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귀신 타령 - 2

작성일
1999-10-21 00:00
조회
6223


[23] 귀신 타령 (2)



3. 귀신의 등급



세상에 등급이 없는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에는 상급이 있고 중급이 있고 또 하급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귀신이라고 해서
그 등급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여기에서 한번 구분을 해보도록 한다.



1) 상급(上級) - 수행자의 영혼들



생전에 도를 닦던 사람들이 죽어서 선관이 된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고 진짜로 도를 닦아서 아무 개의
몸에 실려서 왈가왈부하는 그런 영혼이 아닌 그야말로 우뚝하게 사당이라도 하나
얻을 수가 있는 등급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생전에 뭔가 한가락하던
사람들이 죽어서는 이렇게 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 봤다. 우선 생각나는 이름들을
들먹거려본다.



최영 장군


범일 국사


무학 대사


각 고을 산신들



혹 단군도 이 부분에 입장을 시키면 어떨까 싶기는 한데,
이름을 거론했다고 해서 노발대발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자신의 종교에서 교주가
되시는 경우라고 한다면 아마도 낭월이가 무슨 망발을 하느냐고 할 것도 같아서 생략을
한다. 여하튼 이렇게 생전에도 그 이름에 대해서 충분히 알만 한 사람들이 죽어서
영혼이 된 다음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다.
또한 최영장군의 경우 호법신으로 남아서 뭔가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일단 이해가
되는 것은 너무 한이 많은  삶의 마감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한이 죽어서
상등급의 영혼으로 재생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의
출처는 주로 접신자들이 거론하는 이름에서 생각을 해봤다.


또한 범일국사는 대관령 일대의 산신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나서 거론을 해 봤다. 도를 닦은 스님이지만 뭔가 한
역할을 하고 있으신 것으로 보겠다. 그리고 각 고을의 산신들도 역시 이와 유사한
경로를 거쳐서 산을 지키는 영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산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 산신(山神)에 대해서



각 산천에는 산을 담당하는 산신이 있다고 하는데, 그 산신에
얽힌 이야기들도 엄청나게 많은 모양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각 산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이야기가 있고, 또 산천으로 기도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기 특색이 있는 것으로 봐서 낭월이가 짐작을 하기에는 산신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 특성이 있어서 민감한 무당은 신이 내리는 것을 봐도 어느 산의 산신인지
대번에 짐작을 한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절마다 산신각이 있고, 그렇게 각자는 산신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경외심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산악지대여서 그러한 신앙 비슷한 것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한데, 여하튼 이 특별한 신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가) 산신과 호랑이의 관계



대체로 일반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의 생각을
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는 호랑이가 죽어서 산신이 된다는 말이고 또 한가지는
산에서 도를 닦던 신선이 죽어서 산신이 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산신의 행색을
그림으로나마 보게 되면 신선의 자태가 연연한 것을 보면서 낭월이는 후자의 쪽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축생에 해당하는 호랑이가 죽어서 신이 된다는 것은
호랑이에 대해서 엄청 두려워하는 산골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되고 실제로 산신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 산천에서 도를 닦던 신선이 육신을
떠나서는 산천을 지키는 호법신으로 등용되는 것이 인과의 법에도 적당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호랑이 그림이 산신의 그림에는 항상 동행을 하는데
이 녀석은 하도 무서운 존재이다 보니까 그렇게 산신에게 소속을 시켜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불안감을 해소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간의 두려움을 산신이 맡아버림으로써
마치 사나운 개를 목걸이로 해서 주인이 움켜쥐고 있을 적에의 안도감으로 이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산신과 호랑이와의 연관성은 직접적으로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시면 되겠다.


그런데 생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고을마다 호랑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짐승은 다소 특이한 곳이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면도
있다. 기도를 하러 산에 다니는 사람은 보호를 한다고 하는 말이라든지, 또는 개고기를
먹고 산에 들어가면 물어뜯어서 걸레를 만들어 버린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호랑이는 특별한 곳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두려움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봤을 적에 호랑이가
불을 켜줘서 잘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낭월이가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겠고, 그래서 이러한 정도의 생각이라는 점을 전해드린다.



나) 산신의 전설 한 도막



산신이라고 하면 지리산이 가장 유명하지 않은가 싶다.
지리산의 산신은 할머니 산신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더 유명한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쌍계사의 산신각을 가보면 실제로 수염이 없는 할머니 산신의 그림이 있음을 본다.
과연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최초로 산신의 남녀평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린다.



부부가 지리산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후에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리산의 산신은 부부간에 운영을 했던 모양이다. 하긴
워낙이 산천이 넓고 광활해서 아마도 혼자서 모두 담당을 하기에는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그렇게 도손도손 재미있게 산을 관리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남해의 보광산에 산신이 정년퇴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산신의 자리를 맡으러
가야 하는데, 이 할멈이 거부를 하는 것이다. 자신은 지리산이 좋으니까 영감이나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가 없이 영감 산신이 남해로 들어갔는데, 여기에서 남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의 남해군의 금산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산천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가 처리를
하다고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남해의 영감 산신이랑 의논을 해서 처리하곤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별로 신통한 재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2편이 준비되어 있다.



고려말에 이성계라고 하는 사나이가 산천을 다니면서 기도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흘러다니면서 산천을 참배하다가는 지리산에서 할머니 산신께
기도를 했는데,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애야, 그대가 왕이 되고 싶다는 말은 잘 알겠는데,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라 내 혼자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구나 그러니 남해로 가서
보광산 산신에게 기도를 해서 허락을 받으렴, 그 산신은 내 영감인데 그 양반이 된다고
하면 되는 것으로 알아도 될 것이구먼..."



이러한 계시를 받은 이성계는 그 길로 남해로 들어가서
보광산에서 기도하는 단을 쌓은 다음에 100일 기도에 들어가서 끝장내려고 했다.
그래서 백일째가 되는날 영감님이 나타나서는 하시는 말씀이



"내가 보광산의 산신이니라, 그대의 부탁은 잘 알겠네,
그런데 그 대가로 이 산에다 비단을 한 겹 둘러 줄 수가 있겠나? 할멈에게 자랑을
하려고 말이야. 헐헐헐~"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한양으로 귀경했는데,
여하튼 우찌우찌해서 왕이 된 이성계는 대신들과 의논을 했는데, 그 문제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즉 아무리 산이 아담하다고는 해도 산은 산인데 그 산을 한 겹 두를
비단을 마련하려면 온 나라의 비단을 다 뽑아도 불가능해서 중국의 비단까지도 수입을
해야 할 판인데, 이것은 재정적으로 너무나 엄청난 프로젝트인지라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고민을 한 끝에 정도전이 나섰다.



"폐하, 신이 생각컨데 비단으로 산을 두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극히 불가한 일인 줄로 아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왕마마께서 산신과
약속을 하신 일이니 지키지 않을 수도 없을 것으로 아옵니다. 그래서 묘안을 생각하건데,
산의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개명을 명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산신과의 약속도 이행이
되는 것이옵고 환경공해도 해결이 되는 것이오니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분부가
아니올까 생각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과연 이성계가 듣고봐도 말이 되고 다른 백관들도 역시
타당한 묘안인지라 그날로 어명에 의해서 보광산은 금산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남해 보리암이 있는 보광산을 금산이라고 부르고 금산 보리압이라고 하게 되는 연유가
여기에서 발생을 하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이성계와 산신과의 이야기는 늘 함께
붙어 다녔는데, 이것이 어쩌면 유언비어를 살포해서 자신이 쿠데타를 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꾸민 계획적인 것이 아니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는데,
여하튼 이러한 이야기는 그 출발점은 어찌 되었든 전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산신과 얽힌 이야기 중에 한 도막을 차지하게 되는데, 계룡산에서도 산신께
기도를 하던 이성계는 신털봉에서 산신을 만나서 '계룡산은 성스러운 곳인데 니가
그 발로 흙을 묻혀가니 될 일이냐?' 해서 신을 털고 갔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여간 많은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거나 혹은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산신과
인연이 많았던 모양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보면 산신은 영혼 중에서는 상당히 등급이
높은 신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골골마다 각기 다른 신들이 산천을 시키고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이해를 하는 것이 참 만만치 않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 있음을 가정해보자. 계룡산에는 무당의 굿당이 많이 있다. 그래서 모두
밤이 되면 뚜당거리고 산신께 재를 올리게 되는 절차가 필요하고 또 산신이 잘 받으셨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무녀의 몸으로 산신을 불러서 화답을 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되는데, 실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다) 산신은 한 산천에 몇 이나 될까?



적어도 굿당이 100개는 될터이고 그 많은 곳에서 거의 동시에
산신을 부르지 말라는 법이 없고 거의 기도를 하는 시간이 비슷하다고 하는 점을
고려하다면 과연 이것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낭월이의 망상이지만
여기에서도 산신이 내려서 '오늘 저녁 잘 묵었다.' 저기에서도 산신이 내려서 '오늘
저녁 잘 묵었다.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도록 해주마'를 할 터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그 산신은 한 분이겠느냐 아니면 여러 분이겠느냐는 질문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각자 자신의 몸에 오신 분이 진짜라고 할 터이고 그에 대한 증명을 할 수도
없으니 물론 이렇게 짐작만 할  뿐인데, 그 결론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봤다.



☆ 하나의 산신이다.



그래서 동시에 다른 곳에 나타나는 것은 실은 산신이 아니고
아마도 가짜일 가능성이 많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서 가짜라고 해서
노발대발하실 님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실은 자신의 몸을 타고 내린 신이 실제로 누구인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해야 정상일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납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신은 무녀의 몸을 타고 나타나서 떠벌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정령이 뭐가 답답해서 그런 짓을 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그래도 산신을 산신으로써 대우하는 생각에서 발생한 내용이다.



☆ 골골마다 각기 다른 산신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내용이다. 반장이 있고 이장이 있다면
계룡산이라고 해서 하나의 산신만 있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각기 수행을
많이 한 수행자들이 죽어서 각자 대왕산신의 분부에 따라서 '삼불봉산신'이 될 수도
있고, '연천봉산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향적봉산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기 다른 산신이 굿을 하는 마당에 찾아가서
왕림을 하실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드는데, 그렇다면 '감로사산신'은 어느
봉의 산신인지 또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가끔 정기적으로 각 산신들이 모여서
총회를 하는 날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참 망상의 극은 과연 어디일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산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낭월이도 모른다. 여하튼 이렇게 상급의 영혼들에 대해서는 이 정도의
범위를 정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2) 중급 - 학자의 영혼들



마음의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잘 되면 이렇게 상급의 영혼들이
될 수가 있겠는데, 그냥 글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육신을 떠나면 아무래도 다시 글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데, 여하튼 등급으로 따져서 다고 낮은 것으로
봐서 중급의 영혼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냥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점잖은 학자의 풍모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나타나는 것인지 말씀을 드려 본다.



부여에는 어떤 할머니 영매자가 있는데, 그 분에게 빙의되어
있는 귀신은 조부님이라고 한다.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려서 열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인연으로 인해서 하반신의 불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글을 읽으시는 학자셨다고 하는데, 돌아가셔서 자신이 책임
있는 손녀의 삶에 도움을 주고져 해서 그 할아버지 영혼이 신내림으로 빙의가 되신
모양이다. 그래서 일생을 점술가로써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 분의 상황이 흥미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개를 드린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실렸을 경우에는
대단히 유식하고 논어와 주역을 이야기하는 고품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빠져나가고 나면 일단 욕설이 난무하는 괴팍한 노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무슨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대로 나타나고 있고, 논어의
이야기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할 때에는 영락없는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이러한 것을
공부를 해서 그렇게 된다고 보기에는 극히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영혼을 보고 아무래도 중급자의 영혼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무녀들이 영혼이
글을 읽었던 경우에는 그만큼 영혼이 감응된 상태에서의 품격과 그렇지 않은 때의
행동에는 많은 차이가 나고 또 그렇게 뚜렷하다는 점에서 참 뭔가 있기는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이러한 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중급의 영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낭월이도 글줄이나 읽고
있으니까 나중에 귀신이 되어서 어딘가에서 무당과 동업을 한다면 그래도 최소한
중급의 귀신은 유지가 가능할지 한번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또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하~



3) 하급 - 평민의 원혼들



일반적으로 빙의되는 영혼들은 대다수가 이러한 등급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무당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어떤 대감이 실렸다고
하기도 하고, 또 관세음보살이 실렸다고도 하고, 뭔가 항상 심상치 않은 영혼이 왕래를
한다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 하는 행동을 보면 아무래도 별 수가 없는 영혼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상태가 많음을 생각해 볼 적에 되는대로 지껄인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일정한 중심이 없는 영혼들에게 빙의가 되면 빙의
된 사람도 그렇게 천박스럽게 보인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빙의가 되어서 오래도록 유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반짝이다가는 이내
소멸되어 버리고 떠나는 것처럼 보이는 영혼은 아무래도 이러한 등급에 있는 경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생각 같아서는 이러한 영혼들은 천도를 시켜서
오히려 사람이 그 가운데 시달리는 일이라도 막아보고 싶기는 한데, 역시 각자의
인연은 별도로 있는 모양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감로사에 사주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무녀가 두어 명 있었다.
처음에는 생각이 기특해서 받아 줬는데,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하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영으로 인연이 된 회원은 접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왜냐면
어차피 받아 줘봐야 공부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기만 흐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사람의 경우에는 처음에 입산을 하는 동기는 간단하다.


우선 신을 받아서 몇 년 신의 제자로써 업을 하고 처음에는
그런 대로 용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에 5~6년 경과하면서 점차로 흐릿해 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불안하기도 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간판을 떼어버리려고
해도 이 영혼이 자꾸 엉켜 붙어서 떨어지지도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시 용해지기를 바라고 굿을 하고 그래서 잠시 또 반짝이다가는 이내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그 영혼으로 인해서 벌어 놓은 돈도 다
까먹고 결국은 빚을 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결국 이러한 것이 짐이 되어서
그만 두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까 차라리 책이라도 봐서 대충 귀신이 보는 것으로
하고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 보려고 서점에서 기웃거리다가는 낭월이 책을 보고는
찾아와서 공부를 해서 영업하는 방법으로 도움을 받아 보겠다고 하는 생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일단 좋다고 하겠는데, 문제는 이 영혼이
공부를 하도록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증세 중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골이
아프다고 하는 증세이다. 그러니까 책을 봐도 머리가 띵~하고 공부시간에 강의를
들어도 자꾸 생각은 밖으로 향하도록 되어 있으니 결국 공부도 되지 않고 시간만
지루하게 되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그래서 결국은 그만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셈인 모양이다. 한사람이 처음에 그러더니 다음에 온
부인도 역시 그러한 증세로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하산을 하는 것을 보니까 참 답답하지만
역시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제는 영적인 인연이 많은 사람은 아예
받지를 않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 영매자가 공부가 되지 않는 이유



그러니까 이러한 영혼과 연결이 된 사람은 공부에 대해서는
전혀 진전이 없다고 하는 결론인데 아마도 그 영혼은 살아 생전에도 공부라면 지긋지긋했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신경계는 이미 영적인 부분이 모두 장악을 하고 있는 셈이어서
다시 글을 배어도 입력이 되지 않으니까 장애를 일으켜서 컴퓨터로 치면 CPU의 장애로
그만 다운이 되어 버리니까 도저히 작업을 하지 못하고 그만 포기를 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놓고 생각을 해보면 아무래도 영적인
장애가 있는 체질에는 그만한 체질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귀신이 자신이 써먹을 경문 등의 암기에는
또한 대단히 호의적이라고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살풀이 경을 외운다면 평소의 기억력을
능가해서 초인적인 암기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렇게 외워진 것은 영이 떠나가면
자연히 잊어진다는 말도 하는 것을 보면 참 묘한 관계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여하튼 이러한 부분의 영혼들은 모두 하급의 영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사람의 진화를 막는 정도라면 이렇게 대우를 해도 과히 억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고급의 영은 그만두고 중급의 영만 되어도 아마
사람의 공부를 시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혹 사주를 배워서
자신의 할 일이 없으면 쫓겨 날까봐 미리 방어 막을 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유야 어떻든 간에 결국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자신의 요구대로
이끌고 가려는 행동은 아무래도 하급의 영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4. 귀신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 - 영매자



실로 귀신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이러한 사람들 즉 영매자들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영혼과의 세계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전혀 알아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매자가 있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니까 그에 따라 나름대로 할인을 할 것(스스로 관세음 보살의 영이라고 한다든지
석가모니의 영이라고 할 경우 등)은 할인을 하고 정리를 할 것은 정리를 해서 이렇게
귀신타령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들의 존재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는데,
예전 초등학교의 교과서에 보면 안향 선생이라는 분이 무당들을 불러서 혼을 내는
장면이 등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무당의 존재를 인식하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내용에서 주장하는 것은 가짜무당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일단 이러한 내용이 문제는 문제이다. 그렇게 무당의 존재 자체를
모두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으로 몰고 갈 경우 그 결과는 이렇게 영혼의 세계에 대해서
부정하는 세대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고, 물론 그 세상을 인정하든 말든 존재하는
현실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겠지만 낭월이가 염려를 하는 것은 이러한 것을 부정하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와 연관된 어떤 일들은 계속해서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염려스러운 것은 과연 인생살이에서 영적인 개입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부정하고 무시하면서 골탕을 먹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것이 더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 염려스러운 것이다.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과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의 차이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과 몰라서 속게 되는 경우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구분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물질문명의 조류에
휩싸여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증명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새로운 영맹자(靈盲者)들을 양산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영맹자는 낭월이가 만들어 본 용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영혼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면 맹이 되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고, 선진국에서의 타령을 하지만 실로 러시아이든 미국이든 다들 영혼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엄청난 노력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되는 것은 그냥 낭월이의
추측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미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선각자의 대열에 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있는 것은 인정을 하고 어떻게 이용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것이 더욱 인류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이러한
것도 낭월이의 한담에서나 토론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도 무당의 사이트가
몇 곳 있는 것으로 안다. 관심이 있으시면 한번 찾아가 보시는 것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 영매자를 무당이라고 하기도 하고, 접신자라고 하기도
하고 만신이라고도 하니까 그 용어는 몇 종류가 있다고 하겠지만 결국은 같은 의미이다.
영혼과 어떤 교섭이 잘 이뤄지는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말이라고 이해를 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리고 무당이라는 용어는 우리  나리에서도 아마
오랜 옛날부터 사용을 해온 용어라고 생각이 되어서 가장 친숙하지 않은가 싶어서
낭월이도 이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실제 상황을 바로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깎아 내리거나 추켜세우는 일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는다고 하면 되겠다.



1) 이해를 도와주는 영화 - 사랑과 영혼(gost)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누군가 영혼의 세계를 잘도 이해하고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의 상당부분은 실제상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낭월이가 권하는 영화로는 단연 최고이다. 다만
깡통을 차버린다든지 동전을 움직이는 것은 상당히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고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혹 이 글을 읽으시면서 보다 실감나게 영혼의 부분을 이해하고 싶으시다
면 그 영화를 한편 빌려다 보시라고 권한다. 그리고 이미 히트를 한 영화이기 때문에
아마도 보셨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관점을 바꿔서 본다면 또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나타날 것이다. 만물은 어떤 생각으로 접하느냐에 따라서 그 모습은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기 마련인 것이다.


죽고 났을 때 빛이 보인다는 것은 아마도 대본을 쓴 사람이
혹 '사자의 서'를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현역에 종사하는
접신자의 조언이 상당히 들어갔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 해봤다. 그리고 어쩌면 대본을
쓴 사람이 실제로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이 된다. 여하튼
그만큼 멋진 표현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이해가 따르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던 낭월이다. 그래서 이해용으로 권장을 드리거니와, 영매자의 입장에서는
완전부정을 하는 무지한 사람들의 생각이 참으로 답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대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또한 현실이다.
우리는 무당과 어떤 대화를 하였는지도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고,
또 명리학을 공부해서 세상의 어려운 매듭들을 풀어가고 싶은 학자라면 더욱더 명리와도
일치한다고 볼 수가 없는 또 하나의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많은 벽에 부딛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어쩌면 필수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이 이야기들이 혹 생소하시다 면 많은 참고가
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2) 영매자의 형태 분류



가장 흔한 경우는 내림굿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영매자가
되는 것이다. 즉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일종의 '내력'이라고 하겠는데, 이러한
가계를 내력이라고 하거니와, 아마도 혈통적으로 영적인 인연이 많은 경우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그 평가는 달라져 왔다고 해야 하겠는데,
아득한 옛날에는 왕족이 되어서 국가를 통치하고 신의 계시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므로
절대적으로 영매자가 되어야 했을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아무래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을 해서 원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렇게 변한 사회적인 인식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한 면으로는
스스로 직권(?)을 남용해서 자기의 무덤을 스스로 판 것으로 봐도 하겠다. 특히 불교의
영향력에서는 더욱 접신자의 영역이 좁아졌다고 생각이 된다.


여하튼 시대는 변해도 영매자는 늘 나타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끊임이 없는 것을 보면 참 묘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생각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내림굿의 현상을 보면 사주팔자보다도 혈통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음으로는 원이 많은 영혼들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빙의가
됨으로 해서 발생하는 영매자가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도 과정은 다소
다르겠지만 모두 스스로는 원하지 않지만 도리 없이 흐름에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여하튼 피해 보려고 노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항복을 하는 형태로 돌아가는데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 중에 하나는 무병(巫病)이라고도 하는 신병(神病)이 발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병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는 또한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풍파를 겪게 되기도 한다는데, 그 풍파는 물질적으로 오는 것이고, 질병은 정신적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태에 대해서는 또 별도의 장을
마련해 보도록 하고,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