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교육현장의 붕괴라...

작성일
1999-11-12 00: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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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붕괴되는 교육의 현장이라...



엇 저녁 어떤 방송에서 100분간 '교육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주제로 토론을 하겠다기에 눈을 비벼가면서 지켜봤다. 그리고 과연 현실적인 문제가
적지 않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자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입장을 일일이 반영하자면 아마도 석 달 열흘을 가져도 다 말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단 현재의 상황들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음미나 하면 될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는 저녁에
드러난 이야기들이 대체로 만족한다고 봐야 하겠다.



그러면서 방송이 끝난 상태에서 잠시 생각을 해보니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인지를 찾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답답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컴퓨터의 메모리를 귀찮게 하려고 전원을 넣었다. 낭월이는
과연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것을 한번 정리 해보고 싶은 생각에서이다.



1. 학생의 문제



참으로 다들 피해의식이 상당한 듯 싶다. 그리고 실제로
체벌에 대해서도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체벌에 대한 견해가 선생은 교육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다고 하고, 또 학생도 이에 동의를 하는데, 실은 감정이 개입된
채로 교육이라고 하는 핑계로 포장이 되어 있음이 환멸 스럽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참 난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탈교육생들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즉 일단 학교를 그만 두고서 스스로 알아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되겠는데, 학교의 전성시대는 역시 낭월이가 어렸을 적이
그래도 좋았던 것이 아니가 싶다. 그러니까 이제 학교는 그 구조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해야할 모양이다. 참으로 곰곰 생각을
해보니 적은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 다른 일부는 체벌이 없음으로 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 또한 놀라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체벌도 필요하고 또한
필요 없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팔자 식으로 생각을 해보자.



1) 체벌을 원치 않는 학생 - 식상의 부류들



그러니까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숨은 능력을 일깨워 주지는
못하고 어거지로 50년 전의 사고방식을 우겨 넣으려고 하는구나. 이 어르신들아.
생각을 해봐라. 가까운 게임방에 가면 펜티엄이 전용선에 물려서 핑핑 돌아가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486으로 도스를 설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래서 무슨 교육이 된단 말인가.
컴퓨터 학원에만 가도 벌써 펜티엄2 400이 보통이다. 이 정도의 구조에서 길이 들여진
학생이 학교의 컴퓨터 교실에서 무슨 재미로 공부를 하겠느냔 말이야. 이 양반들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을 하고서 하는 말씀인감? 교육부 관계자님에게 물어봐야
하겠고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겠네. 댁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컴퓨터를
사주고 있는지 말이오. 과연 학교의 모든 시설이 따라준다고 생각을 한단 말이오?
여하튼 그래서 난 학교에 가기도 싫어서 자퇴를 하려니까 허락이나 해주쇼.


공부는 학원에서 해도 되고 교육방송을 봐서 해도 되겠고,
검정고시를 해도 될거요. 구태여 이렇게 구질구질한 공간에서 툭하면 화풀이나 하는
선생에게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망치고 싶지 않소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방해나 하지 마쇼. 그리고 잘 생각해 보시고 당신의 자녀들도 아마
일찌감치 잘 방향을 잡아줘야 할거요. 이대로 학교에서 있다가는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란 말이오. 어디 십 년 후에 한번 봅시다. 누가 더 재미있게 잘
살게 될는지...



2) 체벌을 원하는 학생들 - 관살의 부류



그러니까 일정한 틀이 없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한 규격으로 통제를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정확한
데이터를 입력받은 다음에 규격에 따라서 앞으로 사회에서 적응을 하게 되기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체벌이 없으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절제심도 가르칠 수가
없고, 그나저나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아직은 어리고 또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같은데, 이렇게 노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 짜증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기 싫으면 차라리 학교에 오지 말면
될 것 아닌가 말이다. 어째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까지도 공부를 못하게 하고 또
모처럼 마음먹고 공부를 좀 하려고 하면 왕따가 되기 십상이니 이래가지고 서야 앞으로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이 말이다.


그러니까 다부지게 야단을 하면 고분고분 말을 듣도록 하고
열심히 할 테니까 제발 선생님들이 공부를 잘 할 수가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체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직은 어린 나이이므로 어른의
경험에서 나온 통제를 받고서 우리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달란 말이다.



3) 낭월이 생각 - 학교를 열 종류로 만들자



학생들의 적성은 일단 다양하지만 크게 나누면 열 가지로
구분이 될 것이다. 바로 십성의 작용으로 대입을 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상이
많은 놈들은 예술학교의 풀코스를 만들어서 그 곳으로 보내고 관살이 많은 놈들은
사관학교같은 풀코스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교육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싸울 일도 없고, 각자 자기 좋을 대로 공부를 할 것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인성이 많은 놈들은 사범학교를 풀코스로 만들어서 그대로 교육자의 길을 가르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재성이 많은 놈들은 상업이나 무역에 대한 공부를 풀코스로 가르치는
곳으로 보내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다시 비겁이나 많아서 겨루는 것에 관심이
많다면 체육학교를 풀코스로 만들어서 그 곳에서 올림픽 금메달이나 따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라에도 체면이 서고 불평도 없어지고, 또 개인적으로도 훨씬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환상적인 이야기일까?



물론 반드시 사주를 대입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렇게 자기
좋을 대로 유치원에서부터 그렇게 길을 잡아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부하기
좋아하는 부류와 만들기 좋아하는 부류를 만들면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각자 자신의 능력을 세상이 필요하다는 대로 운용하면서 살아가면 그만이다.
아마도 실행만 가능하다면 이 나라는 훨씬 저 비용으로 고효율을 거둘 것이다. 타고르님이
만들고 싶었던 교육환경도 아마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꺼내주는 교육 말이다.


부수기 좋아하는 놈은 그렇게 부수는 교육을 시키면 아파트
폭파를 하든지 교량철거를 하던지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 어머니 말씀이
하도 물건을 뜯어서 부시는 바람에 낭월이에게 '넌 아무짝에도 못쓰겠다. 뭘 하나
남겨 두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라는 말씀이셨는데, 과연 그때 이런 생각이 있었더라면
부수는 학교에 보내 달라고 할 것을 그랬다. 하긴 그런 학교는 없었으니까 또한 미친놈이
되고 말았겠지만.....



2. 아들놈의 문제



어느 듯 낭월이 아들도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적은 놈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래서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수가 없는데 낭월이는 국민학교의
교육이 전부였고 당시에 얼마 되지 않는 교육기간이었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별로'라고 하고 싶다. 그네들의 교육에 대해서 별로 호감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왕따를 당했고,
또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놀림도 받았다. 한쪽 눈이 신통치 않아서 늘 햇볕에서는
찡그리고 다녔는데, 그래서 붙은 별명이 엽총 예망총(M1) 또는 눈찌그뎅이 였다.
이러한 놀림을 받으면서 다니는 학교는 언제나 고문의 현장이었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고통이었으며 그래서 언제나 학교의 사슬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것이 솔직한
희망이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핑계 대고 학교를 가지 않았고, 오히려
소쿠리를 들고(안면도에서는 바구리라고 부른다만) 갯바닥으로 가서 게를 잡고 낙지를
뒤지는 것이 훨씬 행복했고 실제로 6학년이 되도록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3학년짜리 딸년이 들으면 믿을 수가 없다고 놀리기는 하지만
당시로써는 그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겠느냐고 생각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그야말로
학교의 수업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일년이면 빠지는 날이 한 달도 넘었고, 그래도
그뿐이었다. 어쩌면 가끔이라도 봉투를 들고 찾아가지 않아서일까? 당시로써도 부모들이
돈을 좀 내는 아이들은 다소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지독히도 재미없는 기억만 있는 학창시절(?) 이었다.



여하튼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는 적응을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세상에서는 다행히도 뭔가 자신의 일을 찾아서 가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는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교육은 환상이고 현실은 삶이다. 그러니까 환상을 쫓아서는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의미는 학교의 교육은
현실적으로 상당부분이 대입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뇌물이니 올바르지 못함 정직 등등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말씀하시는 교육의 현장에서 돈 봉투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과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느냐는 것을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일 면이라고 하겠지만
실은 그 일면이 또한 모든 면의 함축이기도 하다는 것을 외면하면 그대로 망가지고
말 것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의미가 바로 그 의미이다. 그 한 면이
우연히 돌발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다른 모든 것과 연계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것이다. 너무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인천의 술집 불로 학생들 50여 명이 불에 타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왜 그런 곳에 모여 있느냐고 시작을
한 이야기는 결국은 경철청장과 단속반과 국회의원까지 술집 운영자의 뇌물에 노예가
되어 있었다는 현실이 참으로 비참하다고 하기는 하면서도 또한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당연한 흐름이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 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한다면
역시 동업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하튼 낭월이는 선생님들께 돈을 갖다 드릴 줄도 몰랐고,
또 그럴 돈도 없는 집안에서 자라다 보니까 그런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로
이내서 인생에 실패를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생각도
다분히 회의적인 생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낭월이가 큰아들 녀석이 학교에 별로 재미가 없어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대로 넘길 수가 있겠느냐는 것은 어쩌면 동병상린인지도
모르겠다.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것은 학교 성적표이다. 성적은 늘 30위 이하였다.
그러니까 공부에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루는 불러 앉혀 놓고서 물었다.



"학교 가기 싫지?"


"예~!"


"자퇴시켜 줄까?"


"예..."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되."


"가기 싫어요. 정말로."


"왜?"


"재미가 없어요."


"그럼 뭘 하면 재미있겠니?"


"소설이나 쓸래요."


"거 참 다행한 일이구나."


"내일부터 안 가도 되겠지요?"


"그래라."


"정말 요?"


"왜 불안하냐?"


"그럼요 불안하지요."


"그런데 소설을 쓰려면 뭘 해야 하지?"


"뭘 해야 하는데요?"


"뭔 소설을 쓸 건데?"


"무협소설이요."


"그럼 아무래도 배경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많겠네?"


"그렇지요."


"그럼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은 뭐냐?"


"삼국지요."


"그 외에는?"


"없어요."


"그러면 뭐라고 거짓말을 해서 책을 만드냐?"


"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


중국을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어떻게 해야 아는데요? 무협지는 좀 봤는데요."


"무협지도 좋지만 역사를 알아야지..."


"역사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역사를 알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니?"


"대학교 가서 중국역사를 공부해야 할까요?"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몇 권 읽으면 되지
그까짓 것을 얻으려고 그 10년의 세월을 보낼래?"


"그럴 수야 없지요."


"소설은 뭘로 만들어 지냐?"


"그야 사람들의 행동이 글로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럼 사람들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하겠네."


"그렇겠네요."


"그보다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그렇겠지요."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는 고전이 좋기는 하지."


"뭔 책이 좋은데요?"


"우선 장자를 좀 읽어보련...?"


"재미있나요?"


"그야 모르지 나는 재미 있더라만..."


"그럼 한번 읽어볼래요."


"그래라 그럼 학교는 치우고 내일부터 책이나 읽을래?"


"그랬으면 좋지만 우선 학교 다니면서도 책은 읽을
수가 있지 않겠어요?"


"그래라 그럼... 그러나 언제든지 네 길이 확실하다고
생각이 되거든 이야기해라 학교는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그럴께요."



그러다가 어저께는 대전을 나간 길에 세 권 짜리 사기열전을
구해 다 줬더니 장자보다 훨씬 재미있다면서 우선 사기열전을 보고 장자를 보겠다
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고, 낭월이가 입산을
해서 정신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느꼈고, 다시 오행을 배우면서 각자 맡은 일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으니 내 새끼의 교육에부터 적용을 시키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학자라면 자신의 자식에게 먼저 적용을 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혼자 속으로 생각하기에는 큰아들 녀석은 잘해야
고등학교를 가거나 말거나 할 것으로 본다. 대학은 생각도 할 필요가 없는 녀석이다.
그래서 어떻게 방향이 되어 가는지 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은아들 녀석은
아무래도 공부를 좀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능하면 과학고를 가보라고
하기는 했지만 별로 강요는 하지 않는다. 다만 일요일 저녁에 하는 카이스트는 웬만하면
보도록 하라고 권유를 한다. 그 속에는 그래도 부분적이나마 미친놈들이 더러 보여서
볼만하다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여하튼 미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므로 빨리 미치는 놈은 그만큼 빨리 미친 짓을 하도록 자리를 깔아
줄 작정이다.


물론 이러한 것이 시행착오가 된다면 애석한 일이지만 그
녀석들이 에비를 잘못 만난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에게 천연두를
넣는 지석영 박사님이신가 하는 분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한 마음으로
관찰을 하는데, 혹 실패를 하더라도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더욱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물론 에미의 입장에서는 별로 탐탁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가끔은 충돌을 일으키는데,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편이다.
또 더 큰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 뭐.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



3. 선생님들의 문제



생각이 약간 있지만 생략한다.



4. 교육부의 문제



생각이 약간 있지만 생략한다.



깊어 가는 가을밤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소감을 적어
봤다.



         늦은 밤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