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名人 - 당나라의 양귀비 팔자

작성일
2001-03-21 22:4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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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名人 - 당나라의 양귀비 팔자

어디선가 반가운 이름이 등장을 하면서 고맙게도 명식까지 나와 준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명리학을 연구하는 벗님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이실 것으로 생각이 된다. 오늘은 당나라의 미인이라고 알려진 양귀비에 대한 사주를 감상해본다.

당나라 개원 7년 6월 1일 卯時生

시 일 월 년
乙 戊 庚 己
卯 午 午 未
66 56 46 36 26 16 06
丁 丙 乙 甲 癸 壬 辛
丑 子 亥 戌 酉 申 未

[사주의 구조와 용신 해석]

午月의 戊午라고 하면 일단 상당히 강력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다시 年柱는 己未이다. 화토의 기운이 넘친다고 하겠다. 時柱의 乙卯는 목을 극하기에는 이미 무력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용신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겠고, 오히려 월간의 庚金 식신에게 온 마음이 다 기운다고 하겠다. 용신은 金으로 하고 사주가 너무 건조하므로 희신은 재성으로 삼았으면 좋겠는데 조후가 되지 않으니 품질이 떨어지는 구조라고 하겠다. 용신의 급수를 본다면 대략 8급 정도라고 하겠다. 기신을 만난 경금이기 때문이다.

[왕후의 부귀를 누렸는데......]

그렇겠다. 어쩌다가 왕후의 부귀를 누렸는데, 사주의 구조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매우 건조한 구조를 본다면 오행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하겠다. 너무 강한 상황에서 다시 건조하기까지 한 형상이다. 관을 향하는 마음보다는 식신을 향하는 마음으로 봐서 종속이 되어서 복종을 하기보다는 자유로이 자신의 마음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해석을 해보게 된다. 다만 정관이 있으므로 스스로 당시의 규범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으리라고 하는 것은 짐작을 하겠지만 식신의 구조를 의식한다면 화초의 역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욕구를 발휘하려고 하는 마음이 강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재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면 마무리를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공간성이나 통제성이 약하다고 해야 하겠는데, 이러한 결함이 초운에는 금수의 운으로 달리는 좋은 흐름을 타고 마음대로 진행이 되었겠지만 중년에 甲戌대운은 아마도 고통이 많을 것이라는 해석을 할 수가 있겠고, 다시 을목부터의 북방 운은 상승이 되었다가 丙火에서 고통을 예견하겠고, 자수는 아마도 분란이 크게 일어날 것이라는 정도의 해석을 해본다.

[남편의 암시]

남편은 목이 되겠는데, 나름대로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여름의 을묘이니 무력한 형상으로 봐야 하겠다. 어쩌면 겉으로는 강력하지만 속으로는 무력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신에 속하는 형상이라고 해야 하겠는데, 오히려 강력한 화를 생조하고 있는 점으로 본다면 구신에 속한다고 해야 하겠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식의 인연]

우선 너무 조열하다는 것이 부담이다. 자식의 인연은 약하다고 해야 하겠는데, 식신이 용신이므로 자식에 대한 기대는 많이 했을 수가 있겠다.

[재물의 인연]

재성이 희신이면서 실은 용신급이라고 하겠는데, 초운의 재운이 들어왔을 적에는 재물도 넉넉했을 것으로 봐서 무리가 없겠다. 다만 사주에서 타고난 재물의 인연이 약하므로 운이 다하면 재물도 다하게 될 암시가 있다고 하는 해석은 가능하겠다.

[사회성에 대한 해석]

식신은 한 방면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겠다. 요즘 같으면 프리렌스로 활동을 하면 좋겠는데, 아쉬운 점은 스스로 마무리를 하지 못하므로 단독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봐서 그냥 전문가의 역할에 만족을 하는 것으로 봐서 무리가 없겠다.

[실제의 상황]

楊貴妃(719~756)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받았다. 아명은 옥환(玉環) 원래는 여도사(女道士)였으나 745년에 입궁하였다. 재색이 겸비하고 가무 음곡이 특출하여 현종의 총애를 독점하였으며 일족의 영화를 누리다가, 안녹산의 난 때 마의파에서 목매어 자살했다. 현종은 앙귀비에 홀려 국정을 돌보지 않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촉으로 피하는 도중 피살되었다. 백낙천의 장한가는 이를 노래한 것이다.

- 입궁을 한 해의 나이는 27세 癸水대운이다.
- 안녹산의 난은 755년으로 양귀비는 37세로 甲木대운이다.
- 壬申癸酉의 호운을 무리하게 남용하다가 甲木대운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해석을 해야 하겠다.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있지만 양귀비에게는 참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해야 하겠다. 춤추고 노래를 잘 했던 것은 식신으로 봐야 하겠는데, 상관이 있었더라면 더욱 제격이라고 하겠다. 이 정도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