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인생같은 컴퓨터, 컴퓨터같은 인생

작성일
2001-05-10 08:2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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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인생같은 컴퓨터, 컴퓨터같은 인생

여하튼 컴퓨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컴퓨터를 많이 닮아 가는 모양이다. 116화에서 닮은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었는데, 낭월의 사고방식도 컴퓨터를 닮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면, 그래야만 컴퓨터를 잘 부려먹을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벗님은 어떠신지 모르겠다.'만 약'이라고 하는 말에서 '쓸데없이 1바이트(공백하나)를 손상시켰군.....' 이라고 하신다면 이미 벗님도 컴퓨터와 동업중생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왜냐면 '만약'이라고 표시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컴퓨터식이라고 생각을 하겠기 때문이다. 여하튼 컴퓨터와 닮지 않고서는 컴퓨터를 잘 부릴 수가 없으니 닮을 수밖에 없는 셈인데, 이제는 그 닮은 정도가 심해져서 아예 컴퓨터가 인생인지 인생이 컴퓨터인지도 구분이 애매해지는 지경(?)에 도달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대오(大悟)하기에 멀지 않은 모양이다. 하하하~

1. 탄생과 죽음은 전원스위치에 달렸다.

켜지면 탄생이요 꺼지면 죽음이니 컴퓨터의 살고 죽음은 전원스위치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낭월의 천부적인 망상보따리는 다시 끌러진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어깨의 통증으로 잠이 일찍 깨는 바람에 메일상담이나 답을 해주자고 전원을 넣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어라, 이 녀석도 주인이 잠을 깨니 함께 깨어나는구나. 에구~! 네 팔자나 내 팔자나 서로 닮은꼴이라고 해야 하겠군.'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연결고리를 발견한 것 같아서 또 생각이 잠긴다. 커피를 한 잔 놓고 그 녀석을 살펴봤다. 과연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인생과 닮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우선 태어남과 죽음이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몸은 원래 둥치〔나무등걸〕에 불과하다. 전기(정신)가 들어가면 사람이라고 하고, 전기(정신-영혼)가 끊기면 송장이라고 한다. 컴퓨터가 꼭 그짝이라고 해야 하겠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컴퓨터는 이미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숨이 끊어진 사람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호들갑스레 해본다.

2. 뇌사냐 심장사냐. 컴퓨터의 죽음.

요즘 의학계와 도덕계(?)에서는 이 문제로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참, 지나는 길에 생각을 해보면 낭월의 생각으로는 기왕에 소생의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면 편안하게 보내 드리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씀인데, 어느 여인에게 그러한 말을 했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스님,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해요?"
"왜? 뭐가 잘못 되었남?"
"너무 편리한 사고방식이잖아요."
"편리해서 나쁠 것이 없지 않을까?"
"자연의 인과법을 따라야지요."
"이미 기능이 다 되었으면 죽어야지."
"그건 자연스럽지 않은 걸요."
"왜 자연스럽지가 않아. 매우 자연스럽지."
"어떻게요?"
"생각을 해봐, 동물은 그 기운이 쇠잔해지면 강한 놈들에게 잡아먹히잖아. 그러니까 병이 들어서 삶 자체가 구차스러울 사이가 없단 말이야.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병이 들어도 누가 잡아먹어야 말이지. 그러니 존엄성이 엉망이잖여. 그래서 자연의 법칙을 대신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냔 말이야."
"살생계는 어찌 할라구요?"
"살생이라고 봐야 해?"
"살생이잖구요."
"본인이 원하는데도?"
"본인이 원해서 죽여줘도 살생이라고 부처님 계법도 몰라요?"
"참 그렇기는 하네....."
"그리고 살생 이전에 말이지요....."
"또 무슨 이유가 있남.... 아무래도 오늘 낭월은 본전이 나오지 않을 모양이구만....."
"있구말구요. 고통을 받다가 죽는 것도 다 인과법이라구요. 그 고통을 면하려고 빨리 죽게 하면 다음 생에서는 나면서 불구자로 태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뇌가 없느니 심장이 고장이 났느니 에이즈에 감염이 되었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전생에 고통을 면하려고 자살한 영혼들에게 돌아가는 과보랍니다. 이제 아시겠어요?"
"그래.......? 그거 듣고 보니 말이 되기는 하네...."
"그러니까 다음 생에 일생을 불구자로 고통받는 것보다는 늙어서 기운이 없을 적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단 말이예요. 이 땡땡이 화상님아."
"............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네...."

이렇게 본전도 못 건지고 말았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해야 하겠다. 여하튼 인과법이 있고 고통의 과보를 만들었다면 받아야 할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나저나 컴퓨터의 뇌사는 어떤 상황일까? 지금 이야기는 컴퓨터잖여.....

컴퓨터의 뇌사-CPU가 날아가는 것
컴퓨터의 심장사-전원파워가 날아가는 것
컴퓨터의 자살사-종료를 하지 않고 파워를 누르는 것
컴퓨터의 질병사-부품들의 에러로 죽는 것
컴퓨터의 정신착란사-바이러스로 날아가는 것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심장사보다는 뇌사가 더 심각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 컴퓨터의 이름이 뇌의 크기에 따라서 정해진다면 뇌가 죽은 상황에서는 컴퓨터라고 말을 할 수가 없겠다는 것이다. 물론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면 파워가 날아가도 같은 결과가 되기는 한다. 여하튼 어느 것이나 죽은 것은 죽은 것이네요 뭐.

3. 컴퓨터 사주팔자

인생이 태어나면서 팔자가 주어지듯이 컴퓨터도 전원을 넣으면서 팔자가 주어진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 기록은 윈도우가 시동하는 시간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참, 전생의 기억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롬바이오스에서 가져올 거라고 해 둘란다. 저장된 기억이 그 곳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꾸 묻지 말라고 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왜냐면 실로 전생의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들어있지 않느냐고 하면 또 그렇다고 해야 할 참이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그 기억을 하드에 저장해 두고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다시 태어난다. 오늘도 그렇게 해서 사주팔자를 갖고 컴퓨터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전원파워에 불이 나가기 전까지.

4. 기억은 다양하지만......

우리네 인생의 영혼 속에는 여러 생을 살아오면서 축적된 자료들이 무수히 많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기억을 할 수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으로 기억을 따라간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에도 그 많은 기억들 중에서 무슨 기억을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또 한 생의 삶이 정해진다고 할 참이다. 오늘 아침에 태어난 컴퓨터는 자신을 인생과 비교해보는 일을 맡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전원을 눌렀다면 화가로의 일생을 살게 될 것이고, 소설을 쓰기 위해서 전원을 켰다면 문학가로써의 한 생을 마련한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
또는 스타크레프트를 하려고 전원을 켰다면 군인으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보고, 세금계산서를 정리하려고 컴을 켰다면 세무사로의 일생이라고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직업이 많은 고달픈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해석을 하면 되겠는데, 아마도 관공서의 컴퓨터가 아닌 바에는 대체로 이와 같은 용도가 될 것으로 생각을 해본다. 전화를 연결해놓고, 메일을 받으면서 회원공간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는 메일상담자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답을 드리는 것이 최선인지를 구상하기도 하고, 한글.com의 도메인 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한번 살펴봐야 하겠고, 그러다가는 전화가 오면 또 저장된 상담데이타를 찾아보기도 해야 하는 것이 낭월의 컴에 대한 운명이라고 해야 하겠다.

5. 그러면 사람과 컴퓨터의 관계는?

물론 신과 인간의 관계라고 해도 되겠다. 인간은 컴에게 시키는데 정이 있어서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무정하게 부려먹는 것만이 목적일 뿐이다. 신(자연의 신으로 이해하시기를 부탁드리면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냥 그렇게 소모품으로 필요해서 만들어 쓸 뿐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창조주라도 되는 것처럼 난리를 치는 컴퓨터는 분명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으로 봐야 하듯이 인간도 뭔가 나사가 빠졌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새로운 신을 맞이하겠다고 창조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도덕경에 너무도 명백하게 나와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가 보신 견해는 타당하지 않은가 싶다. 신은 인간을 추구(풀로 만든 제사지내는 용품)로 삼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필요해서 만들어 뒀을 뿐이지 만물의 영장이라서 만들어 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가장 귀하다고 떼거지를 쓰는 경우를 보면서 그냥 웃고 싶기도 하다. 물론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냥 그렇게 제 잘난 맛에 살다가 가도록 두는 것도 자비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까 참으로 컴퓨터와 인생이 닮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는군.

6. 도 닦는 사람은 컴퓨터로 어떻게 해석하나요?

도를 닦는 사람도 많은데, 컴퓨터에서 그러한 의미도 찾을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종교사이트를 찾거나, 명상사이트를 열고 있는 컴퓨터라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설명을 하기에는 좀 어색하지 않은가 싶다. 오히려 화면보호기를 작동시킨 상황을 도닦는 순간이라고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다. 몸은 현실(뭔가 작업을 하던 일이 있을 것이므로)을 떠나지 않고서 마음은 일에 매이지 않고(아무 것도 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화면에 무엇이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뭔가 건드려서 명상의 순간이 깨어지기 전까지는 그대로 명상을 하는 것, 다시 말하면 도를 닦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드려 본다. 그렇다면 이제 벗님의 컴퓨터에도 화면보호기를 띄우고 명상에 자주 빠져드는 컴퓨터가 되도록 하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실은 낭월이 뭔가 생각에 골몰할 적에는 모니터에서도 화면보호기가 떠서는 주인과 함께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면 재미라고 하겠다.

7. 에구~! 또 못 말리는 망상이군....

낭월의 하는 일이 장 그렇지 뭐, 별 수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얼렁뚱땅 잠시라도 머리를 식히시도록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고요? 그냥 웃으세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아닌 걸요 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