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작성일
2003-08-17 22:07
조회
6871
[제200화]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그래도 여름인데 많이 덥지 않겠느냐고 미리 생각을 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어느 사이에 여름이 지나갔다는 느낌이 새벽 저녁으로 들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절기의 느낌으로 인해서 선입감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된

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하튼 선선한 느낌에서 마음 저 편에서는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봐도 되겠다.



1. 옛 이야기 한 도막



문득 어제는 옛날이야기가 한 가지 생각났다.

옛날에도 못된 아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부지는 아들이 염려가 되었지만 아들

은 막무가내로 듣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달리 방도가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못된 짓(?)을 한 가지 할 적마다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고

한다. 그 기둥은 아마도 집의 기둥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해서 기

둥에 못은 점차로 늘어났고, 그래도 아들은 못된 짓을 멈추지 않았던 모양인데,

기동에 못을 더 박을 곳이 없을 즈음에서야 비로소 철이 들었는지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좋은 일을 한 가지씩 할 적마다

못을 하나씩 뽑으라고 했는데, 아들도 그렇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둥의 못은

줄어들어서 마지막 못을 뽑는 날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지막 못을 뽑은

아들이 훌쩍훌쩍 운다. 아버지가 말했다.



“와 우노?”

“너무 후회스럽습니더.”

“머시 후회스럽노?”

“그 동안 아부지 말씸 듣지 않고 못된 짓을 많이 한기요.....”

“그래 좋은 일로 다 갚으니 마음이 어떻노?”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건 또 와 그런데?”

“나쁜 일 한 가지에 좋은 일 한가지로 없어질 줄로 알았는데, 막상 기둥의 못을

다 빼고 나니 못이 박혔던 자리가 뻐끔뻐끔하게 뚫려서 저를 노려보는 것만 같

십니더. 정말 후회스럽십니더. 우짜마 좋습니껴?”

“그야 나도 방법이 엄따. 그것까지 없앨 방도는 없는기라....”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음을 눈 밝으신 벗님은 아실게다. 낭월도 늘 이 이바구를

생각하면서 애초에 허물은 범하질 말아야지 이미 범하고 난 다음에는 원상복귀

가 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어제 문득 한 방송의 보도를 보면서 다

시 이 이야기가 틀림없는 진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벗님도 세상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능히 짐작이 되시리라고도 생각이 되는데, 함께 생각을 해보

시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



2. 자유를 얻으려고 종교를 택하더라도



아마도 종교를 택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마음에 편안함, 혹은 안식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을 쉽게 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의

지해서 마음이 편안하고 그래서 삶에 활력을 얻어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은 보

통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제 방송국으로 자신이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보

내서 후회한다는 독백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또 왜 그렇게 되었는지 쳐다보면

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주가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능히 그럴 수도 있

으리라고 생각을 해서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자신에게 쏘는

화살을 연꽃으로 변화시켰다거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아

마 그러한 범주에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성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지만 종교라는 이름을 앞에 세우게 되면 능히 그러한 일도 가능하게 된다는 것

이 참으로 묘하다면 묘한 일이다. 그 외에도 많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전래되

고 있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은 보기에 따라서 믿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쏭달

쏭하기만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제 그 고백자의 경우 그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도 그

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너무 그 사람을 몰아세울 수만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만 앞의 그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아마도 그 사

람은 그렇게 믿을 자료를 봤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 잠

시 그의 교주가 보여주면서 감로이슬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니 사진이 뿌옇게

된 것이었다. 아마도 요즘 컴퓨터에 익숙하거나 지식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그것

은 사진을 찍을 적에 드라이아이스를 놓고 찍었거나, 아니면 사진을 찍어서 스

케닝을 한 다음에 포토샵으로 불러들여서 브러쉬로 하얀 색을 뿌려서 다시 컬러

프린터로 뽑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련만, 그래도 순박한 종교

열에 불타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감격해 하는 장면은 참으로 묘한 기분

이 들었다.



3. 지혜롭기도 어렵다



과연 지혜롭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매우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산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지혜롭다고 할까? 아니면 평범하다고 할까? 그리고 특별하게 살아가

는 사람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러한 것을 노리고서 뭔가 꾸미고 만들 수

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눈에는 그러한 행위

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으로 보일 가능성도 능히 있겠다고 생각이 된

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 대해서 올바르게 판단을 하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해야

하겠다.



과연 지혜로움은 뭘 의미할까? 물론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가 있음을 전제로 하

겠다. 그리고 나서 해볼 생각은 아무래도 자연의 흐름에 그 기준을 두지 않고서

는 언제 남의 현혹술에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아무리

후회를 해봐도 결국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 있으니, 그 못된 아들처럼 지울 수

가 없는 못 자국이 아니고, 세월의 낭비라는 것이다. 잊어버린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둥의 못 자국보다도 더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싶은 생

각이 든다.



벗님이나 낭월이나, 여하튼 지혜롭게 오늘을 살아야 시간도 아깝지 않고, 기둥

에 못 자국도 남기지 않을 텐데 과연 오늘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것

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올바르다면 과연 어느

기준에서 올바른가를 생각해봐야 하겠는데, 모든 만물은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

을 보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보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객관성을 갖고 자신

의 행위를 관찰할 수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벗님은 오늘

의 행위에 대해서 어떤 확신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낭월도 마찬가지이다. 나름

대로 상식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매우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

살지만, 과연 이것이 십년 후나 혹은 백년 후가 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나날이

었다고 할 수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4. 후회가 아무리 빠른들 뭐 하겠는가



그 사람이 자신의 교주를 고발하는 비디오를 찍으면서 후회된다는 말을 무수히

하면서 자신이 죽여서 묻었다는 사람들의 위치마다 소주를 뿌리면서 회한의 눈

물을 흘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러나 그런다고 그 마음에 쌓인 기둥의 못 자국이 지워질까? 그것은 아마도 아닐

게다. 문득 그 장면을 보면서 낭월이 앞의 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

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일이 어찌 어느 한 사람의 일이겠는가를 생각하

면서 앞으로도 과연 자신의 삶에 대한 관찰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

게 만드는 시간이었기도 하다.



여하튼 지금은 소중한 자유가 주어졌으니 정말 지혜롭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이르러서 비로소 빙

긋이 미소를 지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지를 가끔은 생각해보곤 한다.



참, 일제시대에 신문사들의 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민족

신문이니 뭐니 하면서 허물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데,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마음에 지은 바가 있다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를 생각해 봤다. 젊은이들이 학도군에 나가기를 권했다고 해서 그냥 탓을 할 것

만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글을 쓴 사람도 사람인 바에야 어찌 죽을 때까지 그 마

음에서조차도 자유를 얻을 수가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봤다. 정말 당당하게 살아

야 하는데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내일이다보니 오늘 조심스럽게 산다고 해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백으로 놔둘 수밖에 없는 일인가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