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화(丙火)

작성일
2007-08-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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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丙火)는 화(火)의 양(陽)에 대한 부호(符號)이다. 화(火)의 기(氣)에 해당하기도 하며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면 빛을 닮았다. 병화를 태양(太陽)이라고만 하는 것은 정확한 대입이라 할 수 없다. 태양에는 빛도 있지만 열(熱)도 있기 때문에 모든 불에는 병화(丙火)가 포함되어 있으며 어떤 불이든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비중이 많은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다고 보면 되겠다. 가령 사람이 만들어 사용하는 것 중에 형광등은 병화의 요소가 많으며, 난로(煖爐)는 정화의 요소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건충설(何建忠說)】

본질(本質)은 생장적(生長的)이고 형식(形式)은 주동적(主動的)이며 전체적(全體的)으로는 변동적(變動的)이 되니 이것은 신령(神靈)이 된다.

 

-해석-

병화(丙火)를 신령(神靈)으로 보는 것은 신령은 그렇게 빛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한 줄기의 빛이 비치면서 신령이 나타나 귀중한 말씀을 해 주고는 홀연히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음을 생각해 본다. 신령이란 열기는 없고 빛만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혼을 빛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사람에게서도 신령이 밝은 사람은 이러한 빛〔광채(光彩)〕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그것은 성현(聖賢)들의 초상화에 그려지는 후광(後光)을 의미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滴天髓-丙火論】

병화맹렬(丙火猛烈)하니 기상모설(欺霜侮雪)하고,

능단경금(能煅庚金)하나 봉신반겁(逢辛反怯)이니라.

토중생자(土衆生慈)하고 수창현절(水猖顯節)하며,

호마견향(虎馬犬鄕)하면 갑래성멸(甲來成滅)이니라.

 

【뜻풀이】

병화(丙火)기운이 맹렬(猛烈)하니

눈과 서리를 능히 무시하고,

경금(庚金)을 만나면 단련시키나

신금(辛金)을 만나면 도리어 겁낸다.

토는 많이 있어도 자애심을 내고,

수는 불을 끈다고 해도 절개를 지키는데

인오술(寅午戌)의 화세(火勢)가 모여드는 사주에서

갑목(甲木)을 만나게 되면 목은 불타게 된다.

 

【풀이】

병화(丙火)는 맹렬하다. 그 성분이 빛이기 때문에 어디라도 파고 들어간다. 빛은 직진(直進)하는 성분이지만 반사(反射)의 능력을 발휘하여 곡선(曲線)도 만든다. 이러한 능력으로 어디든지 파고들어가며 그 힘이 맹렬하여 막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눈이나 서리로도 그 강력한 빛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은 임수(壬水)와 계수(癸水)로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는 병화의 빛은 아무리 춥다고 해도 그대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겨울 빛이라고 해서 덜 비추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도 무방하다.

‘경금(庚金)을 단련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경금(庚金)도 하나의 기운(氣運)이다.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숙살지기(肅殺之氣)라고 하는 것인데, 이러한 기운이 매섭지만 병화를 만나면 일순간에 녹아 버리니 그래서 단련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병화가 열이 아니듯이 경금도 광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이러한 힌트를 통해서 능히 판단할 수가 있다. 자칫하면 형이하학적으로 이해를 해서 그 테두리에 머물러버릴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것을 잘 살피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신금(辛金)을 만나면 두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신금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해답이 달라진다. 우선 신금은 금의 질이라고 하겠고, 그것은 광물질로 봐도 그만이다. 그리고 빛이 통과할 수가 없는 성분이라는 것도 미뤄서 짐작이 된다. 금속(金屬)이나 암석(巖石)을 떠올려도 무방하다. 아무리 천하(天下)의 병화(丙火)라도 암반을 뚫고 들어갈 방법은 없으니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곳에 당도하여 두려움이 발생하는 것으로 관찰을 한다.

여기에 신금(辛金)을 흑체(黑體), 즉 빛을 흡수하는 존재로 대입하게 되면 이제 왜 신금(辛金) 만나기를 이렇게도 두려워하는지 그 이유를 명백하게 알 수가 있다. 즉 신금은 빛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병화는 바로 사라진다고 볼 수가 있는 까닭이다. 빛이 흡수되면 존재가 상실되는 것이니 죽음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광물질로 봐서 통과 할 수가 없다고 보거나, 혹은 흑체가 되어서 빛을 완전히 흡수해 버리거나, 여하튼 천하의 병화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

‘토가 많으면 자애심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토(戊土)나 기토(己土)가 병화(丙火)의 힘이 있어야 무슨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土)는 오로지 병화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된다. 무토(戊土)의 대기권도 병화의 힘이 있어야 유지가 되며, 기토(己土)의 토양도 병화가 있어야 삼라만상을 포함해서 성장시킬 수가 있는 것이니 토에게는 필연적으로 병화(丙火)가 필요하다고 해야 하겠다.

병화는 토에게 아낌없이 준다. 그래서 자애심이 생긴다고 하게 되고, 토가 아무리 많아도 그와 같은 현상은 진행이 되며, 여기에서 병화(丙火)의 힘이 강하고 약함을 논하지 않는 것은, 십간(十干)의 이치는 사주풀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연의 이치를 설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주의 이치에 너무 얽매여서 관찰을 하게 되면 관찰력도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물이 많아도 절개를 지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앞에서의 기상모설(欺霜侮雪)이 천간(天干)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다고 하면 이번의 수창현절(水猖顯節)은 지지의 상황을 놓고 생각을 해봐도 된다. 즉 임계수(壬癸水)가 강하(江河)를 이루게 되어도 병화(丙火)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절개를 지킨다고 하기 보다는‘두려움이 없음’이리고 보는 것이 더 좋겠다. 또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임계수(壬癸水)든 해자수(亥子水)든 빛이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한 냉기와 언 물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는 관점으로 살펴도 된다. 그러니까 수를 만나게 되면 병화(丙火)는 얻을 것은 없지만, 그렇게 자신의 기운을 베풀어서 충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충성이란 관살(官殺)에게 봉사한다는 의미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유백온 선생은 그렇게 절개를 지킨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해야만 왕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속사정이야 요즘 사람으로는 생각이 미칠 길이 없으니 그냥 짐작만 하게 된다.

인오술(寅午戌)이 모였는데, 갑목(甲木)이 오면 멸하게 된다는 말은 보기에 따라서 여간 까다로운 구절이 아니다. 간단히 생각을 하면 화다목분(火多木焚)으로 이해를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되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넣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그래서 다시 뭔가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걱정팔자격’을 타고 난 녀석의 고민인지도 모를 일이다.

앞에서 우리는 갑목(甲木)을 뻗어가는 에너지로 봤다. 그렇다면 병화는 폭발하는 에너지가 아닌가? 이렇게 서로 발산하는 성분끼리 만나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거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데, 다시 화세를 도우는 인오술이 모여 있으면 그대로 목의 기운도 날려버린다고 보면 조금은 나은 관찰일까 싶기도 하다. 그 말이 그 말이라고 한다면 달리 더 궁리를 해볼 능력이 없다. 역부족이다. 이 외에 더욱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다음에 알려 드리도록 하겠다.

 

【心理的인 해석-난폭(亂暴)과 폭발(爆發)】

병화는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다. 그야말로 공리(公利)와 공욕(公慾)의 본체(本體)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공명정대하여 마치 포청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허물을 범한 이가 재상이든 병졸이든 구분하지 않는다. 죄의 경중을 논해서 작두를 대령하거나, 형틀에 매어달 뿐이다. 그래서 모두 그를 두려워한다. 병화에서 이와 같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대로 원칙대로 준수를 할 뿐이다. 그래서 융통성이 없다. 인정사정도 없다. 오로지 원리원칙만이 존재한다. 그 외의 모든 이야기는 구구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병화의 본성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것은 태양은 그대로 빛을 내 쏘는 것이며, 이것은 상황에 따라서 구분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게 된다. 난폭하다는 말도 할 수가 있고, 폭발한다는 말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병화의 모습이다.

병화는 신령(神靈)이라고 했듯이 형형(炯炯)한 광채(光彩)를 떠올리게 된다. 눈이 부셔서 바로 쳐다 볼 수가 없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이 되는데, 태양(太陽)이 신이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태양이 아무래도 병화(丙火)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보겠는데, 그러한 점에서 경배(敬拜)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아득한 옛적부터 인식을 해 온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겠다. 그리고 세상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암울(暗鬱)하다고 하고, 암흑(暗黑)이라고도 하는데, 병화가 질서를 잡게 되면 광명천지(光明天地)라고 하게 되니 이러한 관점에서 병화의 심리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사주에는 병화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글자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느냐는 것도 살펴서 함께 관찰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앞으로 60갑자의 각론에서 설명을 할 것이지만 비록 그렇게 전개가 되더라도 병화의 기본적인 성분은 그대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러한 성분을 십성(十星)으로는‘편관(偏官)’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