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풍수쟁이를 따라서 보낸 하루

작성일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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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풍수쟁이를 따라서 보낸 하루



지난봄에 있었던 일이다. 가끔 풍수 전문가이신 김경보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주로 '도반 스님들이 절터를 하나 봤는데, 무난한 터인지
좀 알고 싶다'고 할 경우이다. 낭월이는 명리에 대해서는 '쟁이'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풍수에 대해서는 도저히 접근을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필요할 경우에는 김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서 함께 살펴보곤 한다. 그리고
사례비로 약간의 답례를 하면 또 그렇게 서로 편안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반이
연락을 한 게 아니고 모 대학교의 오 교수님이 전화를 낭월이에게 했다. 목소리로
봐서는 적어도 60세는 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분이었다.



"예, 낭월입니다."


"스님이 저술하신 음양오행이라는 책을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책에 보니까 갈로사 터를 잡으신 이야기가 있더군요."


"예."


"저도 산을 하나 봐 둔 것이 있는데, 그 선생님을
좀 만나 뵙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어떻게 연락이 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연락이야 언제라도 가능하지요. 전화번호를
일러 드릴 테니까 한번 해보세요."


"그럼 적겠습니다. 불러주시지요."



이렇게 되어서 연락처를 알려주고는 잊어버렸는데, 그로부터
1주일인가 지난 다음에 또 연락이 왔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스님도
함께 나와 주실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물론 낭월이는 산을 보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사양을 했지만 자신이 연결되도록 한 인연이 있으니까
함께 와주시면 좋겠다는 당부를 구태여 하기에 마침 시간도 있고(실은 항상 있는
시간이기는 하다만....) 해서 연지님을 꼬여서 함께 공주로 출발을 했다. 연지님은
낭월이의 발이기 때문이다. 운전을 해주지 않으면 기동이 불편하니 외출을 할 적에는
그것도 별로 돈이 되는 일이 아닐 적에는 항상 아부를 하여 동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시의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세상의 어떤 차보다도 편안하여 다른 생각이
별로 없기도 하다.



공주 터미널에서 서로 만나기로 하고 약속된 시간에 김
선생이 나타났다. 언제 봐도 허름한 옷차림에 수수하게 꾸민 모습은 그대로 산 사나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연지님의 차에 두 사람이 동행을 하여 일행 네 명은 오
교수님이 잡아 놨다는 산을 보기 위해서 출발을 했다. 교수님이 차가 없어서 연지님의
차가 톡톡히 한 몫을 하게 된 셈이다. 이런 떼에는 네발 구동인 찝차가 좋기는 한데,
연지님이 그 차는 시끄럽다고 해서 별로 생각이 없으신 눈치였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도 듬직한 차는 굴리기 어려울 모양이다. 여하튼 공주에서 대전 쪽의 구 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산길로 접어들어서 또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그 동안 김 선생님과의
이야기도 나누면서 오 교수님은 과연 이 양반이 풍수를 제대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테스트를 하면서 각자 그렇게 자기 좋을 생각을 하고 있는 일행이었다. 김 선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할 이야기만 하고 연지는 연지대로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이니
운전만 열심히 하는 각자풍속도였다. 정말 그야말로 '모두 지 좋을 대로 생각하고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를 달려서야 어느 아늑한 시골 마을에
차를 멈췄다. 여기에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한다고 하여 연지님은 일단 탈락이 되었다.
산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피곤하여 별로 생각이 없어 하기에 차에서 쉬라고 하고
일행 셋이서 출발을 했다. 다시 걸어서 약 30여분 산을 올라갔을까.... 어느 산소
앞에 다달았다. 이윽고 교수님의 풍수쟁이 테스트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산소를 좀 봐주시지요."


"음...."


원래 그렇다. 김 선생은 언제 봐도 활발한 사나이이다.
대번에 무엇을 알고 싶은지에 대해서 감을 잡았겠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그대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감상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약 5분 정도....?)


"터를 잘 잡았네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흘러온 주맥을 잡았으니 안목이 있는 지사(地師)가 잡았다고 생각이 되네요. 다른
것은 어쨌든지 자손이 거부가 되었을 구조라고 해야 하겠는데...."


"일정 때 잡은 산소입니다. 생전에 지독하게 고생을
했다고 합디다."


"생전에 고생을 해도 좋은 일을 많이 했구만요. 이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여간 복을 쌓지 않고서는 어렵지... 터가 좋아요."


"이 산소가 공주갑부 김갑순 씨 모친의 산소입니다."


"그래요? 말은 들었어요. 자식이 갑부가 될 만 하다고
보이는 자리네요. 김갑순이라면 고약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쯤에서 특정인과 연관된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다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풍수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서
언급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별로 좋은 일은 하지 못했던 모양입디다. 그래도
그렇게 잘 살은 것을 보면 이 산소의 덕분이라고 하네요 들."


"그럴 만 하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두 망해먹고 아무 것도 없는 거지들이
되었어요. 자식들은 별로 발복을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음.... 보자...."


다시 두리번거리던 김 선생은 말을 이었다.


"머지 않아서 다시 생 기운이 몰려오네요. 올해 아니면
내년쯤에서 좋은 일이 생기겠어요."


"에구 천만에도 아무 것도 없어요. 다 망했다니까요."


"글세 그야 우쨌는지 모르겠고, 산의 그림이 그렇게
변하네요. 앞으로 두고 보시면 알 겁니다. 그런데 잡아 놓으신 터는 어디예요?"


"이 위로 올라갑시다."


그렇게 좀더 올라간 자리에도 다시 산소가 하나 더 있었다.
여전히 같은 맥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낭월이는 워낙이 산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는 사람인지라 묵묵히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따라갈 뿐이었다. 그 산소에
이르러서 다시 오교수 님이 의견을 물었다.


"김갑순씨 모친의 터와 이 터를 좀 비교해 보시지요."


"여기다 대면 그 터는 하꼬방이지요. 벌써 국세가
틀리잖아요."


"여기가 그렇게 좋은 자린가요?"


"산세를 꽉 잡고 있는 터네요. 여기야말로 이 산에서는
으뜸이 되는 자리라고 봐야 하겠는걸요. 누구 터인지 아세요?"


"그야 모르겠는데, 무슨 장군의 터라고 합디다만...
뭣 때문에 좋다고 보시는 겁니까?"


"이 쪽과 저 쪽을 연결하는 십자(十字) 봉우리가 보입니까?
그러니 바람이 불어도 안정이 되어 있는 겁니다. 대대손손 안정된 가문이 될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대면 아까 본 자리는 그냥 노친네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자리로써는
충분하다고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 산소 바로 5~6미터 앞에 또 하나의 산소가 있었다.
훨씬 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그 자리 옆에 가서 서봤다. 그러니까 다시
김 선생이 말을 이었다.


"이건 가짜야~!"


그의 말은 언제나 이렇게 명확하다. 그래서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 좋은데, 무슨 꿍꿍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이제 낭월이가
물을 차례이다. 늘 기회를 보고 있으면 기회가 오는 것이다.


"왜요?"


"오늘 낭월스님 한 수 일러 드려야 하겠네. 여기 와서
서보고 저쪽에도 가서 서봐 어디가 편안한지."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해봤는데, 별로 모르겠다. 원래가 그렇게
느낌이 둔한 낭월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을 했다. 그도 솔직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느낀 대로만 말하면 그만이다.


"모르겠는걸요... 앞쪽의 산소가 전망이 더 좋아서
좋아 보이는걸. 하하~"


"에구~! 그렇게 몰라? 자 다시 봐요. 이 좋은 자리에
있으면 잘 모르니까 우선 저쪽으로 가서 앞에 산소를 보자고. 여기에 서면 이쪽 왼쪽의
낭떠러지가 매우 불안하게 보이지 않어?"


확실히 '눈이 나쁘면 쥐어줘야 한다'는 말이 맞는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이때 느꼈다. 그렇게 하는 말을 듣고서야 다시 보니까 전망이 좋다고 생각되었던
지점은 오히려 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생각할 나름인지 아니면 역시 안목의
차이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안목의 차이라고 보인다.


"이봐요. 우선 보기에는 시원하니 좋을 것으로 생각되지?
여기는 바로 휴식을 취하는 자리야. 무슨 휴식이냐 면 길 가다가 잠시 쉬어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갈 자리야. 그러니까 잠시 쉬어서 가야 할 자리에 조상을 모셨으니
이 자리는 틀린 것이야. 반면에 이쪽을 와봐. 이 오래된 자리는 불과 거리가 몇 걸음
되지 않는 차이지만 여기에 오면 바로 균형이 잡혀서 오래도록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자리라는 말이지. 자, 이제 왔다 갔다 하면서 이 느낌을 생각해봐요."


다시 서너 번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느낌을 갖으려고
생각 해봤다. 그랬더니 묘하게도 그 느낌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
선생을 따라 다녀야 한 수 배운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의 자리에서는
낭떠러지가 보이는데,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면 그 자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낭월이도 확실히 느껴지지 않으면 인정을 하지 않는 고집쟁이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는 도저히 김 선생의 안목을 못 따라 간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님 살풍(殺風)이 뭔지 알아?"


"느낌이 써~늘한 바람을 말하지 않나요?"


"맞아. 이 앞의 자리에서는 바로 그 살풍이 느껴져.
한번 서봐."


정말 별로 바람 기운도 없는 날이었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듣고 봐서 그런가보다 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런 기분을 감추고 생각
해보려고 했는데, 확실히 상당한 차이의 안정감을 뒤쪽의 고묘에서는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을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점차로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둔한 낭월이도
그렇게 느꼈다면 아마도 벗님도 충분히 그렇게 느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게 한 수 배우고 있는데 오 교수님이 다시 자신의 목적지를
찾아가자고 했다. 그래서 또 이끄는 대로 가는데 이제부터는 길이 없다. 산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잡목들이 우거져서 자칫하면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을 1시간 이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잡아 둔 산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이 경과하고 나니까 김 선생이 침묵을 깼다.


"잡아 놓으신 부근이 이 위라는 말인가요?"


"예, 이 비알을 올라가면 있는 것이 확실한데 길이
없네요. 늘 다녔는데... 이상하다...."


"그만 갑시다. 이 위에는 자리가 없어요."


이렇게 말을 하면 낭월이가 민망하지... 그런데 김 선생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보세요. 이 고랑은 위에서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위는 약간의 공지가 있을 수 있겠는데 그 곳은 맺힌 곳이 아닙니다. 쓸모 없는 땅이지요.
여기를 보고 그 곳을 모르면 풍수라고 하겠어요? 쓸데없는 고생 할 것 없어요."


"아니 어떻게 가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말을 합니까?"


오 교수도 열이 받혀서 되받았다. 실은 자신이 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2~3억 들여서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일생을 모은 전 재산을 쏟아
부은 것이다. 주변의 산소 주인을 봐도 그렇게 분명히 한자리 잘 쓰면 가문이 융창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십여 년을 등산을 다니면서 보고 또보고 해서 얻은 땅이다.
그런데 오늘 이 젊은 놈이 가 보지도 않고 쓸모 없는 땅이라고 해버리니 열이 받을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낭월이는 가만히 있어야지 뭐...


"척 보면 몰라요. 아래를 봐도 위를 알아야지 꼬리만
보고 그 위에는 호랑이 머리가 붙이 있을지 생쥐의 머리가 붙어 있을지 모른다면
그게 풍수쟁이겠어요? 우째 이런 자리를 잡았어요? 이 자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과수원도 불가능하고, 집도 지을 수가 없지요. 살이 너무 두터워서 물러요.
그리고 축대를 쌓아도 허물어지지요. 옆에 고랑이 급한 것을 보세요. 그 동안 패였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잡목이 무성한 것을 봐요. 그야말로 기운이 흘러가는
구석이 없어요. 아까 본 자리들은 정맥을 잡고 있는데 여기는 아무 맥도 없으니 더
봐야 소용이 없지요. 좀더 길을 찾아보세요. 그런데 이렇게 길도 못 찾을 정도의
잡목을 보면 명당은 없어요. 다른 풍수가 들께서는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 터도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이렇게 딱 잘라서 말을 하니까 기가 막힌 모양이다. 한
자리 있을 것으로 보고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이런 말을 들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는
이해가 된다. 이미 앞에서 산소를 감정하는 것으로 봐서 실력은 있다고 봤는데, 그렇게
생각을 한 사람이 이렇게 맥빠지는 말을 하니 참 난감하다고 생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낭월이가 당시의 상황을 보면서 그려낸 상상이다.



누구누구 이름만 대면 알만한 풍수의 대가들이 다녀갔다면서
이름을 나열했다. 그런데 젊은 양반이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느냐는 식의 불쾌감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 프로의 냉정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중에 어떻게
되든 자신의 소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프로이다. 낭월이도 그렇다. 누가 나중에
뭐라고 할까봐 겁을 낸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영원한 아마추어를 면키
어렵다.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할 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외한이 생각하기에는 노인이 좋은 터를 잡았다고 하니까
대충 살펴보고 무난한 자리라고 하면 그만일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 낭월이었지만,
김 선생은 어림도 없었다. 자신의 안목에 차지 않으면 그대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올바른 평을 했을 적에 ' 전에 김 선생이라고
하는 양반도 좋은 터라고 했는데'라는 말을 하게 되면 두고두고 욕을 먹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싫다고 했다. 차라리 보지 않은 요량으로 하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말을 할 적에는 마치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대장군의 기상이 보이기도 했다. 낭월이가
아마도 반한 모양이다. 하하~



그렇게 하고 나서도 김 선생도 딱했던지 그럼 30분만 더
찾아보고 못 찾으면 그만 하산을 하자는 말을 하여 약간 여유를 줬는데 역시 도리
없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내려오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낭월이는
아주 귀중한 한 수를 배운 시간이었다. 과연 풍수의 감각이 뭣인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고 역시 전문가는 못 당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낭월이도 그러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왜냐면 김 선생이 낭월이보다 사주에 대해서는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안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생각이다.
그도 사주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장담을 할 수가 없는데, 그는
천성이 개인적인 운명을 보기보다는 산천의 기운을 읽는 것이 더 재미가 있어서 사주
공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이 되면서 그러니까 낭월이도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안도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있다. 이런
사람이 사주까지 정복을 해버린다면 과연 뭘 해먹고 살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의 뒤를 따랐다.



공주 터미널에서 김 선생은 저녁을 먹고 헤어지자는 오
교수님의 인사에도 바쁘다는 일정의 이야기로 사양을 하고 약간의 사례비를 어색하게
받아 넣고는 대전으로 떠났다 낭월이도 그렇게 떠나고 싶었는데, 이 노 교수님은
지금 그렇게 할 기분이 아니어서 구태여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승낙을 했는데,
역시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당연한 것이다. 일생의 재물을
모아서 투자를 했는데, 그런 평가를 받았으니 말이다. 여하튼 낭월이의 책임은 없으니까
속은 편했지만 그래도 예의 상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위안을 드리고,
또 다른 명사를 찾아보시라는 말씀도 드리고 그 사람인들 산천을 다 알겠느냐고 얼버무리고는
돌아왔다.



※ 후렴....



얼마 전에 김 선생이 전화를 했다. 자신이 느낀 것이 맞았다고
확인을 해보라는 전화였다. 그래서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더니,


"왜 그때 공주 가본데 있잖아?"


"예 그랬지요. 그런데요?"


"그때 김갑순 모친 산소를 보고 앞으로 다시 기운이
살아난다고 했던거 기억나?"


"물론 나지요.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한 거예요?"


"가능하고 말고지 오늘 신문에 나왔어. 그 자손이
잃었던 땅을 엄청나게 찾게 되었다는 기사구만 금새 부자가 된거야. 어때~!"


"그랬어요? 대단하시네요. 정말 그게 가능하군요...."


"그 교수님이 그랬잖아. 그 집안은 다 망해서 쓸데없이
되었다고 몰락했다고 하는 말을 했는데 내가 두고 보라고 했잖아. 이렇게 묘한 거야.
하하~"


오늘 따라 김 선생이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자신이 그렇게
느끼기는 했지만 막상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고 보니까 과연 스스로도 놀랍고 혹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였을 만 하겠다. 그리고 그렇게 꾸밈없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또 낭월이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던 천진함이 매력이다. 누군가가 은근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랑 할 것이 있으면 자랑을 하고 비난을 받을 것이
있으면 비난을 받는 성품은 그대로 소탈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문득 늦은 가을의 비가
내리는 새벽에 그 산천이 떠올라서 몇 자 적어 봤다.



이제 좀더 있으면 낙엽이 질 것이고, 그러면 감로사의 학생들을
데리고 산수 공부를 시켜주러 한번 그 산을 찾아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살풍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 자신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무게를
잡는 고수가 되려나...' 하는 생각을 짐짓 해본다. 그리고 고수가 되는 것보다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잃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장군
멍군인 모양이다.



         빗소리도
포근하게 느껴지는 아침에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