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도인(道人)의 실체는 뭘까...?

작성일
1999-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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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도인(道人)의 실체는 무엇일까.....?



세상에서 노력을 해서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들 말하는데,
도인(道人)은 단지 노력만 해서도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왜냐면 사람에 따라서 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경우를 보면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생이 걸린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주공부나 기타의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아무리 둔재라고 해도 올바르게만 진행이 된다면 수년 내에 해결이 된다고 하겠는데,
길어야 십 년일 것이다. 그런데 도인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했다가는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마는 경우가 허다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매력 덩어리로 저 멀리에 존재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 낭월이가
한번 돈키호테처럼 이 문제를 잡고 씨름을 하려고 컴퓨터에 전원을 눌렀다. 물론
말이 완전히 되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낭월이의 생각에는 도인의 정체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는 정도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지나가다가
연못에 돌 하나 던지는 정도의 유치한 생각은 아닐 것으로 감히 생각을 해본다.



1. 단어의 의미



우선 용어에 대한 의미부터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찬양(讚揚)이
다르고 찬탄(贊歎)이 다르듯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을 잘 이해한다면 의외로 많은
것을 그 속에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렇다면 도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 생각을 해보시려면 지금 글을 읽으시는 것을 중단하시고 잠시 생각 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항상 스스로 문제점을 의식하고 나서 해결책을 봐야 눈이 번쩍 뜨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렇게 생각을 해보시라고 권한다.



道人은 길도와 사람인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行人과도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 용도는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 모양인데, 행인에게는
도인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길을 가는 사람임에는 분명한데 어떤 길을
가는 사람을 행인이라고 하고 또 도인이라고 하는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1) 行人은 형이하학적인 의미이다.



그러니까 가장 간단하게 말해서 산길이든 국도든 뱃길이든
공중이든 뭔가 보이는 것을 이용해서 이 몸을 움직여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물론 여기에다가도 앞에 어떤 글자를 붙이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조금
달라지기는 한다. 예를 든다면 行人 앞에서다 修(수)를 붙이면 修行人이 되고, 여기에서
수행인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도인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가 포함이 된다. 그러다가
도가 다 익게 되면 도인으로 진급(?)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행인도 역시
길을 가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아직은 길을 가고 있음'이 수행인이 갖고 있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행인은 이 몸을 움직여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정리를
한다.



2) 道人은 어떤 길을...?



道人과 行人은 간발의 차이이다. 앞에다 修 자를 붙여보면
금새 드러나게 된다. 修行人과 修道人을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행인과 도인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다른 것은 틀림없다. 과연 도인은 무슨 의미일까?
우선 여기에서 말하는 道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하겠다. 다시 분석해보도록
하자.



※ '道'라는 글자의 의미



도라고 하는 글자를 한번 분석 해보도록 하자. 글자의 모양새로
봐서는 '首+'의 결합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기본한자에는 착(책받침)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편법으로
그림으로 저장을 해서 보여드린다. 그러다 보니 줄이 맞지 못함도 양해 하셔야 하겠다.
웹에도 언젠가는 1만 6천자를 표시할 수가 있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이런 불편을
감수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또한 현실이다. 누구를 탓하랴.... 정보통신부나 교육부를
탓해야 할 것이다. 하라고 말만 떨어진다면 바로 실행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현실은 그대로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머리수(首)와 쉬엄쉬엄갈착( width="23" height="22" border="0">)이 합쳐서 된 글자임을 알도록 하시면 되겠다.



그렇다면 머리는 무엇일까? 사람의 머리는 맨 위에 있다.
그리고 이 머리라는 말은 머리두(頭)와 비교를 해서 느낌이 상당히 높은 분위기가
되는 것으로 된다. 그렇다면 사람의 머리가 아닐까 싶다. 반면에 頭는 모든 동물의
머리를 묶어서 말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볼 참이다. 참 낭월이도 시시콜콜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냐고 하실런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다. 사람의 머리와
동물의 머리는 향하고 있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인성(印星)이 빠릿빠릿한 벗님들의 머리가 끄덕여 지는군. 바로 사람의 머리는 하늘(上)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고 동물의 머리는 앞(前)을 향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낭월이로부터 한 수 배우셔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럼 원숭이
머리는 때로는 하늘로 때로는 앞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응용력이 뛰어나신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래서 또 별노무소리가 다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머리(首)로 보고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위로 향하고 있다고 전제를 하니까 도인들은 의식이 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되겠다. 위라고 하는 것은 저 높은 곳이다. 너무나 높아서 이 몸으로는 도달을
할 수가 없는 곳이기에 의식으로나마 도달을 해보려고 시도를 하는 것으로 헤아려보자.
그렇다면 다시 쉬엄쉬엄갈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보통 책받침으로
말을 하지만 그 글자의 의미는 이렇게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생각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을 바로 판단하게 된다.


여기에서 쉬엄쉬엄 간다는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렇게
성급하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가 그 속에 충분히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낭월이는 글자를 뒤지다가 많은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고 또
때로는 흥분이 되기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야말로 글자풀이에 재미가 들렸다고
해도 좋겠다. 한글에도 이러한 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없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자의 심오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을 또 '중국파'라고
하실지 모르겠군. 근데 실은 한자가 漢字가 아니라 우리 글이었을 가능성도 많다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뭐 구태여 한글을 전용해야 한다고 싸울
필요도 없겠다만 낭월이는 한글과 한자는 공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쉬엄쉬엄 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쉬엄쉬엄은
급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본다. 다른
말로 한다면 '꾸준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명상을 하는 모든 곳에서도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그럼 종합을 해보자. '道人=저 높은 경지를 향해서 쉬엄쉬엄
다가가는 사람'으로 해석을 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도인인지도 모르겠는데,
인간은 자꾸 진화를 한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을 여기에 접목시켜보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데 의외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높은 곳은
짐짓 모른 체하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향하는
것은 도인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어떤 식으로 살기에 낭월이가 이렇게 말하는지는
눈치가 없는 문선생을 제외하고는 다 알아차릴 것이다. 그래도 혹 또 다른 문선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설명이나 해드리도록 하자.


그러니까 앞으로 향하고 있는 머리는 동물이므로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않고 동물적으로 살면 그렇게 말을 해도 되겠다. 즉 단지 먹고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한다면 바로 동물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는 '금전만능(金錢萬能)'을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동물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전무용(金錢無用)'을 주장한다면 아무래도
원시인이거나 바보일 가능성도 많다. 뭐든지 적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하튼 일부의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동물처럼 되어 가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돈(먹고사는 것) 앞에서는
윤리고 도덕이고 인륜이고 법이고 하늘이고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부의 축적만이 최상의 목표일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부엉이가 생각이
난다. 부엉이는 욕심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뭐든지 주워다가 쌓아 둔다고 한다.
그래서 없는 것이 없는 집에 가서는 부엉이 집이라고 인용을 하기도 하는데, 일설에는
부엉이가 눈이 어두워서 먹을 건지 말 건지 모르고 물어 날라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진위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도인을 연구하는 자리이므로
이러한 인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생략하도록 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도인은 사람으로 살면서 앞의 방향으로
주시를 하기보다는 위의 방향으로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자신의 수련을 하면서
완전한 인간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공부 중인 사람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용어인 修道人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담을 못하겠기에 일단 완전하게 도달을 한 사람으로 하겠지만 실은 이미
출발을 했으면 모두 도인이라고 낭월이는 해석을 하고 있다. 왜냐면 출발을 한 사람은
언젠가 도달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 도인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1천년을
가고 있거나 이미 도달했거나 앞을 도달을 목표로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도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진리(眞理)를 찾아가는 사람=道人'으로 해석을 하고
싶은 것이고, 이렇게 되어서야 비로소 '낭월(진리를 찾고 있으므로)=道人'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속이 보이는 것으로 생각이 되기는 하지만 역시 틀림은 없는
사실이므로 낭월이도 도인의 부류에 넣어 달라고 떼를 써볼 요량이다. 싫으시면 말고~!



2. 도인의 정체



이제 도인이라고 하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판단이 되셨다고 생각이 된다. 아직도 모르시겠다면 낭월이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설명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신 벗님들만 다음으로 생각을
이어주시기 바란다.


아득한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도인은 많았다. 자칭도인도
있고 타칭도인도 있고, 자타칭도인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도인인 것은 틀림이
없다고 낭월이도 인정하고 있다. 도인이니까 스스로도 도인이라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도인이라고
할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여하튼 어떤 식으로든 간에 스스로 도를 닦았다고
생각을 하기에 도인이라고 할 것이라는 말씀이고 이것은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도인들에는 어떤 도인들이 있었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물론 여기에서 거론하는 인물들은 낭월이의 시야에 비친 모습들일
뿐이고 그 분들의 실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는 점을 미리 양해말씀 드린다.
왜냐면 혹 낭월이의 미숙한 안목으로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양해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1) 노자(老子) - 『道德經』을 중심으로



'진리를 진리라고 해도 이미 올바른 설명이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해도 이미 올바른 이해라고 하기 어렵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참으로 멋진 말이고 이 말에 이끌려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책이다. 해석은 할 나름이겠지만 나름대로 낭월이가 생각하기에는 노자 님은
도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2) 장자(莊子) - 『莊子』를 중심으로



장자는 상당한 독설가였던 모양이다. 노자는 유연했다고
생각이 된다면 장자는 직선적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특히 활발한 언어의 구사력이
매력적이어서 낭월이가 무척 좋아하는 도인 중에 한 분이다. 멋진 사나이라고 생각이
된다.



3) 고타마 싣다르타(釋迦牟尼) - 『金剛經』을 보면



금강경은 불교도가 좋아하는 경전이다. 그 내용에는 얻을
것도 없고 또한 잃을 것도 없다는 말이 등장을 한다. 또한 말을 할 것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다는 말도 등장을 한다. 다분히 도가(道家)적인 비유법이 등장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입맛이 맞는다. 멋진 이야기다. 그리고 자신의 말은 뗏목과 같다는
말도 참으로 아름답다. 자신이 진리라고 하는 것에 비한다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이런 기분 아실는지 모르겠다. "강을 건넜으면 그만이지 뗏목은
왜 짊어지고 가누?" 하는 말을 읽으면서 온 몸이 '짜르르~~' 한다. 당연히 도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4) 서경덕(花談) - 전설에 의하면



특별히 이 분이 지은 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전해지는 이야기만 생각을 해 보는데, 황진이의 이야기로 봐서 틀림없는 도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색을 멀리 떠났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5) 라즈니쉬 - 여러 번역된 책들에 의하면



역시 이 시대의 도인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의 해박한
견해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거침이 없고, 그러면서도 진리의 저울질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 남들이사 뭐라고 하건 간에 낭월이가 보기에는 자유로웠던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6) 경봉선사(鏡峰禪師) - 직접 지켜보았는데



낭월이가 만난 분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도인 급이라고 생각이
되는 분이다. 과연 멋진 분이었고, 그의 삶을 보면서 항상 경이로움이었다. 희노애락이
그대로 존재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모습이 느껴졌다. 항상 차를 즐기면서 더불어 이야기를
나눴지만 언제라도 이치에 벗어나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낭월이는 복이 많은 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부지기수이다. 참 도인도 많은데, 특히 죽림칠현(竹林七賢)
등도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다들 자연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호풍환우(呼風喚雨)를 구사해야 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음을 볼 때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술사(術士)'나 '도사(道士)'와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봉스님을 모시다가 고향에 일이 있어 갔더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경봉시님이 도인이시라믄 밥도 드시지 않더나?' 라고 하는 질문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일반적으로 무지한 서민들의 상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호풍환우로 논한다면 제갈공명이 가장 뛰어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역시 낭월이가 봐서는 도인이 아니다. 왜냐면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도인이지만 자연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은 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말씀대로 '밥먹고 똥누는 사람'이 도인인 것이다. 이것은 가장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주워들은 이야기를 한도막 해 드리도록
하겠다.



누가 서산대사를 찾아왔다. 아마도 도인이라고 소문이 나서
한번 찾아 뵙고 싶었던가 싶다. 그리고는 삼배(三拜)를 올린 다음에 물었다.


"道人의 삶이 어떠합니까?"


"졸리면 자고 주리면 먹는다네."


"그거야 누구나 하는 일인뎁쇼?"


"누구나 하지만 완전하지 못하지."


"????"



낭월이가 생각컨데 이 말은 아무래도 진정으로 진리를 즐기지
못하면 모두 상식적인 도인일 뿐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상식으로 따진다면
낭월이도 도인이라고 떼를 쓰고 싶다. 상식으로써는 도인을 이렇게 저울질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미 자격이 있다고 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상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대로 자연과 어우러져서 자연이 나인지
내가 자연인지 모르고 사는 정도가 되어야 도인이라고 하겠기 때문이다. 서산대사는
그게 자유로웠다고 한다면 역시 도인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이름 없는 도인들에
대해서 경의를 드린다.



3. 도인이 되는 방법



뭐든지 그렇지만 방법이 있으면 목적지에 도달을 할 수가
있다고 본다. 사주를 배우는 방법을 낭월이가 설명해 드렸으니까 그대로만 하시면
사주를 알 수가 있는 것과 같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도인이 되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도인이 될 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지는 각자의
인연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을 해야 하겠다. 물론 무슨 방법이든 좋다. 자연을 바로
이해할 수가 있는 방법이라면 아마도 모두 도인이 가능할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는대로 간단하게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다.



1) 의식을 통제하는 방법



보통 명상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보면 화두(話頭)를
참구한다든지 또는 단전(丹田)을 의식한다든지 모두 결과는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요가 중에서도 라자요가 등은 이에 속할 것으로 보겠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명상을 하는 것으로 정좌하거나 고정된 자세를 취하면서 의식의 심층을 이해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2) 봉사행을 하는 방법



봉사는 기쁨을 준다. 그래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로 인해서 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카르마요가라고 하는 모양인데, 여하튼 행동을 통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면
몸을 비비꼬면서 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3) 논리적으로 추구하는 방법



이것은 잘 될지 모르겠다. 여하튼 낭월이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연의 일부분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구나 명리학을 올바르게 이해해 나가다 보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즉 학문을 통해서 도인이 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니까 물리학을 연구하거나
자연과학을 연구하거나 모두 도인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프레드
A, 울프' 라고 하는 사람을 아실지는 모르겠다. 낭월이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물리학자인데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도인의 수준이다. 그래서 놀랍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 봐서 논리적인 이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도인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나마 들기도 한다.


그런데 명상을 하시는 분들이 읽으시면 아마도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그렇게 머리로 분석을 해서 얻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낭월이 생각은 아마도 그렇게 말하시는 사람은 뭔가 자신의 내부에 어떤 환상을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을 따름이다. 원래 선사(禪師) 들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 세수를 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만큼 쉬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운 것을 만들어 놓고서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무익하지 않을 것으로 감히 생각을 해본다.


여하튼 낭월이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부합이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부처님 제자 중에서는 가전연존자라고 하는
분이 있었음도 생각한다. 그는 논의를 잘 했다고 한다. 물론 논리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도인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도인께서 계신다면 낭월이의 우둔함을 한 수 깨우쳐 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4. 도인이 되는 목적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목적으로 도인이
되려고 할 것인가에 대한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단지 호기심으로 묶어버릴 작정이다.
그래도 달리 항의를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 때문에
도인이 되려고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낭월이가 도인이 되고저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차제에 한번 생각의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1) 속박이 싫다.



이유는 속박은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가
좋아서 도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주를 보면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억압이 되어있다. 바로 月干의 정관이 그 원흉이다. 그래서 늘 속박 속에 있으면서
자유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여하는
속박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도인을 좋아한다고 생각이 된다.



2) 자연이 좋다.



어쩌면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럽게(自然)
살아가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생긴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씀드리면 '속박없이 생긴대로 그렇게 살자'는 것이 낭월이가 원하는
방향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늘 속박 속에서 살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은 도인은
그렇게 쉬엄쉬엄 머리를 향해서 가는 사람이라고 해석이 되고 보니 조금도 조급증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 수 배웠다고
해야 하겠다. 이상이다. 이것뿐이다.



5. 위험한 도인들



여기에서 들 이라고 복수의 형식을 취한 것은 그러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자칭도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스스로 도인이라고 하면서
남들이 자신에게 와서 소원을 빌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험한 사람들이다.
도인은 그렇게 남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술사나
도사가 도인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아니 어쩌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속아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여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항상 머무르고 있으니까 주의해서 살펴보시기 바란다. 여하튼 속지 않는 법부터 배우고
나서 스스로 깨닫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지경에 도달했다. 워낙이 가짜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목적의 일부분에서는 아마도 가짜들에게 속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만큼 경계령이 심각하다고 해야 하겠다.
자칫 자신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만 가짜의 그물에 걸려서 인생을 망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는 정말로 지혜롭게 자연의 이치를 관조하지 못하고서는 간단하게
벗어나기를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점차로 가짜들의 행동도 지능화 되어가고
조직화 되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여하튼 자신의 팔자
정도는 헤아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해보는데, 이렇게 되니 결국은
사주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되 되어서 옆구리 찔러서 절을 받자는 속셈인지도 모르겠다.
혹 낭월이에게도 속고 계시지는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 해보시기 바란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