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과학자의 관찰력

작성일
2001-03-15 19: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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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과학자의 관찰력은 다르다

때로 휴식을 취할 적에는 그냥 쓰러져서 잠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지만 또 한바탕 쉬고 나면 금새 심심해져서는 리모콘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맘에 드는 장면을 발견하면 이내 집중을 하고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는데, 며칠 전에는 대단히 영양가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대목을 일부만 접하게 되어서 그 내용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시간으로 본다면 불과 10여분 정도라고 해야 하겠는데,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고 내용이라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시다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1. 닐스 보어라는 물리학자의 이야기

그는 물리학자라고만 소개를 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물리학자라고 해서 무슨 대단히 골아픈 이야기를 할 것으로 생각하실 필요는 없겠다. 그냥 간단한 이치 속에서 법칙을 발견하고 즐기면 충분하다고 늘 생각하는 낭월인지라 실제로 복잡한 논리는 머리를 흔들고 맨 먼저 도망을 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에서 뭘 봤길래 호들갑이냐고 하시겠는데, 내용은 참으로 간단한 이야기이다.

(1) 의도(意圖)와 조건반사(條件反射)

제목이 촌놈 기죽이게 생겼다. 그렇지만 설명은 간단하므로 과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미리 드리는 것은 제목만 보고 도망을 갈까봐서 드리는 말씀이다.

그는 서부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온통 그 영화에 몰두를 해서 빠져들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식신이 있는 학자라면 당연했다고 하겠는데, 그가 눈여겨본 것은 주인공은 언제나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아마도 벗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주인공이 죽어버리면 영화가 끝나니까 죽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과연 그렇겠느냐는 점을 놓고 다시 궁리를 하는 것은 과학자의 기질이라고 하겠고, 그냥 웃고 마는 것은 관객의 기질이라고 할 참이다. 실로 보어선생의 이야기를 보면 감탄을 절로 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번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추리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벗님도 정답을 내릴 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이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있는 까닭이 과연 뭘까?

(2) 공격자가 불리하다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공격자가 늘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드리게 된다. 공격자는 늘 공격을 해야 하므로 그렇게 하려고 의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意圖)라는 말이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기운이 미리 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악당들이 뒤에 있거나 숨어 있거나 늘 주인공을 죽이려고 의도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살기(殺氣)라고 느껴도 되겠다. 여하튼 그렇게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것이 이미 절반의 실패가 된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감탄을 하게 된 낭월이다.

보통 생각할 적에는 먼저 공격을 하는 쪽이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보어선생의 말을 빌린다면 그와 반대가 되는 셈인데 문제는 이렇게 반대로 대입을 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잠시 듣고서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과연 보통의 관찰력으로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 것을 찾아냈기 때문이고 그러한 것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렇게 선제공격이 불리한 것은 '죽이려는 의도'를 하고 때문이라고 했고, 그렇게 의도를 하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조건반사적으로 대응을 하므로 늘 주인공이 이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교식으로 해석을 하면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먼저 총을 뽑은 사람은 유심으로 한 행동이고 뒤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무심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점에서 그렇게도 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면 이제 확인을 통한 증명이 필요하다고 하겠는데, 증명을 위해서 보어선생은 총싸움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놀이용 총일 것이다.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도 하나 갖고는 언제든지 자신을 공격하라고 한 다음에 싸움을 했는데 묘하게도 100%의 승리를 했다고 한다. 과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이 조금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높은 승률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를 하겠다. 그렇다면 그는 혹 선천적으로 정인이 강해서 직관력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검객의 체질이어서 감지가 잘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도 해보자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고 낭월같이 둔한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승률은 훨씬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3) 카메라 앞에서의 실험

보어선생의 글에 대해서 출연자가 잠시 시연을 보여줬는데, 상대방이 출연자의 두 팔을 잡고 내리 누르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내리 눌렀는데,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그의 팔을 뿌리치려고 시도를 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이 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문제는 무심코 있다가 상대방이 팔을 내리 눌렀을 적에 조건반사로 들어올리면 공격자의 팔이 들리는 것을 실험해 보였다. 그때의 힘은 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온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 설명도 있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렇게 이유를 증명해 줬는데, 논리적으로 봐서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4) 허허실실론(虛虛實實論)이 아닐까?

허로써 실을 대응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태극권이나 팔괘장에서처럼 공격하지 않고 수비하면서 결국은 공격이 되어버리는 형태의 무술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리드하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하겠고, 스스로 객체가 되어서 흐름에 따르는 것을 조건반사라고 이해를 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지만 그는 서부영화에서 그러한 힌트를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찰력이 상당하다고 하게 되는데, 그런 장면들은 도인들의 대화에서도 늘 접하게 되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참고로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의도와 조건반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면 더욱 이해가 깊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 덕산(德山)과 용담(龍潭)

덕산스님은 금강경의 대가이다. 성씨가 주씨여서 일명 주금강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이었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 그렇게 금강경에 대해서 해박한 논리로 설명을 한 것으로 봐서 그의 사주에는 정인과 식신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객이 찾아와서 하는 말을 들었다.

"덕산스님 부처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뭔 소리여, 수백생을 닦고 또 닦아야제."
"근디요......"
"무슨 말씀을 하실라고?"
"남방에서는 당장에 부처가 된다고 합디다."
"워떤 싸가지 없는 땡중이 그런 말을 햐?"
"한 마음만 돌이키면 바로 부처라네요."
"말세에는 마귀들이 부처행세를 한다두만 바로 그놈들일세."
"이미 상당한 세력도 있는 모양이던데요."
"이거 큰일났네, 내가 가서 혼찌검을 내줘야 하겠구만."
"그러다가 망신을 당하시면 어쩌려구요."
"아녀, 내가 괜히 주금강이겠남."
"그래도 만만치 않은가 봐요."
"어림없는 말 하지두 말어 당장 준비해야 겠구만 가자."

그렇게 작정을 한 덕산스님, 바랑에다가 목숨보다 소중한 금강경을 짊어지고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러 떠났다. 참,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잊으시면 곤란하겠다. 지금 덕산스님은 '의도적인 행동'을 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말이다. 낭월의 이야기가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하~

며칠을 걸어서 남방의 부근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때는 정오무렵이라서 시장에서 점심이나 먹으려고 기웃거리다가 목판에 떡은 놓고 파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예나 지금이나 스님이 한끼 때우기에는 떡이 가장 편하다고 하겠다. 낭월은 가끔은 두부를 사서 한끼 때우기도 했었는데, 떡도 좋다고 하겠다.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떡 1000원어치를 달래서 앉아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스님이라고 반가워하면서 등에 짊어진 짐은 뭐냐고 물었다. 그 짐이야 어디 보통 짐인가, 천하의 금강경주해가 아닌가 말이다. 금새 기운이 난 덕산스님은 침을 튀기면서 자랑을 했다.

"이건 금강경이라고..... 부처님 말씀이제요..."
"그럼 금강경 연구하시는 스님이우?"
"그렇당께요. 금강경에 대해서는 뭐든지 물어 보시우."
"그럼 짓궂은 질문을 하나 해볼꺼나....."
"뭐든지~!"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이 있잖우?"
"그럼요, 있고 말고,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도 있제잉."
"아따 참말로 유식한 스님이시네."
"나를 고향 사람들은 주금강이라고 부릅디다. 험험~"
"그런데, 스님은 무슨 마음으로 떡을 드실라고 하셨쑤?"
"뭐시라고라고? 무슨 마음으로 떡을 먹느냐고라고?"
"헝게 말이요. 과거심이라고 한다면 이미 지나간 마음잉게 그냥 가셔야 할 것이구, 미래심이라고 한다면 아직 오지 않은 마음이니 말이 되지 않고, 현재심이라고 한다면 현재는 곧 과거이니 또한 떡을 사먹을 마음이 머물 곳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마음이길래 떡을 사잡수시느냔 말이우......"
"................."
"금강경에는 박사라문서 그러한 내용은 없네비지?"
"................."
"왜? 떡맛 떨어지우?"
"할메는 어느 절에 댕기시고 누구한데 그런 법문을 들었소?"
"요 윗산고랑에 용담사라고 하는 절에 댕긴다우. 우리 시님이 알려줘서 알지 늙은이가 우째 알것는감...."

먹던 떡은 다 드시고 가라는 할매를 뿌리치고 자리를 일어난 덕산스님은 열이 머리 꼭대기까지 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실은 그 화를 용담스님에게 풀이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셈이라고 해도 좋겠다. 여기에서는 어쩌면 할매의 선제공격이 우승했다고 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금강경이라고 우쭐댄 것이 화를 불렀다고 본다면 또한 선제공격은 덕산스님이 했다고 봐도 좋겠는데, 금강경이 주제였으므로 덕산스님의 공격으로 시작해서 실패로 끝났다고 봐서 무리가 없겠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의 주제에는 벗어나지 않았다고 보도록 하자. 여하튼 그렇게 보거나 저렇게 보거나, 덕산스님은 한나절을 걸어서 해질녁이 되어서야 문제의 용담사라고 하는 암자를 찾을 수가 있었다. 여전히 선제공격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덕산스님은 고요한 적막을 깨고 소락때기를 질렀다.

"용담에 왔는데 용도 없고 못도 없구나~~!!!!!"

잠잠........ 고요한 침묵이 더욱 고요한 법이다.

"겁쟁이야 나와라~~!!!!"

다시 잠잠......... '기세등등'은 '고요'가 천적인가? 그렇게 잠잠하니까 덕산스님은 아무래도 멋쩍어졌을 것이고, '아무도 없나.....' 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저쪽 귀퉁이의 방문이 베시시~ 열리면서 노인이 힘없는 말로 답을 했다.

"응~ 어서와~~ 자네가 진실로 용담에 왔네...... 쿨럭쿨럭....."

덕산은 쑥스러운 마음에 들어가서 객으로의 예를 차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 용담스님이 말했다.

"인자 고마 가서 자소. 내도 잘란다."
"예, 스님 편히 주무십시오."
"그래 잘 주무시구랴."
"근데 밖이 어둡습니다. 후라쉬는 없을까요?"
"어더버요? 옜소 불~!"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종이조각에 호롱불을 당겨서 내민다. 그것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후-욱~!!!"
"앗~!"

그 순간 아마도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덕산스님은 용담스님에게 절을 세 번 하고는 마당으로 나와서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금강경을 불질러버렸다고 하는 말이 전한다. 여하튼 선제공격을 한 덕산스님은 용담스님에게 선제공격을 했으니 또한 '의도'라고 하겠고, 용담스님은 '조건반사'를 한 셈이라고 하면 무리가 없겠다. 이렇게 해서 덕산스님의 눈이 확 열렸다고 하니까 노력을 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대결의 차원에서는 완전히 참패라고 하겠고, 여전히 의도는 조건반사에게 불리하다는 의미가 살아있다고 봐서 무리가 없다고 하는 결론을 내려본다.

2. 학문을 한다는 것이.......

학자가 자신의 목적을 갖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고 할 적에, 스스로 아무리 옳다고 주장을 해도 반드시 일부는 그 주장에 반대를 하기 마련이고, 그에 대해서 또 설왕설래를 해야 하는 것도 정해진 포석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학문도 그렇듯이 자평명리학도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게 민첩하게 살피면서 대입을 시켜 가는 과정에서 보다 발전되고 또 새로운 지혜가 발견이 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늘 반대하는 사람과 마찰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다. 비록 선제공격을 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공격을 받았다면 조건반사를 일으켜야 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어선생이 깨달은 것의 이면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반대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많이 한 것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3. 지혜로운 수비자가 되세요

자신의 길을 가노라면 어찌 많은 상대를 만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시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미진하다면 그에 대한 보완을 해야 할 것이고, 또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어느 분야에서나 늘 있어야 할 일이라고 하는 점에서 벗님이 어떤 일을 하시거나 상관없이 보어선생의 말씀에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묘법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생각을 해보시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약간의 참고가 되셨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설명해주신 분의 이름을 생각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심리학자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나는데 이름은 기억을 못했다. 그렇더라도 그분의 안내로 인해서 또 한가지를 배웠으니 감사의 마음을 드려야 하겠다. 벗님께서도 적어도 낭월이 느낀 만큼은 느끼셨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이만 이야기를 줄인다. 무궁한 궁리의 꽃을 피우시기 바라면서.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