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사주쟁이가 찍지 못하는 이유

작성일
2002-09-19 08:25
조회
8282
[제171화] 사주쟁이가 찍지 못하는 이유



어느 사이 추석이다. 어제까지 강의를 마치고 오늘은 쉬기로 했다. 그래서 한 사

람만 남고 모두 추석을 보내러 떠나고 그래서 감로사에는 연지님 차만 홀로 마

당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침에 창문을 열고 느낀 첫 번째의 감상이다. 그리고

주방의 고모님도 장자의 집이 있는 부천으로 떠나시고 대신 그 자리에는 연지님

이 지키고 있을 모양이다. 이렇게 모처럼 오붓한(?) 아침시간이고 보니 문득 한

담에 글을 한편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1. 방문자의 희망사항



그래도 여전히 방문자는 찍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역력하게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사주쟁이가 정확하게 읽어서 척척 맞춰주기를 희망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많은 명리학자는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의 결실로 방

문자의 마음에 부합을 해 보느라고 찍으려고 고민을 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잘

될지는 의문이고, 그것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

니까 학자들께서는 이러한 사정을 잘 설명해 주시고, 당당하게 상담에 임하시라

는 권유도 드릴 겸해서 생각해보는 낭월이다.



여하튼 방문자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상담업을 해먹고 살기가 참 어렵다는 말도 한다. 물론 그럴게다. 그렇게 손님에

게 끌려가는 상담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불안하고 고민되는 시간의 연속

이 될 것은 너무도 뻔하게 보이는데, 쉽사리 그 요구사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등을 하고 있는 명리가가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방문자가 뭘 원하는지는 너

무도 당연한데 자신은 공부가 깊어지면 그럴수록 더욱더 말을 못하겠다고 하면

서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묻기에 낭월이 곰곰 생각을 해봤는데, 그러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자존심도 자부심도 없는 명리학자



남이사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스스로는 학자라는 자부심을 당당하게 갖으셔야

한다는 말씀은 누차에 드린바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는 낭월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정도의 자부심

을 가져도 좋을 이치인 자연법을 스스로 파악하고 있으니 전혀 꿀릴 바가 없는

것이다. 무슨 대학의 무슨 과 교수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가 죽을 일도 아니

다. 명패만 그럴듯하고, 실력은 전혀 형편없는 교수도 많다는 말도 한다. 그야말

로 이름만 교수인 것이다. 그런 점에 비한다면 적어도 명리학의 이치를 궁리하

고 현장에서 대입해서 설명을 해주는 학자라면 당연히 학자로써의 자부심을 가

져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라는 것이다. 비록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더

라도 스스로조차 자신을 폄하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조

차 스스로 덜학자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

본다.



스스로 학문이 좋아서 사주공부를 했듯이, 또 철학박사가 좋아서 철학과에 등록

을 하는 것도 누가 탓을 할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전에 어느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도반이 낭월에게 철학교수의 자격을 얻어야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 봤는데, 결론은 쓸데없는 명예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 다짐까지도 하는 것을

그 도반은 잊지 않았는데, 아마도 스스로는 뭔가 뼈저리게 느낀 사연이 있는 모

양이다. 그래도 낭월은 그런 것이 왜 그리도 부질없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것

도 아마 병이라면 병일게다.



아마도 낭월이 생각하기에 학교에서 이렇게 심오한 이치를 설명해줄 교수는 쉽

지 않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공부는 스스로 깨우

침으로 연륜을 쌓아가야 하는 것일 뿐, 남에게 배워서 얻어질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면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리학자

는 기왕이면 명패를 하나 갖고 남들에게 내어 보일 수가 있다면 더욱 좋지 않겠

느냐는 정도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상담실 책상 위

에다가 ‘철학박사 아무개’라는 것을 하고 싶어서 안달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는 현실적으로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학자의 자존심으

로 당당하게 이 공부를 통해서 자연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면 왜 그런 발상을 하

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래도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없기 때문일 거라는 생

각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그 중에서도 참으로 넓은 철학의 세계를 공

부하려는 학구파는 당연히 제외된다.



3. 스스로박사와 타인박사



무슨 말인가 하시겠다. 그냥 그렇게 불러봤다. 박사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

면서 붙여봤는데, 물론 말이 되는지는 설명을 봐야 할 것이다. 스스로박사란 남

에게 스스로 박사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박사요. 그렇게 알아

주고 그렇게 불러주시오’정도라고 해보자.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야 아무렇거

나 말거나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경우가 있다. 어느 젊은이는 약초의 박사라

고 한다. 그는 모르는 약초가 없을 정도로 훤하게 알고 나니까 남들이 그렇게 불

러주는 모양이다. 자동차박사도 있다. 차의 엔진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났는

지 그 상황이 어떤 정도인지를 바로 알아차리니까 그를 부를 적에는 자동차박사

라고 부른다. 이러한 것을 일러서 남이 불러주는 박사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어

느 것이 진짜 박사인지는 벗님이 스스로 잘 생각하시면 될 일이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명예욕(?)으로 인해

서 많은, 그것도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잠시 안타까움으로 그 소감을 적어봤다. 세상에서 그러한 것을 원한다

고 해서 그 요구에 적응을 하는 것은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연민심으

로 그냥 이해를 한다는 정도일 뿐이지 자존심도 없느냐는 생각이 뒤를 따르면

서 아직은 덜 된 학자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는 낭월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을게다....



4. 이 세상에 몰두를 해보니까 이렇더라.



이 세상이란 명리학의 세계를 말한다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혹

시나 해서 설명을 드린다. 명리학을 공부하다가 보니 참으로 무궁무진한 세상

이 나날이 넓어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 세상은 3년전의 2배이고, 6

년전의 4배이다. 물론 3년 후에는 또 더 넓어 보일게다. 경험상 그렇지 않을까

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미뤄서 짐작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조바심도 나고, 회의심도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나날이 새로움

이 가슴에 가득하게 들어차면서 이제는 그 새로움의 재미에 풍덩 빠져서 다른

곳에 눈을 팔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안타까울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도 솔직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이치로 답을 구해서만도 아니고, 그렇

게 자연스러움으로 보이는 것이다. 새로움이 보이고 그 새로움은 다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게 되니 이렇게 즐거운 나날이 이어지는 것은 참으로 사주를 공부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으로 대신 얻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오늘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온 몸을 엄습하고 있는 묘한 기운이기도 하

다. 이러한 느낌을 벗님께서도 함께 즐길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

이 절로 든다.



이러한 기분이 그대로 전달 되셨다면 벗님은 이미 확실한 프로라고 하겠고, 혹

막연히 짐작이라도 하시겠다면 그것도 다행이다. 그냥 아는 이만 알 뿐이다. 이

세계의 진미를 말이다. ‘지자(知者)지(知)’다.



5. 방문자의 욕심을 무슨 수로 채워?



다 소용없는 일이다. 그들의 욕심을 다 채워주기 위해서는 자신은 완전히 광대

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러한 것은 포기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고 하는 결론을 내리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고 해야 하겠다. 그

래서 자신의 페이스로 방문자를 끌고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씀을 드리

게 된다. 싫으면 말고 들으려면 듣고 그대가 알아서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좀더 구체적으로’를 계속 말하는 방문자가 적지 않다. 뭔 말

을 듣고 싶은지는 너무도 뻔하다. 몇 년 몇월 몇일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이므로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일게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는 말도 뒤이어 떠오르면서 쓴웃음을 짓게 되는 낭월이다.



그 일을 누가 무슨 수로 알아? 참으로 대책이 없는 욕심많은 방문자들이다. 그럼

에도 학자들은 그러한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 그래서 그냥 안타

까운 마음으로 빙그레 웃을 뿐이다. 이게 낭월이 할 수가 있는 최대한의 행동이

다.



실로 인간의 운명이 그렇게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운영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이러한 생각도 변했다. 이제는 과연

그렇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운명이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느냐는 생각

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더 관찰의 여백이 넓어지고, 그래서 더욱 즐거운

것이니 참으로 세상에는 하나를 버리면 둘을 얻는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

은 생각이 절로 든다. 벗님이 초보자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할 게다. 그런

경우에는 그만 읽으시는 것을 권해 드린다. 나중에 이 공부 속으로 깊숙이 들어

오신 다음에 읽으셔야 이해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물론 삶에서 그러한 느

낌을 받으셨다면 당연히 이해가 되실겠다. 이해는 한가지 경로만으로 되는 것

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어느 경로에서거나 만날 수가 있고, 그래서 무엇이든

한 길로 깊이 진행하면 서로 통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 낭

월이다.



여하튼, 재미가 있든 없든 그렇게 정확한 인생의 운명이라면 달리 방법은 없을

게다. 그런데 천만다행히도(?) 인간의 운명은 그렇게 맷돌처럼 맞아떨어지는 것

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고 나니 이렇게도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믿

거나 말거나이다. 낭월은 그 점을 알게 되었다.



6. 편재대운인데요....?



그래 공부를 조금 했다면 그런 정도의 질문은 할 수가 있을게다. 그렇다면 그 운

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를 묻고 싶은거다. 여기에 대해서 벗님은 어떤 답이 마련

되셨을까? 아마도 답이 마련되었다면 아직은 덜 프로일게다. 그리고 답이 마련

되지 않았고 아무런 답도 해 줄 수가 없다면 비로소 편재의 의미를 바로 깨달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적어도 벗님이 프로라면 질문

은 계속되어야 한다.



“용신이 뭔데요?”

“언제 태어났는데요?”

“용신에 오류는 없나요?”

“결혼은 하셨나요?”

“지금 하시는 일은 뭔데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는데요?”

“어제는 뭘 하셨는데요?”



손님을 앉혀놓고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는 것은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

러나 전혀 아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 가장 요긴하고 도움이 되는 답을 주기 위

해서는 이 정도는 당연히 기본이다. 이렇게 묻지도 않고 답을 한다면 또한 덜 익

은 학자일 뿐이라고 봐야 하겠기 때문이다.



“편재운이라고요. 그럼 애인이 생기겠군요~!”



이렇게 답을 했다고 치자. 그 사람의 견해가 과연 타당할까? 너무 생기발랄하다

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위태롭기가 물가에 내어놓은 얼라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야 정상이다. 서푼짜리 실력으로는 그렇게 밖에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 많은 변수를 알았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

는 것이 너무도 명명백백하니까 말이다.



질문을 한번 할 적마다 가능성은 50%씩 상향된다. 그러니까 편재운이라도 해도

용신운이냐 기신운이냐에 따라서 적중률은 50%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또 사업

을 하느냐 직장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구분이 되면 다시 50%가 추가된다. 직장

인에게 떼돈을 벌겠다고 확언을 한다면 아마도 그는 삼일낮과 삼일밤을 고민하

다가는 주식을 사러 갈 밖에 없을게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느껴야 정상이다.



7. 아는 것이 많으면 말을 못한다



당연한 말이다. 지자무언(知者無言)이요, 언자부지(言者不知)라는 말도 있지

만, 아마도 진실은 입을 여는 순간 망가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최

소한의 말을 해서 답을 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도사가 아니라는 것

을 전제로 한다는 것도 혹시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모양이다.



처음에는 ‘편재=애인’으로 연결이 되므로 너무도 간단하게 애인이 생긴다는 말

을 한다. 그런데 세월이 쌓이고 공부가 깊어지면 편재를 의미하는 것이 세상에

서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에서 10%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

서로의 엉킴을 고려한다면 그로 인해서 발생할 경우의 수는 수백가지에서 수천

가지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어느 것을 잡아서 찍어준단 말고....?

에구,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 그러니 입을 여는 순간 망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

래서 묻고 또 묻는다. 묻고 물어서 최후에 두가지 결론이 나오면 비로소 자신의

말을 한다.



“A를 택하세요.”



8. 점쟁이는 어떨까요?



점쟁이도 등급이 있겠는데, 대단한 점쟁이는 또한 끝까지 묻고 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묻고 물어서 마지막으로 두가지 결론이 나오게 되면 비로소 점통

을 흔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말이다. 과연 점쟁이와 사주쟁

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서로 통한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

는 낭월이다.



변변치못한 점쟁이는 쉽게 점괘를 말하겠지만, 진짜 점쟁이는 방문자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말을 그렇게 쉽사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많은 점을 통해서 점괘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느다는

것을 깨달았을게고,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결국은 사람에게 모든 것

을 궁리하도록 하고 마지막 결정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점신(占神)에게

문의를 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실로 낭월에게 질문을 해도 그의 질문이 마지막 결정적인 질문이 아니라면 답

을 하기 싫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책을 더 보라는둥, 궁리를 더 해보라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실은 답을 얻을 준비가 덜 되었다고 보는 것이 내심

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 봤는데, 벗님이 프로라고 하신다면 잘 음미해 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아마도 오늘이 즐겁기 위해서는 낭월의 소견이 약간이나마 도움

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낭비 하시지 말고, 정법(正法)을 잘 찾아서 정진하시

기를 권해 드린다. 세상에는 참으로 소중해서 시간과 분을 다퉈야 할 일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