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고부갈등(姑婦葛藤)의 원인은 남성...

작성일
2001-07-0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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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고부갈등(姑婦葛藤)의 원인은 남성사회

난제 중에 난제라고 해야 할 것 중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있음을 생각 해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의미를 함께 생각 해보려고 마음을 일으킨다. 또한 벗님의 환경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없는지 잘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고 원인을 찾아서 뭔가 해결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여하튼 나름대로 이해를 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점으로 의미를 부여해 볼 참이다.

1. 시어머니의 마음

우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늘 시어머니의 입장이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그렇게도 문제가 많은 여인으로 생각을 하고는 가능하면 시어머니가 없는 신랑을 택하도록 하려는 것은 아마도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시집살이가 혹심해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고 해야 한다면 그 십년 세월의 보상을 누가 해주겠느냐고도 할만 하겠다. 여하튼 시어머니가 일으키는 문제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아마도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애써서 희망을 갖고 키운 아들로 인해서 자신은 편안하게 여황제가 되어야 하겠는데, 며늘아이의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주인의 노릇을 하려고 드는 것으로 보이게 되고 그래서 한 말씀 점잔하게 타이르기라도 할라치면 이내 쪼르르 제 서방에게 달려가서는 고해 바치고 그래서 다시 아들과 어머니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곤 하니 과연 곱게 보일 턱이 없다고 하겠고, 그래서 발단의 시작이 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2. 며느리의 마음

일이 그렇다 보니까 늘 며느리는 피고의 입장이 되는 모양이다. 며느리가 어떻게 했길래 어른이 그렇게 나오시겠느냐고 하는 말은 경로사상이 투철한 한국에서는 당연한 말이라고 하겠고, 그래서 나온 말이 '떫기로 고욤하나 못삼키겠느냐'는 말로 대신해서 시집살이가 힘들어도 잘 견뎌야 한다는 인내의 말로도 대신하는 모양이다. 또 '고초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보다 더하겠느냐'는 말도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모양이다. 비장한 각오가 아니면 일생을 함께 할 남편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나쁘다고 할 수도 있다는 장면도 혹 있는 모양이다. 시어머니에게 얻어맞으면서 살아가는 며느리고 있다는 말을 옆에서 지켜보던 각시가 거든다. 아마도 자신이 며느리의 입장이어선지는 몰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더욱 상황이 나빠진다고 해야 하겠다.

아무리 사주학적으로는 財剋印이라서 며느리를 이길 시어머니가 없다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악랄한(?) 시어머니도 더러 있음을 감안한다면 누가 옳은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그에 대한 상황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며느리는 참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겠고, 그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각살림을 차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리게 될 필수적인 결론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결국은 집을 떠나서 다른 곳(시어머니를 자주 보지 않아도 되는)으로 이사를 하도록 남편을 종용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실로 자신도 사랑을 찾아서 남편을 택한 것이지 일생의 10년을 종살이하려고 결혼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인내심은 부족해지고 즉흥성과 개인의 능력이 평가를 받는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다고 하겠으니 우리의 시어머니들은 중간에서 끼여서 숨통만 조여드는 기분을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지만, 며느리가 그런 것까지 헤아려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할 참이다. 각자의 삶이 있다고 하고 싶은 것이다. 여하튼 며느리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3. 아들의 마음

아들의 마음이야 어머니와 아내가 사이좋게 잘 지내 줬으면 좋겠고, 실제로도 잘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겠는데, 문제는 늘 잘 지내지 못하는 가정에서 발생하다 보니까 그게 탈인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고충은 참으로 진퇴양난이라고 해야 하겠는데, 여기에서 세상의 경영이 얼마나 어려우며 더구나 가정의 경영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사내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야 아무래도 좋겠지만 만약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면 벗님은 어떤 방법을 취하시게 될까?

1) 어머니가 다 옳습니다~!

물론 각시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늘 가슴을 졸이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현명한 방법이라고는 못할 것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나마 평온해 보인다는 것이 자랑이라고 하겠다. 한 사람이 죽어서 두 사람이 행복하다면 며느리로써도 한번 생각을 해볼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며느리의 사주에 편관이 있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상관이라도 하나 척하니 박혀 있다면 어림도 없는 수작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2) 어머니가 양보하세요.

역시 가제는 게편이라고, 여편네에게 홀라당 마음을 빼앗긴 아들은 이미 자신의 품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하는 것만 남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각시와의 시간을 계산한다면 아무래도 이 흥정도 아들만 탓할 일도 아니라고 해야 하겠기에 그냥 씁쓸할 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아들로써도 이러한 결론까지는 가지 않아야 하겠지만 어디 그게 자신의 마음대로 되느냔 말이다. 특히 사주에 재인상충(財印相沖)이라도 되어 있을라치면 참 진퇴양난일 것이다. 딱한 일이다.

4. 원인의 발생

도대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 원인에는 어떤 불합리가 있길래 이렇게도 오랜 시간을 행복한 가정의 복병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을 해보셨다면 그 원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함을 참고 하시기 바란다.

1) 원인 분석 - 애초에 잘못 되었다.

남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야 할 참이다. 여자들에게 세상의 경영을 맡겼더라면 그러한 일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본 생각이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꿔서 다음이 상황을 설정해 보도록 하자.

2) 아들은 불효요 딸은 효도한다

근래에 나오고 있는 말이다. 아들이 그렇게도 간절했었는데 이제는 슬슬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마음들이 멀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비로소 그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점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겸해서 해보게 된다.

요즘 대개의 부모들은 아들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여전히 며느리는 아들을 올라타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을 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아들은 처가에 매우 약하다. 그래서 딸은 남편을 처가에 대해서 충성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대체로 남자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러니까 처가의 말뚝에 대해서 절을 할 마음이 되어 있다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며느리는 시가에 대해서 짐스럽게 생각을 하고 사위는 처가에 대해서 즐겁게 생각을 한다면 이것이 과연 우연한 것이겠느냐고 이해를 해보자는 것이다. 뭔가 그 이면에는 어떤 자연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겠느냐는 것으로 생각은 시작이 된다.

3) 모계사회의 원칙이라면....

당연히 고부갈등이라는 말은 존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두는 친정어머니이고 모든 권한도 친정어머니가 갖고 있을 것이며 그 권한의 승계자도 딸이 되고 말 것이므로 결국은 고부간에 부딧칠 일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가정이 화목하고 나아가서 사회적으로도 좋은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혹 낭월에게 처가에서 무슨 뇌물을 먹었느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장인어른이 사위주려고 닭을 잡아 왔더라는 말씀은 차마 드리지 못하겠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함께 생각을 해보시자는 것이다.

사위와 장모가 싸운다는 말은 여간해서 듣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고부간에 싸운다는 말은 너무 흔한 말이다. 여기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여하튼 결론은 그렇다. 여자가 가장이 되는 동물적인 사회에서라면 없어야 할 당연한 일이 남성이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발생했다고 보자는 것이다. 뭐, 아니라고 하셔도 좋겠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시기 바란다.

5. 해결법

원인에 대해서 이해가 되셨다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다시 모계사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내의 성씨를 따르고 자녀는 어머니가 알아서 교육을 시키면 된다. 아마도 앞으로의 추세를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흔적들이 보이는 것도 같다. 점차로 여성이 눌렸던 본래의 권한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남자들은 점차로 무기력해지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리고 당연히 시집살이가 아닌 처가살이를 하게 될 것은 아마도 수순이 그럴 것이다. 처가살이를 비웃는 것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왜 나왔을까? 그렇게도 처가에서 사는 것이 모욕적이었을까? 얼마나 편안하였을까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역설적으로 해볼 수가 있겠다. 아마도 가부장적인 권위주의가 만들어낸 유언비어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모계사회로 다시 돌아가면 남자들은 할 일이 없이 놀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렇게도 40대의 돌연사가 많아지다가 보면 아마도 여성의 입장에서도 남자를 쉬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모두 처가살이를 하고, 모든 일은 아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 이미 많은 가정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들은 딸을 낳으면 자랑을 하고 아들을 낳으면 실망을 하게 되어야 한다. 아들을 선호하는 마음이 들면 들수록 그만큼 갈등의 요소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낳아 기른 아들인데.....'로 인해서 발생한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아마도 가정은 훨씬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딸은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된다. 그리고 다시 시어머니는 자신의 딸과 함께 살면 된다. 그리고 각시 연지와 그의 형제들을 보면서 지극하게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이 의무적인 시부모에 대한 봉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늘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가정이라면 가장 자연스러운 그리고 평화로운 가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연의 눈으로 본다면 아마도 그게 정답일 것이다. 사자를 보면 수놈은 망이나 봐주고 모든 운영은 암놈이 하더라는 것이다. 여하튼 이 시대의 남성에게 다스려지는 역사가 지속되는 기간에는 언제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벗님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시다면 다시 생각을 해보시고 남이사 뭐라고 하거나 간에, 자신이 보다 자연적인 방식으로 가정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시는 것이 좋겠다.

이거 날이 너무 더웠나.....?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