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직업의 귀천과 닮은 꼴

작성일
2001-05-07 15:3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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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직업의 귀천과 닮은 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셨거나 해 보셨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리고 낭월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1.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 의미

물론 의미이다. 아마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 것에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큰 명제를 놨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먹고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므로 천한 일을 하지 않기로 하고 굶어 죽는 것보다는 천한 일이라도 하여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미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먹고사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에서는 귀한 일과 천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대로 귀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보편적인 심리일 것은 틀림이 없는데, 단지 위로용으로 귀천이 없는 것이 직업이라고 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낭월학당에 들려주시는 벗님들은 부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낭월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2. 예전에 천한 일은 백정이었다

짐승을 도살하는 것으로 직업을 삼게 되면 천한 일이라고 하게 되어서 멸시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형태였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체가 있는 집에서는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나이의 고하를 떠나서 말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천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을까? 어차피 누군가는 동물의 육신을 음식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사형장의 망나니도 역시 천한 일에 종사하는 것으로 대우를 했던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 본다.

그러니까 소나 돼지를 잡는 사람은 늘 소와 돼지와 함께 하면서 그 살생의 자리에서 주도하는 입장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죽임을 당하는 축생의 슬픈 에너지 파장을 늘 온몸으로 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 슬픈 자리에서 얻어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고 그에 대해서 내릴 결론은 원한의 그림자뿐이라고 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인과법의 차원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 일은 천한 것으로 봐야 하겠다. 그리고 사형장에서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도 마찬가지로 그 슬픔과 증오심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죄수의 목을 쳐야 하는 일이다. 아마도 소를 잡는 일이나 사형수의 목을 치는 일은 그 대상은 다를지라도 맡은 일은 같은 것이다. 생명을 쳐야 한다는 것 말이다. 여하튼 이러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분명히 천한 일과 귀한 일은 따로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2. 불경(佛經)에 나타난 천한 일

부처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술을 파는 일이나 성욕을 촉진시키는 일들은 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오늘의 직업은 내일의 습〔습관〕으로 전래된다는 말씀의 의미를 하신 것으로 기억이 된다. 특히 술을 권하면 오백생을 정신이상자로 태어나서 그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술을 권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한국의 음주 문화에서 본다면 너무나 인정머리가 없는 판단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지혜의 눈길로 관찰을 한다면 술을 권하고 담배를 권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결과가 되겠느냐는 인과법에서는 충분히 해악의 결실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하게 된다.

낭월도 때로는 술자리에서 벗님들과 동참을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술 습관을 보게 되기도 하는데, 그 중에는 반드시 자신의 잔에 술이 비었을 경우에 따라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잔을 남에게 권하고 술을 따라서 마시기를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가 있는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하는 술자리의 풍경이라고 하겠다. 그런 장면에서도 낭월은 술잔을 권하지 않는다. 스스로 흥이 겨워서 먹는 것은 또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권해야 먹는 바보라면 또 몰라도 보통은 자신의 체질에 대한 주량을 알고 있으니 스스로 알아서 마시면 되는 것이다. 다만 술병을 그 옆에 놔두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예의는 되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술을 권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그렇게 권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불타의 가르침이 아닐까를 생각하곤 한다. 음.... 이야기가 옆길로 샜구나.....

여하튼 중요한 것은 술을 파는 직업은 천한 일이므로 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길어졌다. 그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부는 누가 하느냐고 따지는 항의도 더러 받는다. 물론 누군가는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산자원은 모두 다른 나라에게 약탈당하고 우리는 먹을 것이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항의를 하시는 것은 거국적인 차원에서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하는 점을 생각하시라고 권해야 하겠다. 지금 낭월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 훨씬 범위를 좁혀서 한 사람 개인에 해당하는 말씀이라는 점을 혼동하지 말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명리학을 연구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개인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살피려고 하는 버릇이 붙는 모양이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그 개인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다. 벗님도 냉정히 생각해보시면 알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신 홀로일 뿐이다. 그 외에 가족이나 세상이나 문명은 부수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너무 극단적이라고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위대한 인물은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룩한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장면에서도 낭월은 그 개인의 비참하고 처절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말이 길어졌는데, 석가모니는 '천한 일이 반드시 있다'고 했다.

3. 다시 고려해볼 일꺼리들

이렇게 제목을 쓰고 나면 마음이 좀 캥기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왜냐면 각기 자신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이렇게 목록을 나열하면서 천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벗님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서운하겠느냐고 하는 점에서 그런 염두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든 것을 다 고려하다 보면 막상 드릴 말씀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으로 방패를 삼고 그냥 손가락이 가는 대로 생각의 끝을 추적할 모양이다. 이점 죄송한 마음이다.

주로 낭월의 객관적인 자료는 방송을 통해서 많이 채워진다. 그리고 그 장면들에서 얻는 것으로 재료를 삼아서 가공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미쳐 모르고 있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확인을 해야 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라고 얼버무린다. 방송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닮아 간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의 종사하는 일에 대해서 그 대상과 닮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운명을 상담하기 이전에 삶의 구조가 그렇다고 이해를 해야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뭐가 어떻게 닮아가는 것일까? 우화를 하나 소개해 드린다.

(1) 소를 기르는 성자

라즈니쉬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어느 스승이 그 제자에게 소를 키우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제자의 수행에서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제자는 한 마리의 소를 데리고 초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반들과 헤어져서 홀로 살아가는 쓸쓸함에 스승을 원망도 했겠지만 그래도 스승의 하늘과 같은 명령으로 알고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사이에 이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생각을 해보자. 새끼를 밴 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았다고 한다면 한 삼년 지나서 또 새끼를 낳을 것이고 그래봐야 열마리가 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다고 한다면 십년은 훨씬 더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하튼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그는 모두를 잊어버리고 명상에만 잠겨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소가 말했다.

"주인님, 이제 스승님께로 돌아 가셔야지요. 소는 오백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소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마음의 고요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와 함께 20년을 보낸 시간은 그에게 소의 말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소 500마리와 함께 귀가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스승은 제자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모두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 소 501마리가 돌아온다. 우리는 그 소를 맞을 준비를 하자꾸나."

물론 소 500마리+1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소가 되어버린 제자를 그렇게 칭찬하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인다.

여기에서 느끼는 것은 그렇게 함께 생활을 한다면 서로는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낭월의 직업에 대한 귀천은 여기에서부터 갈라지는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2) 마약단속반은 하지 말기를....

이 시대에 과연 어떤 일이 천할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저께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마약단속을 한다는 사람들의 난폭한 제압의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한 장면에서 느끼는 것은 서로 닮아 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직업을 하게 됨으로 해서 자신도 그렇게 닮아 간다면 과연 자신의 생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아무래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겠느냐는 점을 떠올려 본다.

(3) 참으로 딱한 데모 진압

심심찮게 보도가 되는 내용이다. 특히 대우사원과의 마찰은 참으로 기가 막힌 장면이었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가 피해를 당했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가릴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양비론〔둘 다 틀렸다는 논리〕으로 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일자리를 잃고서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하기만 하겠는데, 그렇다고 진압을 한 사람만 탓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여러 가지의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서로 함께 만난 것이 악연일 뿐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여하튼 데모를 하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이 한다고 해도 그 진압을 맡은 일은 불행한 일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그러한 일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래야 하겠는데, 또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니 그래서 딱하다는 말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난폭해질 수도 있느냐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현장에 존재하는 것은 불행이다.

(4) 장의사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늘 슬픔에 잠긴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업을 벌려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고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돈이 된다고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물론 먹고살아야 한다는 지경에 도달한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만 그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기보다는 잠시 흉운에서 디딤돌로 삼아서 벗어난다면 그래도 무난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5) 어떤 일이 서로 닮을까?

초등학교 선생님 -> 아이들을 닮는다
교도소 교관 -> 죄수들을 닮는다
강력계 경찰관 -> 범죄자들을 닮는다
절에서 사는 사람 -> 스님들을 닮는다
돼지 키우는 사람 -> 돼지 냄새가 몸에 밴다
정치인과 살면 -> 편리한대로 말하는 것이 닮을까?

대략 생각이 나는 대로 적어 봤다. 그 외에 각자 인연이 있으시다면 그 방면으로 살펴보시면 분명히 직업과 연관되어서 닮은꼴이 되어 가는 것을 살펴보실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 현상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데, 일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닮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동업중생

같은 일을 하다가 보면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과응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마약을 단속하게 되면 스스로 마약사범을 닮아 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짜 범죄자들이 걸려들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 경찰관이 퇴폐업소를 뒤질 때에는 스스로 미끼가 되는 경우도 가끔 본다. 그래서 큰 성과를 얻기도 하겠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는 사이에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그 현장의 물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업중생(同業衆生)인 것이다. 같은 일을 하면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무리 부정을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일이 되지를 않으니 또한 현실인 것이다.

가령 최고로 범죄자를 잘 검거하는 사람은 그와 같은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이미 그 분위기와 언제라도 함께 할 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쩌다가 한번 손을 대는 것이야 또 모르겠지만 같은 일을 20년 혹은 30년을 한다면 과연 닮지 않을 재간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작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생각을 해야 하겠지만.... 지금의 현실을 봐서는 아마도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본다.

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도 소처럼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들과 노는 유치원 선생은 자신의 사고방식도 어린아이들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면 아마도 매우 유능한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다. 그렇게 닮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시는 것으로 충분하겠다.

5.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낭월에게 따지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미리 드린다. 그런 줄을 지금이라도 심사숙고를 하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줄을 알게 되었다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적에 바로 그 일을 뿌리치고 빠져 나올 틈바구니가 보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희망으로 남겨두실 수도 있을 것이다. 소방공무원과 업소운영자와 연결되어진 상납의 고리를 파헤친다고 떠벌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뿌리를 뽑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낭월의 생각이다. 잠시 그러다가는 또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아마도 많은 벗님도 하고 계시리라고 본다. 그렇게 되어야만 서로가 먹고 살아가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을 인정하자는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오래된 인간살이의 구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느 여자 경찰서장이 큰 소리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지가 불과 얼마나 되었는가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의 마음으로 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여전히 그 옆에서는 뇌물봉투를 주고받는 서로 닮은꼴의 관리자와 약삭빠른 사업가의 계약은 늘 이어지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한다. 그러니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욕만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모두 바로잡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 뿐이 아니다. 세관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범죄자들과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눈감아 주다가는 하나 잡아들이라고 하면 그 약속시간에 다른 세무원이 등장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밀수꾼은 약속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음을 보고 대번에 함정을 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밀수품은 그대로 팽개치고 몸만 빠져나가는 것이다. 아마도 눈여겨본 뉴스에서 공항에서 거액의 밀수품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된다면 낭월의 이 말씀을 떠올려 주셔도 좋겠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직접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전혀 황당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관리자와 그 틈바구니에서 서로를 이용하는 흥정은 늘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100%가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부 그렇다는 말이다.

6. 그럼 귀한 직업은 뭐꼬?

그러게 말이다. 천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귀한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이 뭔지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여하튼 그래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일은 꽃을 파는 일이라고 하는 말씀도 드릴 수가 있겠고,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도 귀한 일에 속한다고 하겠다. 또 어느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웨딩홀을 운영하는 것은 즐겁다고 한다. 결혼을 하려고 들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마찰이 되지 않고 무난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리포트도 좋지 않을까 싶다. 또 앙드레김씨도 미녀들의 입을 옷을 만들어주면서 행복해 하시는 것을 보니 역시 좋은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는 귀천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일이 귀한 일인지 천한 일인지는 어떤 사람과 만남이 이뤄지느냐는 것으로 하나의 기준을 삼을 수는 있겠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보람이 있으시다면 좋겠지만, 보람을 느끼시는 이면에서 가끔은 자신이 그 상대방을 닮아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시라고 권해 드린다. 그러는 사이에도 뭔가 깨달을 것이 있는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귀한 일과 천한 일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러니까 인과의 차원에서 직업을 생각해보시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데, 먹고산다는 것은 모두 막중한 일이지만 과연 어떤 방법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의견을 전해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해 본다.

아참, 그렇다면 천한 일은 누가 할 것이냐고요?

글쎄요...... 그야 아무래도 팔자겠지요.
그러나 팔자대로만 끌려가지 말라는 권유를 드릴랍니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