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순례⑩ 창경궁(昌慶宮)

작성일
2019-05-04 05:32
조회
941

고궁순례⑩ 창경궁(昌慶宮)


 

 

gyeong-20190503-45

창덕궁을 둘러보고 나면 다음으로 가게 되는 곳은 창경궁이 된다. 문제는 창경궁을 거꾸로 돌게 된다는 점이다. 딱히 문제랄 것은 없지만 창경궁의 정문으로 입궁을 할 경우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sae-20190311-38

지난 3월에 창경궁 대온실을 구경하면서 찍은 창경궁 정문사진을 첨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sae-20190311-39

명색이 고궁순례인데 뒤에서부터 둘러본다는 것이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그것조차도 흐름이려니 싶기도 하다. 그것이 창경궁의 운명이라면 운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M3_09833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弘化門)이다. 그러니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의 정문은 모두 화(化)자 돌림이로구나. 이렇게 살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법이다. 광화문, 돈화문, 그리고 여기 홍화문이다. 지난 3월에 창경궁을 나들이 한 것은 대온실에서 이른 봄의 꽃을 보고자 함이었으니 당연히 정문으로 입궁을 했고, 그래서 당시 사진이 존재하게 되었던 셈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이번의 창경궁을 둘러보자.

gyeong-20190503-86

창경궁은 창덕궁과 붙어있기 때문에 다시 표를 구입하여 통과하면 된다.

20190504_054952

아마도 벗님이 지도로 자세히 소개한다고 한 이야기를 본다고 해도 실제로 느낌은 닿지 않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본다. 그냥 안내문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눈으로만 보게 되는 사진이나 그림은 실제로 현장에서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면서 느끼는 오감(五感)의 만족과는 너무 큰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gyeong-20190503-85

그래서 최고의 기술자들이 만든 영상을 보면서도 그 곳에 가봐야 그보다 더 잘 볼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보기를 희망하는 이유가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함양문(涵陽門)을 통과하면 곧바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나게 된다.

gyeong-20190503-84

때마침 계단의 오른쪽으로 제철을 만난 수수꽃다리가 만발했구나. 역시 봄나들이의 덕분이라고 해야 하겠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풍경일테니 말이다.

gyeong-20190503-83

영산홍의 고운 자태도 맘껏 뽑내고 있구나. 함양문에서 들어와서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함양문에서는 뒤에 있는 낭월이 여기에서는 또 앞에 있는 것을 본다. 참 바쁘다. 그래서 사진놀이에는 자동으로 운동량이 추가된다.

gyeong-20190503-82

가끔은 헬스클럽에서, 앞으로 가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거나, 일할머리 없이 방방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왜들 저러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순간순간을 즐기는 사진놀이를 하면 운동도 되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물론 하늘이 맑을 경우), 덤으로 사진이 남으니 추억 농사도 짭짤한데 말이다. ㅎㅎ

gyeong-20190503-81

알뜰한 금휘는 볼거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안내문을 열심히 살펴보지만 연지님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gyeong-20190503-80

오직 꽃이다.

gyeong-20190503-79

마치 한 마리의 검은 나비 같다.

gyeong-20190503-78

꽃 속으로 빠져들지 싶다.

gyeong-20190503-77

아마도 그녀의 창경궁은 꽃밭으로 기억되지 싶다. 그또한 좋은 일이다.

gyeong-20190503-76

그래, 드므로구나. 이름도 참... 이것도 우리 말일까?

20190504_060301

우리 말이 맞네. 넓적하게 생긴 독이란다. '청동이나 돌로 만든다'는 부연설명도 있군. 이 드므는 청동이로군. 화마(火魔)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전각마다 네 귀퉁이와 계단 아래귀퉁이까지도 드므를 놨을지는 당해보지 않은 후세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창경궁은 애초부터 창경궁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수강궁(壽康宮)이라는 이름으로 1418년에 왕이 된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서 지었더란다. 하긴 어른을 모시는 궁이니 오래도록 건강하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수강(壽康)은 어디에선가 봤는데.....???

nak-20190502-53

아, 맞아! 낙선재에 수강재(壽康齋)가 있었지. 수강궁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낙선재에 그 이름을 살렸나 보다. 창경궁이 아직도 수강궁이었더라면 낙선재에 수강재라는 이름은 붙지 않았을 테니까.

화재와 다시 짓기를 반복한 창경궁이었구나. 그 사연이 구구절절이다. 처음에는 왕이 기거하기 보다는 상왕이나 왕후의 거처로 주로 쓰였다니까 뒷방궁궐의 느낌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더구나 후원까지 이웃하고 있으니 아마도 정사에 힘쓰느라고 고생한 상왕을 위해서 마련한 의미가 그대로 이어졌던가 보다.

gyeong-20190503-75

임진왜란(1592)으로 도성의 모든 궁궐이 불타게 되었고, 창경궁도 그 전란을 피할 수가 없었다. 광해군이 1615년에 중건된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다음해에 창경궁도 중건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인조2(1624)년에 이괄의 난으로 인해서 창덕궁과 함께 다시 불 속으로 타들어갔다.

gyeong-20190503-74

인조가 경덕궁(慶德宮-현재의 경희궁)에서 9년을 머무르다가 완공이 되지 않은 창덕궁으로 돌아와서 이듬해(1633)부터 창경궁을 수리하면서, 광해군이 인왕산 밑에 지어놓았던 인경궁(仁慶宮)을 헐어다가 짓는 바람에 빨리 완공될 수가 있었다.

gyeong-20190503-73

반복적으로 화재와 수리가 반복되었다가 순조 30(1830)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환경전, 경춘전, 함인정, 빈양문, 숭문당 등의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지만 3년 후에 복구하면서 통명전(通明殿)이 복구되었고, 환경전, 경춘전, 숭문당, 함인정, 양화당, 영춘헌, 오행각 등이 모두 복구되었으니 이 통명전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 많은 사연들을 대충이나마 살펴보게 되었다.

gyeong-20190503-72

통명전에는 '신을 벗고 올라가시오'이다. 그렇잖아도 후원을 둘러보면서 다리도 아픈 차에 들어가서 궁궐의 안방에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해본다.

gyeong-20190503-71

후원의 꽃향기가 방안을 감돈다.

gyeong-20190503-69

도대체 언제 무슨 인연으로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格下)되었는지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1907년에 순종이 즉위하면서 시작되었다. 순종은 경운궁(宮-현재의 덕수궁)에서 왕이 된 다음에 창덕궁으로 옮겼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경복궁은 제쳐두고 다른 궁에서 왕이 된 다음에는 모두 창덕궁으로 돌아왔을까? 그것도 참 궁금하다. 아마도 국력이 쇠락해서 감히 경복궁을 복원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gyeong-20190503-68

또 일설에는 청나라의 등쌀에 조공을 바치기 힘들어서 허물어진 경복궁을 복원하지 않았고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창덕궁으로만 들어갔던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것도 무력한 약소국의 생존전략으로 공감이 되기도 한다.

gyeong-20190503-66

이때는 이미 일제의 영향권에 놓이게 된 조선이었으니, 순종을 위로한다는 이유로 그해부터 창경궁의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서 융희3(1909)년에 개원하였더란다. 그러니까 110년 전에 창경궁에서 창경원(昌慶苑)으로 이름과 형태가 바뀌게 되었다는 말이었구나.

gyeong-20190503-67

궁궐의 이름이 바뀐 것은 2년 후인 1911년이었으니, 자경전 터에는 일본스타일의 박물관을 짓고, 1912년에는 창경원과 종묘의 기운을 끊기 위해서 율곡로를 뚫었으니 이때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이 된 창경원은 1970년대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유원지로 이용되었으며 그 시절에는 누구라도 창경원의 벚꽃놀이를 보지 못하면 서울 구경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단다.

gyeong-20190503-65

낭월도 그 무렵에 창경원을 가 봤지 싶다. 사진이 남지 않았으니 추억을 소환할 통로가 없구나. 그래서 모쪼록 사진을 많이 찍어놔야 한다는 결론이다.

가는 곳은 창경원 동물구경,
주머니엔 카라멜 사과도 한개,
발걸음도 가볍다 푸른하늘~!

대략 이런 동요가 생각난다. 검색해 보니까 없네.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바뀌면서 동요도 사라졌나보다.

gyeong-20190503-64

연지님도 옛날에 창경원을 조카들 데리고 왔었더란다. 그 시절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gyeong-20190503-02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복원되면서 오히려 볼 것이 없다고 했던 생각도 난다. 창경원의 동물들은 모두 이사를 갔다. 1984년에 복원공사를 하면서 서올대공원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gyeong-20190503-01

창경궁의 터는 넓은데 복원해야 할 숙제를 가득 품은 채로 몇몇 전각들만 자리하여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

gyeong-20190503-62

통명전은 왕의 침전있었던 모양이다. 용마루가 없으니깐. 왕궁의 역사가 조선의 역사였구나.... 조선을 알려면 왕조실록을 보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gyeong-20190503-61

통명(通明)은 밝게 통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통해서 밝아졌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여튼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왕이나 왕비가 이미 자식을 낳아서 희망을 키우는 것에는 포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생각해 보면....

①경복궁의 교태전→②창덕궁의 대조전→③창경궁의 통명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자. 교태전에서 싹튼 희망의 씨앗은 대조전에서 허풍을 떨다가 이제 통명전에서는 그나마도 사라지고 우리 부부나 잘 살자는 마음으로 변해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그야말로 침궁의 역사를 만들어 본다.

gyeong-20190503-60

사실, 통명전의 이름은 침궁의 이름이 아니다. 정사를 돌보는 본전에나 붙여야 할 이름이 여기에 붙어 있다는 것은 편액 하나도 제대로 여유롭게 써붙일 만큼의 형편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풍전등화같이 흔들리는 나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20190504_064916

통명전 앞에는 경춘전이 있다. 경춘전에서 낙선재의 한정당은 지척이구나. 산책삼아 올라갔을 수도 있겠다.

gyeong-20190503-59

원래는 침전이었다니까 온돌방이어야 하겠지만 제대로 복원이 되지 못해서 마룻방으로 전해지고 있는 모양인데 문도 닫혀서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gyeong-20190503-58

창경궁은 좀 허전하다..... 비어있는 공간들을 언제나 가득 채울 수가 있으려나.... 또 채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쓸쓸한 모습에서 경복궁의 시끌벅적했던 어제의 풍경과 대비가 될 수밖에.....

gyeong-20190503-57

오층석탑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 채로 궁궐에 외롭게 서 있다. 이 탑의 사연을 알아보려고 검색했더니만 난데없는 7층석탑이 등장을 한다.

20190504_065818

뭔가 싶어서 지도를 찾아보니까 대온실과 춘당지 사이에 있었구나. 풍기대까지만 둘러보고 대온실은 3월에 봤다고 가지 않았더니 기어이 하나를 빠트렸군. 사실 나름대로 오늘의 일정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멀리 가지 았던 것인데.... ㅎㅎㅎ

gyeong-20190503-56

저 멀리 보이는 담장은 낙선재이다.

20190504_070101

대략 이쯤 되겠군... 그러니까 오른쪽에 보이는 전각은 함인정(涵仁亭)이겠다.

gyeong-20190503-55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이라고 하니까 경복궁의 사정전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었나보다.

gyeong-20190503-53

역으로 거슬러 내려가면서 둘러보는 것도 괜찮군....

gyeong-20190503-52

빈양문(賓陽문)... 손님을 반긴단 뜻인가...? 아니면 햇볕이 찾아온다는 뜻인가....

gyeong-20190503-51

문이 닫힌 곳이 많아서 아쉽군...

gyeong-20190503-50

숭문당...

gyeong-20190503-49

숭문전이 되지 못한 것도 국력과 유관하리라.....

gyeong-20190503-48

명정전(明政殿)이 창경궁의 본전인 셈이다.

20190504_070626

구조가 동향(東向)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빈양문은 명전전의 뒤에 지붕이 덮인 통로 끝에 있으니까 볕이 귀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은 모양이구나. ㅋㅋ

gyeong-20190503-47

안내원이 열심히 설명하고 방문객은 귀를 기울여서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도 일본인들인가 싶다. 이제 왜 일본인들이 경복궁보다 창덕궁 창경궁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자기네 조상들이 흔적을 남긴 것에 대한 향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마치 도올선생이 광개토대왕의 흔적을 보면서 감동하던 느낌이랄까....?

gyeong-20190503-46

그렇게 봐서 그런가.... 용상이나 병풍이 왠지 후줄근하게 느껴지지....?

gyeong-20190503-44

천정에는 봉과 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듯하다.

gyeong-20190503-43

위용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면 되지 싶다. 기본적으로 왕의 집무실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어서이다.

 

gyeong-20190503-42

명정전(明政殿)은 밝게 다스린다는 뜻이겠거니.... 근정전의 부지런함... 인정전의 어질게 다스린다는 의미... 이제 밝게 다스린다는 의미까지 한 꼬치에 꿰어 본다. 근정전에서는 부지런히 나라를 만들어야 했고, 나라를 만든 다음에는 인정전에서 인(仁)으로 질서를 잡았는데, 이제는 질서고 뭐고 그냥 밝게만 하면 된다는 의미로 볼까?

아니면, 인은 목(木)이니 그 목의 기운을 이어서 명은 화(火)가 되어서 나라를 밝히는 것으로 봐야 할까? 어쩌면 명(明)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도 많이 불타버린 창경궁이었던 것은 아닐까?

gyeong-20190503-40

그렇게 휑~~ 한 명정전의 앞마당으로 내려서 본다. 신하들의 품계석조차도 외로워보인다. 창경궁의 현재 모습이다.

gyeong-20190503-38

명정문(明政門)까지 내려오고 보니 정문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로군...

gyeong-20190503-37

명정문 앞의 돌다리는 3월에도 밟았지...

20190504_071702

옥천교였구나.

gyeong-20190503-36

명정문을 향하는 여행객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창경궁으로 입장한 셈이라고 하겠구나. 낭월의 걸음은 여기에서 다시 되돌리면 되겠다.

gyeong-20190503-33

다시 되돌아서 올라가다가 남겨놓은 곳으로 향한다.

gyeong-20190503-32

한적해 보이기까지 한 곳에.

gyeong-20190503-31

영춘헌(永春軒)이 자리하고 있다.

gyeong-20190503-30

춘(春)자가 많은 것은 동향이라서 그러려니 싶다.

gyeong-20190503-29

원래는 따로 떨어진 전각이었다는데 붙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복원을 한 모양이다.

gyeong-20190503-27

안으로 들어가 보니 유리로 보호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gyeong-20190503-26

그냥 바라만 보면 된다.

gyeong-20190503-25

유리가 있으니 자화상도 얻는 구나.

gyeong-20190503-24

영춘헌 통명전 쪽을 보면 암반이 나온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면...

gyeong-20190503-23

뭐가 있나.... 하고 둘러본다.

gyeong-20190503-22

풍기대(風旗臺)와 앙부일구(仰釜日)가 있다. 풍기대와 앙부일구는 궁궐마다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천문관측의 도구로 반드시 필요해서 비치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풍기대는 깃발을 달아서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부는지를 가늠했을 것이고, 알부일구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었으니 생활에서 항상 필요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gyeong-20190503-21

경복궁에서는 경회루 앞에 풍기대가 있었는데 창경궁에서는 뒷뜰에 있구나. 아마도 복원하면서 한쪽에 한가찌게 모아놓은 것이겠거니.... 싶다. 일일이 계단을 올라와서 확인한다는 것은 번거로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gyeong-20190503-19

복원을 하면서도 이러한 기구들이 있던 자리까지는 명시가 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

gyeong-20190503-18

근데... 그 자리에 쌩뚱맞게 앉아있는 이 녀석은.....?

gyeong-20190503-17

이또한 어딘가에 있던 돌을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나름 재미있게 생겼다.

gyeong-20190503-16

이 돌의 사연까지는 찾을 길이 없군....

gyeong-20190503-14

그 앞에 통명전을 내려다 보는 휴식 공간이 있다. 잠시 앉아서 쉬어도 될 전경이다.

gyeong-20190503-13

서있는 돌에 구멍이 있네. 구멍이 있으면 들여다 보고 싶어 진다. ㅋㅋㅋ

gyeong-20190503-11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gyeong-20190503-12

사진놀이이다.

gyeong-20190503-10

그냥 보는 것과 뭐가 다르냐...?

gyeong-20190503-09

앞에 뭔가 가리면 두 개의 모델을 동시에 담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음양놀이라고나 할까? 앞은 음이고 뒤는 양이다. 바위는 음이고 그 앞에 움직이는 존재들은 양이다. 사진으로 말하면 프레임놀이~!

gyeong-20190503-08

이제 다시 창덕궁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gyeong-20190503-07

아, 여기가 자경전 터였구나. 일인들이 헐고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gyeong-20190503-06

그렇게 창경궁을 둘러보고는...

gyeong-20190503-05

다시 함양문으로 향한다.

gyeong-20190503-04

함양문을 거쳐서 낙선재를 둘러보고

20190504_074130

다시 대조전의 상사(相士)를 확인한 다음에... 돈화문으로 향했다.

chang-20190504-01

오늘 오전도 이렇게 풍요로운 시간으로 삶의 한 조각을 가득 채울 수가 있었구나.

M3_04694

엄마와 딸.....

chang-20190504-05

창덕궁을 오래도록 지켜 본.... 회화나무....

chang-20190504-02

우리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찾아오는.... 수없이 반복되는 그 일상들을...

chang-20190504-03

묵묵히 바라보았을....
세월....

왕도....
왕비도....
궁인들도.....
그리고 일본도 소리도....
말발굽 소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