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숫자로 사주를 풀이하는 것에 대하여 - 2

작성일
1999-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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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숫자로 사주를 풀이하는
것에 대해서 (2)



3. 숫자 계산이 아무래도 찜찜한 이유



이것은 순전히 낭월이의 생각이며 실제로 숫자로 계산을
해서 올바른 답이 나왔고, 그에 따라서 해석을 한 내용이 그 사람의 삶에 거의 완전하게
부합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드리는 말씀이다. 즉 논리적으로
과연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1) 숫자에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숫자라고 하는 것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낭월이같이 숫자에 대해서 일종의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정감이 가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하겠는데, 이것이야 낭월이 생각이니까 혹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른 생각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2) 미묘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실로 사주에서의 궁리는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는 것에 묘한
면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니까 숫자로만 표시를 할 경우에 왠지 그러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가령 예를 든다면 천간에 경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경금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에 따라서 변화는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과 같은 사주를 보자.


(1)번 예문


時 日 月 年


丁 甲 壬 庚


卯 辰 午 辰



(2)번 예문



時 日 月 年


丁 甲 壬 庚


卯 辰 午 戌



1번의 사주에서 용신은 壬水가 되어야 할 것이고, 희신은
庚金이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2번의 사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두
사주에서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年支의 辰土와 戌土의 차이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차이점은 미묘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번에서의 경금은
辰土에 뿌리를 내리고 상당한 힘을 보유하고 있어서 희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겠는데, 2번의 사주에서는 戌土에 앉아 있는 상황이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부의 사정은 전혀 딴 모습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혹 용신이 임수가 아니고 다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여하튼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금의 모양을 갖은 것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것이냐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있는 상황에서 숫자로 바꿔서 계산을 하게 되면
1번의 庚金이나 2번의 庚金이나 큰 차이가 없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만약에 숫자로 풀어서 위의 두 사주는 완전히 같고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려버린다면 더욱 심오한 철학이 포함되어 있는 자평명리학을 몇 단계 끌어내리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로 해석의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명분아래에 심오한 명리학의 묘미는 점차 포기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는
염려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午戌의 합이 작용하는 점까지 고려가 된다면 더욱
그 차이점이 뚜렷할 것으로 보이는데, 적천수 식으로 음미를 한다면 그야말로 '소위호리천리지차야(所謂毫釐千里之差也)'인
것이다. 미세한 털끝 만한 차이지만 그 결과는 천리나 떨어진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의미로 철초님께서 가끔 애용하시는 문구이다. 그리고 낭월이도 이러한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것이고 실은 이러한 차이점을 느끼면서 사주를 음미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점으로 본다면 앞에서 예로 든 사주에서는
그 차이가 상당하다고 해야 하겠는데, 숫자로 이러한 미묘한 점을 어떻게 느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앞의 하건충 선생님이 계산하는 식으로 봐서는
도저히 이 차이점을 인식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른 식으로 계산을 하더라도
합의 작용을 어느 정도 민감하게 고려하게 되는지는 역시 만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왜냐면 이러한 것조차도 숫자로 점수를 주기에는 또한 숫자의 특성상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들어서이다.



이러한 점에서 숫자로 사주를 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만약 이러한 변화까지도 숫자로 접근이 가능해 진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간단하게 용신을 찾기 위해서 숫자를 대입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미묘한 것까지 숫자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자평명리학의 용신을
찾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계산기를 동원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생각제화의 바탕에서 十干과 十二支의 특성을 연구하고 서로 좌우에서 미치는
영향을 궁리하는 것이 훨씬 속이 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혼자 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현재로써는 이렇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면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자리 숫자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세 자리 숫자나 네 자리 숫자 정도로 생각을 한다면 접근을 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생각을 하려고 숫자를 대입하는
것이 처음의 시도라고 한다면 이제는 정말로 정확하게 답을 찾기 위해서 숫자가 동원되어야
한다면 아마도 상당히 매력적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실제로 기존의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에서의 가장 단점은
그 감을 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전해졌기 때문에 답습을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완전히 파악을 하기까지에는 아무래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스피드
한 감각이 살아나서 용신을 찾는데 웬만한 것은 3초면 되고, 다소 복잡한 것도 10초
정도면 용신이 대충 짐작이 되는 것으로 생각이 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빨라야 3년
또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그렇게 된다면
10년을 공부할 요량이라면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간편한 감각이 살아나기만 한다면 실제로
숫자를 열심히 대입시켜서 가감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에게 대입을 시켜서 확인을 해본 다음에 판단이 맞지 않으면
용신을 바꿔보면 될 것이다. 이것이 비록 학자의 자존심은 깎아 내릴지 몰라도 결국
정확한 답을 얻어내는 시간은 많이 단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하튼
시간은 그렇게 소중하고 또 물처럼 흘러간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시간에도 인생은
늙어간다고 생각을 한다면 시간의 단축은 결코 적은 분야가 아닌 것이다. 어떤 방법을
대입시키더라도 이렇게 신속한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거나 말거나 계산을 하는데 30분이 걸리더라도 결과가
명명백백한 것을 좋아하시는 성격이라면 숫자의 풀이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겠고, 숫자는 그렇게 무한대로 대입이 가능하므로 몇 번인가의 수정 작업을 거친다면
아마도 대단한 접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계산은 컴퓨터에게
맡겨도 되니까 실제로 사람이 공식만 세워 놓는다면 그 후의 일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왕이면 대운이나 세운이나 월운까지도 숫자 화를
시킨다면 또한 애매 모호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기존의 방법에 비해서는 월등한
결실이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계산까지
하려면 아마도 10000단위까지는 계산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더 많은 십만 단위까지 계산을 한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일은 컴퓨터에게 시키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생년월일시만 뽑아서
집어넣으면 그 나머지는 머리 좋은 펜티엄쓰리 600메가헤르츠가 불과 10초 이내에
정확한 답을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숫자의 사주에서 기대를 거는 부분은
바로 이 영역이다. 다만 그 공식을 세우는 것은 숫자에 밝은 특성을 갖고 계신 분들의
영역이다. 왜냐면 낭월이는 그러한 계산을 한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 공식을 만들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작이 된다면 당장 한 카피 사러 달려갈 작정이다. 그보다 좋은 반려자가 없겠기
때문이다.



5. 상수학(象數學)의 관점에서 본다면 승산은 있다.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는 방법을 볼 적에 상학(象學)과 수학(數學)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즉 구태여 象學으로써만 접근을 해야 할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숫자에 대한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접근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아마도 이것이 진리를
찾아가려는 길에서의 음양법이 아닐까 싶다. 수학으로도 자연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각도를 계산하려면 반드시 숫자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다. 다만 이러한 것을 정확하게 산출해 내는 공식이 어렵다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겠다.



물론 낭월이가 접근하려고 하는 것은 象學의 영역이라고
본다. 하건충님이 접근하려고 시도하신 것은 數學이라고 생각을 해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냉철한 숫자의 개념으로 인해서 또 다른 많은 것을 산출해 내신 것이고,
그러한 것에서 낭월이의 『마음을 읽는 사주학』이 탄생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니까
아무래도 학문은 상호보완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앞으로 숫자로써
사주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시는 벗님이 계신다면 이러한 점을 참고삼아서 연구하신다면
반드시 대단한 결실을 거둘 수가 있을 것으로 보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는 점차로 컴퓨터의 세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봐야 하겠고, 이미 휴대폰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가 있는 전화기의 광고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복잡한 기본 공식을 세우는 방법도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숫자로써의 접근은 대단한 경지에 도달한
셈이기도 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컴퓨터도 象學에 대해서도 입력이 가능한
시기도 오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컴퓨터의 개발 프로그램이 머리가 더욱 좋아진다면 이런
상상을 해보도록 하자. 낭월이가 프로그래머라고 생각을 하고 망상을 해보는 것이다.
말이 되지 않더라도 양해 바란다. 왜냐면 언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흔한 비주얼베이직도 돌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상이야 누가 못하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용감하게 덤비는 것이다. 여하튼 함께 생각을 해보자.



1) 甲木이라고 하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 해보자.



특별히 기준을 세우는데 甲木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乙木도
좋고 계수도 좋다. 그냥 편리상 이렇게 해보자. 그리고 기준은 日干을 위주로 하는
이상은 十干으로 세우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甲木=10000


甲木+戊土=10001


甲木+己土=10002


甲木+庚金=10003


甲木+庚金+己土=10004


甲木+癸水-19000


甲木+壬水-18999


甲木+寅午戌(午=月支)=15000


甲木+寅午戌(戌=月支, 午=日支)=15340


甲木+寅午戌(寅=月支, 戌=日支, 午=時支)=15264


甲木+甲(月干)+甲(年干)+己(時干)=17560


........................



여기에서 생략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아실 것이다. 대충 낭월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만 이해를 하셨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표시한 숫자는
생각 없이 적어본 것이다. 그래도 숫자에 도가 트인 수학자가 이러한 생각을 살펴보신다면
뭔가 '번쩍~!' 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남들은 낙서를 한 노트 조각에서
전문가는 엄청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 또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까지 생각이 접근을 해보는 낭월이인데, 이렇게 공상을 하는 것은 즐겁지만
실제로 말이 되도록 계산을 하는 것에는 전혀 생각이 없다. 워낙이 돌 머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머지 않아서 이렇게 시도를 하시는 벗님도 계시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해서
또 발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자평명리가 아니더라도 숫자계산은 있다.



하락이수(河洛理數)라고 하는 명리학도 있다. 여기에서
命理學이란 인간의 운명을 궁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학문에서 사람의
운명을 생년월일시를 이용해서 풀이하기 때문에 명리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책을
보면 사주를 놓고서 모두 숫자로 바꿔서 대입을 시키게 된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은
주역의 64괘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발전을 했으므로 그만한 타당성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낭월이의
생각으로는 참 엉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선 기본적인 대입을 보도록 하자.



甲壬戌亥 - 6


丁酉 - 7


庚卯 - 3


辛辰巳 - 4


戊子 - 1


己午 - 9


丙丑寅 - 8


乙亥未申 - 2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대입해서 설명하도록 되어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물론 구체적인 것은 접근을 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적중률이 낭월이가 일생을 연구해서 얻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고 해서 별로
맘이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면 아무래도 생극제화(生剋制化)의 논리성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사주가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그러니까 천간의 수를 합해서 하나의 괘를 만들고 지지의 수를 합해서
또 하나의 괘를 만든다고 가정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우선 위치에 상관이 없이 글자의 색깔만 같으면 결론은 같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자평명리가의 안목임을 미리 말씀드리도록 해야 하겠다. 그래야
덜 무례하다는 인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1번 자료)


時   日   月   年


丁-7 甲-6 壬-6 庚-3 (합해서 나온 수는) 22


卯-3 辰-4 午-9 辰-4 (합해서 나온 수는) 30



여기에서 위치가 어떻게 되건 일단 천간에 있으면 같은
숫자가 되므로 결론은 완전히 같은 것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이 사주에서 경금이
月干에 있다고 해도 결과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또 地支에서도
月支에 묘목이 있다고 해도 결과는 같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장난을 좀
쳐보도록 하겠다.



時 日 月 年


壬 庚 丁 甲 = 22


辰 午 卯 辰 = 30



낭월이가 장난을 친다고 말씀드린 것은 庚午일에서 壬辰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庚辰시가 되어야 원칙이지만 의미는 서로 통할 것이라고 보겠기
때문에 이렇게 해보는 것이다. 글자가 전혀 다르더라도 천간의 숫자 합이 22가 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 사주가 아니어서 수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만이다. 각설하고,


이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위와 같다고 한다면 하락이수에서는
그대로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물론 이러한 식의 대입은 실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자평명리가의 눈으로 하락이수를 바라다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설명을 드리는 책에서는 이러한 언급을 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냥 '낭월한담(朗月閑談)'에서나
거론을 하는 정도로 다룰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살펴본다면 우선 일간이 달라져
버렸으니 비교의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간이 같다고 해도 결과가
같을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한다. 이렇게 자평명리로 생각을 해보면 또한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락이수에서는 그렇게 해석을 한다고 하며 또한 나름대로 적중이
되니까 연구발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 세상은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 배워볼 기회가 없어서


문외한이므로 이렇게 겁 없이 떠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먄 여하튼 자평법에서 본다면 참으로 말이 되지 않는 논리의 전개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만 말씀드릴 뿐이다.

실제로 ‘하락이수(河洛理數)’는 주역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 논리에 사주팔자를 이끌어서 대입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주역이 자평명리보다 훨씬 오래 전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주역으로 운명을 점치는 것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겠고, 나중에 사주팔자를 만들어서 운명을 해석한다고 하니까 주역파에서도 운명을 해석하기 위해서 사주를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천간으로 하나의 괘를 만들고 지지에서도 하나의 괘를 만들기 위해서 간지에 각기 고유의 숫자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것은 주역의 정신으로 봐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에 대입을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물론 여기에서 그 적중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할 수가 없겠다. 다만 기본적인 대입에 대한 낭월이의 소견일 뿐이다.

7. 각자 고유한 특성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주역은 주역대로 장점이 있고 무한한 발전성이 있는 구조이다. 처음에 컴퓨터가 16비트에서 32비트로 간다고 할 적에 낭월이 생각하기를 ‘그렇다면 아무래도 64비트가 되어야 완벽한 시스템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머지 않아서 64비트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계산력으로 세상의 많은 비밀들을 읽고 풀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역에서 그렇게 가능하듯이 말이다. 뭘 알아서 64비트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주역의 괘가 그렇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해본 망상일 뿐이다. 그리고 128비트가 된다면 더욱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래픽으로 발전을 하는 컴퓨터는 관상이나 수상의 영역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무한한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이 그래픽의 영역은 또 전혀 다른 분야로 발전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바로 풍수지리 분야이다. 생각해보자.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에 대해서 그대로 입력을 시킨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조감도와 땅에서 바라본 입체도 그리고 자오선의 표시도 가능하게 하고 수맥이 흘러가는 것도 표시를 하는 지도가 나온다고 생각을 해보시라. 과연 풍수를 연구하기 위해서 산천을 헤매고 다닐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골짜기마다 명당을 표시하고 그 곳에서 예상되는 미래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다면 얼마나 멋진 프로그램이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것을 확대해서 아파트자리로 적당한 지역이나 공장으로 가능한 지역, 또는 군사시설에 가능한 지역도 표출이 될 것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국토의 종합관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는 댐을 막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고, 무슨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표시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각 방면에서는 여하튼 컴퓨터의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된다면 풍수가의 개념이 또한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을 입력시키는 것은 오로지 전문가만이 가능하다. 대학교의 지리학과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고 싶다. 그러니 전문가는 또한 컴퓨터와 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구태여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돈이 있고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미 낭월이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사주해석을 하는 프로그램화에 대한 제안과 의논이었는데, 결론은 ‘아직은 不可’로 내리고 있다. 앞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낭월이가 기대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이 되느냐는 것에 있다. 단순 입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다양한 시도는 오늘도 이뤄지고 있고, 또 내일로 연결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에서의 동양철학에도 많은 기대가 되고, 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시도에 과감히 달려드는 학자님들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숫자로 사주를 풀이하려고 시도하시는 학자 님들께도 큰 그대를 보냈다.

상쾌한 새벽바람이 상쾌한 시간에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