 더욱 리듬감으로 살아나게 해서 파동으로 변경시키는 마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시지 않아도 그 향은 온 몸을 파고들어서 취하게 만든다.


그 노련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아름답다. 역시 자연과 인간의 합작이라고 보여지는 모습이다. 자연은 사람을 만들고 또 사람은 나무통과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음율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음율은 다시 자연의 공간을 울려서 멋진 하모니를 발생시켜준다. 또한 그 중에 하나만 빠져도 곤란한 것을 참으로 정교하게 움직이는 자연의 조화라고 혼자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의 표정을 보니 참으로 진지하게 생전 처음으로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그리고 단 한 번의 기회뿐인 것처럼 정열적으로 그렇게 배어져 나오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진다. 아무래도 밤에는 숨어 있는 내면의 세상이 더 잘 보이는가 보다.


그의 온 신경이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진지한 모습이 오랜 연주 생활을 통해서 얻은 쇼맨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비난한다고 해도, 그래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름을 느끼면서도 그의 면전에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악다구니라도 하면 속이 시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그 모두를 이해한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가련하다는 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잡는 것처럼 그도 그런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꽉 다문 입술과 절반은 감은 듯, 절반은 정신이 나간 듯...


그렇게 머리와 양손과 허리의 움직임 속에서 허언 백발이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물론 때로는 포르노의 사이트에 올려진 요염한 여인의 발가벗은 풍만한 모습에서도 천박하지만은 않은 아름다움을 보기도 한다. 그 은근한 눈빛에서는 여하튼 생명의 본질과, 먹고살아야 한다는 그 현실의 애절함이 교차하면서 과연 그 여인은 여하튼 그렇게 스스로를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 옷을 벗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그 도발적인 포즈도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과연 자신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되기에 그렇게 해서 또한 무거운 삶의 꾸러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는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은 누가 뭐라든 간에 그야말로 자연에 충실한 노력이므로 아름다운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은 또한 그에 반응을 한 남자들의 몫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문득 든다.


박수 소리에 문득 화면을 응시하니 그 노 첼리스트의 연주가 끝나고 관람객의 박수를 받으면서 일어나서는 어눌하게 허리를 굽혀서 답례를 한다. 비록 바하의 뭔가 무척 차분하면서도 난해한 기분이 드는 연구를 했다지만 관중은 감사의 박수를 치고 그는 아직도 그 감상의 흥취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그러게 답례를 하는 모습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하는 안도감과 진심으로 자신의 연주를 들어줘서 감사하다는 표정이 교차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한 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굽힌다.


비록 그의 내심 속에는 중간에 한 두 음율이 잘못되었던 것이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는 안도의 한 숨이나 또는 누군가 진정으로 수준이 높은 관객이 있어 눈치를 채고 비웃음을 머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의 모습은 최선을 다한 장인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아마도 어쩌면 이 나이에도 이렇게 청중에게 손이 떨리지 않아서 자신의 연주를 들려 줄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은 이렇게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감사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도 그와 비슷한 나이에 적어도 70세는 넘었음직한 그 나이에 그렇게 수족이 성하고 맑은 정신으로 오행의 이치를 여전히 궁구하고 있을지...


지금 생각을 해보면 약간의 훗날에 다가올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과연 그 나이에 그러한 모습으로


놀이에 집중한 진지한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적어도 지금처럼....


그렇게 자연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 볼 수가 있을지...


어쩌면 너무 과분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렇게 저물어 가는 가을  밤에는 새삼 이러한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온 종일 재를 지내는데 치닥거리를 하느라고 시달린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곤하게 잠 속으로 빠져버린 연지님의 숨소리조차 아름답게 들린다. 비록 힘이 들 때에는 생활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중 마누라가 된 것이 일생 일대의 실수라고 스스로 한탄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곤한 잠 속으로 빠져든 모습을 보니 역시 나를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래서 다시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컴으로 정리하려고 전원 스위치를 누르려다가 문득 그 여인의 단 잠을 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내 손을 거둬들인다. 이렇게 고요한 산골에서는 심야의 컴퓨터 팬 소리도 여간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모지를 찾았다. 메모를 했다가 아침에 날이 밝거든 두드리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추한 모습보다는 아름대운 모습이 더 많은가 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자연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기사 산토끼에게 잠자는 연지님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한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하지 않을 상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고 보면 또한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그래도 또한 그렇게 믿고 싶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렇게 밤이 깊어 가는 시간에...


자연을 응시하고 있는 자신....


그리고...


그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그 무엇....


.....


       낙엽지는 계절에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