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을목(乙木)

작성일
2007-08-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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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목(乙木)은 목(木)의 음(陰)에 대한 부호이다. 목질(木質)에 해당하기도 한다. 을목을 화초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초목(草木)이든 고목(枯木)이든 모두 을목(乙木)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목질(木質)이기만 하다면 을목으로 간주해서 무리가 없다. 그리고 살아 있느냐? 혹은 죽어 있느냐?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여기에 갑목(甲木)이 같이 있는가 없는가를 구분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갑목과 분리되면 죽은 나무가 되고, 함께 있으면 살아있는 나무가 되는 것이니 그로 인해서 죽은 나무는 재목(材木)〔순수한 을목〕이 되는 것이고, 살아있는 나무는 계속해서 성장(成長)〔갑목과 함께 있는 을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매우 타당한 대입이다.

 

【하건충설(何建忠說)】

본질(本質)이 생장(生長)적인 것을 가리킨다. 형식은 모여들어서 집결하는 성분이고, 전체적인 모양은 응결되어서 가만히 머무르는 형태이니 이것은 식물(植物)이다.

 

-해석-

을목(乙木)을 식물(植物)로 보는 것은 고정적(固定的)〔음(陰)의 속성(屬性)〕인 성분이면서 성장하는 물질로 관찰을 하는 연고이다. 갑목(甲木)이 동물(動物)인 반면에 을목(乙木)은 식물(植物)이 되는 것이니 목의 음양(陰陽)에 따른 차이라고 이해를 하게 된다.

 

【滴天髓-乙木論】

을목수유(乙木雖柔)하나 규양해우(刲羊解牛)하고,

회정포병(懷丁抱丙)하면 과봉승후(跨鳳乘猴)하며,

허습지지(虛濕之地)에는 기마역우(騎馬亦憂)요.

등라계갑(藤蘿繫甲)하면 가춘가추(可春可秋)니라.

 

【뜻풀이】

을목(乙木)은 비록 연약하지만

축토(丑土)와 미토(未土)를 뚫을 수 있고,

정화(丁火)를 품고 병화(丙火)가 있으면

유금(酉金)이든 신금(申金)이든 두렵지 않다.

질퍽하고 물렁한 땅을 만나게 되면

오화(午火)를 만나더라도 또한 근심이 되고,

갑목을 만나 기운이 엉켜서 하나가 되면

봄에도 좋고 가을에도 좋다.

 

【풀이】

을목을 음의 나무라고 하여 부드럽고 연약하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미토(未土)나 축토(丑土)에도 능히 뿌리를 내리는데, 갑목(甲木)은 그리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음목(陰木)은 목질(木質)이기 때문이다. 갑목(甲木)은 앞으로만 전진하는 성분이지만, 을목은 뿌리를 내리고 구체적인 물질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성분이니 능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을목(乙木)이 있기에 갑목(甲木)이 앞으로 뻗어 나갈 수가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을목(乙木)은 갑목의 뿌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하나의 나무가 있다면 줄기와 뿌리는 모두 을목(乙木)이고, 잎과 눈은 모두 갑목(甲木)이라고 말을 해도 되는 것이다.

‘병정화(丙丁火)를 얻으면 신금(申金)이나 유금(酉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만약 불이 없다면 금의 존재가 두려우니 그 이유는 숙살지기(肅殺之氣)요 성장을 중지하는 성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금을 만나면 목질(木質)은 성장을 중지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병화(丙火)나 정화(丁火)를 만나게 되면 그대로 성장이 가능하므로 금을 무시하고 성장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온실(溫室)의 화초(花草)는 가을이나 겨울이 되어도 여전히 성장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회정포병(懷丁抱丙)’의 의미를 보게 되면, 정화(丁火)는 지온(地溫)이 되고, 병화(丙火)는 기온(氣溫)이 된다. 을목(乙木)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이 지온과 기온이라고 한다면, 회정포병을 이와 같은 관점으로 살펴봐도 되겠다. 그렇게 되면 과봉승후(跨鳳乘猴)를 하게 된다는 말이므로 금(金)의 기운을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병화(丙火)의 기운만 받아도 능히 금기(金氣)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록 여름이라고 하더라도 땅이 냉하면 나무는 시들게 되는 것과 같아서 그것도 곤란한 일인지라 정화(丁火)의 도움까지도 있다면 비로소 완벽하게 1년 사계절 성장하는 나무가 될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이렇게 화(火)는 병정화(丙丁火)를 적어 놓고, 금(金)은 신유금(申酉金)을 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니까 을목에게 두려운 것은 천간(天干)의 경신금(庚辛金)보다도 지지의 금이 더 부담이라고 해야 하겠는데, 사실 목의 생명점은 뿌리 쪽에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천간은 시들어도 뿌리가 다시 싹을 틔울 수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두려운 것은 지지의 금기(金氣)인 신금(申金)과 금질(金質)인 유금(酉金)인 것이다. 그런데 병정화가 있기만 하다면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고 하겠으니, 그래서 천간의 금을 논하지 않고 지지의 금을 논한 것으로 관찰이 된다. 또한 지혜로운 관찰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앞의 갑목 편에서는 전반의 절반이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처음부터 모두가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을목(乙木)은 어차피 물질에 가까운 성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음양(陰陽)에 의한 확연한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겠고, 이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갑을목(甲乙木)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지지(地支)에 습기(濕氣)가 과중하면 목의 뿌리는 썩게 된다. 갑목편에서는 수탕기호를 말했는데, 을목편에서는 허습지지(虛濕之地)를 말한다. 갑목은 허습지지 정도는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 차이는 갑목은 싹과 같고 을목은 뿌리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목에게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도 을목에게는 과습(過濕)하면 뿌리가 썩으므로 의지할 곳이 필요한데, 혹시 오화(午火)를 타고 있으면 이것은 그야말로 근심이 넘친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화(午火)가 지지(地支)에 있고 과습한 구조를 함께 갖게 된다면 땅이 부패하게 되어 뿌리는 썩어 퇴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늘이 따스한 것은 목이 바라는 바가 되지만, 지지가 뜨겁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약 그러하다면 그대로 목이 죽어버리게 되니 그래서 근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관찰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안목이다.

갑목과 얽히게 되면 봄이나 가을이나 모두 좋다고 하겠으니 그 이유는 을목이 갑목을 만나면 죽죽 뻗어가는 성장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등라계갑(藤蘿繫甲)을 오해하여 소나무를 등나무가 감고 올라가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실은 갑목과 을목이 서로 엉키게 되면 을목의 성장이 더욱 급속하게 진행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갑목이 없다면 목의 기운이 부족하여 성장하는데 매양 시간이 걸리고 더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 보게 되면 또 다른 묘미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을 해 보시라. 왜 을목이 갑목을 감고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가? 을목은 아무 곳으로나 뻗어나가도 무방하다. 그리고 을목이 과연 넝쿨식물인지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사실은 그냥 목의 질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나무나 전나무가 목의 기운을 품게 되면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으로 보면 그만이지 여기에 무슨 나무의 품종을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남의 다리 긁는 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암벽에 붙어서 살아있는 나무는 갑목의 기운이 부족하여 성장이 매양 더디게 된다. 그리고 옥토(沃土)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이러한 것은 갑목을 만나고 못 만남의 차이로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봄에는 많이 성장을 할 것이고, 가을에도 그대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가장 좋은 것으로 보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갑목이 소나무가 아닌 이유를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가을에도 좋다는 것은 가을에 소나무를 의지하고 있는 덩굴은 시들지 않는다는 말인가를 살펴보면 이내 알 일이다.

 

【心理的인 해석-현실(現實)과 치밀(緻密)】

을목의 심리적인 구조는 현실적(現實的)인 성분과 치밀한 것으로 대입을 하게 된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나무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데, 나무가 현실적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해가 떠 있어야 광합성작용을 하기 때문에 성장이 가능하고, 비가 오면 물을 흡수해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의 조건에 대해서 민감하게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인지를 할 적에는 현실적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서 치밀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나무가 너무 주변의 환경을 무시하고 위로만 자라게 되면 바람이 불어서 꺾여버리게 될 것이고, 너무 열매를 많이 매달게 되어도 또한 영양공급의 부족으로 인해서 시들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치밀하게 계산하고 저울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당가의 복숭아나무를 보면 감탄을 하기도 한다. 왜냐면 봄에 꽃이 필적에는 많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을 적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열매를 맺는데, 나중에 또 스스로 열매를 솎아내고 최종적으로 결실까지 가는 것은 그 중에서도 몇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서이다. 스스로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현실적으로 생존을 위해서 냉철한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그냥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을목(乙木)의 치밀함과 현실적인 것을 함께 느낄 수가 있는 것이므로 사람도 을목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와 같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격물치지(格物致知)하여 자연을 관하는 것이 공부에 이롭다고 하겠으니 자연이 무수히 많은 힌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면 그대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오행공부이고 음양공부일 것이다.